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3)
“잠깐, 이건 우리 용건이랑 관계가 없는 얘긴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지? 투란, 잠깐 기다려봐. 트루바드가 뭐야?”
로잭이 손을 들어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려는 투란을 막은 채로 물었다.
졸고 있던 이, 스스로를 트루바드라 한 자가 기둥 구멍 깊이 몸을 파묻듯이 한껏 기대면서…… 때문에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얼핏 봐서는 보이지도 않을 지경으로 깊이 앉으면서 대답을 한다.
“일단…… 조금 더 가까이 와 앉지 않겠나? 이야기가 짧지 않을 것 같으니.”
로잭은 엉덩이를 질질 끌며 작은 탁자까지 밀면서 구멍 안으로 깊이 들어가 앉았다. 그러면서 한편에 살짝 빈자리를 내주는 시늉도 하며 투란에게 손짓했다.
투란은 가만히 트루바드, 트루세이어의 힘을 흘려낸 이를 보다가 로잭의 손짓에 따라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았다. 그 사이에 투란의 뇌리에는 드라고니아가 떠드는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소문은 꽤 있었는데 말이야. 트루세이어의 저주를 받아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하는 자들, 그리고 세상의 진실을 끊임없이 파헤치고 엿들어야 하는 숙명에 묶여버린 자들이라고…… 트루세이어처럼 종(種)의 형태를 바꾸는 힘은 없어서 그 행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들이라고도 하더군.
‘드라코눔에서도 그저 소문뿐이라고? 내 느낌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트루세이어를 만났는데 딱 이런 느낌이었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해버렸어. 왜지?’
―그건 사실이다, 언더섀도우에서 트루세이어를 만났고 그를 통해 몬스터 로드로서 트루세이어를 간파하는 재주를 익히게 되었지. 기억은 덮었지만 그 감각이 저절로 판단을 끌어낸 셈이라 해야겠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위험한 상대니까, 방어본능에 따른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걸?
‘그래? 그러면…… 트루세이어처럼 마법을 뭉개고 몬스터 엠블럼도 쓸모없게 만들고 그런 재주는 없다는 거지? 트루바드의 소문에는 말이야.’
―없다, 그저 희한한 경우라고 딱히 해롭지 않다는 소문이었지. 물론 소문의 진위는 확인된 적이 없어. 방심할 까닭도 없는 거야.
‘그래…….’
투란은 숨을 가다듬는 시늉을 하면서 다시 트루바드를 느릿하게 훑어내리는 눈길을 보내봤다. 로잭도 투란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트루바드를 바라보는데, 둘이 꽂아넣는 눈길이 부담스럽다는 듯한 쓴웃음과 함께 트루바드를 자칭하는 이가 다시 말문을 연다.
“우선…… 그래, 내가 하는 말은 진실이고 듣는 이를 거짓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말은 할 수 없다는 것부터 알려줘야겠군. 나는 반드시 진실을 온전히 전해야 한다네, 그게 내가 짊어진 숙명…… 보통은 저주라고 할 거야, 그게 내 상황이라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나?”
“우리가 먼저 뭐라 건들지 않으면 아무 일 없다는 뜻인가요?”
로잭이 잠깐 눈살을 구긴 채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트루바드, 그가 다시 입을 열려는데 투란이 불쑥 묻는다.
“이름이 뭐죠?”
“제스란, 벨 모르카란 잊힌 가문의 이름도 물려받기는 했네만…… 지금 내게 의미가 있는 이름은 제스란뿐이네. 자네는?”
트루바드 제스란이 물끄러미 투란을 보며, 여전히 반쯤 열고 반쯤 감은 눈길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되묻고 있었다. 한데 어딘가 놀리는 듯한 분위기가 제스란의 낯을 살짝 스쳐가는 듯도 했다.
투란은 피식 웃고 간단히 손끝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답한다.
“투란. 내가 아는 유일한 내 이름이죠.”
“진실이로군. 그래, 나는 거짓말을 분별해낼 수 있네. 마치 트루세이어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지나친 생각이야. 내게 거짓을 말한다고 해도 나는 어떤 징벌도 내릴 수가 없다네. 그저 진위(眞僞)를 가늠하기만 하는 것뿐이니까. 말했듯이 나는 트루세이어가 아니라 트루바드라네. 세상의 진실을 듣고 전하는 자, 그런 저주스러운 숙명에 따라 살아야 하는 자일 뿐이지.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계속해서 나에 대해 묻다가 약속한 시간을 끝내겠는가?”
담담히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투란은 흘깃 로잭을 바라봤다.
로잭은 예상하지 못한 이 상황을 깊이 되새기고 다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투란에게 묻는다.
“투란, 달리 짚을 만한 일 있어?”
애초에 투란이 트루세이어의 낌새를 느꼈기에 이렇게 엉뚱한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된 것 아니던가.
“응, 있어.”
“말해봐.”
간단한 투란의 대꾸에 로잭이 입가를 살짝 뒤틀었지만 곧바로 재촉했다.
투란이 머뭇거림 없이 바로, 눈길을 제스란에게 꽂으면서 말한다.
“샤오콴 마을의 투란에 대해서 아는 이들을 죽이려 드는 자, 지금 두룩칼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그런 짓을 저지르는 자가 어디에 거처하고 있죠?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거처, 거기가 어디죠?”
“야, 투란…….”
로잭이 흠칫하며 뭐라 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제스란이 후욱 하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무거운 목소리를 흘려내니, 로잭의 목소리가 거기에 짓눌려 바로 사라지고 만다.
“포스테인 후작이 후원하는 별장, 후작가의 소유는 아니지만 소유한 것보다 더 엄중하게 관리하는 별장이 두룩칼의 은신처라네. 두룩칼은 그 은신처에 많은 것을 뒀고,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지. 그렇기에 누군가를 직접 죽이려는 함정을 팔 때도 반드시 그 주변을 이용하지. 멀리 떠나려 할 때는 후작이 직접 후원한 증거나 마찬가지인 특별한 마차를 사용한다고 하더군. 마차라지만 말이 끌지 않고 사슴 형태로 제작된 마도구가 끈다 하더군. 이만하면 듣고 싶은 이야기로서 충분한가?”
듣다가 살짝 이를 갈던 로잭은 입을 다물고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제스란이 충분하냐 묻자마자 입을 열어 질문을 더 하고 있었다.
“그 은신처에 언제 찾아가면 두룩칼과 엇갈리지 않고 만날 수 있지?”
미묘하게 입가를 뒤트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제스란이 답한다.
“저녁, 해 질 무렵이라면 열흘에 한 번 정도 어긋나고 거의 대부분은 두룩칼과 만나게 될 것이야.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은신처를 감싸고 있는 마법의 미로, 장벽을 통과해야 하지만 말이네. 그 정도는…… 자네에게 별문제가 아니겠지?”
“별장의 위치는?”
역시 투란은 곧바로 캐묻고 있었다.
마치 본능적으로 이 제스란, 투라바드를 자처하는 이에게서 모든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처럼 묻는 투란을 보며 로잭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 입가에 흐릿한 웃음은 어째서인가 눈가로까지 번지는 듯했고…….
“왕궁 서쪽의 끝, 흔히들 서궁(西宮)이라고 하는 왕궁 성벽 서쪽을 마주하는 도심의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네. 후작이 소유했다면 당연히 나라를 위해 많은 징발이 이뤄졌을 숲이지만, 후작이 후원만 하는 곳이기에 왕도의 정원이라 불리며 남아 있는 그 숲의 서쪽 끝에 검은 넝쿨로 덮인 담장을 둔 커다란 저택, 그곳이 바로 별장이네. 만약 오늘 해 질 무렵에 찾아간다면 그 별장 안에서 두룩칼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야.”
제스란은 담담하게 묻는 말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투란은 그런 제스란을 물끄러미 보며 말이 멎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묻는다.
“두룩칼이 당신을 찾아온 적이 있나?”
로잭이 곁에서 ‘흣?’ 하고 살짝 놀란 숨소리를 냈다.
제스란은 천천히 눈을 크게 떠 보이면서 투란을 바라봤고, 기묘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나서야 대답한다.
“새벽, 오늘 새벽에 왔었지. 자신이 죽이려 했던 이…… 로잭이라 불리는 베터랑 헌터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 나를 찾아왔었어.”
이번에는 로잭도 참을 수 없는 듯, 투란보다 먼저 묻는다.
“뭐라 대답해줬나?”
“왕도 밖으로 달아났다고, 마법으로 국경 가까운 곳까지 가버렸다고 답했다네. 다시 걸어서 돌아오려면 열흘 정도는 걸릴 수도 있다고, 새벽의 시간에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말해줬다네. 그때는 자네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으니까 말이야, 로잭.”
제스란이 장난스럽게 부르는 탓에 로잭은 움찔하다가 이를 갈며 노려봤다.
투란이 그런 로잭의 어깨를 토닥이듯 두드리고 제스란을 향해 말한다.
“미처 말 못 한 이야기를 다시 연락해서 전해주거나 하는 일도 합니까?”
“안 한다네. 난 여기 묶인 몸이니까, 듣고 싶은 이야기든 해주고 싶은 이야기든 여기 와서 할 수밖에 없지. 물론 사람을 써서 빠르게 전언을 얻어가는 경우도 당연히 있기는 하네만.”
제스란이 조금 지쳤다는 듯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투란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로잭은 은근히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재빨리 이어 묻고 있었다.
“두룩칼, 그 작자가 사람을 보내서 언제쯤 다시 묻겠다고 했소?”
등을 구멍 깊이 기대며, 얼핏 보면 구멍 안에 드리워진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는 듯한 몸짓을 보이면서 제스란이 로잭을 향해 빛나는 눈동자를 드러내며 말한다.
“저녁에 다시 온다 했지. 그는 최소한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자신의 일에 대해서, 상황의 변화에 대해서 묻거든. 로잭, 자네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은…… 투란이란 이름의 몬스터 로드 소년과 함께 온 것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소식이 될 거야. 아, 여기서 날 죽이거나 납치하는 일은 쉽지도 않겠지만 자네들에게 좋은 영향은 전혀 없을 거라네.”
“흐음? 정말 그래요?”
로잭이 사납게, 가만히 손을 움찔거리며 대꾸했다.
그 어깨를 투란이 쿡 짚어 누르면서 말한다.
“거짓말을 안 하는 트루바드라잖아. 다른 일 물어볼 것 있어? 없으면 나가자고.”
“기다려, 하나 남았다.”
숨겨둔 칼자루를 향하던 손에서 힘을 풀며 로잭이 말했다.
제스란의 번뜩거리는 눈동자를 로잭은 잠시 노려보다가 묻는다.
“알킨, 두룩칼의 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지?”
“그건, 실로, 내가, 답할 수, 없는, 일이라네.”
토막 난 듯한 기묘한 말투로 대답이 나왔다.
로잭과 투란이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는데, 흐릿해진 눈을 감으면서 제스란 스스로도 곤혹스럽다는 듯이 몇 마디 더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건…… 내가 답해서는 안 되는 일인 모양이야.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방금 그 물음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인 모양이네. 이런 일은…… 나도 처음 겪는 것 같군.”
“나중에 사람을 보내지. 그 때 답을 해줄 수 있다면 해줘.”
로잭이 신중하게, 의혹 어린 표정인 채로 말했다.
제스란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고, 투란은 일어서려는 로잭의 어깨에서 슬쩍 손을 떼었다.
“가자, 투란.”
한마디와 함께 로잭은 냉큼 일어서며 구멍 밖으로 나섰다.
투란은 흘깃 로잭을 보다가 제스란을 보며 말한다.
“나중에…… 일 생기면 또 와볼게요. 몸조심하고 계셔요.”
“고맙네.”
쓴웃음이 가득한 말투로 제스란이 대꾸했다.
그리고 투란은 로잭과 함께 도박장에서 벗어났다.
* * *
텅 빈 방의 벽이 열렸고, 사람을 둘 토해내며 다시 닫혔다.
닫히는 문 너머로 꾸벅 인사를 하며 사라지는 이를 보다가 로잭이 깊이 숨을 몰아 내쉬는 채로 말한다.
“쳐들어갈 거냐, 투란?”
“그러려고 물어본 거였잖아?”
갸웃하며, 너무 당연한데 왜 묻느냐 표정으로 투란이 대꾸했다.
벅벅,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로잭이 말한다.
“보석은 알킨에게 있을 텐데…… 너, 괜찮아?”
문득 투란은 로잭이 무슨 염려를 하는가 깨달았다.
어린 시절, 보석을 무엇보다 우선하던 투란의 모습…… 보석에 미친 꼬마였던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며 로잭은 투란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보석을 지녔을 알킨을 먼저 쫓으려다가 두룩칼을 놓친다거나, 두룩칼을 잡았다가 알킨에 대해 물으려다가 일이 틀어지는 경우에 대해서…….
“로잭, 알킨은 이 도시에 있어. 그렇다면 시간이 더 걸릴 뿐이야. 먼저 잡을 작자부터 잡아서 처리해도 된다고. 잊지 않았지? 이건 시간 싸움이야. 고무쇠 아저씨가 티아라를, 아르안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된다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이야기가 새나가도 안 되고. 그러니까 먼저 잡을 수 있는 두룩칼을 먼저 잡고, 그다음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알았지?”
“그래, 사냥은 그렇게 해야지.”
로잭이 조금 안도했다는 듯이 투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린 시절의 미친 꼬맹이였다면 보석을 향해 먼저 움직였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이 로잭의 얼굴을 채우는 듯했다.
피식, 로잭에게 웃어 보이고 투란이 말을 꺼낸 흐름을 탔다는 듯이 보탠다.
“그래서, 별장이 어딘가는 아는 거지? 말만 듣고 바로 찾아갈 수 있겠어? 난 여기 처음인데…… 어때?”
“왕도의 정원은 알겠다만 그 안에 별장이라 부를 만한 저택이 있는 줄은 몰랐어. 얼른 알아봐야겠는데?”
로잭이 살짝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투란은 키득거리는 채로 간단히 말한다.
“길드로 가자, 간단한 도시 안내 정도는 베테랑 헌터가 도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그래야겠네.”
쓴웃음을 머금고 로잭이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