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4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6)
Chapter 228. 인과의 율법 Ⅰ
통, 토통.
비스듬히 내려오는 와중에 계단참에 걸릴 뻔했기에 가벼운 발 디딤으로 튕겨나와야 했다. 그렇게 곧바로 투란은 최하층, 광장을 향한 철문 앞에 내려섰다. 뭔가 방해하는 것이 없었기에 살짝 긴장한 것이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뭐 없냐?’
―없다.
슬쩍 분위기 바꿀 생각으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시큰둥하고 차가웠다!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지만, 눈은 철문에 둔 채로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잠긴 느낌이 아닌데?’
―탐지를 방해하는 성질은 보인다만, 확실히 잠금 주문 따위는 흔적이 없어.
드라고니아가 투란에게 동의했다.
동시에 경고도 하는데.
―어쩐지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고 하는 모양새다만…….
피식, 웃음과 함께 투란은 곧바로 철문에 손을 대고 밀었다.
‘들어오라면 들어가 줘야지.’
문 틈새로 엿보지도 않고 활짝 밀어붙이듯이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냐? 아직 시간이 아닐 텐데?”
거칠고 사나운 목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결코 좁다고 할 수 없는 넓은 공간임에도 저 건너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면서 문을 들어선 투란에게 또렷이 닿는 상황이었다.
벽에 등잔이 걸려 있기는 했지만 느슨하고 넓은 간격 탓에 어둑한 풍경이었다.
그 풍경의 중심인 것처럼 저편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꿈틀거리는 몸짓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혀를 차며 투란이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낮에는 비었다더니, 설마 벌써 해가 졌나?”
작게 속삭이는 흉내를 낸 목소리였는데 저편에서 바로 대꾸가 돌아온다.
“빈집을 노렸다? 도적이냐? 어리석군! 아직도 이 별장의 소문을 듣지 못한 도적이라니…… 모르면서 들어설 정도로 어리석은 탓인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투란이 낸 소리와 완연히 대조되고 있었다.
‘말투가 이상한데?’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가, 아니면 투란에게 하는 말인가?
―몸짓도 정상이 아니야.
드라고니아도 기괴하다는 듯이 속삭였다.
투란은 가만히 목소리를 향해 걸어나가면서 묻는다.
“두룩칼? 저녁에나 돌아온다 하던데?”
“저녁? 흣, 과연 그 말을 믿고 숨어들었다는 얘기냐? 그런 것치고는…….”
차갑고 으스스하게 대꾸하던 말이 잦아들다가 멈췄다.
투란은 희미한 불빛이 만들어내는 어스름한 풍경 속에서 두룩칼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로잭이 말했던 두룩칼의 차림새, 목걸이와 귀걸이는 기본이고 팔찌와 발찌, 반지가 발가락까지 휘감기듯이 끼어 있고 주렁주렁 꿰인 채로 허리띠를 꾸민 듯한 몰골까지…… 그 장신구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과 뒤엉키며 이질적인 힘을 형성하며 번져 나오는 것까지 명확했다.
―과연, 저렇게 엉켜 있다면 벽 하나만 사이에 둬도 제대로 탐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하겠군.
‘숨소리도 들리고 비비적거리는 것도 느낄 수 있어. 오러 윌더는 저 이상한 힘에 현혹당하거나 휘둘리지 않는 모양이네.’
드라고니아가 관찰한 부분에 투란이 보탰다.
짧은 순간이었는데, 두룩칼 또한 투란을 관찰한 듯…… 그래서 놀란 것처럼 더듬거리는 말투로 묻고 있었다.
“너…… 네놈…… 설마…… 투란? 뒈졌어야 할 그 새끼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진 탓인가 말이 제대로 맺어지질 못하고 있었다.
살짝 입꼬리를 뒤틀면서 조금 더 다가가며 투란은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두룩칼이 자기 머리를 움켜쥐고 흔들며 떠드는데.
“그럴 리가 없어! 혼돈의 늪에 떨어뜨린 제물이 살아 돌아오는 일 따위는 없어! 그건 성궤를 향해 바쳐지는 제물이야! 환상이다, 늘 겪는 망상이야! 정신 차려! 넌 두룩칼! 알킨의 아비다, 그래, 알킨, 알킨, 내 아들…… 다시 얻을 수 없는 내 아들! 정신 차려라, 두룩칼!”
그 내용이 너무 어이없어 투란은 하려던 말을 잊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과연 제정신이 아니긴 하네. 예르카가 말한 대로인가 보네?
드라고니아는 투란처럼 정서적인 관점을 지니지 않았다는 듯이 냉정하게 두룩칼의 상태를 분석하며 말하고 있었다. 이 냉정함이 불쑥 투란의 마음에 스며들었고, 투란도 쓴웃음과 함께 치솟으려던 분노를 잠시 붙잡아 묶을 수 있었다. 한데 이 짧은 동안에도 두룩칼은 정신줄을 놔버린 듯한 소리를 더하고 있었으니.
“죽었어, 그 새끼는 죽었어. 살아 돌아올 리가 없어. 살았다면 이십 년 전에 돌아왔겠지. 이미 이십 년도 넘었잖아. 그래, 이 환상에서 벗어나야지! 새 부적, 새 부적이 있으면…… 네놈! 부적을 어서 내놔야지! 어설프게 가로챌 궁리라도 하는 것이냐! 죽고 싶어?”
제멋대로 흘려내던 이야기 끝에 투란을 향해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꼴을 보던 투란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 짜증 나네. 그냥 쳐 죽이면 더 답답해질 것 같잖아!’
―지닌 부적이 몇 개인가도 셈하기 어렵다. 게다가 고유마력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정령수도 가까이 붙이기 겁날 정도라고. 저렇게 부적이랑 엉킨 채라면 정령수의 접근에도 저절로 반응할 거야. 그나마 통하는 힘이라면 역시 오러 계통이 아닐까 싶다만.
‘통한다고?’
문득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세심하게 자신을 돕는 말을 해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대로 싹 무시하고 쳐 죽이는 것은 투란에게 오히려 쉬운 일, 두룩칼이 잠시라도 제정신을 찾고 투란을 알아보게 하는 것이 어렵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난해함을 놓고 통한다고 말하는 것이잖은가.
이렇게 도우려 하는 드라고니아는 조금 낯설었지만, 투란은 그보다 저렇게 정신줄 나가버린 몬스터 로드에게 통한다는 오러의 기교가 무엇인가를 집중해서 생각했다. 금방 키린의 목소리가 뇌리를 울리는 듯했고 투란은 한 가지를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가드 힐……!’
지키고 치유하기 위한 목적의 오러 활용법, 단순히 공격을 막고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를 지키며 그 상처를 돌봐주기까지 하는 목적을 지닌 오러의 기교는 몸과 마음 양쪽에 영향을 끼친다 했다. 미친 사람을 완전히 멀쩡하게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지는 못하겠지만, 잠시 제정신을 돌려놓기에는 적당하다 할 수도 있는 기교.
곧바로 투란은 걸음을 빨리하며 주먹을 꽉 쥐며 오러를 집중시켰다.
―응? 야, 타격기가 아닐 텐데?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며 물었다.
‘오러를 때려 박기만 하면 돼!’
투란은 경쾌하고 신속하게 대답했다.
―부러뜨리고 맞춰주는 거냐.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드라고니아.
투란은 한층 더 어이없으란 듯이 소리 없는 대꾸를 하는데.
‘맞춰줄 필요는 없을걸!’
빠른 걸음으로 인해 두룩칼과 거리가 일고여덟 걸음 정도로 좁혀든 채였다.
두룩칼 또한 투란을 보며 낯을 한층 더 구기면서 손가락을 쭉 뻗은 채로 혼잣말하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심부름을 시켰더니 건방진 것이…… 내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감히 내게 이빨을 보이려 해? 도적놈 같으니라고…… 아, 도적놈이었군! 그래, 그럼 우선 팔다리 한둘 끊어놓…….”
빠악!
떠들고 있던 두룩칼의 볼에서 찰진 소리가 터져나오며 말이 끊어졌다.
두룩칼은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으로 팔을 휘둘렀다.
빳빳하게 펼친 손가락에서 날카롭고 긴 칼날처럼 보이는 손톱이 솟구쳐 나오며 허공을 베었다.
사각.
허공에서 울린 소리는 옷감이 잘려나간 듯했지만 베인 것은 없었다.
퍼억!
광장의 어스름함에 번져가는 듯한 타격음이었다.
두룩칼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가슴과 배를 더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뱃가죽을 찢고 갈비뼈를 부술 듯한 충격……이었을 텐데 멀쩡했다.
그에 대한 의문이 두룩칼의 뇌리로 스며들면서 혼란스럽고 난폭했던 표정이 흐트러져갔다. 그리고 두룩칼의 눈동자가 이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흔들리다가 투란에게 꽂혀들었다.
“너…… 투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전혀 다른 눈빛으로 두룩칼이 투란을 바라봤다.
피식, 눈길을 마주치며 투란이 말한다.
“요새는 두룩칼이라던데, 이제 내가 산 사람인가 죽은 사람인가 구분이 가려나? 내 얼굴을 기억은 하는 모양인데?”
“너, 진짜냐? 정말로 살아 있었다고?”
덜덜 떨리는 몸짓, 그 탓에 떨리는 목소리로 두룩칼이 되뇌었다.
말과 함께 두룩칼의 눈알이 데굴거리면서 곧바로 투란의 위아래를 훑는 모양은 자신의 눈을 다시 한번 점검하며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 흔들거리는 눈길은 금방 멈춰졌고, 완고하면서도 굳은 표정이 두룩칼의 낯을 채웠다.
투란이 키득거리는 웃음으로 입가를 휘면서 말한다.
“아, 그 낯짝이네. 내 부적 가져가면서 그런 표정이었지? 문장을 심는 데 방해되니까 잠시 맡아둔다, 였었지? 그래서, 잘 갖고 있나? 주렁주렁 새것을 잔뜩 매달았다고 내 부적을 내다 버렸어? 철딱서니 없는 아비니까 그럴 만도 한가?”
“닥쳐!”
두룩칼이 으르렁거렸다.
위협적인 태도가 함께인 으르렁거림인데, 들이대는 손에서…… 그 손가락 끝에서 거의 장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손톱이 길어지기도 했다.
그 손톱을, 샤벨투스의 발톱 형상을 흘깃하며 투란이 웃었다.
“내가 판 녀석이 아닌가 보네. 다행이야.”
“뭐라고?”
두룩칼은 이제 증오가 담긴 눈빛으로 투란을 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투란의 비꼬는 듯한 말, 그 눈빛과 어우러진 말의 의미에 움찔하며 자신의 손톱을 반쯤 줄이면서 언제라도 휘두를 태도를 갖추면서도 의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이 슬쩍 한 발자국 앞으로 디디며 말한다.
“샤벨투스를 잡아서 발톱이랑 이빨을 팔았거든. 어이없잖아, 두룩칼이란 괴상한 놈에게 그게 팔렸다면 말이야. 아, 대체 왜 이름은 두룩칼인 거야? 알킨이랑 아무 상관 없는 이름 같잖아. 그러고 보니 알킨은 어딨어? 여전히 내 보석을…….”
시잉, 사각.
허공이 갈라지며 투박하게 찢어지는 소리를 흘렸다.
헛손질한 두룩칼의 낯이 실룩였다.
두룩칼은 투란이 지껄이도록 놔뒀다가 재빠르게, 샤벨투스의 발톱과 함께 얻은 신속한 순발력과 날렵함으로 찌르고 베려 했다. 한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다렸다고 해도 감히 따라잡을 리가 없다고 여긴 샤벨투스의 움직임에 당연하다는 듯이 맞춰 피해내다니?
‘정말이었나?’
두룩칼의 표정이 음침해졌다.
조금 전에 투란이 한 말, 샤벨투스를 잡았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증거를 본 셈이었다. 그렇다면 샤벨투스를 사냥하고 삼킨 몬스터 로드를 상대로 매입(買入)한 몬스터를 들이대는 것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더 압도적으로 몬스터의 본능을 억제하고 다스릴 경우가 아니라면…….
두룩칼이 한 손을 휘두르며 한 팔을 뒤로 뺐다.
날카롭게, 샤벨투스의 발톱이 다섯 가닥의 장검처럼 휘둘러졌다.
그리고 뒤로 뺐던 한 팔이 앞으로 내밀어질 때, 그 팔은 어깨부터 손가락까지 가시 돋은 촉수다발이 된 채였다. 어깨에 뿌리내리고 팔을 감으며 뻗어나온 듯한 촉수다발, 그 가닥마다 돋은 가시는 이미 뭔가를 뚫고 나온 것처럼 이슬방울이 맺혀 있기도 했다.
파르륵, 파닥!
채찍과는 다른 다채롭고 무거운 소리가 바닥을 내리쳤다.
두룩칼의 눈살이 구겨졌다.
활짝 펼쳐지며 그물처럼 휘둘러진 촉수다발이 모조리 빗나갔다!
게다가 가시가 쑥쑥 치솟으며 그물질을 하려던 의도마저도 투란이 이미 수 미터를 옆으로 튕겨 움직인 탓에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죽여야 해, 내 정신이 온전할 때! 알킨을 찾아가지 못하도록 죽여야 해!’
두룩칼은 집중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말짱한 정신으로 상황에 집중할 수 있는가를 따지지 않은 채로 두룩칼은 수십 년 만에 만난 투란을 노려보며 죽일 생각만 했다.
왜 투란이 수십 년 전의 모습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인가도 생각하지 않았다.
두룩칼에게 중요한 일은 투란을 죽이고 세상에서 지워 없애는 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두룩칼은 자신의 문장이 지니고 있는 몬스터의 힘을 더 많이, 더 강력하게 끌어내려 했다.
두룩칼이 몸에 휘감은 부적들이 찰랑였고, 제각각의 이질적인 힘을 토해냈다.
두룩칼의 가슴에서 천칭의 문장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불꽃처럼 검은 얼룩을 잔영을 흘려내면서 명멸(明滅)했다.
그 몸에서 피어난 몬스터의 형상이 부풀고 뒤틀리며 뒤섞였다.
팔다리의 살갗이 갈라진 틈에서 괴상한 줄기가 칼날의 형태를 꾸미며 치솟아 나왔다. 촉수다발의 가시가 죽죽 뻗어나가며 엉키고 그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두룩칼은 한쪽 어깨는 촉수다발과 그 끝에 맺힌 그물, 온몸의 갈라진 틈으로는 칼날을 드러내는 괴이한 몰골인 채로 뛰고 달렸다.
샤벨투스의 발톱은 두룩칼의 손발 끝에서 날카롭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