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5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49)
‘두근두근하네?’
여전히 투란은 키득거리는 웃음을 볼에 매단 채였다.
다가오는 이들은 방문 앞에 멈춰 선 채로 한 명이 문턱에 다다르는 중이었다.
그 상황을 감지하며, 한쪽 어깨가 후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자신의 심장도 두근거리며 흥미로워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갑옷과 무장, 마법봉이 흔들거리는 일행의 틈새로 나온 한 명, 그는 이제 문을 부술 것인가?
―음? 흐음.
드라고니아가 그 행동을 흥미로워할 때, 투란은 살짝 당황했다.
‘뭐?’
똑똑, 상대방이 아주 정중하게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탓이었다.
예상 밖이었지만 투란의 입은 저절로 움직이며 반사적으로 삐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누구셔? 문 안 잠갔으니 열고 말해보시지?”
끼익, 작은 비명을 내듯이 문이 열렸다.
정중한 태도로 신중하게 인사하는 모습부터 보였다.
그러고 나서 문턱을 한걸음 넘고서야 입을 여는데.
“투란, 맞으십니까? 저는 알킨 공(公)께서 보낸 전령이옵니다. 당신을 알킨 공의 거처로 안내 드리려 왔습니다.”
문 두드림에 삐딱하니 대답한 투란이 바보가 된 듯하잖나!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조금 색다른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저놈 장님이냐?
‘어? 아.’
투란도 금방 무슨 뜻인가 깨달았고 느낄 수 있었다.
밖에 온통 무장한 일행을 대기시켜놓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막무가내로 뚫고 부숴놓은 방 안 몰골을 본체만체하는 짓이라니!
멀쩡한 사고방식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럴 리가 없잖은가.
무엇보다 저러면 로잭을 미리 탈출시킨 투란은 대체 뭐가 된단 말인가!
―생각하는 방향은 네가 더 이상해!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의식을 쫓는 듯하다가 투덜거렸다.
무장한 일행을 복도와 통로, 여관의 입구까지 늘어놓고 초대를 말하는 놈이나 재빠르게 로잭을 탈출시켜놓고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응한 투란이나 뭐가 다르냐는 듯!
물론 투란은 소리 없이 당당하게 대꾸할 수 있었다.
‘시꺼, 원래 못된 놈들이 더 정중하다고 했어.’
―뭐? 그건 또 어떤 얼간이가 그랬는데?
‘오러클 아저씨.’
―그 작자가 섬기는 신전에서는 그랬다냐? 보통 정중하면 영리하고 강하면서 난폭한 거야.
‘그건 또 뭔 헛소리야!’
뇌리를 오가는 투덜거림을 드러내지 않는 채로 투란은 툭툭 몸을 터는 시늉과 함께 일어섰다. 마치 갑작스러운 불청객으로 인해 자신이 이 황당한 상황, 천정이 무너지고 먼지를 뒤집어쓰는 몰골을 잠시 잊었다는 듯한 태도를 꾸민 셈이었다. 어찌 보면 누군가 문을 두드린 탓에 천장이 무너지고 먼지를 홀랑 뒤집어썼다고 타박하는 듯도 한 묘한 태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길잡이를 자처한 이는 그런 투란의 태도를 매우 무심하게, 혹은 아무 의미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흘려넘길 뿐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히 의아한 바를 말하는데…….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데요? 마침 찾아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길 안내할 분까지 보내니 이상하네요.”
너 수상하다, 란 말을 주욱 늘린 듯한 물음이었다.
길잡이는 흔들림 없이, 그 차림새가 가벼운 것과 다른 무거우면서도 여전히 공손하게 예의를 갖춘 태도로 답을 한다.
“남작 부인께 들러보셨더군요. 그때부터 지켜보는 이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초상화를 급히 그려 알킨 공에게 전했고, 알킨 공께서는 당신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투란이라 하시며 모셔오라 저를 보내셨지요.”
―투란, 근위기사인 것 같은데? 이 작자 말이야.
길잡이의 대답 위로 드라고니아의 말이 겹쳐졌다.
‘왜?’
투란은 추측의 근거를 짧게 되물었다.
―몰라. 하지만 저 장화와 벨트의 상감(象嵌)은 로그람 근위기사가 무장하지 않을 때 착용하는 문장이라 들었다. 저걸로 신분을 증명하는 경우도 있다 했어.
‘그래? 흐음.’
투란은 느긋하게 걸음을 내디디며, 길잡이가 뒤로 물러서며 손님을 모시려는 태도를 확고히 하는 모습을 보며 말한다.
“재밌네요, 알킨이 왕가의 근위기사를 심부름꾼으로 보내다니…… 어차피 만나야 하니 당장 가보도록 하죠.”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살짝 흐트러진 호흡을 고르면서 길잡이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투란의 눈길이 그 벨트와 장화 언저리를 노골적으로 훑어준 탓인가, 무엇을 보고 투란이 대뜸 ‘근위기사’란 말을 입에 담았는가를 깨달은 듯한 태도가 길잡이를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드는 듯했다.
움찔움찔.
드라고니아가 말한 축성봉이 성스러운 힘을 머금은 채로 까닥거리며 투란을 향해 떨어질 듯한 순간, 다시 제자리를 찾아 길을 걷기 위해 들고 있는 워킹 스태프일 뿐이라는 듯이 꼿꼿하게 세워졌다.
그 움직임은 꽤 미묘했지만, 투란에게는 길잡이가 한 걸음 뒤에서 분명하게 신호했다는 것을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곱게 갈 예정이니 난폭한 행동은 피하라고 명령한 듯한 상황이었다.
이는 주욱 여관을 채웠던 무장한 이들에게 곧바로 연이어 전해진 듯, 여관을 나서서 마차에 닿을 때까지 투란에게 축성봉을 내미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막상 마차 앞에 도달하니, 마차 문 양옆을 지키던 둘은 슬그머니 축성봉을 기울이며 투란을 향해 각자가 갖고 있던 쇠고리를 내밀려 하고 있었다. 축성봉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성스러운 힘이 내재된 듯한 쇠고리는 어디에 채우든 간에 족쇄가 될 듯 보였다.
그 꼴을 보고 살짝 걸음을 늦춘 투란이 피식 웃고 나직하게 말한다.
“곱게 가기 싫은가?”
연이어 길잡이의 목소리가 투란의 뒤편에서 세게 울려나온다.
“치워라.”
하지만 여관 안쪽에서부터 대기했던 이들과 달리 마차 앞을 지키던 둘은 쉽사리 쇠고리를, 축성봉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고 몇 마디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
둘이 동시에 떠드는 통에 투란은 길잡이가 어떤 호칭으로 들렸는가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뭐래, 이름이었지?’
―하멘 경이라고 했다.
‘오호? 겹쳐져서 안 들렸나?’
―그리 큰소리를 내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 녀석들은 바보인가? 아니면 자기과시라도 하고 싶은 건가?
드라고니아는 마차 앞에 선 둘이 재미있어 보이지만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길잡이도 마찬가지였던 듯.
“보렌! 뭘 구경하고 있나! 이 얼간이 녀석들 치워라!”
하멘 경이라 불리는 본래의 위엄을 담은 듯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명령에 빠르게 반응한 이가 있었으니, 마차 앞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둘이 순식간에 다른 이들에게 붙들려 치워졌다. 아무래도 보렌인 듯한 이가 재빨리 나서며 둘을 한 대씩 쳤고, 서둘러 움직인 서넛이 둘을 마차 곁에서 떼어내 저편으로 끌고 간 것이다.
키득, 웃는 시늉을 하고 투란은 거침없이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아담해 보인 마차였지만 막상 타고 보니 보통 사람 여섯 일곱은 거뜬히 나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앞뒤로 배치된 형태였다. 그 자리는 푹신해서 거의 귀한 집의 거실에나 놓일 소파를 떠올리게 했고…….
“이야, 좋네?”
낄낄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투란이 감상을 말했다.
하멘 경이라 불린 길잡이는 투란의 맞은편으로 고요한 태도를 유지한 채로 공손하게 착석하고 있었다.
마차는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거침없이 속력을 올렸다.
도시 한복판을 질주함에도 마차를 방해하는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 가속 속에서 투란은 낄낄거리는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지나는 풍경을 구경하는 시늉을 하는데.
―야, 이 하멘 경이 너한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데?
‘응? 아, 그래 보이긴 하네. 하지만 입을 다물고 꺼낼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하잖아? 저런 차림새 안쪽에 뭘 숨겨놓고 있는지도 굉장히 수상쩍은…… 아저씨겠지? 아직 할배는 아니겠지? 아무튼 하, 멘, 경이 말이야.’
―무장한 기사들을 몰고 왔잖아. 오러의 자취를 풀풀 휘날리는 중인데, 저런 차림새가 무장보다 덜하지는 않을걸? 그러니까 놀릴 생각 말고 그냥 물어봐라. 무슨 생각을 저리 복잡하게 하는가 말이야.
‘거참, 쓸데없이 호기심은…….’
소리없이 툴툴거리는 척했지만 투란도 길잡이를 자처한 ‘하멘 경’이 꽤나 꾸물거리는 꼴이 어이없기는 했다. 몬스터 로드를 억합하는 쇠고리를 준비까지 해놓고, 축성봉을 든 패거리를 감추지도 않고 몰고 나온 작자가 뭘 저리 우물쭈물하는가!
그래서 투란은 슬쩍 눈길을 보내 눈을 스치듯이 마주쳐준 다음에 밖을 보며 덤덤하니 말한다.
“잔뜩 준비하고 왔으면서 뭐 다른 말이라도 하고 싶어요?”
하멘이 깊이 숨을 고르고 씁쓸하면서도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투란의 말에 담긴 의미가 하멘의 목이라도 조른 듯…….
무장한 병력, 그것도 기사를 단체로 끌고 와서 강제로라도 끌고 갈 듯한 태세를 완벽하게 갖춘 다음에야 문을 두드렸으니 가지 않는다고 했다면 곱게 물러섰을 리가 없냐는 그 의미가 하멘에게 대체 왜 저런 표정을 짓게 하는가?
하멘은 깊이 몸을 좌석에 기대며, 결코 먼저 치고 나오는 위협적인 짓은 하지 않을 것이란 듯한 자세를 잡은 채로 투란을 향해 말한다.
“투란, 당신이 알킨 공과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은…… 짐작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잖습니까? 이제까지 당신은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며 살았고 알킨 공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잖습니까? 그러니 이대로 로그람을 떠나주실 수 없습니까?”
바로 대답 않고 투란은 눈길을 돌리며 좌석에 푹 기대앉은 채로 잠시 하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꽤 고민한 듯하지만, 망설임이 꽤 있었던 듯하지만 지금 하멘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나오는 오러는 그 의지가 단호하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입에 담고 뱉은 이상 그 의지를 굽힐 리가 없다는 오러 윌더의 각오가 훤히 엿보이는 셈이었다.
그래서 투란도 조금 진지하게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알킨이 뭔 짓을 하는가 관심없어요. 난 내 것을 돌려받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고 나서 떠나든 말든,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니까.”
“그렇습니까.”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하멘의 목소리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더 뭐라 하지 않겠다는 듯, 하멘은 무덤덤한 태도와 표정으로 고요해졌다.
드라고니아는 그런 하멘을 간단히 평가했다.
―아무래도…… 네가 돌려받는다고 한 말이 시위 줄을 놓게 한 모양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널 죽이려고 할 것 같다만?
‘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 나도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
―썩을 놈. 아, 성문을 넘었다.
촤르륵, 부드러운 포석을 스쳐가는 소리와 함께 마차는 어느새 성문을 넘어서 별궁으로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마차 너머의 풍경이 순식간에 높은 성벽으로 채워지고 우아한 궁전의 자태가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었다.
투란은 문득 그 풍경을 되돌아보며 낯을 찌푸렸다.
‘이상하네…….’
―응? 뭐가?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쪽 어깨, 역시나 왼쪽 어깨가 살짝 불끈불끈하면서 아쉬움과 함께 아련한 느낌이 심해지는 것을 깨달았고 이 궁전의 풍경이 왜 그런 반응을 이끌어내는가 의아할 뿐이었다.
하멘이 그런 투란을 물끄러미 보다가 살짝 망설이는 목소리를 흘린다.
“봄의 궁전, 정식 명칭은 그렇습니다. 보통은 별궁이라고 부르겠지만…… 왕궁의 관계자들은 정식 명칭을 더 자주 사용합니다. 왕비께서 왕가의 손님, 사적인 왕가의 벗들을 맞이하기 위한 용도로 쓰던 곳이지요. 왕비님이 안 계실 때는 법도에 따라 포스테인 후작가가 관리하는 곳입니다.”
“나무네, 나무 모양이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투란이 문득 기묘한 말투로, 높이 치솟은 첨탑을 중심에 둔 별궁 앞에 멈춰선 마차의 창 너머를 평하듯이 중얼거렸다.
하멘은 흘깃 투란이 바라보는 궁전의 정경을 살피고는 담담하니 말을 잇는다.
“로그람의 문장이잖습니까. 세계를 수호하는 경계의 신목…… 왕궁의 전체적인 정경도 그렇지만, 각 궁전마다 나뭇가지라든가 나무 형태를 띤 장식을 크고 작게 꾸며놓았지요. 때문에 왕궁에는 정원이 따로 없습니다. 궁전 하나하나가 모두 모여 이뤄진 정원이 왕궁이니까요.”
“그래요?”
느닷없이 친절하고 상세해지는 설명은 뭐냐고 어이없어 하는 눈빛을 흘리면서 투란은 대충 대꾸했다. 하멘도 문득 느낀 듯,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마차의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