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7)
“이런 빌어먹을!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은데! 뭐가 듣고 싶은지 말을 해!”
카필릭이 외려 성난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역시나 고통과는 거리가 먼 태도.
투란이 뭐라 해야겠다 싶어 말을 고르는데, 로잭이 슬쩍 고개를 내미는 모습으로 예르카를 향해 말한다.
“아저씨, 그놈 좀 이상하지 않아요?”
예르카는 머뭇거림없이 대답하는데.
“고통을 경감(輕減)시키는 가호(加護)가 발동한 상태니까. 죽음을 막아주는 가호는 아니야.”
투란과 로잭이 입을 다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카필릭을 바라봐야 했다. 하지만 둘의 눈길은 금방 예르카에게로 슬그머니 옮겨지고 말았다. 카필릭이 제법 거물답게 마법의 가호를 지녔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던 모양인데, 그 가호가 발동할 때까지 뼈를 부수고 발동한 다음에도 멈추질 않고 있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호기심과 궁금함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카필릭이 이를 갈며 소리친다.
“젠장, 로잭! 뭘 원하는 거냐! 이 미친 영감을 말려야 할 것 아니냐고! 나한테 듣고 싶은 말이 없어? 그래서 날 죽이고 다른 놈이라도 찾아갈 생각이라면 빨리 죽이든가!”
로잭이 오히려 큰소리쳐대는 카필릭을 보며 어이없어 실실 웃었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곁에서 그 꼴을 보다가 투란이 한숨 쉬는 척하면서 예르카를 향해 말한다.
“아픈 건 무서운데 죽는 건 안 무서운 아저씨네요? 어쩔 거예요, 아저씨?”
묘하게 겹쳐진 아저씨란 한마디에 예르카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큰소리치던 카필릭도 씩씩거리는 와중에 조금 어리둥절해서 눈알을 굴렸다.
로잭은 슬쩍 투란을 보며 풋풋거리고 새는 웃음을 참으려는 모습이었다.
한숨을 참는 듯한, 어찌 보면 울화가 새 나오는 것을 억누르는 듯한 낯빛을 띠며 노인의 입술이 강철처럼 뒤틀리며 다시 열린다.
“몬스터 로드가 우스운가 보구나?”
그리고 우악스럽게 카필릭의 머리통을 움켜쥐는 예르카였다.
손가락 마디가 부풀고 손끝이 길어지며 마치 끈처럼 카필릭의 머리를 휘어감는 광경은 괴이(怪異)가 내려앉는 현실이었다.
“뭐? 무슨…….”
뭐라 외치려던 카필릭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눈알이 뒤집혀지며 입술마저 잇몸을 드러내겠다는 듯이 까뒤집언 채로 카필릭의 얼굴 가죽이 물결처럼 요동(搖動)쳤다. 그 흔들림은 목을 따라 온몸으로 번져가는 듯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흐릿한 안개처럼 빛이 카필릭의 몸을 휘감으며 뭉클거리는 낌새로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파닥거리려는 듯했던 카필릭의 손끝, 발끝의 움직임까지 금방 고요함에 감금당한 것처럼 멈춰졌다.
예르카는 그렇게 카필릭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놔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가만히 지켜보려는 듯했던 로잭이 한 열을 센 듯한 다음에 바로 입을 연다.
“아저씨.”
그 한마디에 바로 예르카의 손이 풀렸다.
카필릭의 고개가 떨궈지는가 싶은 순간, 곧바로 머리가 치켜 올라가며 부릅뜬 눈알 위로 핏대가 죽죽 뻗어 번지는 광경을 드러내며 카필릭의 비명이 터져나온다. 형언(形言)할 수 없는 그 비명은 나뭇가지를 뒤흔드는 듯했고 풀잎이 놀라 멀리 기울어지게 하는 듯도 했다.
투란은 귀를 후볐고 흘깃 로잭을 바라봤다.
어느새 귀 막는 시늉을 하던 로잭이 한숨처럼 한 걸음 나아가며 예르카 옆에 섰다.
“이봐, 한번 더 할래? 말을 할래?”
“도적 길드의 지부장이었어! 로잭, 너랑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를 확실하게 제공해준다면 우리도 정식 길드로, 헌터 길드처럼 나라의 인정을 받는 정식 길드도 탈바꿈할 수 있다고 했어! 상급 헌터로서 발돋움하는 너에 대해서, 로잭에 대해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증명할 능력이라고 했다고! 그뿐이야! 내가 들은 것은 그게 전부야!”
카필릭이 목을 쥐어짜 내며 확 삭아버린 듯한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로잭이 그 말이 끝나고 숨을 몰아 들이켜려는 카필릭에게 담담한 척, 하지만 재빠른 말로 다시 묻는다.
“들은 것은 거기까지라고 인정하지. 그럼, 듣지 않고 네가 캐낸 것은? 지부장의 야망에 감동해서 내막을 파헤치지도 않고 그냥 명령에 따르고 있지는 않았잖아? 이 동네에서, 이 다이얀이란 경매의 마수굴에서 버티는 거물께서 말이야. 뭘 알아냈지?”
카필릭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금방 솟아난 듯한 증오, 혐오가 담긴 눈빛을 쏘아내는 채로 카필릭의 입술은 다시 달싹이며 삭아버린 목소리를 토해낸다.
“왕궁 근위기사가 지원해주는 자라고 했다. 정말로 도적 길드가 정보를 다루는 정식 길드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으니까. 헛소리에 휘둘려서 모가지 동강 나는 꼴은 싫었으니까. 너를, 로잭 너를 죽이려 한 자가 정말로 근위기사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니까, 넌 죽었어야 했어. 도대체 어떻게 살아돌아왔지?”
“그 근위기사가 어느 나라 소속인지도 알아냈냐?”
묻는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로잭이 다시 묻고 있었다.
카필릭은 입가를 뒤틀며 분한 마음을 드러내긴 했지만 대답부터 하고 있었다.
“로그람이었다, 솔로얀이 아니라. 그래서 더 잘된 일이라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지. 솔로얀이었다면 근위기사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이라고 해도…….”
“로그람의 누가 근위기사를 움직였는지도 알아냈군? 누구냐?”
로잭은 말을 자르며 다시 묻고 있었다.
지켜보던 투란이 살짝 휘파람을 부는 시늉을 했다.
‘와, 일방적이네?’
―심문의 기본에 충실하구만.
‘어? 그래?’
―뭘 묻는 것이 목적이지, 상대방의 묻는 말에 친절하게 사정 설명해주는 것이 심문은 아니잖냐.
‘음, 뭐…… 그런데 아까 가호를 어떻게 한 건지 알아봤어?’
―마법을 감지하고 분석해서 왜곡했던 모양이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개입되어 있으면 탐지 불능이니까, 저 작자의 반응을 통해서 추측만 해봤어.
‘그래.’
투란은 눈알만 굴려 예르카를 흘깃하며 다시 카필릭이 주저하며 한 박자 늦게 토해내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 너도 예상은 하고 있겠지? 내가 알아낸 정보로 추측하면…… 너를 죽이려는 자는 두룩칼, 그를 후원해서 근위기사까지 동원하는 자는…… 대후작(大侯爵)일 거야. 귀족으로서의 지위는 공작(公爵)보다 아래라지만 왕궁 근위단을 지휘하며 국가 운영을 책임진다는 그 재상(宰相), 그 대후작가에서 로잭 너를, 너와 관련된 자들을 죽이고 지워 버리려 한다는 말이다. 이게 내가 내린 추측의 전부야. 왜 그러는가까지는 나도 몰라. 그건 로잭, 너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겠지? 내 아는 바는 이게 전부다. 그러니 이제 그만…….”
툭, 카필릭의 고개가 떨궈지며 나오던 목소리가 끊어졌다.
로잭이 ‘어라?’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예르카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바닥에 반쯤 앉혀진 꼴로 뒹구는 모습이던 카필릭의 몸이 그대로 엎어졌다.
투란은 그 광경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호를 파괴하며 지속시키던 예르카의 고유마력이 끊어졌고, 그 순간에 카필릭을 엉거주춤하니 붙잡고 유지시켜 주던 힘이 사라지니 그대로 쓰러진 셈이었다.
순간 로잭이 묻는다.
“죽였어요?”
“아직.”
예르카의 답은 담백하고 짧았다.
투란이 재빨리 보태 묻는다.
“죽일 거예요?”
예르카는 답하지 않고 로잭을 바라봤다.
로잭은 잠깐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당분간 살려두는 편이 좋겠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뭐, 수틀린다 싶으면 그때는…… 아저씨, 그럴 때 바로 죽일 수 있겠어요?”
“몬스터 로드가 무슨 마법사냐? 그런 편리한 요술은 몰라. 하지만…… 독을 주입해서 겁을 줄 수는 있지. 이놈이 겁먹지 않으면 그냥 죽을 테고.”
퉁명스럽고 떨떠름한 예르카의 말투가 로잭의 고개를 다시 젓게 했다.
“그럼,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하죠. 그리고…… 어때, 투란?”
갑자기 불린 이름에 투란이 갸우뚱하며 되묻는다.
“뭐가?”
“대후작가라는데 아무 생각 없는 거냐?”
어이없어하며 로잭이 다시 짚어주는 말투로 묻는다.
투란이 ‘그런데?’라는 표정으로 눈을 한 번 깜박하는 사이.
―얌마! 너에 대해 지우고 아는 이들을 죽이려 하는 원흉이라잖아! 이 사람들은 너를 아는 이유로 죽어 나가고 쫓기는 중이었다고!
‘어? 앗!’
뒷골이 팽하니 땅기는 느낌과 함께 투란은 이게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멀뚱거리면서 고무쇠 아저씨 예르카가 노인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상급 몬스터 로드의 능력을 감상하며 ‘오옷, 저리도 되는군!’이라고 관찰한다든가 홀랑 늙어버린 아저씨가 된 로잭과 어울리면서 ‘그래도 아직 로잭이네.’라고 낄낄거리며 추억을 한 올 한 올 더듬으며 즐거워하는 자신, 투란 자신이 바로 이 사태의 원흉이었잖은가!
즉 저 ‘대후작가’가 두룩칼을 지원해서 진짜로 죽이고 싶어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투란 자신이란 것! 하지만.
“어, 음…….”
뒤늦게 고대로부터 자리 잡아온 춤추는 산맥의 왕국, 로그림의 재상이 자신을 노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현하려는 투란의 입에서는 그냥 어정쩡한 소리만 신음 흉내를 내며 나올 뿐이었다.
이는 로잭이나 예르카보다 먼저 투란을 갸우뚱하게 했다.
그리고 그 미묘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려 더듬는 투란의 입술 사이로는 스스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몇 마디가 불쑥 튀어나오니.
“황제도, 왕도 아닌 그냥 재상일 뿐인 귀족이 심심했나?”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기에 마구잡이로 새나온 소리일 뿐……이라고 둘러대기에는 너무나도 대담하고 호기 넘치는 말! 그러나.
―확실히…… 프릿처럼 황제도 아니고 왕좌를 자처하는 뱀파이어의 수준에도 닿지 않긴 하지. 그래도 왕가의 근위기사라면 조금 신중하게 생각해라. 오러 윌더 중에서도 고대왕국의 전승을 잇는 왕가의 근위기사라면 거의 최상위권에 드는 실력자라고.
‘오러 윌더라면 당연히 조심해야지.’
얼렁뚱땅 소리 없이 대꾸하면서 투란은 슬쩍 로잭과 예르카를 둘러봤다.
“황제?”
“왕? 재상일 뿐인?”
둘은 역시 당혹스러운 듯, 투란이 내뱉은 두어 마디를 되뇌고 있었다.
그리고 곧 둘은 거의 동시에 너털웃음을 터드렸다.
“푸하핫, 배짱 좋구나 투란!”
“허허헛, 어디서 뭘 하고 싸돌아다닌 거냐, 대체…….”
로잭은 투란의 대담함이 좋다고, 예르카는 투란이 어떤 굴곡을 넘어왔는가가 안쓰럽다는 듯한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투란은 슬쩍 넘어가는 그 분위기를 틈타서 재빨리 카필릭을 손짓하며 묻는다.
“이제 어쩌게? 당장 가둬? 바로 풀어줘요?”
예르카가 로잭을 바라봤다.
로잭은 곧바로 둘의 눈길을 마주하고는 투란을 향해 답을 하는데.
“게르민이 남겨둔 마도구가 있어. 구속형 마도구이니까, 이 녀석의 언행을 구속해두고 돌려보내야지. 몬스터 로드의 낙인이 찍히게 되면 아저씨가, 아니 투란 너라도 다룰 수 있는 마도구야. 맞아, 조금 특별한 마도구지. 마력을 기억하고 그 마력에 복종하는 마도구이니까. 게르민의 특제품 맞아요, 아저씨.”
예르카도 투란도 몬스터 로드가 다루는 마도구란 말에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티아라의 남편, 아르안의 아비되는 게르민은 그런 것을 만들어냈을까? 투란은 이런 점에 흥미를 느꼈지만 예르카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장난으로 한 말인데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모양이구나.”
깊은 여운이 담긴 말을 중얼거리는 노인이었다.
투란은 이 또한 어리둥절한데, 로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탠다.
“게르민도 그 가게의 전설을 재미있어했잖아요. 몬스터 로드조차 거침없이 사용할 수 있는 마도구를 판다니, 마법사로서는 어떻게 그런 것을 제작할 수 있는가 호기심이 든다더군요. 아무튼…… 어, 투란 이 녀석 들고 가는 일은 네가 좀 맡을래? 아저씨가 들고 왔고 난 몸이 좀 부실해졌잖아.”
툭툭, 카필릭의 몸을 발끝으로 건드리며 로잭의 말이 맺어졌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카필릭의 등짝을 쥐어 올렸다. 그래도 툴툴거리는 몇 마디를 더하기는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살려 데려가다니……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서 물어봤으면 쉽고 편했잖아요.”
“그러면 이 녀석의 수하들이 벌써 몰려와서 칼부림하고 있었겠지.”
노인은 바로 꾸짖는 말투로 젊은 투덜거림을 타박할 뿐이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로잭이 멀리 보는 시늉을 하며 말하니.
“뭐, 멀리 왔어도 칼부림은 해야 할 모양이네요.”
노인의 눈살이 찌푸려졌고 투란은 ‘엥?’ 하며 로잭이 바라보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과연 그쪽에서는 작게 먼지구름이 피어나는 중이고 기마단처럼 보이는 이들이 돌격하듯이 내달려 오고 있었다.
“정말?”
투란은 카필릭을 조금 더 끌어 올리며 의아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