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0)
카엘이란 이름은 대마도사로부터 유래되었기에 유명했다.
물론 카엘이라 불리는 이들이 모두 대마도사인 것은 아니었고, 유명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대마도사만큼이나 유명한 몬스터 로드도 있었으니, 마법과 관계가 적은 이들…… 몬스터와 더 많은 관계를 지닌 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카엘은 데스나이트의 몬스터 로드였다.
자기 자신을 바탕으로 데스나이트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으로 불러낸 것처럼 별개의 동반자로서 형성시켜 유지한 특이성, 그로 인해 대마도사 카엘이 아닌가 의심받기도 했고 그 업적의 일부는 대마도사의 것인 양 노래 되기도 했다.
* * *
‘이런 유물을 남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투란은 가만히 손에 든 옷감을 살펴봤다.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섞어 말한다.
―몬스터 로드였으니까. 마도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부분부터 널리 퍼지기 힘든 이야기가 돼버린 탓이야. 몇 가지 되지도 않고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얻은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조건은 밝힌 적이 없다만 데스나이트만큼 특이한 상황에서 얻었다는 이야기는 전해져 왔지. 데스로드의 기적(奇蹟)이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거의 잊고 있었다만…….
‘근데 너, 그 순간에 참 잘도 기억해냈다?’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캐묻는 듯이 짚었다.
상대하는 동안에 투란이 불어넣은 오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지켜주는 오러가 작용했기에 두룩칼은 유물 ‘데스로드의 기적’을 발동시키는 키워드를 발휘할 수 있었다. 투란은 갑자기 무슨 헛소리인가 해서 조금 더 정신 차리게 해줘야 하나 싶었는데, 그 몇 마디가 튀어나오는 순간 드라고니아가 치솟은 기억을 생생하게 공유시켜줬다. ‘데스로드의 기적’을 통해서 강제로 몬스터 에센스의 전승이 가능하다고, 상황에 따라서는 문장까지 함께 전이시켜 줄 수 있다고…….
난데없이 엉뚱한 상황이었다.
드라고니아는 평소처럼 빠른 말, 가속된 사고과정과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강제로 기억의 한 부분을 투란에게 투영시켰으니까. 조금 당황해서, 그리고 눈앞의 두룩칼이 저주하듯 외치는 꼴이 우스워 투란은 장난삼아 대꾸도 했었다. 두룩칼에게는 비명처럼 들리도록, 드라고니아에게는 온전하게 ‘아니잇, 뭐 하는 짓이야?’라고 정확하게 전해지도록 대꾸했었다.
때문에 두룩칼은 투란이 멀쩡한 것을 보고 당황했고, 자신을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 집중하지 못했다. 투란이 부여했던 오러로 인한 각성효과보다 그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 채로 혼란에 빠진 셈이었다.
그래서 투란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말에 제대로 반응도 못 하고 ‘데스로드의 기적’을 마무리 짓는 키워드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부적, 투란이 과거를 되새기며 일부러 마지막까지 남겨뒀던 그 부적을 벗겨내는 순간에는 하나 남겨둔 몬스터의 정수마저 견뎌내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방출해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도달한 보이드…… 몬스터 로드의 문장이 텅 비어버린 상태로 두룩칼은 비명조차 잊은 채로 덜덜 떨며 말라가고 있었다. 삶의 정수가 박탈당하고 남은 흔적조차 쇠퇴해가는 몰골로 두룩칼은 죽어가고 있었다.
투란은 그 몰골을 내려다보면서 한 손에 쥔 ‘데스로드의 기적’을 주물럭거렸다.
강대한 귀족, 아마도 대후작이 확실할 것이라 불리는 후원자를 뒀다고는 했지만 드라고니아가 공유해준 기억에 따르면 이 유물은 그 정도 작위나 권세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경우였다.
‘어디서 구했을까?’
의아함을 흘려내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신중하게 답한다.
―왕가(王家)의 보고(寶庫)에서 새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춤추는 산맥에 자리 잡은 여섯 고대왕국은 오랫동안 몬스터와의 전란을 겪는 중이었으니까, 종종 왕가의 보고에 담아뒀던 물자를 풀어내는 경우가 있다. 그 물자 중에는 전설로 남겨진 위인의 유물이 섞이기도 하니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희한한 일도 아니긴 하다만…….
‘몬스터 로드, 데스나이트의 카엘이 남긴 유물까지 왕가에서 갖고 있었다고?’
―갖고 있을 수도 있기는 해. 위협적인 마도구로 추정될 경우,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어떤 면에서는 봉인이라 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감춰두기 좋은 곳이잖냐. 왕가의 보고이니 경비도 확실하고.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왔느냐, 란 말이지?’
―그래, 아무리 대후작의 권세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왕의 보고까지 멋대로 손댈 수는 없다고 들었다. 뭐, 추측이니까 어쩌면 왕의 보고가 아니라 대귀족의 보고 어딘가에 있었을 수도 있기는 하지. 아니, 그런 경우로 봐야 하려나?
‘그편이 납득하기 쉬운 거네?’
―그래, 아니라면…… 정말로 데스로드의 기적이 로그람 왕실의 보고 안에 있었는데 그걸 후작의 권세로 빼돌려서 이런 자에게 넘긴 것이라면…… 투란, 너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을 수도 있다.
‘원래 골치 아픈 일이 맞는 모양이네. 뭐, 그러든 아니든…… 마무리는 확실히 해둬야겠지.’
―마무리? 뭘 하려고?
드라고니아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두룩칼의 상태를 확인하며 갸웃했다.
투란이 부여한 오러의 가드가 없다면 지금 두룩칼은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로 입에 거품 물고 죽어 나갈 뿐이었다. 그러니 딱히 마무리 지을 일 따위는 분명히 없는 듯한데…….
덥석.
몸을 숙인 투란의 손이 두룩칼의 머리를 쥐어당겼다.
누인 채로, 그저 어깨만 살짝 당겨 올려진 몰골을 향해 투란이 입술을 달싹이며 오러를 담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알킨을 찾아갈 거야. 찾아가서 애비 없는 고아 새끼가 되었다고 알려줄 거야. 내 보석도 되찾을 거야. 그걸로 여태 뭘 했든 간에 모두 한밤 모닥불에서 피어난 연기처럼 사라지게 되게 해줄게. 그러면 알킨이 자살이라도 하려나? 어때? 기대되지?”
드라고니아가 할 말을 잃은 듯, 어이없어하는 듯한 낌새를 흘렸다.
죽어가던 두룩칼은 그보다 격렬하고 강하게 반응해왔다.
“안 돼! 내 아들을 건드리지이……!”
퍽, 콰득.
두룩칼의 머리가 바닥을 두들기며 뼈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반쯤 묻혀들어 갔다.
이글거리는 붉은 광채를 머금은 검은 결정이 녹아 흐르며 투란의 주변을 맴돌았다.
결정에서 피어난 불길이 말라가며 신음하는 두룩칼에게 들러붙었다.
곧바로 두룩칼의 몸뚱이는 아직 살아 있는 그대로 태워지기 시작했다. 바삭거리며 살이 숯이 되고, 뼈가 순식간에 노출되며 검어지고…….
“너는! 내 아들을 건드릴 수 없…….”
갑작스러운 괴성과 함께 두룩칼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듯이 두 손을 올려 투란의 목을 부여잡고 조이려 했다. 하지만 그 두 손이 닿은 자리는 오돌토돌한 미세한 가시가 가득한 나무껍질처럼 변해버린 살갗이 되어 있었고, 차가운 투란의 목소리는 둔탁한 나무통을 울리듯이 새나온다.
“함부로 손대면 다친다고 했었지? 몬스터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야. 뭐, 그대로 뒈지는 것보다는 아픔이라도 있는 편이 좋긴 하지? 나는 참 착하다니까. 그럼, 이제 애비 없는 고아 새끼 알킨을 찾아가야 하니까, 여기서 끝내 줄게. 잘 가라고, 아빠.”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투란은 부여했던 오러를 회수했다.
고통스럽게 움츠리던 두룩칼의 두 손이 떨궈졌다. 곧이어 두룩칼은 몸부림조차 멈추고 늘어졌다.
화르륵.
검은 결정에서 맴돌아 나온 뜨거운 불꽃이 두룩칼을 삼켜버렸다.
재가 흩날렸다.
툭툭 터는 시늉과 함께 일어선 투란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짜증이 차오르며 불만이 가득한 낯빛…….
―왜 그러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조심스럽게, 담담한 말투를 꾸며 물었다.
‘개운하지 않아! 짜증만 나! 좀 더 괴롭힐 방법을 찾았어야 했나? 그런가?’
투란의 대답은 느끼는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지난날의 기억, 그로부터 치밀어 오른 울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는!
―이미 죽었다, 재로 만들어 흩어버리기까지 했잖아. 진정해라.
드라고니아도 곧바로 찔러 말하고 있었다.
‘알아! 아는데!’
벅벅, 투란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아직 형상을 유지한 나뭇결 살갗이 미세한 가시로 긁적이는 손가락을 갉아내려는 듯이 들러붙었다. ‘악마의 심장’이 자리 잡은 투란의 손가락은 그런 가시 돋은 살갗 또한 자신의 일부란 듯이 다루며 밀어내버렸다.
문득 손가락을 눈가로 가져온 투란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린 시절, 투란이 어쩌다가 가까이에 있다가 두룩칼의 살에 닿으면 맨살이 벗겨지면서 핏방울이 맺히고는 했었다. 그리 대단한 몬스터도 아니었고, 악마의 심장보다는 그래도 좋다는 식물형 몬스터…….
‘뭐였지?’
눈섭사이를 좁혀 주름진 눈매로 투란은 갸웃했다.
―뭐가?
‘몬스터 이름, 이 목덜미에 돋은 것 말이야.’
―쏜호그, 돼지껍질장미나무잖아.
‘아, 그래. 그 괴상한 이름!’
기억을 되새기며 투란은 한숨을 쉬고 목덜미의 형상을 해제했다.
투덜거림이 곧바로 투란의 입가에서 소리로 새나온다.
“돼지껍질 몬스터 로드라고 놀림받고 나면 꼭 못되게 굴었지. 장미나무 몬스터라고 떠들면서…… 아, 더 짜증 나네!”
―추억은 나중에 되새기고, 일단 이 광장부터 정리해라. 방치한 채로 언제까지 마그마 로드를 날뛰게 할 참이냐?
드라고니아가 냉정한 말투로 보채며 핀잔했다.
투란의 눈길이 주변을 훑었다.
가까운 곳에서 멀리까지, 사방을 둘러보니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잠깐 짜증 내는 사이에 분산된 마그마 로드의 형상은 마음껏 그 본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불길을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이 지하실, 광장을 이루고 있는 벽과 바닥, 천장의 재질을 핥아대는 모양이라니…….
곧바로 투란은 의지를 담은 고유마력을 뻗어냈다.
그물처럼 엮인 시커먼 잉크의 파문이 피어났다.
불길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그물이 되감기듯이 투란의 발아래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옅어진 검은 결정은 금방 희미한 얼룩처럼 변하며 투란의 발아래로 뭉쳐 그림자를 이루는 듯하다가 사라졌다.
그을린 벽, 살짝 녹은 듯한 천장과 바닥 사이로 두룩칼이 남긴 파손(破損)의 흔적이 가장 또렷하게 보였다.
‘음, 알킨을 찾아서 좀 패면 괜찮아지겠지?’
불쑥 떠올린 생각이 투란의 입꼬리를 휘게 했다.
―응? 뭔 말이냐, 그게?
드라고니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묻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내 거란 거 알면서도 안 주고 버텼으니까, 몇 년…… 아니, 몇 십 년 자기 것인 양 까불며 지냈다니까 좀 맞아도 납득할 거야.’
앞뒤없이 키득거리는 채로 투란은 소리없는 속삭임을 흘렸다.
―정신 차려라, 넋 나간 놈처럼…….
한숨을 담아 드라고니아가 말하는데.
‘아, 문이 들어온 철문 하나야? 느낌이 어딘가 다른 쪽으로도 새나갈 수 있는 것 같은데? 문이 여럿이지?’
투란은 두리번거리면서 재빠르게 말을 돌리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더 따지기 싫다는 듯이 재빨리 프로브를 몇 기 더 형성해서 뿌리고는 답한다.
―통로가 여럿이다. 들어온 별장 말고도 말이지…… 음, 그런데 옆방도 있을 줄은 몰랐다만…… 아무래도 마그마 로드가 긁어대면서 여길 지키는 마법장벽이 꽤 손상된 모양이야.
‘옆방?’
투란은 간지럽다는 듯이 왼편 어깨를 긁적거리는 채로 드라고니아가 짚어주는 방향을 바라봤다.
겉보기에는 그을리다가 녹아내린 듯한 벽일 뿐이었다.
―방이란 것은 느껴지지? 아, 그보다…… 그 유물을 언제까지 손에 들고 휘두를 참이냐? 일단 좀 치워. 제대로 다루는 방법은 나도 모른다고 했잖아.
‘어? 아…….’
투란은 어느새 오른팔에 휘감고 있는 ‘데스로드의 기적’을 바라봤다.
어째서인가, 무엇 때문인가 보자기에 달랑 보석이 박힌 듯한 유물이 낯익었다.
마치 오랫동안 몸에 걸치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상황에 따라서는 허리에 두르거나 어깨에 둘러도 상관없는 것을 팔뚝에 대강 감아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 기분도 마법의 효과려나?’
갸웃하다가 투란은 문득 한 가지 의아함을 깨달았다.
데스나이트의 카엘에 얽힌 이야기 중에 부적이랑 관련된 것은 없지 않았던가?
데스나이트를 부리면서 마도구도 멀쩡하게, 비교적 멀쩡하게 잘 다룬다는 것이 몬스터 로드 카엘의 전설 중 한 가지 아니던가?
만약 부적을 이용하는 몬스터 로드의 비전이 카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카엘의 전설 속에는 반드시 한자리 차지해야 할 듯한데…….
―마도구야, 카엘은 부적이 아니라 마도구를 꽂고 사용했다. 그보다 저 방에는 꼭 들러봐야 할 것 같다, 투란.
‘응? 왜?’
―몬스터의 잔유물이 가득한 것 같거든.
‘뭐?’
투란은 흠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