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6)
Chapter 230. 인과의 율법 Ⅲ
푸스슥.
몸에 바싹 붙어 있던 티끌, 돌멩이가 재로 변한 듯이 휘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이건 또 무슨……?’
투란은 낯을 구겼다.
―마력장벽이 요동치면서 움켜쥐었다가 풀어놨으니까, 퀘이크 주문에 걸린 몰골로 끝장난 셈이야.
드라고니아가 욕하다가 지친 듯이 중얼거렸다.
피식, 새는 웃음과 함께 투란의 눈길이 자신의 왼손을, 손가락에 단정하게 끼워져 있는 채로 일곱 가지 색채를 흘려내는 반지를 훑었다. 눈길이 닿기가 무섭게 반지는 손등 위로 여린 칠색(七色)의 환영(幻影)을 층층이 쌓아 올리듯이 투영(投影)해냈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살짝 신음하며 놀라게 했다.
―맙소사……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투란…….
감탄하는 듯한 그 말투 속에는 조금 전까지 욕했던 것을 홀랑 잊은 듯한 낌새가 넘쳐 흘렀다. 물론 투란은 ‘내가 이렇게 했어!’라는 뻔뻔한 대꾸를 하지는 못했다.
‘대마도사가 왜 이런 반지를 만들었을까?’
슬그머니 떠넘기는 투란의 말투, 하지만 이는 드라고니아를 곧바로 바싹 조이고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마법 배낭을 구성하는 마법을 반지를 매개 삼아 중첩시키는 수준도 최상위 마도술식이라 여겼다만, 설마 망자의 묘실까지 통합시킬 수 있을 줄이야. 심지어 반지의 주인에게는 보통의 시각만으로도 충분히 묘실을 관찰하게 해준다니! 도대체 대마도사 카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결사단의 흑마법사가 되찾아갈 뭘 남기지는 않은 셈이지?’
―지하실을 통째로 뜯어냈잖아. 그리고 파묻기도 했지. 거기서 뭘 찾아내 갈 수 있는 놈이라면 이미 흑마법의 한계를 넘어선 암흑의 대마법사라고 불러도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럼, 이제 안심하고 앞으로 가보자고. 탈출하려고 여기로 왔다만, 이게 내가 뚫은 탈출구는 아니잖아? 뭐 좀 알아내 보라고.’
투란은 통로를 바라보며, 어둑한 풍경 속에 희미하게 벽을 타고 번지는 빛이끼의 흐린 광채로 풍경을 비춰내는 통로 너머를 흘깃거리며 말했다. 이런 투란의 눈길과 물음에 한 박자 늦춘 듯이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그냥 길이다. 위쪽 상황과 대조해본다면, 숲과 인접한 도시의 한구석으로 이어지는 길이야. 통로 바닥에 떨어진 흔적으로 봐서는 등잔이나 횃불을 들고 들락이는 경우가 좀 있는 모양이다만, 최근 한두 달간에 누가 지나다닌 흔적이 아니야. 조금 더 오래된 흔적이다. 다만…….
‘다만?’
―두룩칼의 촉수 자국이다. 그 무렵에 몇 곳 새겨진 모양인데, 이런 상황으로 봐서는 들락인 자가 두룩칼이라고 생각해야겠지.
‘흐음…… 흥미롭네. 숲의 별장, 저택으로 길이 있는데 또 이런 통로로 들락이는 곳이라.’
싱긋, 투란의 입가에 살짝 뒤틀린 웃음이 맺혔다.
드라고니아는 그냥 고요하게 한숨만 쉬는 시늉을 하며 말을 멈췄다.
투란은 숨을 고르고 손을 흔들었다.
반지의 환영이 사라졌고, 대신 두툼한 장갑이 손을 감싸며 나타났다.
그 장갑의 바탕 가죽, 덧댄 가죽과 엮인 실밥이 자아내는 무늬를 둘러보다가 투란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건 너무 닳아버릴 느낌이네. 음, 조금 더 고급스러우려면…….”
다시 손을 흔드니 투란의 장갑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보다 얇은 가죽임에도 손등 쪽으로 섬세한 철판과 사슬이 엮여 있는 모양이었고 그 엮임이 은근히 그려내는 무늬는 어딘가 해골을 연상시켰다.
“너무 살벌한가?”
투란이 다시 손을 흔드는데, 드라고니아가 이 괴상한 짓을 납득하질 못하겠는가 다시 말문을 열고 있었다.
―대체 뭐 하는 거냐?
투란이 소리 내던 중얼거림을 멈추고 소리 없이 답은 해주었다.
‘뭐하긴, 이 길 끝에 알킨이 있을 수 있잖아. 오랜만에 보는데 부러워하게 잘 차려입어야지 않겠어?’
드라고니아는 잠깐 말문이 막힌 듯했다.
두룩칼이 오가던 통로이니, 확실히 그 친인이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흑마법사가 둥지를 튼 곳이잖던가. 저 길 끝에 어떤 흉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 여겨도 얼추 들어맞을 상황!
‘조사했어?’
어이없어하는 드라고니아가 뭐라 하기 전에 투란이 묻고 있었다.
미리 프로브를 보내서 정찰했을 테니 알지 않느냐고 짚는 물음이며, 동시에 드라고니아의 염려가 무의미하다는 점을 짚는 말이기도 했다. 어차피 정찰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다면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테니 미리 차림새를 점검해도 상관없는 일이잖는가?
―다른 지하실로 통한다. 마법방호가 제법 되어 있어서 어떤 건물인가는 들어가서 파악해야 할 듯하다만, 위치는 숲에 가깝지만 숲에서는 벗어난 왕궁 언저리라고 할 수 있겠어. 어쩌면 왕궁의 마법에 의해 방어되는 영역 안일 수도 있어.
‘뭐, 가보면 알겠지. 그러니까 가기 전에 옷차림부터!’
키득거리며 다시 투란이 장갑을 이리저리 맞춰보려 하는데.
―얌마! 차림새를 점검할 거면 벌거숭이 같은 꼴부터 치우고 하라고! 너 지금 그게 뭘 차려입을 자세냐? 홀랑 벗고 몸에 돋은 가죽으로 아랫도리만 감춘 몰골로 손에 끼울 것만 살피냐? 대체 왜! 그게 뭔 차림새인데!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리며 지금 상태를 콱콱 쑤시듯이 짚고 있었다.
투란이 이에 대꾸하는 말은 매우 뻔뻔했으니.
‘어허! 장갑부터 잘 고른 다음에 장갑에 맞춰 입으려는 거잖아!’
뒤늦게 위아래 옷을 이리저리 몸에 씌워보고 장갑을 갖다 대는 모습은 그 반대라는 듯했다.
드라고니아는 어이가 없어서 투란의 뇌리에 헛웃음을 중첩해 합창하듯 쏟아붓는데, 그사이에 투란은 적당히 차림새를 갖추고 몸맵시를 가다듬었다.
금속장식이 팔목까지 이어진 가죽 건틀릿, 팔목에 차고 있는 길고 두툼한 하클의 유틸리티 밴드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밴드로부터 흘러나와 어깨까지 덮는 융단처럼 느껴지는 소매 옷감은 촘촘한 철사가 부드럽게 감긴 채였고, 어깨에 불룩한 철제 견갑을 말랑해 보이게 해줬다. 견갑까지 붙은 외투는 길쭉하니 무릎 위까지 닿을 정도로 늘어졌는데, 허리춤에 휘감는 벨트는 외투 안쪽의 벨트와 이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한 일체감을 드러냈다. 외투 밖으로 튀어나온 무릎은 당연하다는 듯이 정강이 덮개까지 이어지는 보호대로 감긴 채였고 가죽 장화에는 앞굽, 뒷굽부터 바닥의 징까지 모조리 단단한 쇠란 것을 맨들거리는 광택으로 자랑하는 듯했다. 목에는 유니콘홀드와 부적이 나란히 대롱거리며 걸린 꼴이 살짝 드러나는 채이기도 했다.
그런 차림새로 투란은 살짝살짝 외투 안쪽과 발목, 손목, 겨드랑이 부분을 더듬으며 날붙이가 잘 자리 잡았는가를 확인했다.
이에 대해 가만히 지켜보던 드라고니아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무장(武裝)인 거냐?
딱히 아는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긴 하지만, 가는 와중에 험한 꼴을 겪을 가능성이 꽤 크기는 하지만 투란은 별로 싸우고 싶은 사람의 차림새를 꾸미지는 않았다. 그저 적당히 몸을 보호하는 방호구를 착실하게 갖춘 정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날붙이가 숨어 있게 된다면, 평온한 일상을 살육으로 채울 수도 있다는 예상이 너무 쉽잖은가.
몬스터 사냥에 나선 것이라면 당연히 준비해야 할 긴 칼과 몽둥이도 없는 채, 그야말로 도시 한복판에서 인간 사냥을 하기 위해 흉기를 숨기고 때리지 말란 듯이 방호구만 드러낸 몰골!
이런 드라고니아의 평가가 심상으로 고스란히 투란에게 전해지자, 투란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변명하듯 중얼거린다.
‘알킨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잖아. 게다가 흑마법사한테 돈 받고 지키는 누군가 나올 수도 있고. 어쨌든 일단은 싸울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 복장이라고, 맞받아칠 수 있다는 정도는 이 어깨의 튼튼한 갑주 쪼가리를 보면 금방 느낄 수 있고 말이야.’
―건드리면 싸운다, 아니면 빈손이니 우호적인 악수나 나누자? 그런 거냐?
‘어, 그런 거야.’
어이없어 한숨을 쉬는 듯한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냉큼 대답하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걸어서 통로를 통과할 마음은 전혀 없다는 듯…….
―야, 그런데 말이다.
달리는 사이에 드라고니아가 조심스럽게, 머뭇거림을 담아 말했다.
뭔가 묻고 싶은데 망설이는 꼴이 투란에게는 어이가 없다!
‘왜? 새삼스레 뭐?’
―블러드 룬, 어떻게 한 거냐? 어떻게 완성했어?
‘어? 그야…… 마법에는 별 도움이 안 될걸?’
―그래도 궁금하잖아! 어떻게 했는데!
놀리는 듯한 투란의 말투에 바로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였다.
키득거림을 입꼬리에 담으면서, 내달리는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로 투란은 대답해줬다.
‘마력, 파워 서클의 마력을 한껏 박아넣었어. 뒤틀린 마법이지만 문장에 삼켜지니까, 내게 느껴지더라고. 매듭을 지을 마력이 모자란다고 갈망했다고나 할까?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말이야.’
―설마 계속 마력을 때려 부어야 하는 거냐?
‘아냐. 그냥 한 번, 처음의 매듭을 끝내기 위한 한 번. 그 한 번의 매듭이 지어지니까, 곧바로 완성된 마법이라고 풍족해서 얌전해졌잖아.’
―어? 아…… 과연…… 그렇게 된 거였군. 파워 서클의 마력…… 어라? 야, 얼마나 쏟아부은 거냐?
‘그야 모르지. 그냥 반지로 줄줄 새는 황금매의 마력을 쑥쑥 잡아먹는 것 같더라고. 거기에 파워 서클의 마력도 얹어서 말이야. 한 사나흘? 황금매의 파워 서클이 쉬어야 하는 것 같던데?’
―이런 무지막지한……!
‘아, 다 와 가네! 조용히!’
지나온 통로는 미리 조사한 대로 지하실에 닿을 때까지 가로막는 것이 없는 채로 비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 다툼 없이, 막힘 없이 지하실 앞에 도달한 투란은 그다지 평온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물어야 했다.
‘문이 있는 거 아니었냐?’
―문이라고 한 적 없다만?
‘왜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봤으면 뭐 달라지나? 안 올 생각이 생겼을까?
앙갚음하듯 냉소적인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툭툭 불거져 나오고 있었다.
이를 가는 시늉에다가 한숨을 섞으면서 투란은 벽에 뚫린 구멍을 넘어야 했다.
통로는 분명히 이 지하실로 이어지는데, 지하실과 통로를 가르는 경계는 원래 그냥 막힌 벽이었다. 그 벽에 구멍을 내고 억지로 지하실에서 통로로 나온 듯한 상태인 것이다.
‘원래 들락이던 곳이 아니었던 건가?’
―잠시만…… 음, 벽을 쌓아 올린 벽돌과 접착제를 분석해서 추측하자면 원래 이 지하실이 있기 전에 통로가 있었다. 그 통로를 막고 지하실이 건축된 거야. 그러다가 이 통로를 아는 누군가 벽에 구멍을 내버린 거지. 그리고 다시 통로를 살려낸 모양이다만…… 굳이 문을 달아둘 생각은 없었던 셈이지.
‘뭔 짓인지…….’
갸웃하면서도 투란은 지하실을 세심하게 둘러보는 중이었다.
흑마법의 자취라든가, 몬스터 로드를 위한 뭔가가 있는가를 살피며 오러와 고유마력을 병용(倂用)하고 프로브를 이리저리 움직여보기도 했다. 마법적 탐지는 벽을 경계로 나뉘듯이 범위가 달라진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오러, 마력 또한 벽에 닿으면 가로막힌 듯이 쉬이 그 너머를 탐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벽에 난 구멍을 넘는 사이에 걸리는 부분도 전혀 없었다!
‘대체 뭔 구멍인 거야?’
―모르겠다. 벽의 내구성을 높인다거나 무너지지 않게 했다거나, 자체수복하는 마법도 아니다만…… 뚫린 상태에서도 경계만 확고하게 유지하는 마법이라니, 넘고 나서 훤히 열리는 듯한 상황까지 고려하면…… 어, 그냥 미친 마법사가 심심해서 그어놓은 마법의 울타리?
‘그건 뭔 헛소리냐?’
어이없어서 고개를 저으며 투란은 지하실 한편의 층계 앞으로 다가갔다.
아래쪽에 딱히 뭔가 저장하거나 쌓아두려 한 낌새는 없었다.
그저 남는 가재도구의 일부를 대충 밀어 넣어 둔 듯했고, 지하실을 벗어나는 문은 벽에 붙은 계단 위에 덩그러니 놓인 듯했으며 다가서는 동안에 덫이 발동하거나 가로막는 장벽이 튀어나오거나 하지도 않았다.
‘두룩칼이 멋대로 들락이게 두느라 이 모양인가?’
투란은 겨우 한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얘기냐?
드라고니아는 너무 뜬금없다 느낀 듯이 묻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암호를 설정해서 통과를 허가하는 마법이라든가, 튼튼한 쇠빗장이 걸린 문이었다면…… 미쳐 날뛰는 몬스터 로드답게 다 부수고 올라갔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이렇게 두지 않았나 싶어. 일단…… 나가보면 확실해질 거야. 몬스터 로드를 진정시킬 대책이 있다면 내 추측이 맞는 거지!’
―과연…… 있는 듯하군.
드라고니아가 재빨리 문 너머로 프로브를 움직이다가 말했다.
투란은 막 문고리에 닿으려던 손을 뒤로 빼내면서 발을 멈췄다.
프로브가 문을 투과하지 못하고 반쯤 넘어가다가 툭 튕겨 나온 때문이었다
잠시 노려보던 투란은 가만히 문고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