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1)
Chapter 229. 인과의 율법 Ⅱ
푸줏간.
투란이 처음 느낀 바는 그랬다.
다른 생각이 찾아올 겨를이 없이 가장 먼저 떠오른 풍경, 부숴버린 벽 너머에 감춰졌던 상황이 끌어낸 바였다.
천장에 매달아 늘어뜨린 고깃덩이처럼 보이는 몬스터의 시체, 독성(毒性)이 가득한 체액이 피처럼 떨어져 내리고 가시처럼 돋아난 털이 금속세공품처럼 느껴지는 모양…… 그 첫 번째 것을 뒤로하고 투명한 유리로 관을 짜고 그 안에 녹색과 적색이 섞이지 않는 액체와 함께 담긴 또 다른 괴물의 잔해도 있었다. 나란히 눕혀진 유리관의 숫자가 하나둘이 아닌 채로, 새로 열린 밀실의 광대함을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병영(兵營)의 침상처럼 늘어져 있다.
살짝 놀라서 벽 너머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기가 어렵다고 느껴지는데.
―보존액이다. 연금술사가 몬스터를 가공할 때 꽤 쓴다만…… 이렇게 대량으로 모아둔 광경은 나도 처음 보는군.
드라고니아는 이 괴이한 풍경을 감상하며 살짝 감탄하는 낌새를 보였다.
물론 투란도 감탄하기는 했다, 기분 나쁜 쪽으로.
‘몬스터를 뭘로 보기에 이따위 짓을 한 거지?’
몬스터 헌터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부산물을 거래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모양으로 한곳에 모아두고 보존하며 방치하는 짓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해체하고 짓이겨서 몬스터의 특성이 해악을 끼치지 않는 수준까지 파괴한 다음의 부산물, 때문에 잔유물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형태로 거래를 한다. 이렇게 원형이 거의 드러나도록 유지하는 짓은…….
―몬스터 로드에게는 이편이 낫잖냐? 여길 이용하던 자가 몬스터 로드이니까 이런 몰골을 필요로 한 것이겠지.
드라고니아가 슬쩍 되새겨주듯 말했다.
‘어, 뭐…….’
투란도 순순히 인정했다.
이곳은 두룩칼을 위한 곳이었다.
몬스터 로드인 두룩칼이 가능한 온전한 형태로 몬스터의 정수를 얻게 하려고 꾸민 저장고, 딱 푸줏간의 풍경을 몬스터를 소재 삼아 재현해놓은 것일 뿐이다.
마음으로 되뇌며 인정하고 나니, 문득 가슴이 퍽퍽하다는 느낌이 투란을 찾아왔다. 이런 저장고, 몬스터의 푸줏간을 소유한 채로 두룩칼이 삼켰던 정수(精髓)가 투란의 문장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혀 길들여지지 않았잖아!’
퍼뜩,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은 깨달았다.
부적으로 그 본성을 억눌린 채였던 몬스터 에센스, 투란에게 강제로 이식해서 폭동을 유도하려던 두룩칼의 시도를 통해 ‘천칭’으로 옮겨진 몬스터의 정수가 하나씩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열겠다는 듯이 형상을 드러내며 날뛸 낌새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냥 뒤섞였던 형체를 풀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문장의 풍경을 관찰하며 조금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 냉소적인 말투를 투란도 금방 납득했다.
‘천칭’의 풍경 속에서 풀려나와 본래 형상을 드러내자마자 모조리 광대한 공허(空虛)의 파편에 휘감기며 얼어붙어 투란의 심판을 기다리는 꼴이 된 탓이었다. 미쳐 날뛰며 광란과 폭동을 주도해야 할 몬스터의 본성이 얇은 공허의 장막을 넘지 못하고, 더욱 거대한 공허의 풍경 앞에 굴복해버리는 상황인 것이다.
‘따로 좀 모아둬야 하나? 음…….’
투란은 거대한 ‘천칭’의 중심, 기둥을 느끼며 생각했다.
두룩칼을 속이고 뜯어내다시피 한 몬스터의 정수를 모아둘 형태는 어떤 것이 좋을까? 톱니가 가득 채워지고 뭉친 기둥을 따라 층을 이룬 문장의 풍경이 곧바로 이런 투란에게 응답했다.
드라고니아 또한 그 응답, 변화를 느낀 듯이 말한다.
―유니콘홀드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알기 쉽겠다만…… 뭐, 독자적인 층을 꾸미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아직 치워야 할 것이 가득하기도 하니 말이다.
‘어? 치울 것이라니?’
―여길 그냥 두고 갈 거 아니잖아? 다 불 지르고 재를 만들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꽤 희귀한 풍경이기도 하지만 연금술 소재로 재활용 가능한 것도 가득이라고. 가져갈 수 있는데 두고 갈 거냐?
‘그냥 갖고 가고 싶다고 해라.’
징징거리며 길게 늘어지려는 말투를 느끼면서 투란이 한숨 쉬듯 말했다.
드라고니아가 이에 조금 불퉁한 낌새를 들이댔지만 투란도 이미 느끼는 바가 있었다. 어떤 몬스터인가, 어떻게 여기까지 옮겨져 있는가, 연금술이 어떻게 몬스터의 원형을 저리 보존하고 있는가, 과연 저 상태로 안전한가…… 온갖 궁금증 속에서 내려지는 결론은 한 가지로 귀착되고 있었다.
‘가져가서 두고 보면 알 수는 있는 거지?’
―두고 봐도 모르겠지. 연금술 공방을 만들고 연구하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는 거잖아. 하지만 굳이 네가 공방을 차릴 필요가 있냐? 홀시딘이나 케이라라면 상아탑의 인적자원을 적절히 배분해서 한껏 연구해줄 거야. 그 결과만 얻어내면 되잖아. 뭐, 마법사의 연구성과를 그리 쉽게 얻어내지는 못하겠다만…….
‘야, 이상한 점에 집착하는 거 아냐? 연구를 하고 싶다가 아니라 연구성과를 훔치자니!’
―훔치긴, 그냥 지켜볼 뿐이다.
투란은 당당한 드라고니아의 대답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괴상한 저장고의 물품을 빼돌리고 홀시딘이나 케이라에게 건널 때, 드라고니아가 프로브라든가 옵저버라든가, 뭔가 마법의 감시물을 붙여놓을 수 있다는 것!
‘들키진 마라.’
간단히 말을 맺으면서 투란은 천천히 부서진 벽을 넘어갔다.
마그마 로드의 힘에 의해 약화된 마법의 장벽이 흐느적거리듯이 투란을 휘감았다.
딱히 밀어내거나 조이는 느낌보다는 그저 경계만을 지키는 마법이었고, 그 경계를 넘는 순간부터 살갗에 와닿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투란은 깨달았다. 마치 몬스터가 가득한 밀실, 몬스터의 특성과 위력이 가득 채워져 있는 듯한 푸줏간의 피내음…….
벽을 부수고 우두커니 선 채로 볼 때와는 또 다르잖나.
‘빨리 정리해야겠다, 보기 언짢네.’
다짐하는 순간, 투란의 몸에서 검은 잉크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잉크는 그물질하듯이 실내를 채우고 번져나갔다.
그물을 조종하듯이 내민 투란의 손가락에서 검은 사자의 머리가 피어올랐다. 쥴의 반지가 사자의 이마빡을 장식하며 번뜩였다. 곧바로 유리관이 요동쳤고 담겨 있던 액체가 소용돌이치며 회오리바람처럼 치솟아 검은 사자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리관에 담겨 있던 몬스터의 시체가 꿈틀거리는 듯하다가 투명하게 으스러지며 사라져 갔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부터 저쪽 끝자락까지 닿는 변화 속에서 투란은 바로 앞을 가로막으며 천장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것을 움켜쥐고 있었다. 유리관이 즐비한 앞을 장식하듯 천장에 매달린 것들이 하나씩 투명하게 으스러지며 유리관이 티끌로 변한 듯이 사라져갔다.
곧 저장고는 푸줏간에서 텅 빈 채로 넓기만 한 지하밀실이 될 듯했다.
―이상한 것이 있는데?
갑작스럽게, 조금 언짢아진 말투였다.
‘왜?’
너무 갑작스러워서 투란이 드라고니아가 뭔가에 불만이 생겼나 싶었다.
―이 층의 아래에 뭔가 있다. 밖의 마법방호랑 질이 달라. 저쪽으로, 뚜껑문처럼 생긴 것이 감춰져 있어. 이중장벽이라 외부에서는 탐지도, 간섭도 안 되는 형태다만…… 꽤 불길한 느낌이야.
드라고니아의 말은 어딘가 투덜거림에 가까웠다.
투란은 그 감춰진 뚜껑문을 드러내면서, 바닥을 한 겹 모조리 벗겨낸 다음에야 그 말에 담긴 불길하다는 의미를 확연하게 알아차렸다.
‘흑마법?’
―그런 듯하다, 이 정도로 냄새 풍긴다면 아주 질 나쁜 흑마법이겠지.
한층 더 심해진 듯한 투덜거림에 가까운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매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프로브로 못 찾아서 삐졌어?’
투란은 짓궂게 물었다.
―삐지긴 뭘 삐져! 냄새부터 좋지 않잖아!
움찔하다가 으르렁거리는 대꾸였다.
그런 드라고니아를 향해 웃는 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투란도 바닥에 박혀 있는 둥글둥글한 뚜껑 모양의 철문이 좋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짙은 비탄(悲嘆), 절규(絶叫) 따위가 무늬 없는 쇳덩이 속에서 배어나오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당겨 문을 열려 하는데, 철문이 둥글게 통째로 뽑혀 나왔다!
“엥?”
―문이 아니네?
드라고니아가 살짝 얼빠진 말투로 중얼거렸다.
때문에 투란도 얼빠진 말투로 보태야 했다.
“얜 뭐야?”
뽑아 올리고 보니, 지름이 이 미터이고 높이가 가뿐히 삼 미터는 닿을 듯한 거대한 원통형 관이었다. 위아래를 제외한 사방이 칙칙하고 흐릿한 유리벽 모양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괴이한 몰골은 정상적인 상태와 거리가 먼 짐승이었다.
―마수……? 부분마다 따로 놓고 보면 마수이다만…… 몬스터로 느껴지나?
‘어? 어. 이 녀석 중심에서 분명히 몬스터의 핵이 느껴지는데? 몬스터가 마수를 잘라서 자기 몸에 붙였나?’
갸웃하며 투란은 흐릿한 안개 같은 유리벽에 눈을 대고 그 안을 보다 자세히 살펴봤다. 혹시나 잘못 봤나 했지만, 역시 처음 본 그대로였다.
네발짐승의 앞다리가 어깨에 팔 대신에 붙어 있고, 목덜미 뒤로는 덜렁거리는 머리통이 서넛 더 매달려서 등 쪽으로 늘어진 채였다. 그 등짝에서 축 늘어진 가죽의 날개가 뻗어나와 있는데, 엉덩이 쪽에 멋대로 솟아난 꼬리 몇가닥을 덮은 채라 그냥 꼬리라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가슴과 배 언저리로 솟은 돌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조각…… 엉망진창인 상반신과 달리 하반신은 굵직한 허벅지를 자랑하는 두 다리와 잔나비의 발가락이 주먹을 쥔 듯한 모양임에도 마디 사이로 발톱을 두툼하게 뿜어낸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뭔가 이것저것 섞어서 꿰매놓은 부분도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 원통 안의 괴수, 괴물은 누군가가 몬스터의 조각, 마수의 조각을 억지로 끼워 붙였나 싶을 지경.
―생명변이를 이용한 융합인가…… 이거, 흑마법의 결과물이다. 어, 잠깐. 그렇다면 이 창고는 두룩칼을 위한 것이지만 운영하는 놈은…….
터엉!
뭔가가 강철 뚜껑 위로 떨어져 내렸다.
말을 멈춘 드라고니아가 재빠르게 프로브를 움직였고, 그 풍경을 비춰냈다.
‘넝마?’
투란은 그 떨어진 것을 보이는 그대로 말했다.
소리도 내지 않은 말이었는데 듣고 분노라도 한 듯이 넝마 한쪽이 꿈틀거리며 손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쪽의 넝마는 우물거리는 입모양이 되더니.
“블랙볼.”
주문을 외우고 있잖은가!
―투란! 닿으면……!
드라고니아가 외치는 사이, 투란은 바닥에 흐트러진 검은 잉크를 결정화시켜 끌어올렸다. 벽을 치는 듯했지만 검은 결정은 몬스터 로드의 마력을 듬뿍 머금은 거대한 손이 되어 날아드는 시커먼 공을 받아내려 했다.
―소멸 마법이야! 닿지 말라고!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겨우 맺어졌다.
하지만 시커멓고 커다란 손은 그냥 검은 공을 꽉 움켜쥐어버릴 뿐이었다.
푸식, 뭔가 새는 소리가 커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새는 바람과 함께 흘러나왔다.
넝마가 꿈틀거리며 안구(眼球)의 형태로, 머리와 입이 온전히 갖춰진 인간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덩달아 내밀었던 손이 조금 더 굵직하고 섬세한 모양을 갖추며 손가락 사이마다 검은 구체(球體)가 생성되고 있었다.
“블랙볼, 썬더.”
주문이 조금 바뀌었다.
그저 시커멓던 공이 검은 번개줄기를 휘감은 채로 다시 날아들었다.
투란이 그 꼴을 보고 피식 웃음과 함께 주먹을 쥐고 원통의 유리벽을 두드리며 말한다.
“자기소개도 없이 마구잡이로 일단 죽이고 보자는 거야?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을게. 블랙핸드.”
―뭐?
넝마로 이뤄진 인간에게 전염이라도 된 듯, 무슨 주문이라도 외우는 듯한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한 낌새를 흘렸다.
그리고 날아든 번개줄기의 검은 구체에 맞서 투란을 보호하는 방패처럼 검은 결정의 손아귀가 쭉쭉 돋아났다. 크고 작은 형태로 저마다 구체 하나씩을 움켜쥐어 가니, 푸식거리는 소리와 함께 번개 모양의 줄기 따위가 있든 없든 아까와 똑같은 결과만 재현될 뿐이었다.
―셰이야의 마력장벽?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투란은 살짝 납득한 듯한 드라고니아를 향해 으스대며 말했다.
촘촘하게 엮인 고유마력의 장벽은 넝마가 쏟아내는 흑마법의 구체에 간섭했고, 그 소멸의 마법이 온전히 발휘되기 전에 마력을 흩어내 버린 것이다.
이 현상은 넝마의 인간에게 표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인형의 구겨진 얼굴을 드러내며 텁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두룩칼, 이 멍청이는 어디 있지? 죽였나?”
“참 빨리도 묻네. 그래서 자기소개는 언제 하시려고?”
투란이 키득거리며 놀리는 말투로 물었다.
텁텁한 목소리가 다시 넝마의 입 모양에서 토해져 나온다.
“죽였군. 아깝게시리…… 넌 꽤 강한 모양이구나. 실험체로는 못 쓰겠어…… 아쉽지만, 죽어라.”
말과 함께 넝마의 손이 갈라지며 손 모양이 일곱 나타났다.
그리고 새로운 주문이 곧바로 터져 나왔다.
“세븐 폴.”
“나인 가드.”
투란의 어깨 한쪽이 부풀며 굵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다른 주문을 읊고 있었다.
투란은 어리둥절한 채로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