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6)
Chapter 226. 현재의 자취
“로잭? 슬로터 로잭?”
슬그머니 새어 나온 되뇜은 로잭을 발끈하게 했다.
“그냥 로잭이다! 쓸데없는 말 덧붙이지 마!”
이를 듣다가 곁에서 한숨 쉬려는 듯한 예르카를 향해 투란이 나직하게, 재빠르게 묻는 소리를 꺼낸다.
“왜 슬로터래요?”
“소소한 몬스터를 많이 죽였거든. 떼로 몰려다니는 녀석들 상대하는 짓으로 로잭이 실적을 많이 올렸다고 해야겠구나. 뭐, 그런 일이다. 흔한 일이잖냐.”
“음, 그랬군요. 그래서 저 아저씨는 슬로터 로잭이라 아는 것이고 다른 일은 잘 모르는 척할 수도 있고 말이죠.”
키득거리는 말투로 투란이 예르카의 설명에 보탰다.
냅다 덮어씌우는 투란의 말에 저택 주인의 표정이 허옇게 변했고, 로잭의 낯은 비뚤어진 웃음으로 채워졌다.
“아하, 투란 네가 제대로 짚은 모양이네?”
“자, 잠깐! 무슨 일인가 제대로 설명을……!”
변명하려는 몇 마디는 목 줄기를 잡히면서 멈춰졌다.
컥컥거리며 숨도 못 쉬는 몰골을 만들고 나서 로잭이 말을 잇는다.
“그냥은 시침 뗄 작정이라 이거지? 그럼, 울고불고 한바탕 한 다음에 입을 열라고. 자, 어떻게 울고불고하게 해줄까나…….”
목이 졸린 채로 방긋거리는 입술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나올 수가 없었다.
투란은 그 꼴을 흘깃거리며 주변을, 실내를 둘러봤다.
바깥쪽에서는 개를 실내에 들이냐 마느냐로 작은 실랑이가 있었고, 결국은 석궁과 단검으로 무장한 이들이 문을 둘러싸며 쳐들어가느냐 마느냐로 새로운 실랑이를 하는 중이었다. 저택 주인의 상황을 얼핏얼핏 보아가며 어찌할까를 다투는 분위기인데, 누구 하나 또렷하게 패거리를 이끌고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예르카가 투란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흔들다가 한숨을 쉬며 찰싹거리며 슬슬 뺨을 때리고 있는 로잭에게 외친다.
“시간 끌 것 없다, 가자.”
“가요? 어디로?”
로잭이 갸웃하니 예르카는 성큼 내디뎠고 바로 손을 내밀었다.
로잭이 쥐고 있던 목 줄기가 순식간에 예르카의 손으로 넘어온 순간, 예르카의 발이 천장을 그대로 걷어차 올렸다.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발등, 발목이 굵게 부풀어 오르며 천장이 뚫렸다.
“우왓! 역시 고무쇠!”
팽창하는 형상을 보고 투란이 감탄했다.
로잭은 끄응 하며 혀를 찼고, 예르카가 사람 하나를 병아리처럼 쥐고 뚫어놓은 구멍으로 튀어나가는 광경을 보다가 말한다.
“투란, 놓치면 안 돼.”
“어디 가는지도 몰라?”
“그냥 따라가!”
“여전하네.”
뚱하니 묻던 투란은 로잭의 대꾸에 한층 더 뚱한 대꾸를 하고 바로 천장으로 뛰어오르려는 시늉을 했다. 한데 로잭은 한 번 발을 구르나 싶더니 단숨에 천장 구멍 가에 손을 대더니 곧바로 빠져나가고 있잖은가.
‘어라? 마법도 아니고 오러도 아니었지?’
―순수한 몸놀림이다. 몸을 꽤 잘 다룬다고 해야지. 확실히……학살을 주도하는 도살자라 불릴 정도는 된다.
‘슬로터? 그게 그렇게 복잡한 뜻이었어?’
―마법사가 붙인 별명이잖냐. 헌터끼리라면 도축자니, 도살자니 그냥 부르고 말았겠지. 굳이 슬로터란 호칭을 붙였다면 마법사일 거야.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추측에 나름대로 납득하며 바로 발을 굴러 천장 구멍을 통과했다. 예르카는 이미 지붕을 밟고 저택 담장을 단숨에 지나치는 중이었고 로잭은 껑충거리며 지붕과 담장의 경계를 가늠하며 표범이나 잔나비를 떠올리는 몸짓으로 예르카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냥 가냐.’
혀를 차며 투란은 지붕을 디딘 발에 살짝 힘을 줬다.
흐릿한 진동이 투란의 발로부터 퍼져나갔고, 아래층에 몰려들던 석광과 단검을 장비한 채로 실내전투를 염두에 둔 이들을 향해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저택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곧바로 로잭의 뒤를, 멀리 가는 예르카가 향한 곳을 가늠하며 쫓기 시작했다.
‘와, 빠르네?’
―고무쇠의 탄성을 마치 원래 자신의 근육처럼…… 응? 예르카 얘기가 아니냐?
몬스터 로드 예르카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떠들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혀를 차며 로잭에게 시선을 뒀다는 것을 알고 갸웃했다.
로잭은 여전히 숙련된 몸놀림, 적절한 경로를 따라 산뜻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앞장서는 예르카가 속도를 더 올린다고 해도 아주 가뿐히 쫓을 듯한 모습이었다. 뒤따라 오려는 저택의 패거리는 이미 담장 앞에서 한번 좌절하고 거리의 풍경 속에 사라지는 중이었는데…….
‘오러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야. 그런데도 저런다고. 잠깐 한눈팔면 바로 고무쇠 영감이 눈앞에서 사라질 텐데 놓치지도 않아. 수십 번 연습해서 쫓는 것도 아닌데 저러고 있잖아.’
―그렇긴 하다만…… 그런 거라면 베테랑 몬스터 헌터라면 당연한 일 아니냐?
조금 더 갸웃하듯이 되묻는 드라고니아였다.
‘어? 그런가? 로잭이 베테랑이라…….’
쓴웃음을 짓고 되뇌는 투란이었다.
처음에는 세월을 가득 담은 외모에서 로잭이 아닐 거라고 우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다음 겨우 로잭이 늙었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세월 속에 단련해서 베테랑이란 점이 어쩐지 어색하잖은가!
―언제까지 그럴 거냐? 이제 적당히 받아들일 때가 되잖았어?
‘뭐, 딱히…… 이렇게 사람 납치하는 광경을 상상도 못 해서 그래, 아주 낯설고 이상하잖아?’
투란이 얼버무리니 드라고니아는 혀를 차는 시늉만 하고 말을 멈췄다.
그렇게 느닷없이 저택에서 사람을 납치하는 상황은 예르카가 도시를 벗어나면서부터 조금씩 묘해지기 시작하는데…….
“어라, 영감님! 할배! 아저씨이이!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먼저 로잭이 인적이 보기 힘들어질 때부터 이리 외치기 시작했고.
“저기 뭐 있나?”
투란은 예르카가 향한 쪽으로, 그 너머에 뭐가 있는가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납치당한 저택의 주인은 슬슬 겁을 먹은 듯.
“꾸억! 쿨럭, 크르륵! 수, 숨 좀! 허억, 왜 이러는지 말을 해! 말을 해야 내가 대답을 하지이이!”
숨 막혀 죽는 시늉부터 하다가 목 줄기가 느슨해지는 것을 느끼기가 무섭게 얌전히 뭐든 대답해줄 수 있다는 의지를 열심히 쥐어짜 내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멀리서 그 소리를 들은 투란은 피식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저택에서 버티려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도시 밖으로 끌려 나와 그대로 숲에 버려진 시체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을 깨달은 자의 목소리가 아닌가.
로잭도 비슷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아저씨이이! 숨 좀 돌리고 가자고요! 얘기하고 싶다잖아요!”
예르카가 멈췄다.
저택의 주인은 커다랗게 솟은 나무 아래로 던져졌다.
뒹굴면서 울퉁불퉁 땅을 메운 나무뿌리, 줄기에 부딪힌 저택의 주인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바로 그 어깨를 밟아 누르면서 예르카가 으르렁거림부터 토하며 말문을 연다.
“나는 몬스터 로드다! 다이얀이란 도시를 즐거운 곳이라고 여기지, 하지만 내 집은 아니야. 솔로얀 왕국을 제법 살 만한 곳이라 여기지,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춤추는 산맥이다. 사람 사는 곳을 좋아하지만 내 본성은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산맥의 깊은 곳으로 향해도 좋다 하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나?”
뭘 묻는 것인가 어리둥절할 만한 이야기였다.
로잭에 이어 예르카의 등을 보며 선 투란은 ‘뭐래?’라고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저택의 주인은 낯이 한층 더 하얗고 파릇해지면서 예르카를 향해 고개를 끄덕끄덕하잖는가. 그리고 입을 열어 더듬는 말투로 꺼내놓는 소리는.
“아, 알아! 안다고! 내가 누구이든 이 자리에서 찢어 죽이고 갈 길 갈 수 있다는 말이잖아! 잘 알아, 아주 잘 알지! 몬스터 로드가 그런 식으로 살며 떠도는 것, 처음 듣는 것도 아니고 자주 보고 듣는다고! 대체 뭘 원하나? 로잭의 현상금? 그건 도적 길드를 통해…….”
“닥쳐.”
묻지도 않은 말이 나올 듯한 순간, 예르카가 짧게 으르렁거렸다.
저택의 주인이 입을 바로 닫아 물었다.
부들거리며 떠는 그 표정은 ‘대체 뭘 어쩌라고!’라는 말을 벼락처럼 쏟아내고 싶다는 의미를 가득 담았지만, 저택에서 벗어난 주인의 입은 꽉 다물린 채로 이를 악물며 참는 꼴이었다.
이를 보던 로잭이 바로 예르카의 곁으로 서면서 말한다.
“내가 물을까요?”
“아니, 네 말에는 제대로 답하지 않을 거야. 너는 몬스터 헌터이고, 다이얀에 사는 녀석이니까.”
예르카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로잭은 살짝 움찔하다가 두어 걸음 물러서며 투란 곁에 섰다.
투란이 가는 눈길로 흘깃하니, 로잭이 어깨를 으쓱하며 턱짓으로 예르카를 가리킨다. 이제부터는 영감님 고집대로 두겠다는, 옛날에 샤오덴 할배를 놓고 하던 턱짓이었다.
추억 속의 소년과 전혀 겹쳐볼 수 없는 듯한 현재의 로잭을 향해 입술을 삐죽하며 투란이 나직하게 쫑알거린다.
“킬리만드로스가 뭔지 궁금한데…….”
순간 저택의 주인이 움찔했다.
예르카는 그런 저택의 주인을 내려다보다가 히죽 웃었다.
“좋은 시작이군. 그래, 네 이름부터 이야기해봐. 우리가 처음 만나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그리고 킬리만드로스에 대해서 이야기해. 자, 어서 입을 열고 토해봐.”
저택의 주인이 이를 악무는 표정부터 지었다.
그러나 예르카가 그 어깨를 밟은 채로 발에 지그시 힘을 주는 순간에 그 표정은 고통만 담은 쪽으로 바뀌었고, 이를 가는 소리가 섞인 채로 이야기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이얀에서 경매장을 둘러보며 물품을 매매하는 상인…… 필릭이라고 알려져 있소만, 그 이름과 신분은 위장이오. 내 진짜 이름은 카필릭, 도적 길드에서 다이얀의 주시자로 임명받아 왔소. 다이얀은…… 옛날 도적왕의 유품이 다시 나타나기 쉬운 곳이기에 길드의 정통성을 잇는 입장에서는 결코 눈을 뗄 수 없소. 그래서 길드에서는, 설혹 의견이 갈려 분파가 나뉘더라도 다이얀에는 반드시 나 같은 주시자를 두기 마련이오. 극단적인 파벌이 생겨나며 파벌마다 주시자를 따로 보낼 정도지. 그렇게 주시하는 입장에서 간혹 다른 주시자와 의견을 교환해야 할 때가 있을 수밖에 없지. 그럴 때 우리가 이용하는 암호가 킬리만드로스, 때와 장소를 정해 서로 만나서 의견을 조율하자는 말이오. 그래서 난 다른 주시자가 온 줄…….”
“그만, 잘 떠들다가 거짓말로 때우려고? 다시, 킬리만드로스부터 다시 해봐.”
예르카의 말투는 꽤 살벌했다.
저택의 주인 카필릭은 그 살벌함을 부서지는 어깨뼈를 통해 골수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이를 가는 소리가 섞인 말을 토해내고 있었으니.
“킬리만드로스는…… 암호가 맞소. 잃어버린 도적왕의 유물이 나타났다는 뜻이지. 주시자에게 그 말이 전달되면 바로 길드에 연락해야 하는 암호요. 당신…… 알고 있었군? 내가 주시자란 것도, 킬리만드로스의 의미도…… 당신 말고는 모르는 모양인데? 어떻게 알…… 크윽.”
예르카의 발이 슬쩍 카필릭의 어깨를 타고 가슴 쪽으로 옮겨갔다.
지그시 가슴이 밟히며 허파가 눌리는 압박에 카필릭이 말을 못 잇고 씩씩거리는 사이, 투란이 재빨리 로잭에게 묻는다.
“알고 있었어?”
“아니, 중요한 말인가 싶었지만 뜻은 몰랐어.”
“음? 그런데 왜?”
“예전에 도적 중에 거물인 녀석들을 몇 상대해봤거든.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그 말만 하면 낯짝을 들이밀고는 하더군.”
“뜻도 모르고 암호를 떠들고 다녔는데, 도적들이 그냥 둬?”
“날 그냥 두지 않으려 한 도적들을 내가 그냥 뒀을까?”
히죽, 웃음과 함께 로잭이 투란을 장난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투란은 문득 그런 로잭의 얼굴에 깊게 파여 나가는 잔주름이 견고하고 강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헛웃음이 저절로 투란의 입꼬리에 매달렸고 투박한 대꾸가 바로 새나온다.
“용케 살아 있었네, 로잭.”
“뭐…… 너보다는 쉬웠을걸.”
어느새 웃음을 지운 낯으로 로잭이 말했다.
둘이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예르카가 몸을 숙이며 고개를 낮춰 카필릭에게 속삭이고 있었는데.
“뭐? 뭐라고! 다, 당신! 크억…… 으으윽…….”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라, 카필릭.”
카필릭이 경악하는 사이에도 그 손가락을 잘근잘근 밟아 뼈를 부수면서 예르카가 속삭임을 더하고 있었다.
―꽤 잔인한데?
드라고니아가 기묘한 흥미를 드러냈다.
‘그렇지? 그런데 저 인간, 안 아픈가?’
투란도 새삼 카필릭에게서 기묘한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뼈가 연쇄로 부서지고 죽네 사네 하는 상황에서 도적길드의 주시자란 카필릭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을 제대로 하는 중인가? 흡사 고통과 격리된 듯한 저 기묘한 상태는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