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6)
Chapter 24 상실, 비상
애앵, 파삭.
굵고 큰 파리는 갑자기 스쳐 지나간 낫질에 박살 나서 흩어졌다.
치이이이이.
바포플라이의 잔해가 풀과 나무, 갈아엎어지고 파괴된 또 다른 거대한 폐허를 향해 작은 점처럼 체액을 뿌렸다. 하지만 이미 파괴된 폐허는 쉽게 바포플라이의 찌꺼기에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폐허를 가로지르는 엘만티스 떼에는 아무 상관 없었다.
찌이이이, 시리리리리.
곳곳에서 가늘고 긴 엘만티스의 울음, 동족을 향한 신호가 울려 퍼졌다.
엘만티스 떼는 서로의 신호에 따라 이 폐허를 낳아 버린 파괴자를 향한 궤도를 수정했다. 그 과정을 통해 엘만티스 떼는 각 개체가 지니고 있던 고대의 기억을 주고받았다.
파괴자에 대한 기억은 즉각 엘만티스의 진행 궤도에 영향을 끼쳤다.
자신들을 자극한 파괴자의 능력, 그 힘이 다시 뿜어져 나올 수 있는 곳을 피해서 파괴자를 파괴할 공략 가능한 방향이 설정되었고, 엘만티스 떼는 그쪽으로 일제히 선회했다.
그 선두를 차지하고 있던 엘만티스는 현재 파괴자의 상황을 점검했고, 날개를 떨고 몸속을 울리며 이를 뒤따르는 동족 떼에 전했다.
찌이이이이이, 시이이이이.
대부분의 짐승이나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벌레들 사이에서나 주고받을 수 있는 음향이 엘만티스 사이에 오갔다.
엘만티스 각 개체의 기억이 다시 한 번 교류되었다.
저런 파괴자에 대항했던, 엘만티스를 창조한 자들에 대한 기억은 새로운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선두부터 엘만티스는 낫이 달린 네 발이자 팔인 지체(肢體)의 끝을 몸 앞에 모았고, 그 몸은 투명해져 갔다. 저 파괴자의 능력 중 하나인 빛의 파동에 대항하는 은폐였고, 그 파동이 동반할 수 있는 강한 압력이 있다면 이를 찢고 돌파할 준비였다.
찌이이이!
엘만티스 떼는 작은 섬에 투명하게 기척 없는 고속의 움직임으로 당도했고 자신들의 움직임을 조율한 다음, 한꺼번에 파괴자를 향해 낫을 내밀며 쏘아졌다. 하나씩 닿았다가 저 파괴자가 일으킬 방벽에 나머지가 뭉개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공격이었다.
고대의 창조자가 파괴자의 움직임을 지상에 묶던 순간, 저 파괴자가 일으키는 방벽은 엘만티스의 낫과 갑각을 단숨에 뭉갤 정도로 강했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공격이 닿아 한 마리 엘만티스를 파괴자가 느끼는 순간, 몰려든 엘만티스 떼는 이미 저 파괴자의 두껍고 강인한 가죽을 제각각 찢어발기고 있었고, 고대의 전투는 그렇게 해서 엘만티스 떼가 승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되지 않았다.
느닷없이 치솟은 폭염의 장벽이 엘만티스 떼가 진입하는 공격의 궤도를 장악해 버린 탓이었다. 이 폭발적인 불꽃은 엘만티스의 형상이 보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소실시켜 파괴해 버렸다.
작은 섬에 진입한 엘만티스 떼는 그렇게 소리도,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로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콰아아아아아!
드레이크가 자신의 날개 아래쪽, 후반신(後半身)이라 할 수 있는 몸의 절반을 향해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일렁이는 불길 사이로 뭔가 스쳐 가는 듯한 어른거림이 있었지만, 곧 사라질 뿐이었다.
맹렬한 불길은 닿은 땅거죽을 금세 지글거리게 했고, 드레이크 자신조차 꼬리를 휘두르면서 움찔할 정도의 열기를 폭등시켰다. 하지만 그 불길의 목표인 굵고 튼튼한 덩굴줄기는 이 열기를 버텨 내고 있었다.
크르르륵!
분한 듯한 목 울림이 드레이크의 긴 목을 타고 연주되었다.
—허? 플레임 블래스터(Flame Blaster)를 버텨?
놀란 드라고니아의 속삭임이 부드럽고 선명하게 드레이크의 뇌리를, 투란의 의식을 울렸다.
‘플레임…… 뭐?’
—불꽃의 방출 혹은 파괴란 의미를 더 강하게 둬서 플레임 버스터(Flame Buster)라고도 하는 능력이다. 드레이크라면 대부분 갖추고 있는 거고, 인간 사이에서도 꽤 알려졌을 텐데?
‘드래곤 파이어?’
—뭐?
‘드래곤이 입으로 뿜어내는 불길…….’
—얘가 드래곤이냐?
‘이 덩치에 이 난리 치는 꼴을 보라고. 아니라고 하는 게 미친놈 취급 받을걸.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야.’
—지렁이를 몬스터 웜에 비유하는 격이구만.
‘너도 리틀 드래곤이니 뭐니 하잖았어?’
—그건 이놈이 존재하게 된 사연과 기능적인 측면을 따져서 그렇다는 거고! 너네는 그냥 덩치와 생김새랑 하는 짓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떠드는 거잖아.
‘흠, 나중에 들려줘. 드레이크 투란이 또 뭘 하려나 보네.’
—뭐? 무슨 투란!
드라고니아의 어이없어하는 외침이 울렸지만 투란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드레이크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였다.
악마의 심장이 자신이 뿜어낸 지독한 열기의 불꽃을 견뎌 낸 일은 드레이크에게 뭔가 애매한 당혹을 느끼게 한 모양이었다. 악마의 심장에 대해 드레이크로서 체험했던 일들이 완전히 부정당할 줄 몰랐다는 듯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또 한편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몸속에 스며들며 몸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악마의 심장은 아주 다른 놈이란 것을!
그런데 왜?
그 애매한 감정과 혼란이 피어나는 상태를 향해 투란은 강하게, 소리 없이 외쳤다.
‘몬스터 로드란 것을 잊었나! 이 심장 속에 작은 늪이 맴돌고 있는 것을 잊었어? 기억해 내라고! 드레이크 따위가 되어 잊지 말라고! 몬스터 로드, 투란! 드레이크조차 삼켜 버린 몬스터 로드 투란이다! 그 전에는 드레이크를 눕혀 놓은 고르고니아를 삼켰잖아! 이제 깨어나! 정신 차리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크륵, 시익, 시이익.
드레이크가 머리를 흔들었고, 목구멍에서 묘한 걸림 소리와 함께 거센 콧김을 안개처럼 뿜어냈다. 얼마나 짙게 뿜어냈는지, 콧김이 주변을 자욱하게 채우며 아직 이글거리며 남은 불꽃의 열기조차 덮어 가는 듯했다.
그리고 이 광경을 파악한 드라고니아가 급히 전해 준다.
—버닝 미스트(Burning Mist)! 조심해라!
‘뭔데?’
—불타는 안개라고! 저 콧김은 그냥 흘리는 콧물을 안개로 바꾼 것이 아니야! 연료다! 저걸 대상에 뿌리고…… 투란, 점화한다!
‘에……?’
빠득, 뿌드득!
드레이크의 이빨이 세차게 갈렸다.
가득 입가 언저리에 맺혔던 안개 사이로 붉고 가는 금이 가는 듯이 튀었다.
그리고 폭음!
청각적인 부분을 싹 지워 버리는 괴이함을 간직한 음향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심장의 지각 능력을 통해 파악했다.
괴상하게 뿜어냈던 콧김 안개는 딱 드레이크를 움켜잡고 있는 굵은 넝쿨 뿌리줄기 사이로만 스며들었고 달라붙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대상을 정한 것처럼, 다른 것에는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 흐느적거리는 안개의 선이 이어진 드레이크의 입, 그 언저리에서 시작된 불티를 바탕으로 한순간에 불꽃이 되어 폭주했다.
딱 자신을 얽매는 뿌리줄기만 노리고 태우든가 녹여 버리든가 하겠다는 특별한 공격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투란은 소리 없이, 짧게 평가했다.
‘드레이크, 진짜 바보야?’
—뭐? 이건 또 무슨 결과냐!
안개가 깡그리 사라지고 나타난 뿌리줄기는 금빛을 반짝거리는 비늘 가죽을 휘감은 채로 멀쩡했다. 비늘 가죽은 분명하게 드레이크의 몸에서 흘러내려 땅속에 박힌 굵은 줄기를 덮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드레이크 대가리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아예 몬스터 로드인 내가 전혀 하지 않을 짓만 하잖아. 이 드레이크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게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악마의 심장으로 드레이크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거냐? 그래서 저 정도 굵기인데도 이 드레이크가 떨치고 날아오르지 못하는 거였나?
‘차지라니, 애초에 그 줄기를 가져다가 꾸민 몸이라고. 너도 바보가 되었냐? 내 몸이 변하면, 너도 그런 식으로 영향을 받나? 그것참…….’
—뭐라! 누가 바보얏! 몬스터 로드의 능력이니까 그렇지! 뭔 놈을 삼키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대체 누가 아냐고! 너도 드레이크 따위를 처삼키고 이 꼴이잖아!
‘음, 그런가. 그러니까 일단 이거 진짜 어떻게 좀 해야겠다.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었다면, 난 이미 사상 최고가의 현상금이 걸렸을 것 같으니…….’
—죽든 살든 상관없는 현상금이겠군.
냉랭한 드라고니아의 덧붙이는 말이었다.
쿵, 쿵!
드레이크의 앞발이 세차게 땅을 디뎠다.
으득거리는 소리가 드레이크의 입가에서 울렸다.
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투란을 향해 덤비라고 외치는 듯한 자세였다.
어디에서 어떻게 덤비든 상대해 주겠다는 듯했다.
그리고 투란은 이런 드레이크의 형상을 향해 한숨 쉬듯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한 몸이라고! 정신 좀 차려! 제발!’
—이런, 정신은 이쪽에서부터 차려야겠다! 드레이크는 지금…….
콰아아아!
폭발적인 포효와 함께 드레이크의 몸이 아스라한 빛의 파동을 일으켰다.
빛의 파문은 드레이크를 섬세하게 휘감았고, 딱 드레이크의 모습을 이루면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맥동을 보였다. 점차 두껍고 강하게, 보다 크게 드레이크를 확대하고 축소하는 듯했던 맥동이었다.
드레이크의 입이 꽉 다물리고 코가 크게 열리며 길고 굵은 숨을 쭈욱 들이켜는 순간, 드레이크를 휘감은 빛의 형상이 비늘 가죽 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크륵!
짧은 울림이 드레이크의 입가에서 울렸다.
그리고 드레이크의 엉덩이, 뒷다리, 꼬리 부분의 여러 가닥의 줄기가 꿈틀하며 살짝 그 굵기가 오그라드는 듯했다.
‘헤에? 본격적으로 드레이크만을 형성하겠다고?’
어딘가 어이없다는 듯, 어딘가 차가운 사고가 울려 퍼졌다.
드레이크로부터 대꾸는 없었다.
대신 더 억센 빛의 파동이 다시 피어올랐고, 맥동하며 드레이크 속으로 스며들 뿐이었다. 이는 멈추지 않을 듯했다.
드라고니아가 드레이크를 대신하듯, 이런 투란의 생각에 대꾸한다.
—이거 통하고 있잖아! 드레이크의 내장기관에서 악마의 심장 쪽 구성이 축소되고 드레이크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 심장은 이미 완전한 드레이크라고! 이대로는…… 투란?
‘……모없어.’
낮고 여린 생각은 흐릿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그 속에 담긴 깊은 감정을 느낀 듯, 바로 묻는다.
—화내고 있는 거냐?
투란은 이에 조금 크고 분명하게 답을 돌려준다.
‘쓸모없다고. 화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판단한 거라고.’
—그래.
드라고니아는 더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투란을 씁쓸하게 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그는 마음 한구석에서 지금 화를 내고 있었다. 단지 화를 멀리 둔 채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상황이다. 드라고니아가 병렬…… 어쩌고 한 의식 덕분인 듯했다.
‘말이 통할 줄 알았다고. 그런데 전혀 안 통하잖아. 공유니 뭐니 하는 거, 결국 혼자만 차지한다는 뜻은 아니잖아. 근데 왜 드레이크처럼만 생각해? 엉망이잖아! 이건 고무쇠보다 더 엉망이라고!’
—고무쇠?
‘있어, 그런 거!’
이제는 그냥 화내는 기척인 대답이 터져 나갔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침묵은 마치 투란의 분노에 동참할 수 없다는 듯, 거기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듯한 기묘한 낌새를 띠었다.
투란은 그런 낌새에 상관없이, 자신을 향해 또렷하고 분명하게 결정을 되뇌었다.
‘드레이크를 벗어 버릴 수 없다면…… 지워 버릴 거야.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가 아니야. 마지막이다. 몬스터 로드, 투란인가 아닌가! 대답해! 드레이크 속의 투란!’
강한 사념이 빛의 맥동을 잠시 주춤하게 했다.
하지만 곧 두 앞발로 땅거죽을 강하게 움켜쥔 드레이크의 포효하는 듯한 심상이 투란의 의식을 향해 밀려들었다.
하늘을 날고, 불길을 뿜어내고, 안개를 불태우며…… 작은 새끼를 지켜보는 포악하고 강인하며 거칠 것 없는 드레이크,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외침이 가득한 심상이었다.
작고 여린 채로, 악마의 심장 따위를 품고 이리 숨고 저리 숨고, 지쳐 쓰러져 자면서 시체를 줍는 인간 따위는 싫다는 기분이 가득 담겨 있기도 했다.
‘아예 지랄을 하는군.’
투란은 얼음조차 얼려 버릴 정도의 차가운 심상을 품고 대응했다.
그리고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은 자신의 문장 깊은 곳을 들여다봤다.
염원을 담고, 기적을 바라던 기억을 다시 일깨우면서.
콰아아…… 크륵, 큭!
드레이크가 숨통이 조인 듯한 목 울림을 흘렸고, 새로 생성된 빛의 파동이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여리고 짙은 무엇인가가 드레이크의 형상을 휘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