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5)
의문은 깊이 투란의 마음속을 향해 번져 갔다.
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차분하게 피어올랐다.
먼저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이 또렷하게 투란의 마음을 울렸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지금 따질 일이 아니지! 어쨌든, 드레이크와 융합한 상태라 해도 너는 너다, 투란! 드레이크의 감정에 휘둘려서 날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을 떠올리라고! 드레이크를 이대로 날아오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포톤 거스트를 이따위로 변형시킬 수 있는 놈을 여기서 벗어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아…… 그러네.’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
이 드레이크가, 방금 저 말로 하기 힘든 파괴의 재앙을 일으킨 놈이 여기서 벗어난다면, 산이 무너질 것이고 강이 뒤틀릴 것이며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성벽 따위는 반짝거리는 재가 되어 사라질 터. 거기에 휩쓸려 죽거나 다치는 사람 혹은 짐승의 처지는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어? 이 녀석, 또 뭘 하려고?’
투란은 드레이크가 거칠게 숨을 들이쉬며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드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감지되는 사방의 기척…….
눈깔꽃은 전멸하지 않았다.
늪 깊은 곳에서, 늪의 껍질을 쓸어 내듯이 휩쓸고 사라진 섬광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또 한 무리가 있었다. 처음 늪 위를 잔뜩 메울 듯이 와글거리던 만큼은 아니지만, 뭔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를 알아차린 듯이 눈을 크게 뜬 꽃봉오리들이었다. 여차하면 바로 눈알을 터뜨려서 섬광을 뿜을 기세로, 녀석들은 이곳저곳에서 듬성듬성 조금씩 뭉치고 있었다. 작은 섬을 제대로 포위하려는 낌새였다.
‘쏘겠군.’
투란은 확신했다.
애초에 저놈들이 여기에 온 까닭이 저러다가 뭉쳐 쏘는 것이니까.
이제 와서 달라질 까닭이 있을까?
짧은 생각은 곧 드레이크가 기묘하게 목을 뒤틀며 흔들거리는 짓이 뭔가 알아차리는 열쇠가 되었다. 저 눈깔꽃 무리에 대한 대항, 드레이크는 사방을 메웠을 때랑은 다르지만 여전히 녀석들이 뿜어낼 파멸의 섬광은 문제가 된다는 듯한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뭘 어쩌려고……?’
투란이 의아해하는 순간, 드레이크의 입이 열리고 빛의 고리가 톡톡 튀어나왔다.
큰 고리, 작은 고리 들이 하늘을 향해 부유하는 거품처럼 둥실거리며 울퉁불퉁한 기둥이라도 세울 듯이 나란히 공중에 자리 잡았다. 그 구조는 아까와는 많이 다른, 전혀 색다른 형상의 빛을 자아낼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무슨……?’
콰아아아아!
드레이크가 입술을 뒤틀며 입을 묘하게 꾸미며 열었고, 저편에서는 꽃봉오리 무리가 일제히 눈알을 터뜨리면서 섬광을 뿜어냈다. 서로 짜 맞춘 것처럼, 서로 뭘 하는지 한번 해 보자고 겨루는 것처럼 어울리는 한순간이었다.
드레이크의 위편에 둥실거리던 고리가 확산되며 둥근 장막이 되어 사방을 억눌렀다. 고리의 숫자만큼, 빛의 장막이 겹겹이 쳐진 채로 드레이크와 그 주변을 휘감으며 서서히 작은 섬을 완전히 덮어 가려는 듯이 둥글게 확산되고 있었다.
거기에 눈깔꽃이 중첩시켜 뿜어낸 섬광의 줄기가 들이꽂혔다.
—포톤 배리어!
놀란 드라고니아의 감상 속에는 여전히 당혹스러워하는 낌새가 배어 있었다. 설마 드레이크가 이런 짓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혹은 이런 빛의 장막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경악한 듯했다.
투란에게는 드라고니아의 기분보다 두 가지 다른 성향의 빛이 맞닥뜨리며 벌이는 광경이 더 흥미로웠다. 드레이크의 시각, 악마의 심장이 맹렬하게 발휘하는 지각 능력이 뒤섞이면서 빛이 엉키고 어울리며 꾸며 내는 군무!
둥글게 펼쳐져 내려앉은 빛이 장막 속으로 굵고 강하게 찍어 들어온 섬광은 가늘게 흩어지며 장막 속을 헤매는 가늘고 긴 빛의 가닥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다시 장막 밖으로 쏟아져 나가기도 했다.
파파, 파파팟!
빛의 폭우가 작은 섬의 주변을 휩쓸었다.
작은 섬은 둥글게 세워진 빛의 장벽에 휘감긴 채로, 장벽이 뿜어내는 폭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빛의 장막 밖에 노출된 작은 섬의 일부는 폭우 속에서 파이며 망가졌다.
이미 터져 버린 늪의 꽃봉오리 무리, 그 잔해 위로도 빛의 폭우가 휩쓸며 지나갔다. 꽃잎과 남은 줄기가 가는 빛줄기에 맞아 관통되고, 늪에는 자잘한 빛줄기가 남기는 파문이 가득 채워지는 듯 보였다.
‘아니, 이럴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냥 이래도 되는 거였잖아!’
투란은 볼멘소리를 내듯 생각했다.
어차피 눈깔꽃은 섬광을 뿜어내면 터진다.
그걸 굳이 먼저 후려칠 필요도 없고, 이렇게 빛의 장막을 두르기만 해도 되잖은가!
크륵, 크르르.
드레이크의 낮은 울림이 흘렀다.
그 의미가 선명하게 투란에게 느껴졌다.
빛을 세공해서 원하는 결과를 낳는 것, 생각보다 어려웠고 처음의 공격적인 세공을 터득한 다음에야 이런 장막을 세공할 수 있었다는, 드레이크 나름대로의 반론이었다.
‘흠? 그렇다면…… 이제 할 만한 짓은 다 했나?’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바로 생각하는 투란에게 돌아왔다.
드레이크의 심장이 거세게 뛰고, 숨결은 거칠었다.
드레이크는 새끼를 노리는 어떤 것도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저 눈깔꽃을 지속적으로 이쪽으로 보내서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가 찾아내서 박살 내려는 것이다.
‘새끼는 죽었어.’
새끼를 죽인 놈도 그냥 두지 않는다!
‘고르고니아도 이미 삼켰잖아.’
주춤거리는 낌새가 흘러나왔다.
투란은 조금 더 시큰둥하게, 조금 더 냉정하게 드레이크를 향해 속삭이듯이 생각했다.
‘이제 돌아와, 몬스터 로드. 몬스터를 벗어 버리고 자신의 모습를 찾아야 할 때라고. 폭동을 멈춰. 이렇게 주변을 파괴하는 것이 네가 몬스터 로드인 목적이 아니잖아.’
크르르르르르.
드레이크가 앞발로 땅을 후벼 팠다.
땅거죽이 파인 옆에는 작은 새끼 드레이크가 놓여 있었다, 죽은 채로.
콰아앗!
드레이크가 포효했다.
그 안에 담긴 강렬한 의미가 바로 투란의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고르고니아에게 복수하겠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없어! 없다고! 네 새끼를 그 꼴로 만들고 널 여기 엎어져 있게 한 고르고니아는 이제 없다고! 그리고 넌…… 나는, 우리는 몬스터 로드 투란이라고! 드레이크가 아냐!’
빠득, 우득.
드레이크가 이를 악다무는 듯한 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투란의 말에 대꾸할 방법이 없지만 어떻게든 거부하고 싶다는 듯이!
투란은 이제 보다 강하게 드레이크를 설득할 준비를 하는데, 드라고니아의 잔잔하고 아늑한 말을 먼저 들어야 했다. 멀리서 그러나 너무 선명해서 뿌리칠 수가 없는 수다 같은 이야기였다.
—병렬 구조로 독립된 자아의식이라니! 어떻게 이런 짓을 하지? 젠장, 이러니까 정신 공유를 당했어도 본래의 자신으로 독립된 사고가 가능했군! 그렇다면 이걸 이용해! 자신을 일깨워! 하지만 절대로 드레이크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마! 네가 또 다른 의식을 드레이크로 여기는 만큼, 저 쪽은 진짜 드레이크로서 느끼고 생각할 테니까!
‘하고 있잖아.’
조금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투란은 다시 드레이크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 몬스터 로드를 향해 말을 걸었다.
고르고니아를 이미 사냥했고, 삼켰으며 새끼 드레이크는 죽어서 반쯤 썩은 상태이고, 눈깔꽃은 이미 정리할 만큼 정리했으니 이제 그만 온전한 몬스터 로드, 투란의 형상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이 길고 긴 생각이 짧게 전달되는 순간, 드레이크의 웅장하고 강한 음성이 기괴한 웃음을 덧칠한 채로 반박했다. 마치 드레이크가 사람의 말을 배운 듯이!
“아직 남아 있다. 둘이나 더…….”
‘뭐?’
“고르고니아는 모두 셋…… 잡은 것은 겨우 한 마리…… 눈깔꽃을 뿌리는 놈도 아직 남아 있지. 전부 죽인다. 전부 파괴하고, 말살하고…… 멸망시키겠어!”
‘뭐!’
투란이 놀라서 잠시 생각이 멎은 사이, 드레이크는 굵고 큰 앞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새끼 드레이크의 주변에 흙담을 만들어 갔다. 새끼 드레이크를 매장하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는데, 끝내 완전히 흙을 덮지는 못했다.
콰아아아!
아무것도 뿜어내지 않은 순수한 포효가 울려 나왔다.
새끼를 잃은 드레이크의 분노가 가득 담긴 포효였다.
이 순간을 노린 것들이 바로 움직였다.
입이 열리고 드레이크가 잠깐 그 빛의 바람결을 토해 내기 곤란한 찰나를 노린 채로 작은 섬의 한쪽에 바싹 붙은 늪 속에서 꽃송이들이 튀어 올랐다.
악마의 심장이 냉정하게 그 수를 세었고, 어떻게 저것들이 저리 가까이 다가왔는가를 파악했다.
‘열 두 송이…… 멀리 있던 것들인데, 저 주변의 경계선을 드레이크가 다 날려 주는 통에 다가왔다. 뿌리가 힘이 세서 꽤 빠르게 다가온 모양이군! 이미 터지고 있다!’
강한 경계심이 투란의 정신에 스며들었다.
드레이크가 앞발을 세게 디디며, 날개로 벽을 치듯이 한쪽을 막았다. 이는 이미 죽은 새끼를 품 안에 담고 감싸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첩되어 날아오는 파멸의 섬광에 그대로 자신을 노출시키는 짓이기도 했다.
‘어쩌려고!’
투란의 놀란 외침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맞받아치든가 장막을 칠 틈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이렇게 한쪽으로 튀어 움직일 힘이라면 섬광의 궤도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데! 살짝 꼬리만 긁히거나 하는 정도로 피할 수 있는데, 이게 뭔 짓인가!
더 따질 겨를도 없이, 작은 섬에 반쯤 올라선 눈깔꽃 열 두 송이에게서 일제히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제멋대로 터진 열두 가닥의 빛은 겹쳐지고, 확산되며 꼬여드는 것처럼 땅거죽을 파내면서 드레이크의 몸통을 덮쳤다.
크륵!
겨우 포효하던 입을 꽉 다물면서 드레이크가 몸에 힘을 줬다.
‘아니, 이게 무슨……!’
투란이 놀라는 순간, 섬광에 맞닿은 드레이크의 몸 주변에 희미한 꺼풀이 일렁이며 나타났다. 악마의 심장이 그 새로운 드레이크의 껍질을 바로 통찰했다.
—파동 장벽이다.
이제는 그냥 포기했다는 듯, 드라고니아의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게 무슨 뜻인가 알기 전에, 섬광에서 배어 나오는 압력이 드레이크의 몸을 밀어붙였고 땅거죽을 움켜쥔 드레이크가 버티기 위해 괴력을 발휘하는 광경이 먼저 투란을 놀라게 했다.
‘에? 안 뚫려?’
몸에 비해 얇은 드레이크의 날개는 멀쩡했다.
비늘 가죽 또한 멀쩡했다.
‘야, 산도 뚫는다며?’
그래서 드레이크도 상당히 경계하며 이런저런 짓을 한 거 아닌가!
한데 직접 두들겨 맞았는데도, 파멸의 섬광은 드레이크를 살짝 밀어 흔들기만 했을 뿐이다.
—물질 구성의 간극을 좁히면서 일으키는 파동을 이용해 외피를 두른 것처럼 장벽을 둘러쳤다고! 이건 원래 죽도록 처맞고 살아남은 드레이크가 본능적으로 익히는 방어 능력이다. 이 자식…… 여기서 새끼를 기울 정도인 꼴을 고려하면 당연히 갖추고 있는 능력이기는 하군.
‘그런데 왜 포톤…… 어쩌고 하는 걸 써 댔대?’
투란은 의문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크르륵!
“죽여 버리겠다! 파괴하겠어! 멸망시키겠어! 저놈의 눈깔들!”
조금 날개가 저릿하다는 듯이 접었다 폈다 하며 거칠게 몸을 두드리는 시늉 속에서 드레이크가 거센 음향을 토해 내고 있었다.
—아픈가 보군. 고통을 느낀다면…… 그, 무더기로 깔린 눈깔들이 쏟아 낸 것을 전부 처맞고 무사할 수는 없었겠지.
드라고니아가 나름대로 드레이크의 입장을 정리한 듯이 중얼거렸다.
‘음, 그런가.’
어딘가 투란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한 대 맞고 견딜 수 있다고, 계속해서 맞으면 새끼손가락 굵기의 나뭇가지에도 맞아 죽는 수가 있다잖던가! 하물며 성벽도 꿰뚫는 섬광을 연이어 처맞는 건…….
파팡, 펄럭!
드레이크의 날갯짓이 좀 더 세찬 소리를 냈다.
주변의 바람이 날개 아래에 휩쓸려 들어왔고, 드레이크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맹렬하게 번뜩이는 시퍼런 눈빛을 뿌리면서, 드레이크는 눈깔꽃이 몰려 내려온 방향을 노려봤고 그쪽을 향해 바로 세찬 날갯짓을 하며 쏘아지려…….
쿵!
크륵!
누가 다리 걸어서 앞으로 엎어진 사람처럼, 드레이크도 땅바닥에 가슴과 앞발, 긴 목과 턱을 꽂으면서 엎어졌다. 끔벅거리는 드레이크의 눈에 반쯤 파묻은 새끼 드레이크가 놓인 광경이 바로 들어왔다.
스윽, 드레이크가 긴 목을 들고 홱 뒤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뒷다리, 꼬리는 물론이고 몸의 절반가량을 착실하게 안팎으로 감고 있는 굵은 줄기가 단단하게 땅에 뿌리내린 듯이 보였다. 드레이크의 체격에 걸맞은, 굵고 억센 덩굴줄기였다.
‘못 가. 드레이크인 채로 여길 벗어날 생각은 하지 마. 우리…… 나는 몬스터 로드로서 이곳을 떠난다. 드레이크가 아니야.’
담담하지만 차가운 투란의 생각이 강하게 드레이크의 뒷골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