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4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2)
“도박장이야, 투란.”
방문이 닫히고 나서 로잭이 바로 말했다.
“도박?”
갸웃하며 투란이 되뇌니.
“자주 들었었잖아. 신전의 사제조차도 미치게 만든다는 광란의 유희, 오러클…… 그 아저씨 기억하지? 그 아저씨가 산골 깊은 곳이든 울창한 숲이든, 이런 왕도이든 도박의 광기가 마다 않는 곳은 없다고 했잖아. 여기가 바로 그 광기가 스며 있는 곳이란 말이지.”
로잭이 방 안을 살피면서 몇 마디 더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기 왜 왔는데? 아, 양꼬치 어쩌고 한 말은 전부……?”
“응, 암호. 도박장인 줄 알고 왔다는 암호였어. 뭐, 암호가 통했다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도박장은 아니니까, 몇 시간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도박하러 온 거야?”
“그럴 리가 있냐! 일단, 앉아보자고. 조금 있으면 먹고 마실 것 정도는 가져다줄 거야. 기다리는 동안이 쉬는 시간이라고.”
로잭이 방 안의 널찍한 소파 한편을 독차지하듯 앉아 눕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투란은 한쪽 벽에 붙은 침상이 두어 사람 누워 잘 크기란 것을 확인하고 적당히 그 귀퉁이에 앉으며 소파와 의자, 탁자의 모양을 두루두루 살펴봤다. 입구에서 봤던 감춰진 무장이 혹시 이 방 어디에도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했지만, 없었다.
―있을 리가 있냐! 그보다 이 건물, 예르카가 지키는 여관만큼은 아니지만 꽤 특이한데? 마치…… 페브라 왕국에서 봤던 도시 내부의 미로건축 같군.
‘응? 미로……?’
―건물 벽 안에 통로가 숨겨져 있다. 지하로도 지상으로도, 건물 내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통로야. 방마다 감춰진 문도 있고, 순수하게 건축술만으로 지어놓은 모양이다만…… 나중에 마법을 덧씌운 형태로군. 잠금 주문과 경보 주문이 몇 곳 있다.
‘전부 잠가놓고 경계해놓지는 않았다고?’
―그래, 마법은 말이지. 숨겨진 통로와 문에는 알림 종이랑 걸쇠가 강하게 걸려 잠겨 있다. 방 안에서는 못 열고 통로 안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야. 음, 사용된 금속이나 두께로 봐서는 나름대로 기초적인 마법으로는 탐지 못 하는 설계이기도 하군.
‘오호? 프로브로는 간파해낼 수 있고 말이지?’
―당연하지! 그래서, 마냥 기다릴 거냐? 아니면 두들겨 열고 들어갈 거냐?
‘내가 무슨 도적이냐? 기다려야지. 덤으로 들을 얘기도 있다고.’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던 시늉을 잠시 하던 투란은 다 봤다는 듯이 눈길을 돌려 로잭을 바라봤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투란의 눈길에 로잭이 피식 웃음과 함께 입을 연다.
“우선 알아둬야 할 일이라면, 우린 여기서 정보를 살 거야. 그래, 이야기꾼이 있어. 도시 안의 일을 아주 잘 아는 이야기꾼이지. 하지만 그 이야기꾼은 그냥 거래할 수가 없어. 도박을 해야 해. 우리가 필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이야기꾼이 도박에서 이겨야 하지. 이기고 즐거워서 이야기를 해준다나? 뭐, 그런 성격이야.”
끄덕거리며 듣던 투란이 살짝 갸웃하는 눈짓과 함께 묻는다.
“뭘 물어도 바로 대답해줘?”
정보를 거래한다, 그런 일은 헌터 길드에서 몬스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끌어모을 때 자주 벌어졌다. 하지만 원하는 부분을 바로 듣기는 어려웠다.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시간이 걸리니까, 듣고 싶은 부분을 미리 말해둬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잘 알려진 몬스터라면, 묻지 않아도 아는 녀석이라면 굳이 거래를 통해 정보를 구할 일도 없으니까.
한데 로잭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 있었다.
“그래, 뭘 물어도 이 도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거의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을 해줄 수 있는 이야기꾼이야.”
“헐?”
놀란 소리를 내는 투란.
―으흠? 평소에 그만큼 확실하게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무슨 마법을 썼는가 궁금해지는데. 마법이 아니라면 그건 또 그것대로 엄청난 짓을 하는 셈이고 말이야.
드라고니아도 꽤 흥미를 느낀 듯이 떠들었다.
로잭의 입가에 새로운 웃음이 짙게 걸렸다. 그리고 투덜거리는 듯한 말이 이어져 나온다.
“역시 놀랍지? 뭐, 나도 처음에 뭐 그런 이야기꾼이 있나 했어. 그런데…… 하아, 이 왕도라는 마굴(魔窟)에서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더라고.”
“마굴? 마물이 사는 동굴? 왕도가?”
어이없어 투란이 물었다.
로잭은 조금 진지하게, 웃음조차 살짝 차갑게 변한 채로 물음에 답한다.
“옛날 어느 현자가 그랬다잖아, 최강의 괴물은 인간이라고 말이야. 이 왕도에는…… 아니, 인간이 이렇게 몰려 사는 곳에서는 언제나 인간이 최강의 마물 노릇을 하더라고. 당장 우리도 그런 마물, 인간이라고 하기 싫은데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놈을 쫓아온 셈이잖아? 그리고 그런 놈과 어울리는 패거리가 한껏 날뛰는 곳이니까, 이야기꾼은 쉴 새 없이 주변의 상황을 엿보고 이야기를 끌어모아 놓고 있지. 언제 누가 무엇을 묻더라도 대답해주려고, 대답을 통해 연명하려고 말이야.”
가만히 듣던 투란은 이상한 한마디를 느끼고 바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명……?”
로잭의 표정이 슬그머니 사나워진 채로 대답과 함께 잇는 말을 토해져 나온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더라고. 우리가 알 바 아닌 일이지만, 주의해야 해. 여길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거든.”
“한 번?”
한숨처럼, 짧게 투란은 되물어야 했다.
로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뭘 물으면 녀석은 우리를 알게 되니까. 우리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떠들게 되니까. 두 번 물으러 다닐 여유가 없지.”
“아…….”
투란도 납득할 수 있었다.
몬스터의 습성을 캐러 다니는 헌터가 주의해야 할 일, 영리한 놈에게 헌터의 덫을 보여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영리한 놈은 한번 본 덫에 걸리지 않으니까. 마찬가지로 이야기꾼에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뭔가 묻는다면, 영리한 이야기꾼은 추측해낼 것이다. 왜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가, 묻고 있는 이가 누군가.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도 있을 터!
문득 의문이 투란의 가슴을 스쳐갔다.
“이제까지 왜 묻지 않았어? 그냥 위험해서는 아닌 것 같은데?”
로잭은 쓴웃음부터 짓고 대답한다.
“운명이 인도해주길 기다렸어. 우리보다 저쪽이 이야기꾼을 더 자주 만나니까. 몇 다리 걸쳐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 우리처럼 저쪽이랑 사이가 나쁜 녀석들이 뭔가 물었다가 자기네 소문만 잔뜩 퍼져서 엄청나게 피해 봤다더라고.”
투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로잭의 대답은 빙빙 둘러가고 있었다.
직접 이렇다 저렇다가 아니라 에둘러 떠들 까닭이 있는가?
―엿듣고 있는 경우를 대비한 모양이다만, 일리가 있는 상황이다. 벽 안의 통로로 방 안의 소리가 새나가거든. 통로의 소음은 방 안으로 침투 못 하는 구조야. 꽤 공들인 건축시설이다, 투란. 뭐, 지금 이 방의 이야기를 엿듣는 자는 없는 듯하다만…… 소리가 통로를 통해 어디까지 전해지려는가는 애매하니 조심하는 편이 좋기는 할 거야.
‘어디까지라니? 건물 밖에서도 엿들을 수 있다고?’
드라고니아가 보탠 이야기에 투란은 눈가를 미묘하게나마 더 찌푸린 채로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잭이 조심스럽게,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는 것까지 납득할 수 있겠거니 싶은 말을 하다가 뭔가 한층 더 깊이 상황을 파헤치는 듯하잖나.
―아까 말했잖아, 미로건축이라고. 페브라처럼, 이 건물만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니까.
‘으흠……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모으는 방법이랑도 관계가 있을 수 있겠네?’
―음? 호오…… 그럴 수도 있겠군. 아니, 그러는 편이 훨씬 쉽겠는걸? 벽 내부 형태를 아는 자가 멀리서 반향수집형 마법을 사용한다면…… 그래, 굳이 가까이 있지 않아도 멀리서 온갖 소리를 채집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엿듣기 알맞은 상황이야! 확실히 그래!
드라고니아가 좀 더 재미있다는 듯이 떠들 때, 투란은 로잭을 향해 느릿하니 새로운 물음을 꺼내놓고 있었다.
“마을 사람이야? 피해봤다는 쪽…….”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패거리야. 하지만 마을을 몇 번 거쳐온 적은 있는 것 같기도 해. 그래서 이런저런 소문을 듣고 온 적이 있다던가? 그런 사소한 것조차도 거슬려한다니까 우리도 더욱 조심해야지. 이번에 반드시 끝장을 내야 해, 투란.”
로잭이 바로 앉으면서, 묘하게 장난스러운 표정과 함께 이름을 부르며 말을 맺고 있었다.
투란은 금방 로잭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덤으로 한마디 짓궂게 대꾸도 해주니.
“그래, 이번에 꼭 끝을 보자고. 카엘, 꼭 그렇게 하자.”
바로 로잭은 입술을 깨물어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억누른 채로 키득거리고 있었다.
―뭔 상황이냐?
드라고니아가 흥미를 쫓다가 한 박자 놓친 듯이 묻고 있었다.
‘응? 아, 뭐…… 내 이름이 가명인 것처럼 불렀으니까, 로잭도 가명을 쓰는 것처럼 불러본 거야.’
심드렁하니, 굳이 소리 낼 일이 아니기에 다시 방 안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투란은 대답해줬다.
―음…… 듣는 쪽에서는 꽤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만.
‘그러라고 가명을…… 야, 잠깐! 듣는 쪽? 지금 나랑 로잭이 하는 이야기를 누가 듣고 있었어?’
―그래, 지금 벽 안에 도달한 자가 몇 마디 듣고 있었지.
‘뭐? 어?’
투란은 눈을 깜박이며 한쪽으로, 마침 방 안에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려는 듯이 밀려 나오는 벽이 왜 소리를 내지 않는가 의아하다는 듯이 눈길을 돌려 바라봐야 했다. 소리도 거의 없었고 그저 미묘한 진동만이, 감각을 강화한 이에게만 겨우 포착될 정도로 미묘한 흔들림만을 담은 채로 벽은 문이 되어 밀려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중한 태도를 갖춘 이가 벽 안에서 로잭을 향해, 투란을 향해 말문을 열고 있기도 했다.
“칠 번 양꼬치, 대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안내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준비가 필요하신가요?”
로잭이 냉큼 일어서며, 허리춤의 돈주머니를 툭툭 건드리는 손짓과 함께 대답한다.
“바로 가자고! 기다리다 지루했어!”
투란은 도박을 기대한다는 듯한 로잭의 말투에 쓴웃음만 짓고 따라서 일어섰다.
곧 벽을 연 안내인이 앞장섰고, 로잭과 투란은 그 뒤를 따랐다.
벽은 빈방을 고요하게 다시 닫았고…….
지하실의 벽이 열리고 거대한 실내의 풍경 속으로 로잭과 투란은 들어섰다.
덩치 큰 사람은 비스듬히 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통로를 따라 몇 층을 내려온 다음에 도달한 곳이었다. 기둥이 곳곳에 듬직하게 박혀 있었고, 몇 개인가 얼핏 세어도 수십은 될 듯한 커다란 탁자가 가득 놓인 지하광장이었다. 그 탁자마다 적게는 일고여덟, 많게는 이삼십 명이 들러붙은 채로 왁자지껄하게 몰입하는 풍경은 꽤 신기했다.
둘러보던 투란은 문득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도박장?”
로잭도 거들듯이 한마디 한다.
“그래, 도박장이네.”
그리고 둘을 향해 안내인이 가만히 고개를 까닥이면서 다시 손짓했다.
“칠 번은 이쪽입니다.”
“어? 아…… 가자, 투란.”
“그래, 카엘. 재밌어 보여.”
로잭과 투란은 서로를 흘깃하며 키득거리는 표정을 교환했다.
다른 이의 눈길에는 이제부터 도박이 즐겁기를 기대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보이게 꾸미는 시늉이었다.
안내인은 둘의 표정이나 몸짓이 어쨌든 상관없다는 듯이 와글거리는 광장의 인파(人波)를 가로지르며 앞장섰다. 통로를 타고 내려올 때보다 조금 더 걸었는가 싶었을 때, 벌레가 파먹은 듯한 기둥 안에 작은 탁자를 놓고 조그마한 의자에 기대어 꾸벅거리며 조는 듯한 이의 앞에 도달했을 때 안내인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칠 번입니다, 그럼 즐기시길.”
간단한 작별이었고, 안내인은 어떻게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안내 따위는 없다는 듯이 인파 속으로 사라져 갔다.
로잭은 안내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며 작은 탁자 앞에 앉았다. 마주 앉을 의자는 없었지만 너무 작아서 그냥 땅바닥에 주저앉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주 보는 눈높이가 되는 상황에서 로잭이 막 입을 열어 졸고 있는 이에게 뭔가 물으려 할 때, 투란이 먼저 나직하고 빠르게 소리 내서 묻는다.
“당신, 트루세이어야?”
로잭의 입이 바로 다물어졌다.
졸고 있던 이가 가늘게 감고 있던 눈을 반쯤 열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그 까칠한 낯이 꿈틀거렸고, 입술이 달싹이며 대꾸가 나온다.
“몬스터 로드……? 나는…… 트루세이어는 아니라네. 완전히 다른 처지이기는 하지만…… 조금 닮았다고 해도 거짓은 아니겠군. 나와 같은 처지를 일컫는 말이 따로 있으니까, 그쪽으로 불러주면 고맙겠어. ‘트루바드’라고 말이야.”
―응? 그런 게 진짜로 있는 거였냐?
뇌리를 울리는 소리에 투란은 낯을 살짝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