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8)
“이 자식아! 미쳤어? 덜렁덜렁 어딜 혼자 쏘다닌 거야! 그 숲에서 뭔 짓을 했어? 어디 다친 데는 없냐? 멀쩡해? 이 망할 놈! 너한테 내 남은 생이 걸렸단 말이야! 나뿐이 아니라 티아라도 예르카 아저씨도! 아르안도! 그리고 샤오콴 마을에서 나와서 살아남은…….”
“로잭, 진정해.”
멱살 잡은 로잭의 두 손을 고이 떼어내면서 투란이 한숨 쉬듯 말했다.
씨근거리던 로잭은 거칠게 투란의 손길을 뿌리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문을 열자마자 멱살잡이부터 했던 탓에 로잭은 문가에서 그리 떨어진 곳에 서 있지 않았고, 투란은 그런 로잭을 몇 걸음 더 밀어 넣으면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로잭이 뭐라 하기 전에 말한다.
“두룩칼은 죽였고, 날 키워줬던…… 아주머니도 만났다.”
“뭐? 죽였…… 네 양어머니? 어떻게? 미쳐서 죽었다던데?”
로잭이 되뇌는 듯하다가 화들짝 놀라서, 어처구니없어하면서 되물었다.
그 꼴을 보며 투란이 한층 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부터 짓고 말한다.
“확인도 안 했었냐!”
“야, 너도 안 물어봤거든!”
로잭도 버럭 지지 않겠다는 듯이 외쳤다.
그리고 둘은 잠시 조용해졌다.
한숨이 고요함을 깨고 둘의 입가에서 함께 흘러나왔다.
벅벅, 투란은 머리를 긁적였고 로잭은 끄응 하면서 팔짱을 끼고 나서 기억을 더듬듯이 다시 말문을 연다.
“중요한 일이 아니었잖아. 아줌마는…… 그 아줌마는 그래도 남편이나 아들처럼 굴지 않았잖아. 그나마 말이야, 그나마! 아무튼 눈에 띄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고 어딘가에 갇혔다는 이야기였을 거야, 마지막으로 그 가족에 대한 행방을 조사할 때 얼핏 나온 얘기가 말이야. 어쨌든 보석은 알킨이 가졌고 훼방은 두룩칼이 놓는 중이었으니까. 당장 위협이 되질 않는 데다가 미쳤네 죽었네 하는 아줌마 소식을 탐문할 까닭도 없기는 했지. 그러니까…… 정말 살아 있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냐?”
“로잭, 그 눈빛 뭐야? 내가 무슨 살인하고 식인하는 괴물이야? 거래를 했어. 곱게 알킨의 행방을 알려주면 그냥 물러선다고.”
투란이 떠들다가 슬그머니 가늘어지는 로잭의 눈길을 타박하며 대답했다.
하나 이는 로잭을 오히려 어처구니없게 한 모양이었다.
“뭐? 곱게 물러선다니까 알려줘? 야, 그 아줌마도 자기 아들 끔찍하게 아끼거든? 아, 혹시 두룩칼 죽였다는 말 안 했냐? 그냥 살려 보냈다고 해서 희망을 품고 알려준 거야?”
“아니. 죽였다고 말해주면서 곱게 말하라고 했는데?”
멀뚱하니 투란이 대꾸하니 로잭은 한층 더 기막히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겨우 쥐어짜 낸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 로잭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알킨이 어디 있나 말해줬다고? 어디 있다고 했는데?”
“별궁. 후작에게 왕가에서 줬다는 별궁이 있다며? 거기 있다고 했어.”
투란이 덤덤하니 대답하는 순간, 로잭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문득 투란은 어린 시절 로잭이 저렇게 눈꼬리 치켜뜰 때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뭔가 투란이나 다른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속거나 놀림당했을 때, 로잭이 딱 저런 눈짓을 했었잖나.
그리고 지금 딱 그런 상태란 것을 로잭은 거침없이 말로 토해낸다.
“증거도 없이 별궁이라고? 야, 너 거기가 어딘지 알아? 왕궁의 한구석이라고, 왕성의 성벽 너머에 있는! 그런 곳에 알킨이 있다는 말은…… 성벽 넘다 뒈져보란 말이잖아! 그래서 그냥 왔냐? 그런 속임수일 것이 뻔한 말을 듣고?”
“알킨 거기 있어.”
투란의 변명 같지 않은 대꾸는 간단했다.
이번에는 로잭의 눈꼬리가 축 처졌다.
잠깐 침묵하는 듯했던 로잭이 다시 입을 열 때는 투란과 함께 침상가에 앉은 다음이었다.
“그 아줌마, 미친 것 같았냐? 멀쩡해 보였어?”
듣던 투란으로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인 알킨을 지키기 위해 투란을 함정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라면 미쳐서 그냥 있는 그대로 실토했을 것이라는…… 로잭은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을 검토하는 셈이잖은가.
“그냥 가르쳐준 거 아냐. 조건을 걸었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이 말했다.
로잭이 바로 고개를 홱 돌려 곁에 앉은 투란을 보며 묻는다.
“조건? 어떤?”
“알킨이 보석을 얌전히 넘겨주면 한 번 살려달라고.”
―그렇게 구체적인 말은 아니었잖냐?
투란의 대답에 드라고니아가 슬쩍 딴지를 걸었다.
로잭은 눈살을 팍 찌푸리면서 팔짱을 끼고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두룩칼을 죽인 투란이니 막을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래도 아들을 살릴 기회를 엿보느라 투란에게 부탁을 한다? 음, 그 아줌마다운 것 같기는 한데…… 이게 함정이면 대책 없이 왕국에 수배령이 떨어질 수도 있고…… 별궁이라 했으니 그럴듯하기는 한데…… 넘어가려면…… 왕궁에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나?”
“로잭.”
“그런 쥐구멍을 아는 작자가 있으려나? 아니, 개구멍이라도…….”
“로잭!”
콱, 한 마디에 대꾸 않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드는 로잭의 볼을 꼬집어 당기며 투란이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아파! 놔!”‘
갑작스럽게 살점이 뚝 떨궈져 나가는 듯했기에 로잭의 비명은 진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투란이 보기에는 어린 시절 로잭이 잠시 돌아왔나 싶은 몰골이었지만…… 재빠르게 볼을 꼬집은 손목을 두 손으로 잡는 태도는 반격의 낌새가 가득하잖나! 하지만 그 태도와 다르게 로잭의 손에는 힘이 실리지는 않고 있었다.
“이제 들려?”
“아, 들려! 들린다고! 들을 테니까……!”
정말 아프다는 듯 슬슬 로잭이 두 손에 힘을 주려는 듯할 때, 투란은 손을 풀고 진지하게 말한다.
“별궁에는 나 혼자 갈 거야. 혼자 가야 빠져나오기도 편하니까. 그러니까 로잭, 예르카 아저씨한테 돌아가 있어. 만약 빠져나오는 과정이 험악해지면…… 헌터 길드에서 엘더 헌터가 나 잡으려고 올 수도 있어. 뭐, 잡으러 온다고 해도 날 죽이거나 해치려는 것은 아니긴 해. 그러니까 안심하고…….”
“자, 잠깐! 야, 이 자식아! 엘더 헌터라니? 갑자기 무슨…… 응? 너 정령으로 소리 새는 것도 막았냐? 너 정말로 괴물왕자님처럼 정령을 부릴 줄 아는 거야? 뭘 삼켰는데? 설마 우리 어릴 적에 떠들었던 서리바람의 악령? 그런 거?”
멍청하니 볼을 문지르며 듣던 로잭은 후다닥 손을 저어 투란의 말을 자르고 두서없이 마구 떠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가네 어쩌네 하다가 느닷없이 엘더 헌터란 말이 섞이니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었다. 덤으로 뒤늦게 정령에 대해서, 방을 봉쇄하는 에어로의 바람결에 대해서 느끼고 물을 생각이 든 모양이기도 했다.
투란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릴 적에 주고받았던 이야기…… 정작 투란은 키린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홀랑 다 잊고 있었는데, 로잭은 투란이 다루는 에어로를 보며 그 기억을 떠올려둔 모양이었다. 떠올려놓고 묻는 것을 살짝 뒤로 미루다가 잊은 듯하긴 했지만, 어쨌든 투란에게는 꺼낼 말을 떠올리게 했다.
“로잭, 봤잖아. 들었잖아. 내가 헌터 길드에서 혜택받는 거. 너무 자세히 알려고는 하지 마. 음, 참고삼아 말해두자면 나 아직 서리바람 악령은 못 만났어. 에어로는 좀 다른 녀석이야, 그냥 그 정도만 알아두고…… 아무튼 알아듣겠지?”
“내가 방해가 된다는 얘기, 알아들었다. 알아듣긴 했는데 말이야.”
“여차하면 왕궁 성벽을 깨부수고 도망쳐야 할지도 몰라. 몬스터 로드가 그 지경에 이르면 주변 돌볼 여력 따위 없다고, 로잭.”
“망할 놈이 협박까지 하네?”
성난 눈빛이 진심 어린 말투와 섞여서 로잭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투란은 그저 물끄러미 그 눈길을 마주 보면서 대답을 보챌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로잭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나 없으면 혼자 도망치는 것쯤은 쉽다, 이거지?”
“응. 아주 쉬워져. 에어로가 비상사태에 대비할 테니까, 나 혼자 달아나려고 하면 아무도 날 못 잡아.”
한 손으로 휭휭 허공을 나는 시늉까지 해 보이는 투란이었다.
떨떠름하니 로잭이 말을 잇는다.
“그래, 바람의 정령이 도적의 달인을 만든다고도 했었지. 좋아, 너 별궁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것만 보고 난 바로 티아라네로 튀도록 하지. 아직 게르민의 주문도 남아 있으니까.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게. 최소한의 확인이라고, 최소한의!”
“어기적거리다가 발목 잡히지만 말라고. 운명의 인도를 믿어봐, 로잭.”
투란이 마지막 당부란 듯이 말했다.
로잭은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흔들었다.
“망할 놈…… 믿어줄게.”
투란은 여전히 고민하고 갈등하는 낌새인 로잭을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정말로 걱정할 일 따위는 없다는 듯한 투란을 보다가 로잭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불쑥 묻는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알킨이 진짜로 별궁에 있는 것 같아? 그냥 그 아줌마 말만 믿는다고 하지 말고, 뭔가 근거가 있어?”
투란은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을 한다.
“응. 느껴져. 운명의 인도처럼, 보석이 나를 느끼고 나도 보석을 느끼는 기분이야. 별궁에 알킨이 있다는 말을 듣고, 거기 보석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부터 그렇게 느낄 수 있었어.”
“그렇군…….”
로잭은 짤막하게 중얼거리다가 긴 숨을 내쉬었다.
로잭으로서는 어린 시절 투란이 간혹 알킨이 어딘가에 숨었다 싶었을 때, 그 숨은 방향을 맞출 때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로잭은 투란이 보석에 미쳐 있다는 말에 무슨 숨은 의미가 있는가 의아했었다. 투란은 알킨이 숨은 곳을 가리키면서 ‘보석은 저쪽.’이라고 말할 때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럴 때는 대부분 맞는 방향이었다.
로잭이 이렇게 납득할 때, 투란은 납득하지 못한 드라고니아의 물음이 뇌리를 울리는 것을 들어야 했다.
―정말이냐? 너, 정말로 보석의 자취를 느끼는 거야? 아깐 아무 말 없었잖아?
‘아오, 그만해! 뭘 이리 쩌렁쩌렁 울려? 말은 안 했지만 거기서 그냥 나왔잖아. 설마 거짓말인가 아닌가 분별도 없이 얌전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냐? 내가 그 정도로 애송이냐? 좀 닥쳐!’
로잭에게 이상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투란은 힘껏 드라고니아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드라고니아도 슬그머니, 여전히 납득은 어려운 듯하지만 어느 정도 갈피를 잡았다는 듯이 조용해지고 있었다.
―과연 그렇군…… 여전히 그 정도 공명은 가능하단 말이지…….
더불어 투란이 뭔 소리인가 의아해할 말을 흘리기까지 했다!
‘너, 나중에 보자!’
일단 한마디 던지고 보는 투란인데.
―나중이고 뭐고 로잭은 지금 당장 여기서 달아나야 할 것 같다만?
‘응? 뭔 뜬금없는 이야기야?’
―아무래도 너의 양어머니는 별 수작을 부리지 않았지만, 그 별장을 지켜보는 다른 눈들은 온갖 수작을 다 부리려는 듯하잖냐?
아까와 다른 말을 덧붙이면서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감각에 프로브가 탐색한 결과를 덧씌워주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도 충분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나름대로 한적하고 안전한 곳에 자리 잡은 이 여관, 로잭이 함께 있는 이 방으로 다가오는 이들…… 얼핏 봐도 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수상한 모습이었고 자세히 보면 왕도에 사는 이들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 할 만한 차림새를 한 자들이었다.
해서 투란은 바로 로잭에게 말해야 했다.
“로잭, 챙길 짐 있어?”
“응? 무슨…….”
“당장 가야 할 것 같아.”
가벼운 손짓과 함께 투란이 말했다.
로잭은 그 손짓을 보고 낯을 구긴 채로 말한다.
“지붕 위까지는 올라가는 편이 좋은데, 나갈 여유는 있는 거냐?”
“짐 챙겨 들어. 올려보내 줄 테니까.”
투란이 단호하게 말하니, 로잭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즉각 외투를 들고 곁에 놔둔 배낭을 휘감아 두르면서 로잭이 고개를 끄덕인다.
투란도 그 재빠름에 공감하듯이 손을 위로 치켜들고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바람결이 투란과 로잭의 주변을 맴돌았고, 회오리치며 송곳처럼 바로 천장을 뚫고 위층을 넘어서 하늘의 풍경이 보일 때까지 관통해 올라갔다.
그 광경을 보다가 뚫린 구멍 아래 서면서 로잭이 말한다.
“됐어, 이제 갈 수 있어! 투란, 살아와라!”
“그래, 이제 가.”
투란은 짧게 대꾸해줬다.
그리고 로잭의 몸은 일그러지는 풍경과 어우러지며 바람과 빛이 되듯이 솟아올라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투란이 묻는다.
‘방해는?’
―못 하게 했다.
드라고니아가 방 주변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지니고 있는 마법봉을 비춰주며 말했다. 방 안에서 일어난 격렬한 바람결이 투란과 로잭이 있던 방을 겨냥하던 마법봉을 흔들며 엉뚱한 곳을 향하게 한 광경이 살짝 엿보였다.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으로 투란이 다시 묻는다.
‘저 막대기, 대체 뭐야?’
―그저 흔한 신전의 축성봉(祝聖棒)이야. 마법을 억제하고 몬스터 로드를 억누르기도 하지. 다만 정령 쪽으로는 전혀 힘을 못 쓴다. 그래서 드라코눔의 정령술을 신전 관계자들이 아주 싫어하지.
풋,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고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