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5)
‘거봐, 잘 따라오잖아.’
―베테랑 헌터니까 따라는 온다만, 느려!
걸음으로 따진다면 대략 백여 걸음, 나무가 없다면 그냥 멀뚱거리면서 저기 서 있다고 말해도 좋은 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울창한 나무는 생각보다 우거졌고, 풀줄기는 예상보다 거칠고 촘촘했다. 이 정도 거리가 거의 산 하나를 사이에 둔 것처럼 서로 간의 자취를, 흔적을 엿보기 어렵게 할 정도.
마법을 통해 엿볼 수 있었기에 투란은 로잭이 그런 거리를, 상황을 두고도 자신의 흔적과 자취를 예리하게 더듬으며 따라오는 광경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감추고 달아날 일이 아닌지라 이리저리 표식처럼 흔적을 남겨두기는 했지만 미숙한 눈길로는 보기 어려웠다. 로잭은 자신이 그냥 나이 먹지 않았다는 것을, 샤오콴 마을의 소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잘 따라오는 모습이었다.
‘그러면, 마음껏 가볼까!’
―애초에 멋대로 움직였으면서 뭘…….
뇌리에 울리는 소리, 곁에 아무도 없는 채란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피식 웃었다.
투란에게 왕도라는 곳에 느닷없이 박혀 있는 숲은 새삼스러운 만큼 익숙하고 반가웠다. 사람이 가득한 도시,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 마을과 마을 사이에 인적(人跡)이 가득한 곳을 떠돌아 오면서 느낀 낯선 분위기가 이 숲에서는 몽땅 사라진 듯했으니까.
―야, 방향 틀렸어.
드라고니아가 나무 위로 올라가 고양이처럼…… 샤벨투스의 경쾌한 움직임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내닫는 투란에게 잠시 뒤에 속삭였다.
‘응? 엥?’
투란은 갸웃하다가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서 왕성의 풍경을 확인하고 놀랐다.
대강 지도를 기억하고 적절하게 방향을 잡아서 건너는 중이었는데, 어째서인가 방향이 뒤틀린 채라니?
‘우연……?’
―아닐걸.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는 투란에게 살짝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뭐? 그럼 뭐야?’
―그리 큰 영향은 아니다만, 이 숲의 방호술식이라고 해야 할 거야. 미묘하게 방향을 뒤트는 거대한 마법의 흐름이 담겨 있거든. 숲에 일부러 심어둔 마법은 아니고, 아무래도 저 왕성, 왕궁의 영향인 모양이다. 어쨌든 로그람의 왕도잖아. 고대왕국의 위엄이 영향을 끼치는 셈이지.
‘헐, 도시를 침공하는 경우에 대비한 거란 말이네?’
―지금은 그저 숲에 발 디딘 이를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게 하는 정도다만…… 너처럼 숲을 가로지를 수 없는 이들에게는 숲을 미로로 만들어서 감금하는 효과 정도는 넉넉하게 나오겠는걸.
‘으아, 무섭잖아!’
엄살 부리는 시늉을 잠깐 하며 투란은 방향을 다시 잡았다.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고, 다시 방향을 잡으며 감각을 가다듬고 나서야 숲을 휘감는 짙은 바람이 마력을 품고 살갗에 닿는 것이 느껴지는 투란이었다. 너무 미미해서 당연히 거기 있는 바람결이거니 했던 미묘한 느낌, 그 안에 담긴 마력은 가만히 있으면 별 의미가 없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조금씩 누적되며 방향감각을 뒤틀고 있는 듯했다.
‘음, 그래서 높은 나무에 올라가 왕궁을 보라고 했었나.’
투란은 문득 길드 창구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베테랑이 아니더라도 헌터가 숲에서 방향 잘못 잡는 일은 웬만해서는 없을 듯한데 굳이 그런 말을 덧붙인 까닭이라고 여기니 한층 더 그럴듯하잖는가.
―이런 숲에 들어가는 이를 보면 당연히 해줄 말 같다만?
‘뭐, 그렇기도 하고.’
키득거림과 함께 투란은 몸을 떨구며 나뭇가지를 타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숲의 짐승처럼, 나무 타는 잔나비처럼…….
―저택이라더니 사람이 없군?
갑작스럽게 드라고니아가 건넨 말이 투란을 멈추게 했다.
한 손으로 나무를 잡고, 대롱거리는 채로 투란이 되묻는다.
‘뭔 얘기야?’
―프로브로 정찰했다만, 사람이 없어. 숲의 경계 안에 있는 별장이라며? 지도상에 표시된 곳이기도 하니까, 미리 프로브를 보냈다만…… 사람이 없어. 그리고 좀 이상한 부분도 있는데…….
‘뭐가 이상한데?’
―지상보다 지하가 더 크다. 지상의 거의 세 배? 게다가 여러 층이군.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구조인데? 어라? 오호, 지하에는 마법방호도 갖춘 모양이야. 억지로 내려보냈다가는 프로브가 들통나겠는걸.
‘야, 건드리지는 마! 들키면 곤란하다고!’
―알고 있다, 옵저버로 전환시켜서 관측만 강화해보자고.
‘걸리면 안 된다!’
―안 걸려, 안 들켜.
점차 짙은 호기심을 드러내는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어째서인가 무성의하고 건성인 듯 느껴지는 투란이었다. 때문에 나아가는 속도를 한층 더 높이는데.
―몬스터?
다시 나온 한마디가 투란을 멈추게 했다.
대롱거리는 채로, 이제는 숲의 틈새로 어렴풋이 보이는 별장을 노려보며 투란이 빠르게 묻는다.
‘무슨 몬스터? 어디?’
숲은 여전했고, 그 너머의 도시 또한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갑작스럽게 몬스터가 출현했다면 어디든 나름대로 시끄러운 소란이 있어야 할 텐데…….
―저택 안이다, 몬스터의 자취가 있어. 쇠우리도 있군. 어떻게 된 일이지? 산채로 몬스터를 반입한 적이 있어 보이는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저택 담장 안, 건물의 중심부에 빈 마당에 놓인 쇠창살로 이뤄진 상자를 보여주며 덧붙이고 있었다. 어딘가 감금을 목적으로 한 쇠우리 같기도 했지만 운반을 위해 철판을 덧댔다가 떼어놓은 듯한 흔적인 듯, 구겨진 철판이 주변에 널브러진 채이기도 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일이 한 가지 있긴 하네.’
투란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되뇌었다.
―뭔데?
‘몬스터 에센스를 뜯어내려고 운반해온 경우. 산채로 뜯어내려고 저런 덫을 이용할 때가 있어. 저 경우에는 덫째로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단 말이지.’
―왕도 안으로 몬스터를 산 채로 반입한다? 경비병부터 버럭 화를 낼 듯하다만?
‘명령이라면 화를 낼 수가 없겠지. 근위기사 정도 되는 지휘자가 명령을 한다면 말이야.’
―아…….
드라고니아가 납득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보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채로 투란은 옵저버의 감각에 주의하면서 묻는다.
‘무슨 몬스터인가 알아낼 수 없나?’
―저 정도 자취로는 몬스터의 혈흔, 잔해란 것만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네 추측대로 정수를 갈취해냈다면 더욱 뭔지 알아내기 어렵겠지. 그나마 옵저버로 봤으니까 몬스터로 분별해낼 수 있는 경우야.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흘러갔다.
도시, 그것도 왕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수도의 한복판에 있는 숲에서 몬스터가 감금되었다가 파괴된 듯한 흔적을 봐야 한다니…… 마도구의 탐지가 아니라면 무슨 짐승을 감금했다가 죽인 정도로 착각하기 쉬운 흔적이라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작은 짐승처럼 연약해도 죽이면 상상도 못 할 결과를 낳는 몬스터도 있으니까.
‘이것 참……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해야 하나? 사냥을 하려고 경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를 도시로 반입하신다니……아, 혹시 다른 몬스터의 자취는 없어? 저택 안을, 지하까지 어느 정도나 탐지할 수 있는 거야?’
―마법방호를 억지로 돌파하지 않고 탐지하자면, 마당의 저 흔적 말고는 딱히 없다고 해야겠군. 직접적으로는 말이다.
‘직접적?’
―간접적으로는 벽이라든가 복도 곳곳에 몬스터의 체액을 닦아낸 흔적도 있고, 뭔지 모를 것의 손톱자국이나 발자국도 섞여 있어. 명확한 자취는 아니다만 몬스터가 아니면 몬스터 로드가 들락였다고 해야겠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투란은 멈췄다.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 우거진 나무 틈새를 통해 보이는 저택의 풍경을 확인하면서 투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사람의 낌새는 느낄 수가 없었다.
‘로잭은?’
―열심히 따라오고 있다만…… 음? 지하가 개방되었는데?
‘개방?’
―저택 안쪽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철문이 열렸다. 아무도 없어 보인다만…… 아, 지하광장까지 곧장 이어지는 구조로군. 철문이 열리면 방호체계도 휴면상태가 되는 건가? 어? 누가 나오려나? 응? 그냥 닫히는데?
실시간으로 변화를 읊어주는 드라고니아의 말을 듣던 투란은 동시에 뇌리에 투영되는 건물의 구조, 내부형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당의 한편, 가까운 건물 안쪽의 복도에 굳게 걸린 철문이 있었고 그 철문과 곧바로 이어진 계단은 지하층을 곧장 이어주며 층마다 들어서고 나설 수 있는 문을 간직한 모양이었다. 각 층에 닿기 위해서는 일단 무조건 계단을 거쳐야 하는 듯한 구조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 맨 아래층, 얼핏 사 층이거나 오 층은 되는 곳이 널찍한 광장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광장의 테두리는 흐릿해서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지만…….
‘간다!’
―뭐? 야, 거의 닫혔…….
팟, 투둑.
나뭇가지가 휘청였고 살짝 부러질 듯하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뭇가지를 그리 밟고 튀어나간 투란은 단숨에 저택의 담장을 넘었고, 곧바로 건물 중심을 향해…… 허공을 가로지르듯이 건물벽과 내부를 관통하며 도약했다. 몬스터의 힘을 빌린 리틀 점프는 그다음에도 손바닥 틈새만 남기고 닫히는 철문 너머로 투란을 도약시켰다.
덜컹.
작은 소리였지만 귓가에 크게 울리면서 철문이 닫혔다.
잠금소리가 따로 나진 않았지만 투란은 몸을 덮쳐오는 기묘한 마력의 파동을 통해 철문이 마법으로 잠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때?’
―중급 수준의 잠금 주문이다. 더불어 방호 마법도 함께로군. 왜 열렸는가는 모르겠다만, 열린 사이에는 마법이 일시적으로 쉬어버려. 잘 노리고 통과한 거야.
의아해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칭찬으로 말을 맺었다.
숨을 고르면서, 급하게 반사적으로 사용한 리틀 점프가 웬지 낯익다는 것을 새삼스러워하면서 투란은 계단을 내려다봤다. 위치상으로 보면, 계단의 천장 너머는 건물에 감싸인 마당 정도가 될 듯싶었다. 그리고 중심이 훤히 뚫린 채로 벽을 타고 내려가는 계단의 형태를 보면, 마당 한복판이 열리고 지하로 뭔가 내려보낼 수도 있는 듯이 보였다.
‘맨 아래가 광장이라고 했지? 폭이랑 천장까지 높이가 어느 정도나 되는 거였어?’
투란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확인하고자 물었다.
드라고니아도 퍼뜩 뭔가 느낀 듯이 바로 탐색 결과를 다시 확인하며 대답한다.
―높이는 4미터…… 거의 5미터에 가깝고, 계단 입구를 중심 삼아서 폭이 90, 길이는 70? 완전히 가늠할 수는 없다만 대강 그 정도야. 어지간히 거대한 경우가 아니라면 몬스터나 짐승을 풀어놔도 거뜬한 공간이 맞다.
‘그렇지, 역시…… 건물 안팎으로 가까이에 사람 없지? 로잭도 아직 멀었고?’
―밖에 둔 프로브와의 연결이 원활하지 못해. 생각보다 이 저택의 마법방호가 수준이 높다, 투란.
‘로잭 위치를 모르겠다고?’
―로잭만이 아니야.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밖에 독립적으로 놔둔 프로브의 상태가 제대로 점검이 안 된다. 옵저버라면 어느 정도 현상 파악은 가능하겠지만, 저택의 마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훨씬 커질 듯한데, 어쩔래?
‘그냥 내려가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신중하게 말하는 선택지를 잠시 가늠하다가 결정했다.
숲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당장 로잭에게 문제가 있을 리는 없는 듯했고, 모처럼 들어온 이 안을 탐색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두룩칼이 이 안에 뭘 담가뒀는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가…….
투란은 두룩칼 또한 몬스터 로드라는 점을 되새겼다.
몬스터 로드가 이 정도 은신처를 두고 몬스터를 공급받으면서 어느 정도 힘을 키울 수 있는가? 심지어 부적까지도 주렁주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지원받는다면…… 무엇을 얼마나 삼켜서 다룰 수 있는가 예측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단순하게 직접 가서 본다는 결정을 내린 셈.
―너무 소란 피우지는 말고, 마그마 로드 같은 것 말고 샤벨투스 왕족 정도에서 처리하도록 노력해봐라.
드라고니아로서는 이변(異變)에 대응하더라도 규모를 줄이기를 당부하고 있었다. 듣는 투란에게는 아무래도 이곳이 왕도란 점, 로그람은 아니지만 다른 왕도에서 자신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는 탓에 하는 말처럼 여겨지는 얘기였다. 때문에.
‘마법으로 어떻게 덮을 수 있나 궁리해봐.’
살짝 심술궂은 생각이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얌마! 몬스터 로드가 싸우는 상황이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뇌리를 울릴 때, 투란은 계단을 밟지 않고 중앙의 빈 곳을 향해 바로 뛰어내리는 중이었다. 얌전히 계단을 밟기보다는 텅 빈 공간을 이용해 바로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투란의 손발, 목덜미에서는 샤벨투스의 털이 잔잔하게 살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