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3)
처음부터 몬스터의 파편이 핵으로 심겨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마수의 고기 조각 틈새에 몬스터의 고기 조각 하나가 덩그러니 박혀 있다는 것이었지, 둘이 완전하게 섞여서 몬스터 엠블럼에 함께 반응하리란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마수였던 부분은 고유마력에 반응도 하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투란은 새삼스럽게 놀라고 어이없었다.
‘뭐냐, 이거?’
먼저 놀랐던 드라고니아가 재빠르게 답을 찾으려 한 모양이었다.
―흑마법의 키메라가 원형으로 삼는 것은 신화 속의 키마이라, 놈이 속한 흑마법의 결사단이 오랫동안 추적하고 샘플을 얻으려 한 것도 키마이라다.
‘뭐?’
―융합체, 모든 생명의 궁극적인 형태를 하나로 융합시키는 마법을 연구 중이었단 말이지. 몬스터 로드 또한 그 망할 결사단의 연구대상이었다. 이 지하실의 상황을 보니 여전히 남은 결사단 녀석들은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야. 게다가…… 왕국 대귀족의 후원이 더해진 채라면, 어쩌면 키마이라의 파편을 얻었을 수도 있겠어.
‘파편?’
―그 파편에 오랜 연구성과를 더해서 만들어낸 실험체라면…… 지금 같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전부 추측이지?’
―다른 쪽으로 생각하기가 어렵지. 그래서, 다룰 수 있겠냐?
‘음, 잠깐만. 이거 꽤 희한한데? 온전한 정수가 아니야.’
투란은 집중하며 더듬었다.
흑마법사의 실험체, 그 핵이 되어버린 몬스터 에센스.
문장의 풍경 속에서 드러난 그 원형의 모양…….
* * *
반 정도만 겨우 남아 있는 산양의 머리, 그뿐이었다.
목 아래의 몸통은 아예 없는 채로, 사라진 몸통에서 머리통이 뜯겨 나오면서 그나마도 긁히고 찢겨 나가 한쪽의 뿔과 눈알, 콧등만이 겨우 산양 머리라는 느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목 줄기에서 흘러내린 혈관과 핏줄, 끊겨버린 아래턱의 잔해 같은 언저리에 실가닥처럼 얽힌 가죽과 살점, 부서진 뼈의 틈새로 산양의 하나 남은 눈알에서 흘러내리는 핏방울이 아롱거리며 번져나온다. 그 번짐이 마수의 살점으로 이뤄진 누더기를 잇는 실가닥이 되어 몸을 묶은 꼴은 가히 그물질을 하는 모양새, 이 또한 괴이했다.
‘이래서 파편?’
투란이 되뇌었다.
우렁찬 대답이 바로 ‘천칭’의 정상을 뒤흔들듯이 흘러나온다.
―그래, 고작해야 혈흔과 뿔의 잔해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코어인 셈이야. 그럼에도 끌어모은 마수의 파편을 괴물로 변이시켰다. 몬스터 엠블럼에 반응할 정도로 말이야. 투란, 제대로 쓸 방법조차 모르겠지? 그냥 없애버리는 편이 어떠냐? 쓴다고 해도 그 정도 형상으로는 별 의미가 없잖아? 다른 몬스터의 정수도 잔뜩 얻은 참인데…….
투란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야, 오랜만이네? 살살 달래는 척하면서 엉뚱한 쪽으로 끌고 가려는 말투, 정말 오랜만이야. 아니, 더 자주 들었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거냐?’
소리 없이 의지로 전해진 말은 별빛무리를 흔들었다.
한숨처럼 다시 드라고니아의 이야기가 ‘천칭’의 정상으로 건너온다.
―키마이라의 능력이 온전하게 발휘되려면 머리 셋이 필요하단 말이다. 산양과 사자, 뱀의 머리가 말이다. 뱀의 머리가 폭식하고, 산양의 머리가 되새김질을 한 다음에 사자의 머리가 통솔한다. 그렇게 해서 짐승의 형질을 걸친다, 그게 키마이라가 지닌 능력이야. 그런데 그중 하나도 온전하지 않은 채라면…… 도대체 어떤 능력을 드러낼지, 어떤 부적절한 본능을 발휘할지 짐작이 안 된다고!
‘알았어, 무슨 염려를 하는가 이해했어. 그럴 만하다고 납득했어. 했는데…….’
소리 없이 대꾸하며 투란은 다시 키마이라의 파편, 산양의 뜯어진 머리통에 관심을 두고 집중했다. 그 반 토막 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머리에서 방울방울 흘러나오고 아롱진 채로 마수의 누더기를 잇는 피…… 문장의 풍경 속에서조차 그냥 찢어진 살의 틈새로 배어나왔을 뿐인 듯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느낌’이 달랐다.
마수의 살을 잇고 뼈에 스며든 그 피가 투란에게 몬스터 에센스로, 희미하지만 분명한 존재로서 ‘느껴진다’.
‘그래, 피야. 내가 괜히 피에 민감해진 탓이 아니라 이 피가 키마이라의 정수야. 완전하지는 못해, 흑마법사가 실험으로 쓴 탓에 훼손되었든 너무 적게 써서 모자랐든…… 온전한 키마이라는 아니야. 그래도 네가 말한 되새김질은 분명히 해낼 수 있을 거야. 절반이나 산양의 머리를 이뤄냈으니까 말이야. 안 그래?’
―절반이나……? 아, 그렇군. 몬스터 엠블럼에 반응해서 본색을 드러낸 부분이 그 정도, 그럼에도 마수를 변이시키는 효능 정도는 갖춘 셈인가.
‘천칭’을 울리는 목소리, 반짝이는 별빛무리의 선명해진 광채로서 드라고니아가 살짝 실망하면서도 안도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 낌새를 느낀 투란은 갸웃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가 불만이었던 거냐? 내가 키마이라랑 닿는 게 싫었던 거야, 아니면 이게 불완전하고 흑마법이 얽힌 정수라서 싫다는 거야?’
별빛이 ‘천칭’ 곳곳을 비추겠다는 듯이 밝아졌다.
그 빛무리가 달빛처럼 ‘천칭’의 높은 풍경 한 곳을 맴돌았고, 조금은 섭섭한 듯한 말을 담은 메아리가 울려나온다.
―아까도 말했잖아. 무슨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농담 아니다, 투란. 키마이라는 융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융합한 대상의 성격까지도 받아들인단 말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인간과 짐승, 괴수를 가리지 않아. 그저 얼마큼 짙게 섞였는가, 그것만이 흡수의 효율과 구현된 부분의 성능에 영향을 끼치지. 무슨 뜻인가 하면…….
‘알아들었어. 몬스터 로드의 금기 같은 거잖아. 그렇지?’
투란은 말을 자르며 한숨짓는 말투를 흘렸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침묵했지만 순순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 몬스터 로드가 지능을 지닌 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금기로 삼는 것이랑 비슷한 셈이다. 키마이라 또한 몬스터 로드처럼 받아들인 존재의 본능에 휘둘리기도 하니까, 키마이라의 몬스터 로드라면 대체 어떻게 되겠냐?
‘그러고 보니 궁금한데 말이야.’
* * *
투툭, 돌이 떨어져 내렸고 층이 무너진 흔적이 주변을 메우며 널브러진 채였다.
그 한복판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투란이 의문을 뇌리에 떠올린다.
‘아까 그 말, 무슨 뜻이야? 산양은 되새김질을 하네 어쩌네 했었잖아. 뱀은 삼키고 사자는 통솔이었나? 무슨 뜻으로 한 말이야?’
눈이 닿는 곳에 또 다른 흑마법의 흔적은 느낄 수가 없었다.
흑마법사가 사라지면서 모두 다 함께 사라진 것처럼…….
어쩌면 투란이 몬스터 로드로서 정리한 탓인지도 몰랐다.
아니었다면 남은 몬스터의 잔해, 연금술의 소재 따위에서 흑마법의 잔재를 엿볼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흑마법으로 만든 곳은 아니야. 놈은 그냥 이곳을 이용하던 손님이었을 뿐이다. 결사단 녀석들은 남들이 만든 곳에 슬쩍 끼어들어 자신의 색을 덧씌워 쓰다가 떠날 때 깔끔하게 정리를 해버린다. 대부분 붕괴가 아니면 화재(火災)로 처리해서 혹시나 남을 흔적조차 다시 보기 어렵게 만들지. 이곳의 경우에는 붕괴에 화재를 덧씌울 참이었나 싶다만, 마그마 로드가 설치는 바람에 흑마법으로 준비한 화재는 파묻혔을 거야.
‘야, 그런 것 묻지 않았잖아. 흔적은 그렇다 치고, 키마이라의 머리통에 대해서 한 말! 그거나 얘기해 달라고!’
벅벅, 발바닥으로 주변 돌을 문질러서 마력의 잔재를 가늠하는 채로 투란이 투덜거렸다. 묻고 나서 이런저런 흔적을 찾아볼 생각은 있었지만 드라고니아에게 그에 대해 묻지는 않았으니까.
결국 어딘가 한숨을 쉬고 꺼리는 낌새가 가득 담긴 대답이 나온다.
―키마리아, 궁극의 키메라라고도 하고 시초의 키메라라고도 하는 괴물은 신화를 근원으로 삼는다. 그래 너한테는 꽤 익숙한 얘기가 되겠지, 그런 경우야. 아무튼 키마이라가 지닌 능력은 다른 생명체의 특성을 흡수하고 재현하는 것, 형질을 복제해서 자신의 육체로 구현해내는 것이야. 그래, 몬스터 로드의 방식이랑 많이 닮았지. 어떤 면에서는 똑같다 할 정도야.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키마이라는 생명의 형태, 성질을 삼킨다. 대상이 괴물이든 마수이든, 일단 생명체라면 인간, 짐승도 가리지 않고 포식한다. 그게 뱀의 머리라는 형태로 나타나 있지. 그리고 삼킨 대상과 자신의 육신, 이미 갖추고 있는 몸을 조율해서 융합시킨다. 그 과정을 맡은 것이 산양의 머리, 하염없이 되새김질하는 입모양으로 나타나지. 그리고 융합한 형체를 지배하고 다스리며 그 본능을 이용하는 것이 사자의 머리로 드러나. 애초에 신화로부터 끌려내온 괴물, 신수란 호칭도 아깝지 않은 것이 바로 키마이라, 그런 얘기야. 대강 알겠냐?
‘음, 어, 음…….’
어딘가 건성으로 대답하며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는 채로 드라고니아가 해준 이야기, 키마이라의 정보를 되새김질했다.
결론은 금방이었다.
‘야, 결국 그 몸에 흐르는 피는 한 가지잖아? 머리통으로 역할이 나뉘더라도 말이야? 그렇지?’
―응? 어…… 피는 그렇다만, 그 역할은…….
드라고니아는 조금 당황해서 몇 마디 더 하려 했다.
하지만 투란은 그 몇 마디를 기다리지 않고 문장에 집중했고, 온전하지 못한 산양의 머리와 흘러내리는 핏방울의 풍경에 정신을 기울였다.
투란의 ‘천칭’이 곧바로 집중된 마음에 공명하며 응했다.
―어? 야?
한층 더 드라고니아가 당황할 때, 투란의 두 눈썹 끝자락부터 휘어지는 뿔이 돋아나왔다. 좌우로 하나씩, 당당하게 뿔이 돋아나고 콧등이 길어지며 투란의 두부(頭部)가 한순간에 산양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우물우물하는 입놀림, 산양의 혀가 날름거렸고 인간의 말이 몇 마디 토해져 나온다.
“역시 그렇잖아. 피로 이뤄진 핵이 필요에 따라 형상을 바꾸는 것이구만. 이런 식이라면…… 기본적인 특성은 피 한 방울에도 모두 담겨 있는 것 맞네. 이 피만으로도 상당한 연금술의 소재였지? 으흠, 그렇다면…… 에,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드라고니아뿐 아니라 듣는 이가 누구라도 따라갈 수 없는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투란의 어깨가 불룩거렸고 허벅지와 팔뚝이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며 요동쳤다. 몸통도 이리저리 기울어지는 모양으로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를 몇 번 되풀이했다.
그렇게 요란스러운 변동이 끝날 무렵, 투란의 모습은 어찌 봐도 기괴한 짐승이 엮인 몰골이 되어 있었다.
왼쪽 어깨에는 사자의 머리가, 오른쪽 어깨에는 뱀의 머리가 얹혀 있었고 가슴에는 여러 가닥의 촉수가 웅크린 채로 그 끝에 오그라들어 쭈그러진 머리통이 매단 모양을 했고 화려한 사슬과 끈으로 이뤄진 외투처럼 등 뒤로 뿜어져 나갔던 날개가 양쪽 어깨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 덮었다. 팔은 가늘지만 팔뚝과 손은 기괴하게 커진 채였고, 허벅지는 굵고 발목은 가는 채로 발가락 언저리는 소나 말의 발굽을 떠올리는 두툼한 굽을 이룬 채였다.
그렇게 변화를 마치는가 싶은 순간, 산양의 입에서 혀가 내밀어지며 억세고 날카로운 이빨에 바로 깨물렸다. 스스로 혀를 깨문다 싶은 순간, 투란은 느꼈고 깨달았다.
‘야, 흑마법도 하나 삼킨 것 같다? 뭔 몬스터 에센스처럼 느껴지는데?’
―뭐라고? 그게 무슨……!
드라고니아는 황당해하는데, 그 사이에 혀가 물리며 떨어진 핏방울이 응축되며 아래턱을 따라 목덜미로 굴러갔다. 굴러간 핏방울은 당연하다는 듯이 흉골 바로 위, 목젖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펼쳐지며 문양(紋樣)이 되어 박혔다.
그 문양을 파악하는 순간, 드라고니아가 당황 속에서 짚어 말한다.
―피의 문장(紋章)? 이거 진짜 블러드 룬이잖아! 그 미완성의 흑마법에다가 귀한 키마이라의 피를 낭비했다는 거야! 이 망할 결사단 놈들은 하여간!
‘너, 어째 화내는 부분이 묘하다?’
다소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은 ‘그게 뭔데?’라는 말 또한 덧붙이고 있었다.
아까와는 조금 다른 당황스러움 속에서 드라고니아가 덧붙인 물음에 답한다.
―키마이라를 근간(根幹)으로 삼아 몬스터 엠블럼을 재현하려는 짓을 했었다. 결사단만이 아니라, 흑마법사 거의 모두가 말이야. 고대의 전설이지. 두서없냐? 음, 잠깐 정리 좀 하자. 그러니까, 몬스터 엠블럼이 나타난 고대, 그 시절에 흑마법사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몬스터 엠블럼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문장들과 다른 형식의 마법을 부여해보려 했어. 몬스터의 정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살아 있는 파편을 직접 이식하는 방법부터 시도했었지. 맞아, 그러니까 당연히 키메라, 합성체에 대한 연구로 나아간 셈이다. 온갖 짓을 다 하는 와중에 곁다리로 완성된 것이 블러드 룬이다. 같은 종일 경우, 생명체가 서로의 몸을 하나로 이어 붙일 수 있도록 해주는…… 한 사람의 잘려나간 팔을 다른 사람의 팔을 잘라 이어 붙일 수 있는 그런 마법의 문장이 완성되었다. 응? 미완성이랬다 왜 완성이냐고? 그야 그렇게만 쓰면 완성형이다만, 그거 다른 종과 결합시키는 쪽으로 쓰면 미완성이니까. 온전한 접합도 안 되고 접합이 성공해도 온갖 부작용이 다 튀어나오거든. 제한된 형태로는 완성, 그 제한을 풀면 완전히 망가진 미완성품이야. 한때 블러드 룬을 흑마법의 몬스터 엠블럼이라고 우기던 시절도 있었어. 뭐, 블러드 룬으로 이뤄진 몸뚱이는 애초에 시한부인지라 다툴 까닭이 전혀 없기는 했지. 에, 그러니까……아무래도 이곳에서 흑마법사 놈이 연구하던 것은 블러드 룬이었다는 얘기야. 키마이라의 피를 이용해서 완성시켜보려 한 모양이다만…… 잠깐, 너 지금 완성시킨 거냐?
온전하게 박힌 피의 문장을 더듬는 투란, 드라고니아는 그 ‘블러드 룬’이 드러코눔의 아칸으로서 쌓은 지식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