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4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4)
“지금 있는 도시 안내도는 이 정도입니다만, 충분합니까?”
창구 안에서 두툼한 두루마리를 펼쳐 내밀면서 묻는 말에 로잭이 ‘잠시만.’이라고 짧게 한마디 하고 나서 두루마리 안에 그려진 지형을 손끝으로 주욱 훑어내렸다. 곁에서 투란이 힐끔거리고 보는 척하다가 그 한곳을 짚으며 묻는다.
“여긴…… 다른 곳이랑 그림이 다르네요?”
창구 안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이가 대답한다.
“아, 숲입니다. 도시 안에 조성된 숲이죠. 맹수는 없고 그냥 사람을 해치지 않을 정도의 짐승만 서식하죠. 그래도 그 주변으로 몰려다니는 사람도 없고…… 그냥 숲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가끔 찾는 정도랍니다.”
“이 숲 근처에는 주거하는 건물이 아예 없다는 뜻인가?”
소년의 의문 다음에 어른스러운 의문을 내밀 듯이 로잭이 물었다.
투란은 ‘숲에 사람 사는 집이 있을까?’라고 홀로 궁금한 듯이 중얼거리며 슬그머니 보태고 있었다.
길드 직원은 갸웃하다가 다시 창구 안으로 몸을 빼는 듯했다. 하지만 금방 또 다른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서 펼쳐 찬찬히 보는 듯하더니 곧바로 대답해준다.
“거의 없습니다만, 숲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축물이 하나 있군요. 가끔 귀족분들이 별장 삼아 나들이하는 것 같기도 한데, 길드에서도 어쩌다 한두 번씩 임대해서 쓴 기록이 있군요. 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임대해서 쓸 수 있다고?”
로잭이 흥미가 돋았다는 듯이 짚어 물었다.
“어, 한 십 년 넘은 이야기인데요. 지금은…… 왕궁관리소에 가서 물어봐야 하나 봅니다. 신청하고 순번이 나는가 확인도 해야 한다는데요? 아마 누가 왕궁 소속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었나 봅니다. 지금은…… 잠시만요, 어디 보자…… 아, 후작가에서 관리해주고 있군요. 손님이 장기투숙 중인 모양인데요?”
“그것 말고는 다른 별장은 없고?”
로잭은 임자 있는 곳에는 흥미가 식었다는 듯이 묻고 있었다.
길드 직원은 다시 이런저런 서류를 더듬어보다가 새로운 문서 하나를 꺼내서 읽으며 대답해준다.
“음, 주변의 여관이라면 몇 곳 소개해드릴 수 있군요. 숲이 편안하다는 헌터 분들이 있어서 준비된 곳이 있습니다. 어, 하지만 숲에 완전히 들어가 지낼 수 있는 곳은…… 왕도의 정원 안쪽으로는 다른 건물은 없군요. 여관을 소개해드릴까요?”
“그래 주면 좋지. 아, 지도에 잘 안 나온 것 같은데 이 숲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기록된 지도는 없으려나? 숲에 바람 쐬러 갔다가 별장 안으로 무단침입하는 꼴은 면하고 싶은데 말이지.”
로잭이 넌지시 지나가는 말투로 툭툭 아무렇게나 던지듯이 물었다.
길드 직원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는 말과 함께 다른 서류를 뒤척였고 새로운 지도를 꺼내 넘겨줬다. 덤으로 잔소리 같은 주의사항과 함께 숲 주변에서 길을 잃으면 높은 나무를 찾아 올라간 다음에 왕궁의 첨탑을 이용해서 방향을 잡으면 된다는 말도 더해줬다.
로잭은 간단하지만 정중하게 감사를 했고, 두루마리 지도를 챙기고 돌아섰다.
투란은 은근히 한가한 분위기인 길드 내부를 둘러봤고 소년의 호기심이 반짝이는 눈동자를 굴리면서 로잭의 뒤를 따르듯이 움직였다.
그렇게 둘이 길드를 나섰을 때, 아직 태양은 하늘 높이 뜬 채였다.
로잭이 지나는 거리를 둘러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태도로 투란에게 나직하게 묻는다.
“아직 저녁까지 좀 남았다만, 어쩔래?”
투란도 목소리를 낮춰 대답한다.
“미리 봐둬서 나쁜 일 있겠어?”
쓴웃음과 함께 로잭이 머리를 흔들며 대꾸한다.
“눈 마주치면 들키는 거지, 마주친 김에 칼부림이 날 수도 있고.”
문득 투란은 로잭이 상처를 입은 채로 도주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을 하면서 슬그머니 배를 긁적이는 로잭의 손을 보며 투란이 말한다.
“여럿이었어? 혼자였어?”
잠깐 로잭은 ‘뭐가?’라고 갸웃했다.
하지만 곧 투란이 눈짓하는 모습에 알아차렸으니.
“잠깐 혼자였어. 그래서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세더라고. 그리고 금방 여럿이 되기도 했지. 호위가 떨어진 척하다가 금세 돌아와 붙더라고. 뭐, 게르민이 미리 준비해둔 도움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토막 나서 널 다시 못 볼 뻔했지.”
“흠, 딱 맞춰 돌아와 준 셈이네?”
“그러게.”
“역시 운명이었을까?”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젠장.”
벅벅, 로잭은 머리를 긁적이며 투란의 추측에 동의했다.
이전과 다르게 바로 퇴각해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로잭, 한데 돌아가니 바로 투란이 옛날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 게다가 그로부터 이틀이 넘어가기도 전에 이렇게 반격을 위해 되돌아온 셈이잖은가.
때문에 로잭은 마음을 가다듬고 물어야 했다.
“싸울 수…… 아니,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갓 품은 것이 분명한 샤벨투스의 손톱을 제대로 써먹을 정도였다고.”
두룩칼, 오랫동안 괴롭혀온 적이었고 원수라 부를 지경이었지만 약하다고 얕볼 수 없는 상대였다. 하물며 투란에게는 감정적으로 복잡하게 엮인 부분도 많은 상대…… 과연 수십 년, 투란 자신의 시간으로는 수년 만이라고 하겠지만 한때 아비 노릇을 하던 자를 무심히 상대할 수 있을까?
게다가 단순히 싸울 수 있다는 정도로라면 오늘은 만나지 않는 쪽이 더 나았다.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습격하고 끝장을 봐야 하니까.
그러니 로잭으로서는 확인하기 싫어도 일단 물어야 하는 일이었다.
투란이 빙그레 웃었다.
“운명이 인도하는 싸움이잖아. 이겨야잖아?”
로잭이 쓴웃음부터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을 금방 털어내면서 보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목소리를 낮추며, 주변을 살피는 채로 투란에게 말했다.
“인도는 해주지만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어. 달아날 수단은 마련해주지만 제때에 사용하는 것은 내 몫이니 주의하라면서 말이야. 그리고…… 나, 실제로 죽을 뻔했다고!”
살짝 칭얼거리는 아저씨의 몰골인 탓에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지만 곧 이 아저씨가 로잭, 자신보다 한 살 많을지 두 살 많을지, 어쩌면 두 살 어릴지도 모르는 소년이 혼자 나이 처먹은 몰골임을 되새김으로써 투란은 쥐어짜 내는 대꾸를 할 수 있었으니.
“걱정하지 마, 안 되는 일이다 싶으면 재빨리 물러설 줄 아니까. 하지만…… 샤벨투스의 손톱 정도가 최선이라면 내가 더 셀 거야.”
말과 함께 슬그머니 엄지를 들어 올리면서 인간의 손가락이 지닐 수 없는 형상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로잭은 그 형상, 고양이와 닮았지만 맹수를 초월한다 하는 샤벨투스의 발가락인 형상을 확인하며 어이없고 살짝 성난 표정을 지었다.
“샤벨투스가 그렇게 흔한 놈이 아닐 텐데? 어떤 놈이 잡아서 발톱마다 썰어서 여기저기 뿌려 팔기라도 한 건가.”
“응? 뿌려 팔아?”
난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듯하다가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드라고니아도 뭔가 느낀 듯이 중얼거린다.
―설마…… 홀시딘, 상아탑을 이용해서 춤추는 산맥 어디든지 높은 값 주겠다는 작자에게 전송해준 것일까? 그렇다면 너의 적수가 될 작자도 왕의 발톱이란 얘긴데? 야, 가능성 있는 이야기잖아!
‘짜증 난다고!’
―짜증 이전에 따져볼 일이 있지 않냐? 시알라 남매는 그렇다 쳐도, 샤벨투스 꼬마 임금님의 발톱을 억누를 수 있는 부적이라면 어떤 것인가 말이다. 듣자 하니 부적을 꽤 많이 쓴다 하잖았냐? 그렇게 중첩시켜서 제 효과가 나는 거 아닐 텐데? 자칫하면 부적으로 인해 자아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잖아?
‘너무 따지지 마. 만나보면 알겠지. 오늘 말이야.’
투란은 한층 더 복잡해지려는 추측을 멈춰 세웠다.
곧 잡념을 떨쳐내듯 로그람 왕도의 풍경을 향해 로잭보다 앞장서면서 왕도의 정원이라 불리는 숲의 풍경을 찾는 시늉을 하는 투란이었다. 로잭이 바로 뒤따라 붙으면서 투덜거림을 이어나간다.
“넌 사냥한 것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돈 주고 사들인 놈보다 못 다룰 일은 없겠지만, 돈을 펑펑 퍼붓는 놈이 닥치는 대로 사들인 것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마음 놓지는 마라. 잔소리 같아도 마음에 새겨둬! 너의 실수는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라고! 나이 든 아저씨 잔소리라고 못 듣는 척하지 말란 말이다! 얌마!”
슬그머니 빨라지는 투란의 발걸음을 잰걸음으로 쫓으면서 로잭은 으르렁거리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거리의 오가는 이들에게는 둘이 주고받는 말이 의미 없는 소음이었고, 햇살과 골목의 그림자는 무심히 세월을 흘려내듯이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숲은 인위(人爲)의 형상을 외면하듯이 오롯하게 우거진 풍경을 드러내며 낯선 손님을 맞이하니…….
회색(灰色)의 왕성(王城)은 한때 백색(白色)이었다는 점을 감추지 않았다. 간간이 드러나는 하얗게 빛나는 성벽이 비바람에 본래의 색채를 과시하는 듯했고, 뾰족하게 치솟은 첨탑과 만개한 듯이 펼쳐지는 형상의 성벽, 궁전은 왕성 전체가 거대한 나무를 그려내고자 했다는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천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고대(古代)로부터 뿌리박힌 왕성의 서쪽, 그 한편에 왕성처럼 무엇인가를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본모습을 과시하듯이 숲이 박혀 있었다.
숲은 왕도 전체로 보면 작은 얼룩이었지만 막상 그 안에 발을 딛게 되면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맬 수 있다는 경고를 하려는 듯, 우거진 나무와 굵직하게 솟은 풀줄기로 담장처럼 경계를 만들어낸 듯한 풍경을 꾸미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슬쩍 풀줄기 하나를 따서 냄새를 맡으며 투란이 중얼거린다.
“이게 사람 사는 도시에 있는 숲이야?”
주변의 풍경을 외면하고 숲만 바라본다면, 인간의 자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한 밀림의 형태가 아닌가!
“그래도 들락거리는 길이 있다고 하잖아.”
로잭이 투란 곁에 선 채로 중얼거렸다.
투란처럼 처음 보는 풍경은 아니지만 로잭 또한 이 도시 한복판에 정원이란 이름을 지닌 숲이 꽤 낯설고 이상하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서쪽은?”
투란이 주변을 다시 훑어보며, 매우 이질적인 도시와 숲의 기괴한 경계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로잭은 잠깐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한숨처럼 대답을 한다.
“반대편이네.”
바로 투란이 눈살을 찌푸렸다.
로잭이 슬쩍 헛기침하는 시늉부터 하고 말을 잇는다.
“돌아갈까? 저녁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아니면……?”
미묘하게 한숨짓는 표정을 꾸미면서 투란이 말한다.
“혼자 갈까 싶기도 한데…… 어디 머물 수 있겠어?”
“같이 간다.”
딱 부러지는 로잭의 대답이었다.
확고하고 완강하며 반드시 결과를 확인하겠다는 의지가 로잭의 온몸에서 풀풀 휘날려 흘러나오는 듯했다. 때문에 투란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바로 비좁은 나무의 틈새로 슬그머니 한발 밀어 넣으면서 까닥거리는 손짓과 함께 숲으로 파고드는 투란이었다.
그 꼴을 보며 로잭은 한숨을 쉬었다.
따라올 능력 없으면 까불지 말고 그냥 어디 가서 쉬고 있으라는, 말없이 윽박지르는 짓이니까. 샤오콴 마을까지는 어떻게든 끼어 도착했지만 홀로는 마을 밖으로 나서질 못하는 미숙한 헌터를 놀릴 때 숙련된 헌터가 자주 보이는 태도가 딱 저렇잖던가!
“내 나이가 몇인데…… 야, 야! 천천히 좀 가라!”
함께 자란 시절을 되새기라고 투덜거리며 뒤따라 한 걸음 나무 틈새로 딛던 로잭의 말투는 금방 급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나무 사이로 미끄러지며 투란의 모습이 지워지는 듯한 탓이었다. 저렇게 내달리면 두어 걸음 사이임에도 서로 어디 있는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텐데…….
“빨리 오라고. 가는 동안에 해 저물고 나면 구경만 해야잖아!”
나무 뒤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투란이 윽박지르는 말투를 숨기지도 않은 채 말하고 있었다!
“이 자식이!”
로잭은 울컥한 채로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음과 함께 나무가 기우뚱하고 풀줄기가 밟혀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서너 걸음을 내디딜 무렵에 로잭은 투란이 이미 멀리 갔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의 소음, 숨소리조차 숲이 아니라 지나온 도심 쪽에서 더 세게 들리는 상황이었으니까.
“야, 내 말 들리냐? 멋대로 가지 마! 나 도착할 때까지는 기다려! 들키지 말고, 무조건 기다려!”
로잭은 소리를 낮춘 채로, 숲 밖에서는 전혀 듣지 못할 터이고 숲속으로는 지워질 듯한 목소리였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한 번이 아니라 서너 번을 그리 하면서 로잭은 가능한 한 빠르게 지도에서 확인한 별장, 저택을 향해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짐승처럼 숲을 가로질러 가버린 듯한 투란만큼은 아니지만 로잭의 속도 또한 평범하다 할 수 없이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