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52)
‘귀찮네, 또 경고해줘야 하나?’
투란은 새삼스럽게 짜증을 느꼈다.
―안 해도 될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가 살짝 달래는 말투로 속삭였다.
금방 투란도 눈치챌 수 있었다.
새로 양쪽에서 두 개의 문을 열고 들어선 전투기사단, 이 실내가 중앙 첨탑기둥을 중심으로 꽤 넓어 연병장으로 반쯤 착각할 수도 있는 곳이지만 몰려든 수십 명…… 가볍게 봐도 수십 명이고 전투기사단의 소문을 떠올리면 백 명은 거뜬히 채우고도 남을 듯한 저 인원은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떤 형태의 대화도 모조리 칼부림으로 받아치고 마무리 짓겠다는 의도를 품은 상대, 그런 작자들에게 두 마디 세 마디 건네서 뭘 어쩌겠는가?
해서 투란은 그저 앞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나갔다.
똑바로 시선은 알킨에게 고정한 채로, 가로막으면 이미 널브러진 채로 고스란히 선례(先例)가 돼버린 이들처럼 될 것이라고 굳이 말로 하지 않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투란은 의지를 드러내며 나아갔다.
하지만 고작 세 걸음이었다.
“당신은! 자격이 없다!”
고함을 터뜨리며 청년이 검을 앞으로 겨눴을 때, 뇌성벽력이 그 끝자락에서 피어나 투란을 후려치러 날아든 것이다.
투란은 자신을 중심으로 울린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저 앞을 가득 채우고 덧씌우는 환한 광채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뇌전(雷電)의 가혹한 힘, 파괴적인 충격 따위는 투란에게 전혀 닿지 못하고 흩어지는 와중이었다.
“무슨?”
청년이 놀랐다.
“피뢰(避雷) 수단이 있다! 앞으로!”
전투기사단의 누군가가 혀를 차는 듯한 말투로 외쳤다.
방패를 앞세우고, 살짝 그 곁을 따라 칼끝이 내밀어진 모습으로 기사단은 투란을 향해 펼쳐진 대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발끝이 일제히 바닥을 밟고 울리는 그 소리는 박자가 정확해서 뭔가 연주를 하려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 틈새에서 청년은 표정이 구겨진 채로 마법을 뿌려낸 검을 거두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듯 움직였다.
그렇게 그들 사이로 두어 걸음 뒤처진 듯, 물러선 듯도 한 청년을 투란이 두 손가락으로 겨냥하며 알킨을 향해 묻는다.
“알킨, 나한테 전부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말에 알킨이 움찔했다.
묻는 의도가 뭔지 몰라도 의미는 명확했다.
일부러 투란 앞에 이들을 내밀어놓고 죽기를 기다리냐는 물음.
알킨은 낯을 찌푸리며 어이없다는 대꾸를 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알킨의 입술은 덜덜 떨리기만 했고 한 마디도 그 혀끝에서 새어나오지 못했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투란이 내밀고 있는 손가락,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까닥이고 있는 탓이었다.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로, 그저 펼친 손가락 둘을 까닥였는데 그 앞의 전투기사단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반응하며 방패를 휘둘러 대응하려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빠른 반응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손가락 끝, 손톱에 맺힌 핏방울이 흘려낸 실가닥은 요동치며 뇌성벽력을 뿜어낸 검 대신에 방패를 내세우고 있는 청년에게 닿고 있었다.
기사단 중 한 명의 방패가 뒤늦게 그 요동치는 실가닥을 방패로 밀어내는 듯한 순간, 방패가 베이고 있었다. 마치 부드러운 천조각을 날카로운 칼날에 들이댄 듯한 광경.
그리고 청년의 방패 앞, 허공에 금이 갔다.
허공에 생겨난 균열을 투명한 달걀의 표면을 그려내듯이 번져 갔고, 투명한 달걀을 깨부수듯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청년의 경악한 표정이 깨져나가는 허공 사이로 자리 잡듯이 드러났다.
“호, 홀리 가드가! 홀리이이……!”
사제 중 누군가 놀라 외쳤다.
마치 마법사가 다시 주문을 외우고 마력을 채우려는 듯한 외침인 듯했지만, 청년이 방패와 함께 요동치는 실가닥에 수직으로 동강 나며 무너져 내렸기에 중간에 멈춰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기사단은 멈추지 않았다.
투란이 청년에게 집중한 틈새를 노리듯이 기사단은 산개했고 투란을 감싸며 질주하는 원형의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 또한 그들을 향해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채찍처럼 휘두르는 움직임을 펼쳐냈는데…….
핏빛의 실가닥, 모두가 눈동자에 선명하게 새길 수 있는 것은 그 실가닥이 핏빛을 머금고 허공을 넓게 쓸어가며 휘젓는 광경이었다. 그 실가닥에 걸린 기사는 중무장한 그대로 토막이 나서 바닥을 핏물로 채워 넣으며 나뒹굴어야 했다.
동료가 곁에서 그렇게 살육당하는 광경을 보고 느끼면서도 전투기사단은 망설이지도 않았고, 놀라 둔해지거나 눈치를 보는 낌새도 없었다. 흡사 이미 상대가 강대한 몬스터일 거라고 각오라도 한 듯이 치밀하고 빠르게, 원을 그리며 질주하는 채로 모여들며 투란을 검의 간격 안에 담으려 할 뿐이었다.
오러가 불타듯이 휘몰아치며 투란이 저지른 것처럼 자신들도 투란을 토막 내고 동강 내서 바닥을 그 피로 물들이겠다는 의지를 맹렬히 드러내는 기사단의 모습은 어찌 보면 장엄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런 결의가 가득한 모습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검의 간격이 닿을 무렵에는 여지없이 토막 나서 먼저 바닥에 피와 살을 쏟아내며 튕겨 나가고 나뒹구는 기사만이 있었고, 투란의 살갗에는 칼끝이 그어내는 바람결 하나도 닿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위대한 불꽃이여!”
“성스러운 광휘여!”
사제들의 외침은 기사단의 절반, 수십 명이 도륙당한 다음에야 터져나오고 있었다. 더불어 그들이 뿌려낸 신성한 마법의 힘이 뒤늦게 전투기사단에게 깃들기는 한 듯, 기사들의 움직임과 오러가 한층 더 강화되며 투란을 휘감으며 압박하는 돌풍까지 일으키기 시작했다.
가녀린 핏빛 실가닥도 그 맹렬한 위세(威勢)를 돌파하지 못하는 듯, 투란의 주변을 맴돌고 휘감기만 하는 듯했다.
그 위축된 모습을 향하듯, 전투기사단의 움직임에 가세한 붉은 창이 있었다.
창의 주인은 청년과 함께 기사단을 지휘하는 듯했던 여성, 아직 어른이라기에는 모자란 듯 보이지만 전투기사단의 중무장을 제대로 갖춘 소녀였다. 소녀의 외침은 강렬하게 맴도는 전투기사단의 돌풍과 함께 투란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오라버니를! 네까짓 것이! 신의 위명(威名) 아래 저주하겠어! 게이저, 내 혈육의 죽음을 삼키고 복수하라!”
강렬하게 떨리는 창의 울음소리에 투란의 눈길이 휙 돌아갔다.
붉은 창이 짙은 광채를 머금은 채로 전투기사단의 움직임을 관통하듯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창을 쥔 소녀, 청년의 누이동생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은 채였다. 들고 있던 방패가 굽은 채로 창을 내미는 손목부터 팔뚝, 어깨까지 휘감은 형태로 변해 있기도 했다. 더불어 기사단과 별 차이 없던 무장이 묘하게 부풀어 더욱 크게 착용자를 감싸고 감춘 듯한 형태로 변한 채이기도 했다.
그 모양을 보자마자 투란은 불쑥 떠올릴 수 있었다.
솔로얀의 마갑, 그중에서도 제법 비싼 것.
다른 감상은 별로 없었다.
붉은 창이 신성한 광휘를 머금고, 불꽃을 휘감은 채로 길이가 늘어난 채로 전투기사단과 호응해서 찔러오는 풍경의 한복판에서 투란은 그저 나른하게,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다시 알킨을 바라보는 태도가 되는데…….
―야, 조심해! 저거 진짜 신벌(神罰)의 저주(咀呪)를 품……!
드라고니아가 다급하게 붉은 창에 대해 경고하려 했다.
사제들이 성가(聖歌)를 영창(詠唱)하여 불어넣은 힘을 바탕으로 강화된 오러가 불길처럼 번져오는 와중에 뻗어오는 가시바늘 같은 창이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경고였지만, 누가 듣더라도 당연하다 여길 날카로움을 간직한 창의 일격이기도 했다.
한데 투란은 전투기사단이 어떻든, 붉은 창이 어떻든 관심 없다는 듯이 알킨을 향해 다시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투란이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렇게 여길 수 없는 까닭은 갑자기 부풀고 있는 투란이 오른쪽 어깨 때문이었다.
찰랑이는 거품처럼, 하지만 그 속이 꽉 채워진 거품처럼 어깨가 부풀고 흘러내리며 팔을, 손목을 타고 손등까지 덮으며 드러낸 것은 자잘한 가시가 꾸물거리며 담긴 수조(水槽)…… 그런데 그 가시가 불룩거리며 줄기가 되어 자라고 쑥쑥 뻗어나오는 몰골이라니!
본격적으로 몬스터의 형상을 드러낸 몬스터 로드는 누구라도 긴장하고 경계심을 갖게 할 듯했다. 그런데 전투기사단의 반응은 그런 경계심보다 황당해서 당황스러운 듯한 쪽이었다.
마치 투란이 드러낸 몬스터, 가시수렁을 잘 아는 듯한 분위기였다.
알킨도 순간적으로 흠칫한 듯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이며 ‘가시수렁?’이라고 되뇌는 듯했다.
그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붉은 창이 부풀어 오른 가시수렁의 형상에 닿았다. 창끝이 날카롭게 긁어댔으나 결코 찔렀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표면을 긁었고 붉은 자취를 남긴 것에 불과했으므로…….
그 기묘한 창질이 닿는 감각에 투란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저주를 남긴 거야!
드라고니아가 경고를 듣는 척도 안 한 투란에게 짜증 섞인 외침을 터뜨렸다.
이 또한 투란은 무시하는 듯했다.
하나 가시수렁의 형상은 작게 남은 붉은 얼룩을 무시하지 않았다.
“핫! 그 저주가 너를……!”
길게 확장되었던 창을 축소시키며 우쭐하려는 듯한 큰 목소리가 여운만 남긴 채로 멈춰지고 말았다.
촤아악!
전투기사단은 자신들을 휩쓸어 오는 가시수렁의 줄기, 촘촘한 가시가 가득한 촉수다발에 맞서야 했다.
붉은 창을 내지른 소녀는 느닷없이 터져나와 번개처럼 툭툭 꺾여 촉수다발과 전투기사단의 난전 속을 돌파해 찔러오는 한 가닥…… 가시수렁의 줄기와는 전혀 다른 혓바닥에 놀라 창대를 들어 막아야 했다.
그리고 그 광경의 결말을 알킨은 눈 깜짝도 못 한 채로 모두 지켜봐야 했다.
전투기사단은 가시수렁의 출현에 놀란 듯했지만 곧 익숙하게 대처하며 파고들려 했다. 방패로 밀어내고 칼등으로 쳐내고 간간이 칼날로 절단하며 틈새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이미 가시수렁을 충분히 겪어 익숙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은 가시수렁의 가시 끝에 새롭게 맺힌 핏방울, 그 핏방울이 가늘고 길게 흘려내는 붉은 가시의 휘청거림까지 대처하지는 못했다.
방패가 갈라졌고 칼날이 쪼개져 흩어졌다.
중갑이 마른 나뭇잎처럼 산산조각 나는데, 충격이 아니라 잘게 베인 탓이었다.
가시수렁에 엮인 핏방울, 그 위력이 강화된 오러도 잘 만들어진 무장도 깡그리 무시하며 절단해가는 광경은 뼈와 살, 피를 흩뿌리며 참혹한 배경을 꾸미고 있었다.
그 배경의 중심에 선 투란, 가시수렁 속에서 붉은 얼룩을 담는 입의 모양이 나타난 채였고 입은 붉은 얼룩을 덮어 삼키는가 싶더니 곧바로 우물거리는 입술 모양이 되어 혀를 내밀었다. 그 혀가 바로 붉은 자취를 남긴 창을 향해 번개처럼 허공을 가르고 뻗어나갔으니…….
창대가 동강 나고 붉은 광채가 단숨에 가늘고 긴 혓바닥으로 옮겨갔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소녀의 갑옷이 산산조각 난 것은 혓바닥이 퉁겨진 순간이었다. 갑옷을 박살 낸 충격파는 그대로 소녀의 몸까지 으깨면서 퉁겨버렸다.
귀족부인이 비명을 질렀고, 알킨은 그때서야 자신이 본 광경이 뇌리에 새겨지며 끔찍한 공포가 밀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전투기사단의 마지막 한 명이 저편에서 가시수렁의 줄기에 꿰인 채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데…….
쿠웅.
배와 가슴이 뚫렸고 두 팔이 뒤로 꺾인 몰골이었지만 마지막 기사는 두 발로 바닥을 디뎠다. 딛자마자 살가죽으로 겨우 붙어 있던 한쪽 다리가 툭 떨궈지듯 끊어졌기에 기사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채로 기사는 입술을 달싹이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서 투란을 향해, 그 너머의 알킨을 향해 생의 마지막 말을 토해낸다.
“왜 가시수렁이…… 이건 아니잖아…… 이런 괴물이 아니었다고…….”
누구를 향한 원망인지, 무엇을 향한 한탄인지 알 수 없는 몇 마디를 끝으로 기사는 목을 떨궜다. 오러가 흩어지고 기사의 머리는 몸통과 분리된 채로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느닷없는 고요함이 잠깐 찾아오는 듯했지만, 곧 피 웅덩이를 걷는 소리가 이를 몰아내 버렸다.
찰박, 찰박.
알킨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투란을 볼 수 있었다.
신성한 장막으로 인해 왜곡되어야 할 광경조차 없었다.
때문에 알킨은 뒤늦게 사제들이 어떤 몰골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돌아볼 수가 없기에 알킨은 목소리를 쥐어짜 내 속삭여야 했다.
“사제! 성화의 사제단! 뭘 하고…….”
투툭, 풀썩.
대답 대신에 짚단 넘어가듯 쓰러지는 소리가 알킨의 귓가에 닿았다.
귀족부인이 새로운 비명으로 그 광경을 알킨에게 설명했다.
“주, 죽어버렸어! 몬스터 로드 따위는 최상급이라도 억압할 수 있다더니! 내 딸, 내 아들까지 모두 죽여놓고 죽어버렸어!”
알킨은 이제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느꼈다.
투란이 말없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알킨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