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3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0)
주저앉은 말들, 굼벵이처럼 바닥에 묶인 이들이 따로 무리 짓듯이 널려 있는 광경을 등지고 두 명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맨땅에 앉혀져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부터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노인과 장년, 소년의 모습을 한 셋이 두런두런 떠들고 있었는데.
“노리고 오는 놈들이 부쩍 늘어났다. 로잭, 이 지경이면 나는 티아라와 아르안을 돌보고 있어야 해.”
“아저씨, 원래 영감님은 본진 지키는 거잖아요. 투란도 왔다고요. 다이얀을 떠나서 할 일은 나랑 투란에게 맡겨요. 아저씨가 생각한 것보다 투란 훨씬 세다는 것, 느끼고 있잖아요?”
“여기 말고 어디로 갈 건데?”
예르카의 우려, 로잭의 장담을 듣다가 투란은 궁금함을 던져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피투성이로 만들어가며 들어봤지만 투란으로서는 이다음에 어디로 가서 뭘 해야 하는가를 판단할 근거가 없다 여겨졌다. 한데 예르카나 로잭은 어딘가 노려볼 만한 곳이 있다고 결론짓고 있었으니,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예르카가 그 물음에 로잭을 바라봤고, 로잭은 투란을 보며 답한다.
“로그람.”
“로그람? 로그람 어디?”
날름 왕국 이름만 나왔기에 투란은 다시 물었다.
로잭이 피식 웃고 말을 더한다.
“헌터 길드, 로그람의 총본부.”
“총본부?”
투란은 갸웃했다.
왕국마다 헌터 길드의 중심처라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그곳을 일단은 총본부라 부르기도 한다 했다. 하지만 진짜 헌터 길드의 본부, 춤추는 산맥의 모든 헌터를 아우르는 길드의 진정한 총본부는 기가둠 왕국에 있다. 로그람의 총본부라고 해도 결국은 춤추는 산맥, 로그람 왕국의 헌터 길드가 중심으로 삼는 곳에 불과할 텐데 거기 가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 상황에서 딱히 헌터 길드에서 뭘 얻어낼 것도 없는 듯한데?
의아해하는 투란을 보며 로잭은 히죽거리는 채로 말을 잇고 있었다.
“왕도에 있어. 거기로 가면 바로 너를 노리는 대후작가를 노려볼 수 있지. 두룩칼도, 알킨도 그 행적을 제대로 좇을 수 있을 거야.”
“왕도에서 사람 하나, 둘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맥빠진다는 듯이 투란이 되물었다.
인간이 모여드는 도시, 특히나 나라의 중심인 왕도라면 얼마나 바글거리며 인간이 많은가를 몇 번 봤잖은가. 바로크와 에테온을 거쳐오면서 왕도를 피했지만 그보다 인간 수가 적다는 곳도 알드바인보다 작다는 분위기는 티끌만큼도 없다 느꼈는데!
로잭이 여전히 키득거리면서 슬쩍 피투성이 둘과 그 너머의 굼벵이가 된 이들,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주자앉은 꼴인 말들을 둘러보고 답한다.
“일단 가자, 가서 얘기해줄게.”
“음, 그렇다면…… 짐부터 챙겨야겠지?”
투란이 로잭의 몰골을 훑어내리는 눈길로 말했다.
로잭도 이 눈길에는 조금 민망한 듯, 예르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필릭, 경매장 녀석만 데리고 가죠. 나머지는…… 죽이기도 뭐하니 놔두고요. 괜찮죠?”
“그래, 한 번은 그냥 넘어가주도록 하지. 두 번은 없다.”
예르카는 냉혹하게,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경비대 패거리를 둘러보며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해도 다음에 같은 얼굴을 같은 까닭에 보게 된다면 사정 보지 않고 짓이겨놓겠다는 듯한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었다.
투란이 그 모습을 신기하다 싶어 보는데.
―흥미롭군. 마력의 여운을 저리 이용할 줄도 알다니, 너랑 비교하면 거의 마법사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드라고니아가 불쑥 말하고 있었다.
‘응? 뭐? 마력의 여운? 방금 목소리에 실어 보낸 것? 그게 왜?’
―여기서 헤어지고 여기 있는 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 얼굴을 바꾸든 옷차림을 바꾸든 골수까지 스며놓은 마력을 통해 저 영감은 곧바로 알아볼 수가 있다. 그 상황에서는 굳이 다른 힘을 쓸 필요도 없어, 그냥 마력만으로 저들의 척추신경을 찍어눌러 자빠뜨릴 수 있을 거야.
‘뭔 마법사냐!’
―그래, 그래서 한 말이다.
‘난 못 해?’
―넌 안 한다고 해야겠지. 섬세해서 귀찮다고 말이야.
‘아, 그래…….’
투란은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에 앞장서는 로잭을 따르듯, 한편에서 축 늘어진 채인 카필릭을 다시 집어 들고 걷는 예르카와 보조를 맞추듯이 걷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셋이 한 명을 들고 걸어가는 일은 없었다.
“말들은 경비대 낙인 따위 없으니, 갖다 팔죠.”
“응?”
갑작스러운 로잭의 말에 투란이 어리둥절해하는데.
“없어? 그럼, 갖다 팔아야지.”
예르카는 매우 흔쾌하게 호응하고 있잖은가!
“네? 영감님? 야, 로잭?”
투란이 한층 더 어이없어하는 사이, 예르카가 묘한 휘파람을 불었고 말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로잭이 그중 두어 마리를 당겨왔고, 예르카에게 한 마리를, 투란에게 한마리를 넘겨줬다.
투란은 고삐를 쥐고 ‘진담이야?’라는 눈길을 잠깐 보냈지만, 그 사이에 로잭은 다른 말에 이미 올라탔고 예르카도 카필릭을 얹은 채로 올라탄 다음이었다.
“말 탈 줄 몰라?”
그리고 로잭이 갸웃하며 묻는 말.
“올라앉으면 되는 거잖아.”
뚱한 대답과 함께 투란도 결국 올라타고 말았다.
그렇게 굼벵이 떼가 된 이들과 피투성이 둘을 남기고 말 떼만 모는 채로 셋은 다이얀으로 귀환했다.
“……라는 이야기다.”
예르카는 노인의 연륜을 담아 말을 맺었다.
통통한 티아라의 볼이 불끈불끈해졌고 곧바로 눈길이 빙그르 돌면서 딸인 아르안을, 그 앞에서 장비를 챙기고 먼 여행을 준비한 채로 한번 더 점검하는 중인 로잭을 둘러봤다. 그리고나서 티라아의 눈길은 예르카의 너머에서 쓰러져 있는 필릭, 분명히 경매장 언저리에서 봤던 거물상인이라고 알고 있던 작자를 툭툭 건드리며 놀고 있는 투란을 훑었다. 티라아의 입이 열린 것은 그렇게 두루 거친 다음이었다.
“그러니까…… 로잭이 멀리서 힘들게 알아낸 일이랑, 어젯밤부터 벌어진 일이랑 더해서 알아보니 이미 우리 집도 위험한 상황이란 말이죠? 심지어 경비대까지 포섭당해서 얼렁뚱땅 우릴 노리고 있다고요? 그러니 로잭과 투란은 반격을 위해 떠나고 영감님은 남아서 우릴 지키는…… 아니, 나랑 아르안의 곁에서 아직 로잭이 여기 있는지 의심스럽게 꾸며놓고 최대한 시간을 끌고 두룩칼 쪽이 로잭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꾸민다, 이런 이야기인 거죠?”
“음, 정리하면 그렇게 되겠지?”
예르카는 조금 감탄했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그 등 뒤에서 투란은 풋풋거리면서 티아라를 노인의 어깨 너머로 바라보며 ‘말 잘하네!’라는 입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예르카가 느릿느릿하게 늘어놓았던 이야기는 지금 티아라가 한 것보다 적어도 두 배, 냉정하게 한 세 배는 길었는데 요점은 티아라가 말한 부분에 거의 다 들어 있으니까. 따지고보면 로잭이 알아낸 정보라든가 필릭이 왜 카필릭이고, 경비대랑 어떻게 엮였는가까지 줄줄 늘어놓으며 피투성이 몰골을 만들어 쥐어짜 낸 부분까지 모두 늘어놓았으니 길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기는 했다.
물론 티아라는 그런 시시콜콜한 부분을 모두 무시하듯 쳐냈고, 떠나려는 로잭과 투란의 상황을 가늠해보는 모습이었다. 아르안은 어째서인가 로잭이 다시 떠난다니 ‘왜 벌써!’라고 발끈하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등짝을 엄마에게 한 대 맞고 나서 잠잠해진 모습이었다.
티아라는 한숨을 깊이 배 속으로 돌린 듯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면서 투란과 눈을 마주치는 자세로 묻는다.
“투란, 괜찮겠어?”
“응? 뭐가?”
천진난만하게 되묻는 투란이었다.
티아라의 볼이 구겨졌고, 장비를 점검하던 로잭이 어이없다는 듯이 보태 묻는다.
“야, 야! 남의 일에 구경 가냐? 각오는 되었냐고!”
“각오? 무슨……?”
투란은 여전히 갸우뚱하며 몰라라 하는 태도!
티아라가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고, 로잭은 끙 하면서 한숨 섞어 조곤조곤 말한다.
“두룩칼과 마주치기 위해 가는 길이야. 알킨을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너의 보석을 찾는 일이잖아. 그리고…… 네 어머니, 널 키워준 아줌마도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일이잖아. 괜찮겠어?”
“새삼스럽게 뭔 소리야. 부딪혀 봐야 아는 일이잖아? 안 그래?”
담담하다기보다는 뻔뻔한 대꾸를 하는 투란이었다.
로잭과 티아라는 황당해하면서도 씁쓸하게 투란을 바라봤다.
예르카가 투란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딪혀 봐야 아는 일이지. 그러니 당부하마, 투란. 잔정 따위 두지 말고 패 죽여라. 어차피 다시 너를 죽이려 할 테니까. 그 아비든, 아들이든 너를 죽여놓고 네 신분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자를 죽이고 있는 놈들이다. 그걸 알면서도 침묵하는 어미 또한 마찬가지. 투란, 모두 너를 죽이려 하는 괴물이야. 그걸 잊지 마라.”
“네, 넵!”
건성으로 한마디 대꾸하려다가 몰려드는 상급 몬스터 로드의 압박감에 투란이 한번 더 똑바로 말했다.
예르카가 혀를 차고 로잭을 향해 말한다.
“생긴 그대로 아직 애라고 여기고, 잘 돌봐줘라. 눈에 보이는 괴물과는 잘 싸우겠지만…… 투란은 아직 사람이 품고 있는 괴물은 제대로 상대할 줄 모르는 꼴이니까.”
로잭은 입을 다물었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라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을 향해 살짝 험한 눈길을 보냈다.
느닷없는 어린애 취급에 볼멘 표정을 짓던 투란은 그냥 입술만 삐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묘한 긴장감 속에 정적이 깃들려는 듯한데, 아르안이 헛기침으로 정적을 몰아내며 재빨리 묻는다.
“그래서, 로그람 국경은 어떻게 넘을 건데요? 여기서부터 쫓아갈 놈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 집, 엄마랑 날 노리다가 말이에요.”
이 물음에는 투란도 고개를 팍팍 끄덕였다.
로잭이 그런 투란을 보고 아르안에게 부드럽게 대답한다.
“투란과 내가 로그람에 가는 길은 아무도 못 막아. 우리를 쫓을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못할 테니까.”
“응? 어떻게?”
투란이 갸웃했다.
아르안도 갸웃했고, 티아라와 예르카는 ‘그런 방법이?’라며 궁금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로잭만의 비책이 있는 듯한데, 로잭이 히죽 웃으면서 성큼 걸이로 투란에게 다가오더니 어깨를 턱 잡고 말한다.
“네가 있으니까. 가자, 다이얀의 헌터 길드 지부로.”
“응?”
여전히 투란은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르안이 ‘나도 따라가 볼래!’라고 하다가 티아라에게 등짝을 두들겨 맞고 엎어지고 말았다. 예르카는 가만히 카필릭의 덜미를 잡아 올리며 안채를 향해 한 걸음 뗀 채로 간단히 말한다.
“다녀와라, 기다리마.”
로잭은 자신감 있게 웃고 앞장서며 작별의 한마디 따위는 남기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투란은 엉거주춤 그 뒤를 따라 한 걸음 딛다가 돌아서며 예르카를 향해 묻는다.
“아, 깜박했다! 아저씨, 고무쇠 말이에요. 그거 정수를 나눠도 되는 몬스터예요? 한번 넘기면 통째로 넘어가는 몬스터예요? 그걸 안 물어봤네! 어느 쪽이에요?”
앞장서던 로잭이 삐딱한 걸음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흘깃 고개만 돌려 예르카를, 투란을 훑어봤다. 예르카 또한 삐딱해진 자세로 투란을 노려보더니 한숨과 함께, 자세보다 더 삐딱한 웃음을 얼굴에 띤 채로 말한다.
“안 해봐서 모른다. 하지만 돌아오면, 투란 네가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오면 시험 삼아 너에게 넘겨보도록 하지. 어때, 마음에 드는 일이냐?”
“다녀오죠!”
경쾌한 대꾸를 남기고 투란이 냉큼 로잭의 곁으로 가서 등을 밀고 있었다.
그렇게 둘이 문을 열고 나가고 난 빈자리를 티아라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바라봤다. 안채의 문을 열고 문턱을 넘던 예르카가 돌아보며 소리칠 때까지.
“티아라, 이 녀석을 놔둘 방이 필요하다만? 티아라?”
티아라는 곁에서 슬슬 멀어지려는 아르안의 팔을 잡아 쥐면서 이에 답하니.
“가요, 지하실로 가요. 아르안, 멋대로 쫓아갈 생각 마라. 로잭이랑 투란에게 넌 방해물이야.”
“왜! 저 꼬맹이가 엄마나 로잭 아저씨랑 나이가 같아도 그냥 꼬맹이잖아! 내가 왜 방해물이야!”
아르안은 투정했다.
티아라가 손에 힘을 주며, 아르안이 아프단 표정을 짓게 하며 말한다.
“열여섯 살이 되었다고 마을을 떠날 때, 샤오콴 마을에서 내가 투란을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 투란은 자신이 잡은 몬스터를 팔아서 장만한 부적과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어. 몬스터 로드가 되기도 전에 말이야. 아르안, 너처럼 마법사인 아버지가 남겨준 유품 따위는 전혀 없었단다. 그리고 죽었다고 했지만, 다시 살아돌아왔어.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아르안, 로잭은 투란의 길잡이 노릇으로 간 것뿐이야. 네 아버지의 마법이 불러온 해결사, 그게 투란이란다. 그러니 네가 붙어서 방해하도록 둘 수는 없지. 가요, 예르카. 자, 아르안 너도 묶을 줄이랑 자물쇠를 찾아야지. 우리 손님을 허투루 대접하면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