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2)
어둠과 빛이 격돌하며 풍경을 일그러뜨리고 덧씌웠다.
소리나 감각조차 뒤흔들고 비틀어버린 탓에 그저 혼란스러운 빛과 어둠이 온갖 명도와 채도로 섞이며 군무(群舞)를 드러내는 정령 혹은 요정의 장난질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 한복판에서, 격돌하는 빛과 어둠의 중심이 된 채로 투란은 몸에 두른 마력장벽에 집중하며 넋두리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위험한 흑마법……이겠지? 나인 가드는 최종방호랬잖아. 그걸 써야 할 만큼 위험한 흑마법인 거지? 바쁘냐? 대답 안 해? 뭐, 바빠 보이기는 하네. 하나씩 계속 조율해야 한다니까 당연히 바쁘겠지. 그래서 언제 끝나냐? 지루해!’
사실 온몸의 감각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탓에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투란은 넋두리를 소리 없는 투덜거림으로 바꾸며 유지했다. 더불어 한 겹 한 겹 벗겨 나가는 듯한 마력장벽을 다시 보강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인 가드’라는 마법방호술은 아홉 겹으로 중첩된 채로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고, 그 변화를 압도하는 변화로 맞받아쳐서 위험을 종결시킨다고 했는데, 전혀 종결될 낌새가 보이지 않고 어둠의 소용돌이가 중첩되어 덮쳐오고 있잖은가.
즉, 저 ‘세븐 폴’이라는 흑마법…… 어둠과 함께 음침한 것이 말로만 듣던 흑마법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마법이 드라고니아를 ‘나인 가드’에 집중시킬 정도로 대단하다는 셈이다.
세계가 으깨지는 곳에서조차 버틸 수 있다는 드라코눔의 방호마법을 이렇게나 두들길 수 있는 흑마법이라니, 투란은 넝마의 형상을 찾으려 눈알을 굴리며 궁금해했다.
‘도대체 누구야?’
현란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넝마 인간의 모습이 보일 텐데, 그나마도 보이지 않으니 슬슬 온몸에 스며오는 압박에 제대로 대응할 필요를 느끼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투란이 뭘 할까 잠깐 생각하는 사이, 끝날 일이 없는 듯했던 마법의 대결이 끝나고 있었다.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풍경은 빛과 어둠만이 남겨진 듯했다.
그중에서 또렷한 것은 일곱 가닥 어둠, 어둠의 가닥이 제멋대로 뒤엉키며 일곱 덩어리로 뭉쳤다.
아홉 가지 빛의 송곳이 그 어둠을 꿰뚫었다.
송곳의 빛이 스며든 어두운 덩어리를 밝혀나가니, 어둠은 안개가 되어 흩어지는 듯이 보였다.
빛의 송곳이 그 순간을 노리듯 터졌다.
부서진 빛의 파편이 어둠의 안개를 휩쓸며 지워냈다.
일곱 어둠이 그렇게 하나씩 지워질 무렵, 어둠 틈새에서 넝마조각의 형상이 일렁이며 드러났다.
비명 혹은 괴성이 터져나오며 감각을 초월한 언어가 울려 퍼진다.
―드라코눔! 이 추악한 뱀의 종자들!
증오와 저주, 욕설이 담겨 있는 의미가 소리 없이 쩌렁쩌렁 울리며 마음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이에 맞서듯, 빛의 흐름 속에서 낭랑한 외침이 역시 소리 없이 터져나갔다.
―용의 일족은 뱀이 아니야. 그런 것조차 여전히 모르는 거냐?
넝마가 일그러지며 표정을 꾸며냈다.
―드라코눔, 네놈들을 저주한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저주받으리라!
드라고니아가 빛의 흐름을 조작하며 한층 더 차갑게 대응한다.
―그래, 열심히 해라. 너희의 축복 따윈 필요 없으니까, 세상이 우릴 지키고 축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말이다. 그리고 넌, 이제 사라져야지!
빛의 흐름 속에서 화살과 송곳이 뻗어 나가 넝마를 꿰뚫었다.
‘어? 저거!’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마력을 조작하며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순간에 동조(同調)했다. 그 공감(共感)을 바탕으로 곧바로 투란 역시 바닥을 차고 사납게 오른손을 내질렀다.
갈고리처럼 구부린 투란의 손끝이 넝마의 한구석을 파고들었고, 뭔가를 찍어 움켜쥐어 냈다.
“항아리?”
깨진 항아리가 당겨진 손끝에 꿰인 듯이 걸려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신음하듯이 투란의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중얼거림을 토한다.
―라이프포스드…… 이놈 진짜!
‘응? 생명의 파편인가 그거?’
―그래! 역시 이놈은…….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의 뒷말을 무시하며 투란은 손에 쥔 항아리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곧바로 굽은 손가락이 더욱 깊이 깨진 항아리를 파고들었고, 마력의 파문이 노골적으로 항아리의 표면을 요동치게 했다.
빛의 창에 꿰여 바닥에 꽂힌 넝마가 으스러진 듯한 목청을 가다듬어 텁텁하게 막힌 목소리를 울려내며 투란의 손짓에 반응한다.
“무슨…… 멈춰! 안 돼!”
“잘되는데 뭘.”
간단한 대답과 함께 투란의 손가락 사이에서 항아리가 형상을 잃고 진흙처럼 녹아 엉기며 응축되었다. 그 표면은 일렁이는 여린 빛이 맴돌았고, 보는 이에게 새싹의 파릇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어라? 이게 되냐?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기대도 않다가 놀랐다는 듯이 중얼거리는데 조금 전의 격한 몇 마디는 스스로도 기억을 못 하는 듯했다.
투란이 넝마를 향해, 한편으로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히죽거리며 말한다.
“마법을 너무 믿지 말란 얘기 못 들어봤어? 특히나 뭔가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놨다고, 그 끈이 계속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아, 그래! 불간섭현상? 그런 상태로만 유지될 거라고 믿고만 있지 말라잖아. 어, 누구 말이었지? 암튼! 여기서 파편 하나만 날리고 튈 수 있을 거란 희망은 버려. 난 정체 모를 흑마법사가 뒤통수 치려고 찾아오는 꼴이 싫거든. 그럼, 잘 가. 아, 이 세상 말고 저 세상으로 잘 가!”
길게 늘여 하는 말과 함께 투란의 손아귀에서 뭉쳐지는 진흙의 크기가 커졌고 엉긴 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리고 억센 손아귀에 짓눌리며 빛이 사그라들고 진흙이 증발해 갔다.
“네놈! 네놈들!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우리 결사단은……!”
끝맺지 못한 말의 여운이 메아리칠 때, 녹아내린 항아리의 형상을 잃고 빛을 머금은 진흙이 완전히 사라졌다.
잠시 진흙의 감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 투란이 입을 열었다.
“드라코눔에 원한을 품은 흑마법사라…….”
문득 소리 낸 것을 깨닫고 투란은 소리 없이 뒷말을 이었다.
‘무슨 결사단이라고 마지막에 꽥하던데, 한 놈이 아닌 마법사 집단하고 시비 붙은 거야? 그것도 멀쩡한 거랑은 거리가 먼 흑마법사 집단이랑?’
한데 드라고니아가 다급한 외침으로 대꾸한다.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냐, 이 멍청아! 앞을 봐!
“응?”
어리둥절한 채로 투란은 고개를 들어 앞을 봐야 했다.
그리고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현란한 마법대결을 하는 사이에 거리가 좀 멀어졌던 유리벽의 원통, 그 안에서 축 늘어진 채로 있던 뒤섞인 몬스터의 시체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완전히 썩은 조각들을 이어붙였던 듯했던 몸뚱이가 격렬한 생동감을 퍼뜨리고 부풀면서 형태조차 이리저리 변화하며 유리벽을 두들겨 깨고 나올 것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어라?”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은 그 변화한 형태를 재빠르게 살펴봤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가슴과 배를 채우며 떠오른 얼굴이었다. 뒤로 처져 있던 머리가 팔딱 서면서 독사처럼 치켜 올라갔다가 어깨와 목으로 다시 처박히는 듯하더니, 가슴과 배까지 꿀렁거리며 새로운 낯짝을 들이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어깨, 목, 등에는 머리통이 대롱거리는 꼴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리고 어딘가 당연해 보이는 팔다리, 날개의 변화…….
팔다리는 부풀었고 근육으로 채워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형태로, 날개는 갈라지고 찢기는 듯하다가 촘촘히 다시 재단(裁斷)된 외투처럼 변하더니 사슬과 고리로 엮인 듯한 무늬를 띠며 널찍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마수의 형상이 그렇게 뭉치고 섞이며 변하는 와중에 손톱발톱 또한 제법 사납고 험악한 형태가 되는데, 그 변화와 함께 몬스터 로드의 감각을 자극하는 부분이 한층 더 또렷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목과 가슴을 잇는 언저리에 솟은 낯짝이 입을 열고 말까지 하잖는가!
“죽여버리겠다!”
더불어 유리관을 두들기며 금이 쩍쩍 가게 하는 광경이 그 의지를 행동으로 수식(修飾)하는 듯했다.
투란으로서는 굳이 말할 필요 없이 그 표정만으로 충분하다고 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치우고 조금 진지하게 묻는 말부터 꺼내고 있었다.
“연계된 마력을 따라 짓이겨놨는데, 살아 있네? 재주 좋다?”
―시한부(時限附)야. 금방 뒈진다.
드라고니아가 먼저 차갑게 대답해줬다.
그리고 부들거리는 얼굴들이 일제히 입을 열며 투란에게 으르렁거리는 대답을 함께 토해낸다.
“위대한 결사단의 이름으로! 네놈을 죽이겠다! 대의(大義)를 거부하고 세계를 일그러뜨리는 네놈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겠어!”
“무슨 이야긴지 못 알아듣겠다. 어쨌든 자기소개는 안 한다는 거지? 알았어.”
뚱하니 대꾸하며 투란은 손을 터는 시늉을 했다.
순간 벽과 바닥, 천장의 곳곳에서 시커먼 얼룩이 꿈틀하며 가늘고 긴 바늘을 뿜어냈다. 바늘은 순식간에 굵어져서 창이 되었고, 유리관을 꿰뚫으며 한창 투란을 향한 살의(殺意)로 무장(武裝)하고 튀어나오려던 괴물의 형체를 찍어눌렀다.
“아아! 으으! 너어!”
문장의 고유마력, 몬스터 로드의 마력이 괴물의 형체를 망가뜨리고 녹이는 듯이 보였다. 그 흐름을 따르듯 투란은 앞으로 나섰고, 아직 손에 남은 여운을 따르듯이 내밀어 괴물의 한 곳을 찔렀다.
새로운 항아리, 역시 깨진 모양인 항아리가 흐물거리는 채로 쑥 뽑혀 나왔다.
곳곳이 반짝였지만 항아리는 아주 빠르게 진흙의 형태로 녹아내리며 망가져 갔다.
애초에 괴물의 품 안에서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듯, 뽑아내서 투란이 좀 살펴보려는 순간에는 이미 반쯤 뭉개졌던 것이 마지막 숨결 같은 옅은 한탄을 토했다.
“저주받을지니, 결사의 저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투란의 손바닥에서 입이 열리며 진흙덩어리와 그 한탄을 날름 삼켜버렸다.
단숨에 무슨 일인가 누구도 알아차리기도 전에, 흑마법사가 최후로 남긴 저주는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깔끔하군.
뒤늦게, 두어 박자 늦은 채로 드라고니아가 헛기침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혀를 차는 시늉을 하려다가 투란은 머리 위로 내리꽂힌 주먹질에 고개를 기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아!
여러 얼굴이 동시에 울부짖으며, 깨진 유리관 한복판에 꽂힌 괴물이 자신의 몸을 찢어내며 뛰쳐나오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때문에 고정시켜 꽂아둔 검은 창자루가 왠지 무안해 보일 지경이잖은가.
“깔끔하다며!”
울컥한 외침을 토해내고 투란은 왼손을 높이 들었다가 바닥을 내리찍는 시늉을 했다. 그 손짓에 따라 사방에서 가속하며 뭉쳐든 시커먼 흐름이 거대한 손을 이뤘고, 주먹을 쥐며 유리관을 내리찍었다.
검은 창자루 여럿은 당연하다는 듯이 주먹에 녹아들었고, 마수가 섞인 괴물은 다시 한 층 아래로 찍혀 들어갔다.
우르릉.
층이 흔들리며 주변 바닥이 금이 갔다.
투란이 눈살을 찌푸리니, 금이 간 부분이 뭉개지며 무너져 내렸다.
흘려냈던 몬스터의 파편을 회수하며 투란은 아래층의 흔적을 둘러봤다.
무너져 내린 부분은 투란이 디딘 주변뿐이었고, 더 넓게 펼쳐진 층은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상태로 거의 위층의 광장 아래까지 차지한 듯했다.
카카칵.
내리찍은 거대한 손이 멋대로 손가락을 접으며 괴물의 잔해를 긁었다.
“음? 몬스터 정수도 있었어?”
손끝에 걸린 감각에 투란이 살짝 놀랐다.
마법사가 합성한 괴물, 마력을 가득 머금었고 괴물의 형상을 했지만 결국 몬스터 로드가 삼킬 수 없는 마법의 덩어리에 불과했을 텐데…… 어째서인가 그 중심, 핵이 되는 육괴(肉塊)의 파편 속에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에 반응하는 몬스터 에센스가 섞여 있는 것이다.
―마법이 혼란을 넘어 혼돈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몬스터 코어를 중심으로 마수를 융합시킨 모양이야. 그 코어가 아직 몬스터의 정수를 잃지 않았을 수 있다. 몬스터 부산물, 잔유물을 가공하는 것은 연금술사나 헌터와 거래하는 공방 장인만이 아니니까.
‘공방 장인이나 연금술사가 괴물을 만들겠냐. 경우가 다르잖아, 경우가!’
어쩐지 흑마법사에게 짜증이 난 투란은 투덜거리면서도 몬스터의 코어를 간직한 육괴 파편을 끌어당겼다. 몬스터 로드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몬스터 로드에게는 곤란할 수도 있지만 자신은 전혀 곤란하지 않을 테니까 당연하게 코어에 문장의 마력을 들이밀었고 삼키기를 시도했다.
―응? 아니, 왜 마수의 파편이……!
투란보다 드라고니아가 먼저 납작하게 뭉개진 마수의 파편이 투명하게 변화하는 광경에 놀라고 있었다.
어정쩡하니 투란도 이에 보태듯 한마디 할 수밖에 없잖은가.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