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4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37)
“아르곤.”
두룩칼의 입술 사이로 기묘한 웅얼거림이 새나왔다.
동시에 강력하게 휘둘러지는 촉수다발, 샤벨투스의 발톱까지 투란은 뒤로 미끄러지고 옆으로 튕기는 몸짓으로 피해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눈……? 정말 아르곤?’
귓가에 희미하게 닿았지만 투란은 분명히 들었다.
―눈알이다, 눈알수집가 맞아!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맞아? 왜 지껄이는 건데?’
투란으로서는 어리둥절할 일이었다.
―아마…… 자신에게 인지(認知)시키기 위해서겠지. 심상을 기반으로 삼는 주문처럼 말이다. 오히려 몬스터 로드이니 더 효과가 있으려나?
드라고니아가 어느 정도 납득한 듯, 빠르게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경계하는 프로브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그 사이에 두룩칼의 몸 주변을 휘감는 짙은 안개가 퍼지고 있었다. 안개의 근원은 갑작스럽게 두룩칼의 목 아래 생긴 눈알이었다. 주먹 반만 한 눈알은 눈동자가 이지러진 무늬처럼 맺혀 있었고, 그 위로 굴러다니는 눈물 혹은 이슬방울이 허공으로 터져나오면서 안개를 이뤄내는 중이었다.
투란은 그 눈알뿐 아니라 가슴과 어깨, 배까지 불룩거리면서 돋아나는 수십여 개의 눈알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흐드러지는 안개를 바탕으로 허공을 채색해오는 묘한 녹색을 뿜어내는 눈알은 갑작스럽게 투란의 기억 깊은 곳을 건드리기도 했다.
‘파종(播種)하는 이끼 눈알?’
녹색의 눈물을 흘리는 돌로 된 눈알에 닿으면 몸에 이끼 형태의 기생형 괴물이 들러붙어서 결국 고형화(固形化)하고 새로운 돌 눈알이 자라날 그릇이 되고 만다고 했다. 그 눈알이 가장 위험할 때는 안개가 끼었을 때, 눈물이 안개를 타고 번져나가는 상황! 그야말로 몬스터의 배 속에서 소화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
―저 안개는 수면과 마비효과가 있다. 아르곤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는군. 다른 것도 만만치 않을 것처럼 보인다만…… 아, 저거 설마 눈깔꽃인가? 투란!
드라고니아가 두룩칼의 배꼽 언저리를 짚으며 흠칫 놀란 외침으로 말을 맺었다.
섬광이 터져나와 거대한 빛줄기가 바닥에 꽂혔다.
거인이 휘두르는 몽둥이처럼 빛줄기는 이미 옆으로 튀어 내달리는 투란을 때리겠다는 듯이 휘둘러지기도 했다.
두룩칼이 성난 소리를 터뜨렸지만 기둥 같은 빛의 몽둥이가 바닥을 긁고 멀리 벽을 때리며 일으키는 폭음 속에 지워졌다. 뒤뚱거리고 기우뚱거리는 두룩칼의 몸짓은 꽤 빠른 편이었지만, 두둑칼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내달리는 투란을 빛의 몽둥이로 때릴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 빛이 사그라들었고 섬광을 뿜어냈던 눈알이 터지며 꽃봉오리가 두룩칼의 배에서 툭 불거지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꽃봉오리의 형상은 곧바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 사이에 두룩칼의 촉수다발은 자신의 등쪽을 향해, 뒤뚱거리는 몸짓과 전혀 다른 민첩하게 휘둘러졌다.
그 움직임을 투란의 두 손이 샤벨투스의 발톱을 손가락에 매달고 맞이해줬다.
서걱, 키익.
잘려나간 촉수다발이 바닥에서 파닥이려다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
“크읏, 이놈……!”
두룩칼은 신음했다.
겹쳐진 시야(視野)가 뇌리를 흔드는 탓에 어지러움이 생길 지경이었다. 속이 흔들리고 토할 듯한 역겨움이 배 속 깊은 곳에서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두룩칼은 발을 내디뎠고 손을 휘저으며 투란을 쫓았다.
“넌…… 넌, 알킨에게 못 가…….”
혼란스러운 정신이었지만 두룩칼에게는 확고한 목적이 있었다.
결코 투란을 알킨에게, 자신의 유일한 아들인 알킨에게 닿게 하지 않겠다는 목적.
고통이 가득한 어지러움 속에서도 두룩칼은 그 한 가지에 집중했다.
때문에 두룩칼은 투란이 어찌 눈알이 흩뿌린 안개 범위 안에서 돌을 만드는 이끼의 파종을 피해냈는가, 어째서 자신보다 몇 배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튼튼한 건축이로군. 벽이 다 무너지고 천장이 내려앉을 줄 알았다만…… 예상 이상으로 충격에 잘 버텨. 나는 모르는 고대건축인 모양이다. 설마 이렇게 도심의 숲 언저리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감탄하는 듯, 한편으로는 자신의 지식에 대해 한탄하는 듯도 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투란은 웃었다.
‘튼튼하단 말이지?’
재차 확인하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섞어 대답한다.
―그래, 그냥은 녹지도 않을 거야. 이 안을 용암으로 가득 채워도 말이지. 하지만 용암을 더욱 가열해서 벽을 녹이고 건축기반을 통째로 뭉갠다면…… 거기까지 버티지는 못할 거야.
‘무너지지 않게 관리 좀 해줘, 그 정도는 애들 부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사대 정령수라면 넉넉하긴 하다만…… 너 자신에 대한 방어가 좀 모자라게 될 텐데? 상대는 정신이 나갔어도 몬스터 로드야, 단순한 마법 방어로는…… 저 두르고 있는 부적만으로도 위험하다만, 괜찮겠어?
‘아, 괜찮아. 저렇게 두른 부적은 안 두른 것만도 못하니까.’
―흠?
갸웃하는 드라고니아를 마음 한편으로 밀어내듯, 투란은 집중했다.
외형은 샤벨투스의 형상을 기본으로 삼았고, 안쪽으로는 자연스럽게 ‘악마의 심장’을…… 섀도우 하트를 중심으로 안개를 삼키고 이끼의 씨앗을 포식했다. 그러면서 투란은 아르고누스의 본능을 억누르고 다스려야 했다. 아르곤의 형체를 기반으로 수십여 개의 눈알을 드러낸 순간부터, 그 눈알을 모조리 뽑아내고 싶다는 충동이 자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중이었으니까!
충동을 억제한 채로 투란은 보다 정교하게, 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두룩칼을 휘감으며 벽을 치는 듯한 촉수다발을 연속으로 끊어냈고, 더욱 짙어지는 안개를 뿜는 눈알과 이끼 눈알을 향해 소릿살을 뿜어냈다.
촉수다발로 확장된 팔이 끊겨나갈 때마다 두룩칼은 이를 갈았지만 큰 고통에 휘둘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알이 갑작스럽게 울린 휘파람 소리와 함께 으깨지는 순간에는 몸을 떨며 한편으로 뒹굴고 말았다. 살갗 틈에서 솟아 나온 칼날이 바닥을 베고 찔렀고, 이 또한 두룩칼에게는 자잘한 통증이 된 듯했다.
“재밌는 촉수네.”
투란은 슬쩍 새는 웃음을 섞어 말했다.
강력하게 휘둘러대면서도 정작 베이고 잘려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팔, 촉수다발은 그런 형질(形質)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대로 저 칼날은 굉장히 위협적이고 날카롭지만 통증에 예민하고!
“닥쳐!”
두룩칼이 다시 촉수다발을 휘두르며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사람 키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도약이었고, 그 발가락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쭉쭉 돋아나서 칼날 갈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두룩칼의 가슴에는 깨진 눈알이 가라앉고 새로운 눈알이 튀어나오는 중인데…….
파삭, 파삿!
두룩칼은 형언(形言)할 수 없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갑작스럽게 어깨가 썰려나갔고 가슴이 통째로 뭉개지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사납고 흉포한 힘에 움켜쥐어지며 온몸이 뒤틀리고 젖은 걸레처럼 쥐어짜 내는 상태에 몰린 탓도 아니었다.
두룩칼을 비명 지르게 한 것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노려보는 눈길,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불쑥 치솟아 노려보는 환상 속의 눈길 때문이었다. 더불어 속살을 파고들어 오는 가시 돋친 촉수, 고통을 삼키고 나긋나긋하게 자신을 포식하는 촉수의 환각이 심령(心靈)을 파고들며 새겨넣는 공포가 두룩칼의 비명을 보채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왜 갑작스럽게 문장 속에 품고 있는 몬스터 에센스가 두룩칼을 협박하는가? 답을 찾는 일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순식간에 두룩칼은 본능적으로 답을 얻었다.
‘부적!’
가슴과 어깨, 견고하게 이어놓았던 부적이 사라졌다.
그로 인해 억눌렸던 몬스터의 본성이 튀어나오려 하는 상황, 그 상황이 곧바로 환각과 환상의 구체적인 형태가 되어 두룩칼의 정신에 투영된 것!
한데 이 답은 두룩칼을 한층 더 혼란스럽게 했다.
‘어째서…… 어째서, 어떻게?’
지금까지 두룩칼은 문장의 심상을 엿본 적이 없었다.
강력한 부적을 잔뜩 손에 넣었고, 그에 맞춰 몬스터의 정수를 더 많이 품어왔다.
하지만 두룩칼은 몬스터 로드로서 간신히 중급 수준이었고 문장이 심상을 구체화해서 품는다는 상급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 수준에 대한 정보조차도 막대한 금전을 소모하고 후원자의 권세를 빌려서야 겨우 얻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두룩칼은 실제 같은 환각을 경험하며, 현실과 격리된 듯한 환상의 눈길을 또렷하게 마주 볼 수가 있잖은가! 이에 대해 조금만 더 파고들어 감각을 다듬는다면 자신이 상급 몬스터 로드의 수준에 오를 수 있을까? 당연히 떠오르는 기대가 어린 의문이었지만 두룩칼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파칫, 파삭.
‘또?’
어느 틈엔가 아까와 똑같은 음향이 귀를 찌르고 뇌리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두룩칼은 새로운 환각과 환상을 겪어야 했다.
다시 한번 비명이 두룩칼의 정신을 짓이겼다.
온몸을 난자하는 칼날, 그 칼날을 뿌리치기 위해 근육과 골격이 뒤틀리며 반응하는데 칼날이 한층 더 속살을 헤집고 뼈를 파고드는 고통이었다. 그 고통을 베어내기 위해서 긴 손톱으로 몸을 후벼내고 싶다는 충동, 그리고 실제로 장검이라 할 정도로 길어진 손톱이 환상의 파편을 넘은 현실의 풍경 속에서 두룩칼에게 또렷하게 보였다!
‘샤, 샤벨!’
선명한 깨우침이 돌연히 두룩칼에게 찾아왔다.
몸을 지키기 위해 두른 칼날살갗, 더 빠르고 강한 몸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삼켰던 샤벨투스의 발톱…… 둘이 서로를 거부하며 지우려 하고 있다!
이는 몬스터 로드가 자신이 삼킨 정수를 조합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본능과 형상의 충돌, 두룩칼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증상이었다. 이 증상을 억누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부적인데…….
‘왜! 부족할 리가 없어! 내 부적은……!’
당황한 두룩칼의 뇌리로, 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뇌리를 울리는 듯한 소리가 파고들었다.
“대단한 옷감이네, 부적을 끼우고 형태까지 자유롭게 변환시켜서 몬스터 로드에게 최적화된다니…… 그러면서 샤벨투스의 손톱에도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버틴다니, 얼마나 비싼 옷이야, 대체!”
투란의 목소리였다.
두룩칼의 낯이 일그러졌고 콧등이 뭉개지며 두 눈알이 돌출되고 이마 위가 불룩거리며 부풀었다.
“네놈! 네놈이 내 부적……!”
콰앙!
두룩칼의 외침이 끊어졌고, 변형되고 있던 이마가 함몰되며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투란이 흘리는 비아냥거림이 다시 두룩칼의 뇌리로 선명한 소리로 스며들었다.
“덜떨어진 머저리처럼 얼빠진 소리잖아, 내 부적을 가져갔던 일은 잊었어? 세월이 꽤 흘렀으니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하잖아? 그 정도 상식도 잃어버렸나? 머릿속에 온통 괴물들이 와왁거리니까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서 그래?”
퍼억!
두룩칼은 복부에 들이닥친 강타(强打)에 허리를 접고 말았다.
배 속이 뒤집히며 토할 듯한 울컥거림이 치밀어 오르는데, 그 순간 두룩칼은 정신이 맑아지는 것부터 느꼈다. 돌연 찾아온 깨끗한 사고(思考), 이 순간을 두룩칼은 놓칠 수가 없었으니.
‘무슨 상황이지? 지금 나는…….’
맑아진 정신이 더듬어가는 감각을 통해 빠르게 주변과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 점검의 결과가 두룩칼을 전혀 다른 경악으로 이끌었다.
‘떠 있어?’
두룩칼은 공중에 뜬 채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두룩칼을 붙잡고 허공에 못 박은 듯했다.
가슴이 통째로 일그러지며 아르곤이 해체된 상태였기에 다양한 시각능력으로 파악할 수가 없는 탓에, 일그러진 이마에 의해 반쯤 튀어나와 엉뚱한 곳을 향한 두 눈알이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한 탓에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두룩칼 자신이 공중에 뭔가에 붙잡혀 고정된 채였다.
그리고 앞에서 뭔가를 움켜쥔 듯한 자세로 서 있는 투란…….
엉뚱한 방향을 향한 탓에 기괴하게 나눠진 두 풍경 속에 따로 선 듯한 모습이었지만 두룩칼은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투란의 보이지 않는 손길, 그것이 바로 지금 두룩칼을 잡고 있다는 것.
‘포스? 몬스터 포스?’
두룩칼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활용하는 몬스터를 떠올렸다.
포스 윌더라고도, 오러 윌더와 같은 방식으로도 불리기도 하는 능력자들…… 몬스터 로드가 포스를 활용하는 몬스터 에센스를 얻어 날뛰기도 하는 경우를 두룩칼은 분명하게 기억해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마법의 손처럼, 도구처럼 활용되는 포스.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약점, 약점이 있다고 했어!’
두룩칼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