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7)
끼익.
문이 가볍게 당겨지며 열렸다.
열린 문턱 너머로 투란은 살짝 손을 내밀었다.
손에 닿는 부드러운 바람을 헤집는 듯한 기분, 동시에 평온하고 따사로운 느낌이 손목을 타고 넘으며 투란의 가슴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응, 부적이네. 좋은 부적, 집을 지키는 부적이야.’
곧바로 투란은 결론을 내렸다.
투란이 문턱 너머로 발을 딛고 들어가 둘러볼 때, 드라고니아도 결론을 말한다.
―화로(火爐)의 요람(搖籃)이로군. 옴파레온 계열 신전 부적이 맞겠군.
‘집 전체를 지키는 부적이라…… 이상한 통로랑 붙어 있는 지하실까지 닿는 거겠지? 이 정도면 보통 비싼 부적이 아닐 텐데…… 어마어마하네.’
―방마다 다른 가호를 설정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하실의 방호랑, 한 층 올라온 이 자리의 방호가 또 다른 분위기잖아. 네 말대로 보통 비싼 부적이 아닐 거야. 형태도 동판이나 석판이 아니라…… 벽 하나 정도는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직물 형태가 아닐까?
‘어째 갑자기 그렇게 구체적인데?’
투란은 돌연 시야 속으로 벽을 채우는 무늬까지 투영해주며 하는 말에 투덜거림을 터뜨리고 말았다. 드라고니아는 약이라도 올리듯이 이에 대꾸하고 있으니.
―저 굽이를 돌면 바로 보일 테니까.
‘엉?’
어이없어하며 투란은 앞을 바라봤다.
지하실에서 올라와 앞쪽으로 열린 복도는 길지 않았다.
대여섯 걸음 앞으로 나가면 바로 옆으로 굽은 채였는데, 그 너머에 벽을 장식하는 직물로 된 부적이 있다는 말인가?
머뭇거림 없이 투란은 재빨리 발을 움직였고 굽이를 돌아서 봤다.
바닥에 문턱과 닫힌 문이 보이는데, 문의 대부분을 커다란 장막이 무늬를 잔뜩 머금은 채로 드리워져 가리고 있었다.
그 직물, 그 안에 담긴 무늬…….
투란은 바로 느꼈고 깨달았다.
‘옴파레온 신전?’
화덕(火德)을 두 기둥 사이에 품고 있는 거대한 신전이 그림자처럼 자리 잡은 묘한 풍경이 직물에 새겨져 있었다. 바닥에 깔면 융단의 화덕으로 인해 주변이 온통 따듯해질 수도 있어 보이는 분위기가 무럭무럭 배어나올 정도로 보였다.
―헤스티아르, 헤스티아, 베스티아라고도 하는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이다. 부엌의 중심이 되는 화덕을 지켜주는 신이라고도 하고…… 가정과 국가의 안녕을 수호하는 신이라고도 하지. 그 여신의 가호를 담은 직물이다만, 보통 바닥에 까는 카펫 형태로 제작되거나 몸에 걸치는 로브 형태로 만들어져. 이렇게 벽에 걸기 좋게 고리까지 달린 형태는…… 주문제작인 것 같은데? 돈이 엄청나게 깨질걸?
‘무슨 후작네에서 가져왔겠지. 아니면 그 후작이 준 돈으로 제작 요청했거나.’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투란이 살짝 뒤틀린 낯으로 대꾸하며 앞으로 나서서 냉큼 문을 가로막는 직물을 뜯어내려 했다. 한데 옴페레온의 신전에서 제작된 직물은 쉽게 뜯기지 않았다.
양 끝에 달린 고리가 팽팽해지며 고리와 엮인 사슬이 찰랑거리고 문 위편의 벽과 단단히 붙은 채로 버티고 오히려 벽이 금이 가며 뭉개질 지경으로 보인다!
“가지가지 한다!”
울컥한 투란은 오른손을 휘둘렀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오랜만에 뿜어져 나온 ‘샤벨투스의 이빨’이 벽에 걸린 사슬을 바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휘둘러진 투란의 왼손은 아주 가볍게 직물을 한 오라기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지우듯 삼켰다!
―그냥 반지 안으로 넣었을 수도 있어 보였다만?
‘어? 젠장, 빨랑 말해!’
드라고니아가 한 박자 늦게 하는 말에 투란이 한 번 더 울컥했다.
―야, 왜 화를 내는 건데?
드라고니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짚어 물었다.
‘늦게 말해서 사슬 쪼갰잖아! 남은 토막 보니, 저것도 무슨 마법이 걸린 것 같은데! 좋은 반지로 다 삼켜버릴 수 있었는데 아깝잖아!’
―어처구니없는 놈…… 사슬과 직물은 별개야. 헤스티아르의 직물에 걸린 고리가 그 마법을 인정해줄 뿐이었어. 사슬에 걸린 마법도 그냥 강하고 질기게 해주는 정도인 하위 주문이었다. 네 칼에 바로 썰린 것 보면 모르겠냐? 근데 왜 갑자기 칼질이야? 손톱 뽑아서 썰어도 될 것을…… 느닷없이 왜 뽑아 든 거냐?
‘문을 다 가린 부적 앞에서 몬스터의 형상을 꺼내라고? 바보냐? 샤오 할배가 만든 칼은 삼킬 만한 몬스터 에센스가 없는 대신에 이럴 때 거뜬히 휘두를 수 있는 거라고.’
―네 경우에는 안에다가 피를 불어넣는 탓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만?
‘그건 부적이 내 몸 안에 간섭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고. 보통 이런 부적 앞에서 몬스터 형상을 드러내면…… 아니, 갑자기 왜 자꾸 따져? 뭘 모르는 척하는 거야? 이 정도는 말 안 해도 아는 놈이!’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투란은 울컥하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그런 투란의 앞, 열린 문의 너머에는 정원이 드러난 채였다.
정원으로 나와서 보니 지하실로 이어지는 조그마한 굽이를 지닌 건물, 그야말로 정원 한 귀퉁이의 장식처럼 자리 잡은 방 반 칸도 안 될 듯한 모양이었다. 삽이나 낫, 가위 따위의 정원 손질 도구를 담아두는 간이 창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 그렇게 위장해놓은 듯한 낌새도 엿보였다.
투란은 정원이 꽤 넓다는 것을 확인했고, 세 방향으로는 정원을 둘러싼 높은 벽이 있고 한쪽으로 이 층짜리 커다란 저택이 고요하게 누워 있듯이 뻗어 있는 꼴을 봤다.
‘아무도 없냐?’
―있다, 한 사람. 마침 나오는군. 이쪽으로 향하려는 모양인데?
‘한 사람? 저 길쭉한 집 안에 달랑 한 사람? 이 큰 정원이 있는 집에?’
―그래, 한 사람이다. 아, 보이는군.
투란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잊고 있던,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 속의 한 사람이 정원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 사람은 길고 고운 치마를 두 손으로 잡고 정원으로 나서며 지하실로 이어진 작은 건물을 흘깃하다가 멈춰섰다. 놀란 듯이 금방 그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고, 그 입술부터 눈가에 이르기까지 덜덜거리는 떨림이 바로 퍼져 올라갔다. 쥐어짜 낸 한마디는 그 경련과 함께 간신히 그 입술을 넘어 나오고 있었다.
“투, 투란?”
그뿐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어떤 말도 없었다.
피식, 입꼬리에 새는 웃음을 매달고 투란은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정원의 티끌과 떨궈진 꽃잎이 투란의 발치에 차였고, 사방으로 흐트러졌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결이 발끝에 닿을 때, 투란은 그 사람 앞에 섰고 담담하게 입을 연다.
“오랜만이네요, 아, 주, 머, 니.”
또박또박 정리해 나온 호칭이었다.
그 순간, 투란의 양모(養母)는 흠칫 놀라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투란이 말을 잇는다.
“알킨은 어디 있죠?”
이 물음이 여인의 입을 다시 열게 했고, 목소리를 내게 했다.
“아, 알킨? 알킨은 왜…….”
“몰라서 묻나요? 아, 두룩칼이라는 작자는 이미 죽었어요. 나는 죽지 않았지만요.”
“나, 나는…… 우린 네가 죽은 줄…….”
뒤늦게 당황해하며 맹렬히 돌아가는 눈동자를 멈추지 못한 채로 나오는 말, 투란은 이를 바로 잘라내며 다시 묻는다.
“살았다고 알려주러 온 거 아니거든요? 알킨, 어디 있어요? 여전히 내 보석 잘 매달고 다니겠죠?”
“보, 보석? 그, 그건…….”
더듬거리는 말투, 당황해하는 눈빛…… 그런데 돌아가던 눈동자가 멈췄다?
투란은 곧바로 자신을 키워줬던 여인이 지닌 버릇을 떠올렸다.
투란의 손이 냉큼 샤벨투스의 이빨을 들어 올려 여인의 어깨 위에 올려놨다.
“말 꾸미려 하지 말아요. 내가 몰라요? 한두 해 같이 산 것도 아닌데! 내 성질, 옛날보다 더 더럽거든요? 이대로 고운 새 옷이랑…… 어, 새 옷은 아닌가? 아무튼 그 옷이랑 같이 토막 나고 싶지 않거든…….”
“너는 그대로구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투란의 말에 불쑥 끼어든 채로 서글픈 표정 속에 나온 말이었다.
그 표정을 보다가 투란은 문득 기묘함을 느꼈고, 낯을 찌푸렸다.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느낌에 공감하듯이 말한다.
―묘하군, 로잭이나 티아라, 예르카처럼 네가 나이 먹지 않았다는 점에 전혀 놀라지 않아. 마치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데? 설마 널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중인가?
‘젠장.’
투란은 숨을 골랐고, 곧장 샤벨투스의 이빨 끝자락에 오러를 불어넣어 여인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어찌 보면 날카로운 칼날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쪽을 내려는 듯한 움직이었지만, 여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각인된 낯빛에 조금의 변화도 없는 표정 그대로…….
“미친 것 같지는 않네요?”
투란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서글픈 표정 속에 옅은 웃음을 피워올리며 여인은 가만히 한 손을 내밀어 투란의 볼을 어루만지는 채로 말한다.
“미쳤다고들 알고 있단다. 내가…… 이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조금씩 미쳤다고…… 이제는 완전히 미쳤다고들 알고 있어.”
“뭔 소리예요?”
어이없다 못해 황당함을 느낀 투란은 반사적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여인은 투란을 보며 조금 더 짙게 웃었다.
“너무 다르잖니. 샤오콴에서랑…… 이런 곳에서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정원에 어울리는 음식을 거기에 맞는 예의를 갖춰 먹어야 하고…… 나는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었어. 그러니 조금씩 미쳐야 했어. 그래서 마침내 이렇게 혼자 남아 있게 되었단다. 왜 살아 있어야 하는가도 전혀 모르는 채로…… 하지만 이렇게 다시 널 보니 조금 더 살아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한 마디씩 새어나오는 듯이 더듬거리는 말투, 어쩐지 오랫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 않은 탓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더불어 투란에게는 오래전에 가끔씩 상냥했던, 어쩌면 진짜 어머니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표정이 어렴풋이 나타나고도 있었다.
때문에 조금 더 구겨지는 표정, 썩어버린 듯한 눈길이 되어 투란은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알 바 아닌 일이잖아요? 그래서, 알킨에 대해서는 말 못 해준다? 그런 건가요?”
주름진 여인의 표정이 한층 더 일그러졌고 미소를 대신해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인은 더듬거리는 말투를 고치며 말하고도 있었다.
“말해줄 거란다, 다만…… 투란, 알킨을 잘못 키운 것은 우리야. 그러니까…… 알킨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렴. 알킨이 너를 보고 보석을 돌려준다면…… 너에게 해코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알킨을 살려다오. 나는…… 그저 이렇게 염치없는 부탁을 할 수밖에 없구나.”
좀 더 썩은 표정으로 투란은 귀찮음을 한가득 담아 이에 대꾸한다.
“아, 그러죠. 그럴 테니까, 어디 있는데요?”
여인은 주름 사이로 눈물이 맺힌 채로 투란을 향해 바로 대답한다.
“별궁(別宮), 알킨은 왕가의 별궁에 있단다. 저기 보이는 저 뾰족한 탑의 아래에 있는 궁전이지.”
“어? 뭐요?”
투란은 꽤 가까워진 왕궁을 바라봤다.
양모의 손가락 끝은 명확하게 그 왕궁의 첨탑 한 곳을, 높은 성벽 너머에 솟아난 첨탑 하나를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여인이 세월을 담은 목소리로 다시 몇 마디 덧붙인다.
“후작 각하가 부여받은 별궁이라고 하더구나. 궁전을 벗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정무를 볼 수 있도록, 왕실에서 오래전에 거주를 허락했다고…….”
―음? 아, 그 얘기인가. 몇 세대 전 이야기일 텐데 훌륭한 재상이었던 후작에게 로그람 왕가에서 그런 보상을 했단 말이 있긴 있어. 그게 여태 유지되고 있었나? 가문에 통째로 넘긴 것도 아닐 텐데?
드라고니아가 금방 뭔가 떠올리는 듯하면서도 의구심을 담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쯤 되면 투란으로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 네…….”
자세한 사정은 저 별궁을 뒤져봐야 알 듯하니까,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 고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곧 돌아서려던 투란은 문득 한 가지 의문,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의문을 되새길 수 있었다. 돌연 어깨가 화끈하면서 확인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기억이 불쑥 치솟은 듯해서 다음으로 미룰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이걸 왜 내게 준 거죠? 샤오 할배가 만든 거잖아요, 이거.”
주름진 여인의 눈가가 살짝 갸웃하다가 샤벨투스의 이빨을 확인하고는 바로 대답이 나온다.
“샤오 촌장님이 네게 반드시 전하라고 했었어. 너의…… 너의 성인식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예물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보석을 대신할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도움이 되지 않았니?”
“됐죠.”
투란은 짧게 답하고 돌아섰다.
의문은 사라지는 대신에 더 늘어났다.
그러나 이곳에서 따질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볍게 발을 구르는 순간, 투란은 정원에서 사라졌다.
왕도의 풍경이 멀찍한 담장 너머에서, 정원과 갈라선 저편에서 곧바로 투란의 시야로 밀려오는 듯했다.
정원에는 덩그러니 나이든 여인만이 남은 채로 하염없이 투란이 사라져 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요함을 벗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