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8)
“추적의 표식이 되는 마도구는 갖고 있지 않아. 있었더라도 조금 전에 다 부숴지고 망가졌을 거야.”
예르카는 갸우뚱거리며 카필릭을 한바탕 털어낼 듯한 투란을 향해 툴툴거렸다.
투란으로서는 딱히 반발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으나.
“늦게 부쉈으면 위치 포착하고 저렇게 일단 달리고 있었겠죠.”
쓸데없이 핀잔하며 내친 김이라고 손짓으로 카필릭을 이리저리 뒤척여보기까지 하는 중이었다.
예르카가 한층 더 미간의 주름을 늘리며 ‘이 자식이!’라고 투란인지 카필릭인지 모를 상대에게 가벼운 노여움을 드러내려는데, 로잭이 심각하게 말한다.
“다이얀의 경비대야. 둘 다 장난 그만!”
“뭐? 경비대가 왜?”
예르카는 빠르게 반응하며 몸을 돌렸다.
투란은 눈을 가늘게 하는 시늉과 함께 시각을 강화해 ‘경비대인데 뭐?’라는 태도로 멀리, 자세히 들여다봤다.
‘으흠? 장비는 제멋대로인데 깃발이랑 어깨끈은 한결같다라…… 경비대 복장이었지? 다이얀 성문 앞에서 비슷한 깃발 표식을 본 것 같은데, 맞지?’
―로잭이 경비대라고 했잖아. 아무래도 난폭하게 저 작자를 납치해온 것 때문에 따라온 모양인데? 최소한 날강도 같은 짓이었으니 말이다.
‘뭐…… 그렇게까지 소소하게 열심히 일하는 경비대처럼 보이진 않았잖아? 로잭도 그래서 놀라는 것 아니려나?’
―물어보지 그러냐? 뭣 때문에 긴장하면서도 싸울 태세를 갖추는가 말이다.
‘어? 진짜 싸울 준비가 끝났네?’
투란은 로잭의 태도를 다시 살폈고, 예르카도 마찬가지로 상대가 적대적으로 이쪽을 대할 때 언제라도 발끈해서 나설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했다. 주의해야 할 상대일지라도 둘 다 가만히 험한 꼴 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그리고 곧 튼튼한 군마(軍馬)보다는 연약해 보이는, 짐을 끌고 상단에서 꾸려지는 모습이 조금 더 짙어 보이는 기마 수십 기와 함께 경비대의 깃발을 휘날리는 무리가 먼지구름과 함께 도착했다.
도달한 이들이 마상(馬上)에 앉은 채로 가장 먼저 눈길을 보낸 곳은 투란, 투란의 쥐고 있는 카필릭이었다. 축 늘어진 채로 등덜미를 잡혀 대롱거리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는 했다.
로잭이 그 눈길을 가로막듯이 투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목소리 높여 묻는다.
“무슨 일이오? 어디 도적단이라도 나타났소?”
대답은 금방 빠르고 간결하게 깃발 든 자로부터 흘러나온다.
“납치범이 나타났지, 도시의 유력한 인사의 뒷덜미를 잡고 달아났다더군.”
들으면서 스윽 둘러보는 로잭의 표정이 좋지 않게 굳어졌다.
“흥미로운 얘기로군. 그런데 우리가 그 납치범인가? 칼자루 만지작거리면서 노려보시는 몰골이 딱 그렇다는데 말이지.”
“거기 들고 있는 분의 얼굴부터 보고 싶군.”
깃발 든 자가 느슨하게 말 위에서 몸을 숙이면서 말했다.
어느 쪽도 돌려 말할 줄 모른다는 듯, 서로의 상황을 피하지도 않겠다는 듯한 사나운 분위기였다.
투란이 스윽 들고 있는 카필릭을 들어 올리면서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이 사람이 그 유력한 인사 맞아요?”
마치 길 가다가 돌멩이를 주웠는데 당신이 잃어버렸다는 보석이 설마 이런 것이냐고 묻는 말투였다.
깃발 든 자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투란이 들어올려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낯짝이 하늘을 향한 채 고스란히 드러난 카필릭을 보고는 곧바로 당혹스러운 감정이 찌푸림을 지우고 채워지는 중이었다. 조금 힘든 말을 호흡을 가다듬어 내뱉는 듯한 소리가 한 박자 늦게 깃발 든 자의 입에서 새나온다.
“아니, 누군지 모르겠군. 옷차림은 우리가 아는 것 같지만, 그 얼굴은 정말 모르겠어. 혹시 깨워줄 수 있으신가?”
예르카와 로잭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자신들의 행동이 묘하게 보일 것이란 점 따위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카필릭의 낯짝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곧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나직하게,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몇 마디씩 주고받으니…….
“옷차림이 그리 특이한 거냐?”
“영감님, 그냥 좀 비싼 옷일 거라면서요?”
“옷감이 비싼 거잖아. 당연히 옷자락도 비싸겠지.”
“이런 차림으로 누가 사라졌다면 이런 녀석을 찾아다닐 만도 하죠.”
묻고 답하는 말이 서로 엇갈리며 뒤죽박죽인 꼴이었다.
그러면서 둘은 갑작스럽게 카필릭의 낯짝이 굉장히 낯선 형태로 바뀐 것에 대해서는 몰라라 했다!
숨돌린 말들이 새로 투레질을 했고 깃발 든 자가 살짝 흥분해서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말을 진정시키려는 듯한 몸짓과 함께 다시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그는 뭔가? 누구길래 그 모양으로 잡혀 있는 것이지?”
로잭도 예르카도 ‘글쎄 말이오.’란 표정을 지으면서 투란을 흘깃거렸다.
그 눈치를 받고 투란이 혀를 차는 시늉과 함께 깃발을 올려다보는 눈길까지 꾸미며 대답한다.
“몰라요, 이 아저씨 여기 뼈 부러진 채로 자빠져 있었거든요. 모르는 사람 맞아요? 아는 사람이면 말 한 필 빌려서 다이얀으로 데려가볼 텐데…… 아는 사람 아니에요?”
깃발 든 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두서없이 하는 투란의 얘기는 ‘아는 사람인데 말 빌려주기 싫은 것임?’이라고 짚는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이잖나.
“전혀 모른다. 다만 우리가 찾으려는 분의 차림새랑 아주 닮은 차림새를 하고는 있어. 어쩌면…… 우리가 찾는 분의 옷을 입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이봐, 어떻지?”
갑자기 돌아보며 묻는데, 말을 탄 이 중 한 명이 앞으로 말을 몰아 나서면서 답한다.
“아닙니다, 냥이가 반응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근처 어딘가이기는 한 모양입니다만…… 자취가 끊어진 것 같군요.”
투란은 말하는 이의 가슴 위, 목 아래에서 빼꼼히 머리통을 내민 짐승을 봤다.
예르카도 로잭도 투란처럼 그 짐승을 봤다.
짐승을 품은 자가 고개를 까닥하며 바라보는 눈길이 당연하다는 듯, 그러니 묻기 전에 알려준다는 듯이 말을 잇는다.
“카사실 고양이요, 형태와 냄새를 기억하고 추적하도록 훈련된 마수라고 들어본 적 있지 않소? 로잭, 당신도 이 비슷한 녀석을 사냥에 부린 적이 있다고 들었소만.”
“내가 아니라 내 팀의 멤버였지. 그 고양이랑 비슷한 녀석을 부리다가 몬스터에게 함께 죽었어.”
로잭이 조금 음울하게 대답하며 조그마한 고양이를 품은 자를 노려봤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고양이 머리를 어루만지고 누르면서 말고삐를 뒤로 당기며 말한다.
“나 역시 그럴 가능성이 커서 전직(轉職)한 자요. 뭐, 그 때문에 이렇게 경비대에서 일하는 처지이지. 딱히 로잭 당신네한테 해코지하거나 못되게 굴 생각은 없소.”
“뭐, 나도 경비대에 특별한 원한은 없어. 그래서 경비대장님, 어쩔 거요? 계속 우리만 보고 여기 있을 거요? 아니면 이 사람 옷이라도 증거품으로 벗겨가시게?”
툭툭, 손으로 얼굴이 변한 카필릭의 어깨를 두드리며 로잭이 깃발 든 자를 향해 물었다.
“이 근처에서 뭐 본 것 없나?”
조금 퉁명스럽게 짜증을 담아 묻는 말이 로잭을 향해 돌아왔다.
로잭은 피식 웃었고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한 다음, 다시 깃발 든 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대답한다.
“아까랑 별로 다른 일이 없는데? 당신네 기마단이 도달한 것 말고 다른 일이 전혀 없어. 왜? 뭐 또 물을 말이 남았나?”
“그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여기서 뭘 하고 있었지?”
깃발 든 자의 눈빛이 깊고 사나웠다.
이 물음은 말 위에서 내리지 않은 경비대 인원이 한층 더 세게 칼자루를 쥐게 했고 카사실 고양이를 품은 자는 말고삐를 당겨 그 틈새로 물러서게 했다.
예르카가 그 꼴을 보고는 혀를 차며 앞으로 나섰다.
로잭은 사납게 웃음 지으며 가만히 경비대와 투레질하는 말들을 한꺼번에 노려보고 아예 팔짱을 끼고 있었다.
투란은 카필릭을 떨궈놓을까 말까 하는 소소한 고민부터 해보는데, 예르카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물었으니, 답을 들을 각오는 되어 있는 것이겠지?”
그 목소리에 은은히 서린 반향은 사람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말들이 화들짝 놀라서 바들거렸고, 어느 틈엔가 다리를 접고 주저앉았다.
말 위에서 내릴 마음이 없던 경비대가 놀라면서 주저앉은 말에서 내려서고 말았다.
경비대장 역시 깃발을 든 채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주저앉은 말은 그저 통나무로 된 모형처럼 희한한 의자 노릇밖에 못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각오되었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지?”
다시 한번 예르카의 목소리가 기괴한 반향(反響)을 머금고 퍼져나갔다.
이 현상을 경비대장은 겨우 알아차렸다는 듯이 버럭 소리지른다.
“몬스터 능력을 시험 중이었다는 말인가? 그걸 지금 우리에게 써보겠다는 뜻인가? 영감, 우리랑 싸워보자는 것이야?”
“싸우고 싶어 시비 거는 쪽은 네놈들 쪽이었잖나? 다이얀의 경비대란 녀석들이 다이얀을 비우고 대체 누굴 쫓고 있는 중이지? 어째서 우릴 향해 칼을 들이대겠다고 꼬물거리느냔 말이다!”
노인의 목소리는 박력이 있었고, 여전히 반향을 머금고 있었다.
캬앙, 고양이가 강렬하게 반항하는 외침이 터졌고 고양이 주인은 품을 뛰쳐나가 달아나는 고양이를 향해 다급하게 외친다.
“냥이, 내 냥이가! 가지 마, 이리와!”
들은 척도 않고 달아나는 고양이를 쫓아 그 주인도 함께 저편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거칠게 몰아 내쉬는 노인의 숨결에 따라 경비대 인원도 몇몇이 그대로 말처럼 주저앉고 있었다.
그 꼴을 보며 투란은 감탄했다.
‘이 아저씨, 대체 뭘 삼킨 거지? 야, 저거 도대체 무슨 목소리냐?’
―사이렌이랑 닮기도 했다만, 글쎄다. 사이렌은 아닌 것 같고, 목덜미가 살짝 붉어진 꼴이 무슨 비늘이 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만,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드라고니아도 쉬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이 이리저리 더듬어 떠들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슬쩍 로잭의 곁으로 붙으며, 여전히 카필릭의 등짝을 쥔 자세 그대로 자리를 살짝 옮기면서 나지막하게 묻는 소리를 내본다.
“로잭, 뭐야 저 목소리?”
“비클비, 그걸 사람의 크기로 내면 저리 돼. 넌 뭐냐, 투란.”
로잭이 낮게 대답하며 되묻고 있었다.
투란은 비클비란 말에 눈을 끔벅거리며 로잭의 묻는 말, 어떻게 카필릭의 낯짝을 갈아엎었느냐에 대해서 답하는 것을 잊었다.
―비클비? 개미 아종(亞種)인 몬스터잖아? 그게 저런 소리를 낼 줄 안다고? 아니, 대체 그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드라고니아도 투란처럼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개미 아종, 개미만큼이나 작고 생김새도 개미랑 많이 닮았지만 몸통의 곳곳에 구멍이 난 채로 벌소리를 낸다고 알려진 몬스터가 비클비였다. 그 크기와 생김새처럼 떼로 몰려다니기도 하지만 개미처럼 단결력이 좋지는 않아서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라도 단독으로 도망치며 흩어지는데, 몬스터로 분류되고 꽤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는 해도 거의 벌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경우였다. 굳이 따지자면 벌레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랑츄처럼 날뛰지만 자기보다 커다란 상대 앞에서는 그냥 벌레가 되는, 크기에 영향을 짙게 받는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우와, 이 아저씨…… 영감님이 되고 나더니 희한해졌잖아!’
비클비에 대해 기억을 더듬다가 투란은 감탄했다.
그야말로 투란이 ‘악마의 심장’을 일궈낸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야, 야! 투란!”
로잭이 눈이 몽롱해지는 채로 예르카의 등짝을 바라보는 투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직하게 소리쳤다.
“어? 아, 그냥. 비클비가 꽤 하는구나 싶어서…….”
고개를 돌리며 히힛거리고 웃다가 뒤늦게 새나오는 투란의 변명이었다.
로잭이 한심하다는 듯이 잠시 보다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 모습에 투란이 움찔해서 바로 묻는다.
“왜?”
“아저씨가 저 소리를 내는 의미는…….”
로잭의 말이 마무리 지어지기도 전에 예르카의 입에서는 한층 더 굵고 강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로잭이 움찔했고 투란은 그 소리가 오직 한 방향에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확인하며 긴장을 살짝 늦췄다.
예르카가 새로 뿜어낸 음향은 경비대장이 깃발을 땅에 꽂고 버티며 기대는 몰골을 만들었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맨땅에 엎드리는 꼴이 되게 했다.
“다들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단 얘기거든.”
뒤늦게 로잭의 말 몇 마디가 투란의 귀에 꽂혔다.
그리고 예르카는 가만히 손을 내밀고 있었다.
거리가 꽤 있는 채로 뭔가 잡으려는 손짓, 때문에 낯을 구기며 몸부림치는 자세여도 어떻게든 반향에 버티려던 경비대장은 피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손목부터 주욱 늘어나며 멱살을 잡은 손아귀가 그대로 경비대장을 끌어당겼다.
“너, 나 알지? 로잭도 알고, 우리 알지?”
험악한 물음이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