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29)
깃발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 저편에 굴렀다.
두 손을 축 늘어뜨린 채로 예르카의 질문을 받는 경비대장은 거의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멱살을 조금 더 당기며 이마를 맞대듯이 예르카가 고개를 숙인 순간, 늘어졌던 두 손이 치켜 올라가며 손바닥에 찰싹 붙은 듯이 칼날이 돋아나고 있었다. 날카롭게 양날을 드러난 칼끝은 거침없이 예르카의 배를, 가슴을 쑤시며 움직였다.
팅, 티팅, 티팅.
투란은 낯을 찌푸렸다.
로잭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고무쇠는 죽죽 늘어나고 통통 튕기기만 하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렇게 늘어나고 튕기는 몰골임에도 살갗과 그 아래 속살이 모조리 강철, 쇳덩이나 다름없는 괴물.
―흐음? 팜 블레이드였나? 손목에 장착된 꼴이 네가 가진 것이랑 좀 닮았는데?
‘하클 영감이 만든 거랑 같을 리는 없지. 뭐, 그래도 저 정도면 적당히 사람 상대로는 쓸 만해 보이네, 사람 상대로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한가롭게 품평했고 투란도 소리 없이 덧붙였다.
그 사이에 예르카의 손아귀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고, 잡은 멱살을 주욱 위로 밀어 올리며 경비대장의 발이 땅에서 떨어질 정도로 높이 치켜세우고 있었다.
허우적거리는 손짓을 따라, 손목에서 돋아난 칼날이 연거푸 예르카의 얼굴, 어깨, 가슴을 닿는 대로 베고 찌르고 후벼댔다. 손이 닿는 거리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기에 빗나간 칼부림은 없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쇳소리일 뿐이었고, 예르카의 옷자락 한 꺼풀도 베어내지 못하고 있었으니…….
‘어라?’
투란은 문득 기괴함을 느꼈다.
몬스터 로드의 몸뚱어리, 살갗이야 몬스터의 형상을 빌렸다 쳐도 예르카의 웃옷은 왜 베어지질 않는가? 게다가 투란 스스로 보다 일찍 이를 괴상하게 여기질 않고 있다니, 부주의하기 이를 데 없잖은가?
―야, 너도 비슷한 짓 할 줄 알아.
드라고니아가 한숨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때 투란은 입을 열어 나직하게 로잭을 향해 묻는 말을 꺼내는 중이니.
“로잭, 아저씨 무슨 옷을 입은 거야?”
“응? 넌 못 하냐? 그냥…… 문장의 고유마력을 오러처럼 두르고 몬스터 특성을 부여한다던가? 그렇게 말하던데?”
로잭이 갸웃하다가 들은 대로 옮겨주듯 답을 해줬다.
“어…… 그게 저렇게 된다는 말이지…….”
투란은 한쪽 어깨가 살짝 간지럽다는 느낌에 손을 올려 긁적이다가 어렴풋이 무슨 상황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은은히 방출되어 고유마력으로부터 형성된 오러, 그것이 고무쇠의 특성을 예르카가 입은 물품에도 덧씌워버린 셈이었다. 몬스터 로드의 신체(身體)가 아닌, 입고 지닌 것에조차 몬스터의 특성을 발휘하도록!
‘뭐야, 그럼 아저씨는 몸을 막 부풀리고 늘려도 바지 찢어질 일이 없다는 얘기잖아? 우와, 옛날에 바지고 뭐고 쉴 새 없이 찢고 다니더니!’
―중급 이하라면 생각도 못 할 기술이니까. 키린이 가르친 바가 없었다면 너도 아직 헤매며 손댈 여지도 없는 고급 기술이라고. 장난칠 생각 치우고 조금 진지하게 관찰해라. 상급에 이른 몬스터 로드마다 저 경지부터는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특이성을 갖추고 아예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완성되어 가잖아.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의 마음에 묘한 메아리를 일으키며 스며들었다.
그 말이 옳다라는 느낌, 그리고 자신도 안다라는 느낌.
투란은 금방 무슨 까닭인가 깨달았고 확신했다.
‘기억 엎고 덮은 탓에 이렇게 신기한 거구나.’
―그래, 그리고…… 저 영감, 고무쇠만을 오러의 특성으로 삼은 것이 아닐걸.
‘음? 오?’
투란은 노인의 모습을 새삼 훑어내렸고, 드라고니아의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원하게 드러냈던 노인의 발가락, 확대팽창을 대비해서 드러냈으려니 했는데 그 발가락이 벌레껍질을 덮고 거대한 벌레의 발톱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더불어 노인의 목덜미도 벌레껍질의 광택을 내며 단단해지는데, 그런 채로 나오는 목소리는 물렁물렁하면서도 어딘가 쇳소리가 섞인 듯하다?
“왜 우릴 노리고 왔지? 납치된 자를 찾는 일은 핑계였지? 넌 우릴 노리고 왔어. 너 자신이 우릴 목표로 삼았단 말이지, 왜냐? 왜 우릴 자극해서 경비대와 싸우게 하려 한 것이지? 아니, 경비대의 힘으로 우릴 죽이려 했나? 죽이기까지는 아냐? 그럼, 제압하려고? 로잭은 그렇다 쳐도 몬스터 로드인 나를 제압해서 데려갈 수단이 있기는 했냐?”
찰캉거리듯이 울리는 말에 귀를 기울이던 로잭이 재빨리 쓰러진 경비대 쪽으로 다가가서 이것저것 뒤척이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며 예르카의 말이 잠시 멈춰졌기에 투란은 슬그머니 로잭에게로 붙어 낮게 물어야 했다.
“뭐 찾아?”
“구속수단, 몬스터 로드를 제압할 수 있는 것. 투란, 엠블럼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끄집어내 봐.”
로잭은 눈길을 홱홱 돌리며 더 빠른 손놀림과 발놀림으로 쓰러진 이들, 주저앉은 말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투란은 흘깃 예르카를 바라봤고, 노인이 경비대장을 패대기치고 목 줄기를 밟아 누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제부터는 더 묻지 않고 로잭이 뭔가 찾아내기를 기다린다는 몸짓이잖은가.
그러니 일단 투란도 찾는 시늉을 시작은 하는데.
‘야, 뭐 없어?’
보다 빠른 답을 원하는 물음부터 재빨리, 소리 없이 마음속을 향해 날려 보냈다!
한데 드라고니아는 핀잔도 없이 빠르게 답을 하니.
―다섯 번째 말, 그 안장 아래. 여덟 번째 말, 차고 있는 안장주머니 속. 저 끝에 엎어진 작자가 몸에 감고 있는 보자기 안, 그리고 그자가 손목에 두른 끈까지. 몬스터 로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마도구를 훼방 놓을 수 있는 것들이다. 뒤져보면 손끝으로 다 느낄 수 있을 거야.
투란은 머뭇거림 없이 툭툭 발끝으로 이것저것 건드리는 시늉을 하면서 빠르게 시각 속에 친절하게 표시까지 해주는 대상을 찾아 움직였다.
먼저 다섯 번째 말에 도달해 안장을 발로 툭 밀치는 척하다가 이상하다는 고갯짓을 하며 두 손으로 아예 뜯어내고 나니, 말과 안장 사이를 채워주는 깔개에 괴이한 문양이 가득 새겨진 꼴이 드러났다.
“으엑?”
그 문양 안에서 짙게 흘러나오는 힘은 마력이 아니었다.
마력을 압박하며 밀어내는 그 힘은…….
―진실의 원인가…… 다이얀에 트루세이어가 꽤 돌아다니나 보군.
드라고니아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짚고 있었다.
투란은 재빨리 그 깔개를 둘둘 말았고, 말린 순간 안쪽은 팽창하듯 강해졌지만 새어나오는 힘이 금방 축소된 것을 확인하며 그대로 묶어버렸다. 그다음에 로잭을 향해 외친다.
“로잭, 이거 불편해! 맡아줘!”
“응? 뭐야, 뭔데?”
“몰라, 불편해!”
“대체 뭔데…….”
툭 던진 것을 받아들며 로잭은 묶이고 겹쳐진 틈새를 들춰봤다.
곧바로 로잭의 낯이 구겨지니 예르카가 지켜보다가 묻는다.
“뭐냐?”
“트루 서클이요. 이 새끼들이 진짜 자기네가 진실되고 정의롭다고 믿는 모양이네요.”
로잭이 성난 소리를 내며 둘둘 말린 깔개를 옆구리에 대충 끼워 들었다.
투란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시늉과 함께 곧바로 여덟 번째 말 쪽으로 다가가 무슨 좋은 것 있나 본다는 듯이 그 안장주머니를 들추는 척하다가 뒤집어서 다 쏟아냈다.
덜컹, 덜그렁.
쇳소리와 엉킨 묘한 소리가 퍼졌고 안장주머니 안에서도 보자기에 싸여 있던 것이 그 형체를 드러냈다. 겨우 반도 드러나지 않은 꼴이었지만 그걸 보자마자 저쪽에서 예르카가 혀를 차며 외친다.
“바로크의 구속쇄로구만. 내다 파는 물건도 아닌데 저걸 어떻게 구했지? 저런 것은 다이얀의 경매장이라도 함부로 거래할 품목이 아닐 텐데?”
밟힌 경비대당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딱히 대답을 듣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듯, 예르카가 더 세게 그 목 줄기를 밟아 숨도 못 쉬게 조이고 있는 탓이었다.
로잭이 투란 쪽으로 다가가며 한숨을 섞어 큰 목소리로 말한다.
“잘 챙겨온 꼴을 보니, 따로 청부받은 일이 있었나 보네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금전 밝히는 동네잖아요.”
투란은 로잭에게 자리를 넘기듯이 다음 것을 향해 움직였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손끝 발끝으로 건드리기를 잊지 않았고, 때문에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엎어져 있는 자의 손목 언저리에 발등이 닿았다.
“으아앗! 따가워!”
아주 자연스러운 외침이 저절로 투란의 입에서 터져나갔다.
황급히 발을 떼내며 보니, 밝게 빛나는 끈에서 넝쿨뿌리 같은 빛의 가지가 돋아 있고 가지마다 선명한 가시를 잔뜩 매달고 있잖은가!
게다가 그 빛이 번뜩이면서 예르카의 괴성에 쓰러졌던 작자가 팔딱이며 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한다! 주변에서도 그 팔딱임에 전염된 듯이 펄떡거리는 몸짓들이 이어지고 있기까지 하다니?
퍽! 퍼퍽, 퍽!
투란은 냅다 발끝으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끈이 일으킨 현상에 반응해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을 모두 다 다시 졸도시키는 발길질은 금방 끝났다.
그 사이에 로잭이 놀란 듯하다가 어이없어하며 다가와 빛을 뿜어내는 끈을 간단하게 뜯어내고 있었다. 팔을 밟고 말린 깔개로 누른 다음에 그냥 우악스러운 손짓으로 확 당기는데, 툭 떨어져 나오며 빛의 넝쿨뿌리가 싹 지워지듯 사라져버린다!
“이건 또 예상 밖이네. 솔로얀의 마완갑(魔腕鉀)이라니…… 잘도 구했구만, 미완성품이지만.”
“뭔데, 그게!”
투란이 씩씩거리는 숨을 섞어 물었다.
로잭이 투란이 성난 얼굴이 재밌다는 듯, 실실 웃음을 섞어 대답해준다.
“마갑의 부품? 대강 그런 형태의 마도구야. 이건 끈의 형태를 하고 완갑의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인데, 이런 마도구라면 원래 어깨까지 모두 덮고 가슴까지 적당히 뻗어야 하거든. 그런데 딱 팔뚝만 덮고 자극에 반응해서 주인과 주변의 혼미한 상태를 물리치는 각성의 파동만 일으켰잖아. 비상시에만 이 정도 반응할 수 있는 꼴은 미완성품이라서일 거란 말이지. 많이 다쳤냐?”
“따가웠다고!”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자신의 발등을 당겨 이리저리 움직였다.
―살갗 뚫리지는 않았거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로잭도 투란의 상태를 엿본 듯.
“제대로 피하긴 했네.”
피식 새는 웃음을 섞어 말한 다음에 바로 몸을 숙이며 끈을 지녔던 자의 몸 곳곳을 뒤져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마도구가 더 있으리라 짐작한 행동이었다. 그 행동은 금방 그 몸에서 보자기를 끌어냈고, 펼쳐진 보자기 안에서는 다른 끈과 묘한 거울 모양 장신구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투란이 눈살을 찌푸리는 시늉을 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어이쿠? 이놈, 누구지?”
로잭은 너무 많은 물품이 마도구인가를 의심하듯 하나하나 둘러보다가 엎어진 자의 뒤통수를 잡고 얼굴을 까뒤집어 보고 있었다. 깊이 눌러쓴 모자와 당겨 올린 목의 옷자락이 훌렁 벗겨지고 내려갔다.
“로잭, 내게도 보이게 돌려봐.”
꼼짝 않고 구경하는 듯하던 예르카 또한 소리치고 있었다.
로잭이 갸웃거리며 아예 목덜미를 잡아 허리춤까지 당겨 올리며 그 얼굴이 잘 보이게 한 다음에 묻는다.
“아저씨, 알아요? 투란, 너는?”
투란이 먼저 냉큼 고개를 저었다.
예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어 달 전에 티아라네 숙소를 이용했던 놈이다. 자칭 모피 상인이었지. 꽤 많은 모피를 지고 오기도 했었어. 아무 짓도 안 하고 갔다만…… 오늘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두어 달 전부터라…….”
로잭이 투란에게 한번 더 맞아 졸도한 작자를 노려보며 읊조렸다.
투란은 로잭의 표정이 살벌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손에 깔개 두루마리가 없었다면, 그래서 한 손이 비어 있었다면 좀 더 자세히 보겠다고 얼굴가죽이라도 뜯어낼 듯한 낌새!
“로잭, 마도구부터 전부 챙겨 넣어라. 할 수 있지? 나머지는 일단 묶고, 그놈이랑 여기 대장 놈은 따로 얘기 좀 해봐야겠으니까.”
예르카가 딱딱한 말투로 외쳤다.
로잭은 고개를 끄덕였고, 투란에게 말한다.
“거슬리는 것은 내가 채워줄 테니까, 일단 이 녀석들 좀 모아서 묶자. 아, 투란 기억하냐, 굼벵이 매듭 말이야.”
“풋? 전부 굼벵이로 만들어놓자고?”
오랜 기억 너머에서 불쑥 솟아난 광경에 웃음부터 흘리면서 투란이 되물었다.
로잭도 슬쩍 마주 웃음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자발적으로 합류한 것이든 멍청하게 속았든!”
“좋아! 아, 끈은…… 내가 알아서 할게.”
투란은 바로 움직였다.
말에 얹어온 끈, 밧줄을 이용하거나 안장 끈을 뜯어내면서 곧바로 가까운 작자부터 목과 손목, 발목을 잇고 묶는 매듭을 만들어 한 명씩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묶인 이들은 손발을 등 쪽으로 접힌 채로 묶여 배를 땅바닥에 대고 굴러가는 반 토막 난 바퀴 모양인데, 느슨한 매듭 탓에 어느틈엔가 배를 땅에 대고 기어야 하는 벌레랑 닮은 몰골이 되고 있었다.
예르카는 주름진 얼굴에 쓴웃음을 띠면서 샤오콴 마을의 굼벵이 만드는 놀이가 재현되는 광경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