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58)
‘야! 개썩을, 이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뭐?
너무 느닷없이, 가속된 사고 속에 던져진 투란의 물음에 드라고니아가 당황했다.
‘썩을……이라고 하잖아, 보통은.’
―너, 이 상황에서…… 하아, 언더섀도우에서는 ‘썩을’이란 말보다는 ‘지랄’이라는 말을 욕설로 더 자주 썼다. 썩은 채로 나돌아다니는 데드워커가 잔뜩 있었으니까, 썩는다는 표현을 경계하는 셈이려나? 그래서, 무슨 생각이냐?
울컥하려다가 침착하게, 길지 않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느닷없는 호기심에 답하면서 되묻고 있었다.
‘그릇이 아홉 개야.’
―그런데?
‘심장을 아홉 조각 내서 바치는 곳은 아닐 테지?’
―그래, 하나의 그릇 안에 심장은 하나씩만 담도록 한 모양이다만?
‘몬스터 로드가 이 자리에 선 적은 없다는 얘기지.’
―뭐? 그야…… 왕족이 몬스터 로드였던 경우는 반역왕의 아들인 키린 정도일걸? 그 경우도 왕실 밖에서 태어나 자란 탓이고, 반역의 패왕도 평범하게 왕위를 계승한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최소한 왕가의 마법이 보호하는 동안에 왕족이 몬스터 로드가 되는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러냐?’
키득거리는 듯이 되묻는 시늉을 해보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심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장의 풍경 속에 깊이 드리워진 투란의 그늘진 마음이 ‘천칭’을 이루는 미세한 톱니를 모조리 갈아버릴 듯이 격동시키며 굴리고 있었으니까.
그 격동을 담은 의지로 투란이 대체 뭘 하려는가?
드라고니아는 그 답을 알기 전에 경고부터 해야 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심장을 적출당할 거야. 대비를…… 엉? 야, 얌마!
화들짝 놀라는 것으로 매듭지을 수밖에 없었다.
카이람이 말한 제례, 그 마법의 힘이 주변을 침습해오며 ‘그릇’과 그 받침 지팡이가 감싼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파악한 투란이 느닷없이 자신의 왼손을 가슴팍에…… 손끝이 심장을 겨냥하도록 만들고는 곧바로 샤벨투스의 발톱을 손가락 끝에 형성해낸 것이다.
그 날카로운 발톱―손톱―이 티끌만큼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투란의 가슴을 가르고 파고들었다. 피가 끓듯이 모락모락하는 채로 가슴이 갈라졌고 그 안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이 그 실체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런 몰골로 투란이 카이람을 바라보는데, 카이람은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문득 깨달을 수 있었다.
카이람은 저 자리에 선 채로 심장을 가르는 왕을, 왕자를…… 왕족을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어쩌면 최초의 제례를 시행한 이가 카이람, 마법을 통해 만들어진 몸으로 지켜보는 시조왕 자신일 수도 있다.
도대체 저리 망령처럼 버티면서 얼마나 많은 왕족이 심장을 바치는 꼴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정말로 로그람의 건국왕, 시조라면 그 모두 자신의 자손일 텐데…….
‘아, 그래서.’
문득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카이람은 지금 전혀 냉정하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저 냉정한 얼굴에 박혀 있는 눈동자에는 한없는 비탄(悲嘆)이, 절규(絶叫)가 맴돌고 있다.
그럼에도 카이람은 멈추라 말하지도, 그만두게 하려는 손짓도 않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만약 마법이 심장을 적출하지 못한다면, 여기 선 자가 스스로 심장을 바치지 않는다면, 직접 나서서 뽑아낼 듯한 태도로 지켜볼 뿐이었다.
촤악, 툭.
심장이 ‘그릇’ 하나를 채웠다.
두근두근, 여전히 맥동하는 여력이 마력의 파동과 동조했다.
‘그릇’이 일으키는 미묘한 공명, 투란은 그 공명과 함께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여운’을 느끼고 알 수 있었다.
‘미움.’
심장을 적출당하고 생명을 잃은 이들은 시조인 카이람을 증오(憎惡)했다.
‘안타까움……?’
시조를 바라보며 그 고통을 공감한 이들은 마법의 힘을 빌려 실체화한 카이람을 가련하다 여겼다.
‘슬픔.’
하나뿐인 심장을 바치면서도 자기만으로 끝나지 않는 왕가의 숙명을 슬퍼하며 죽은 이들도 있었다.
이 자리에 선 이들이 품어야 했던 온갖 사려(思慮), 사념(思念)이 맥동하며 투란의 마음으로 흘러들어왔다.
‘어?’
그 복잡하고 다양한 심상 중에 모두가 공유했던 한 가지 마음가짐이 있었다.
왕으로서, 혹은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족으로서 자신의 피에 새겨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다…… 고대로부터 지켜온 이 왕국이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이 숨 쉬는 동안에 멸망하는 것만큼은 막는다.
투란은 카이람이 알킨의 낯짝을 짓밟던 광경을 떠올렸다.
자격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던가.
‘그릇’에 담겨 맥동하는 심장과 동조한 마력의 파동, 그 안에 새겨진 기억의 조각들을 통해 알 수밖에 없었다.
‘왕이 지키는 나라, 왕은 나라를 지킨다.’
카이람의 말이 심장이 빠져나간 가슴을 울리는 듯했다.
피식, 투란의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투란이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그 긴 세월 동안 몬스터 로드인 왕족이 심장을 바친 적은 없었다.
몬스터 로드가 된 왕족이 없었던 것일까?
투란은 ‘아니.’라고 스스로 답할 수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을 전이(轉移), 각인(刻印)한 이들은 아마도 왕가의 마법조차 거부할 수 있었을 터였다.
이렇게 투란처럼 스스로 발을 묶는 약속을 한 채로 서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달아난 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들의 심상과 기억이 남겨졌을 리가 없다.
“처음인가 보네요? 몬스터 로드가 여기 선 것이.”
슬그머니 새는 웃음과 함께 투란은 카이람에게 말했다.
그리고 카이람의 고개가 끄덕여지거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투란의 손이 다시 한 번 가슴을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왔다.
두근두근, 새로운 심장이 투란의 손에 들려 있었다.
툭, 두 번째 ‘그릇’이 채워졌다.
쿠릉, 크르릉.
사방에서 울리던 지진이 잦아들고 요동이 줄어들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투란은 두 번째 심장과 함께 일어난 변화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다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그릇’에 심장이 담겼을 때, 완전히 뒤집어 엎어질 듯한 왕국이란 판을 간신히 다시 붙들었지만 그 소동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며칠 걸리려는 듯한 상황이었다. 간신히 이어진 실로 흩어지려는 마법을 겨우 묶어둔 것처럼.
두 번째 ‘그릇’에 심장이 담기는 순간, 가늘고 질긴 실은 굵고 억센 쇠사슬이 된 것처럼 묶고 당겨서 강제로 소란을 짓누르는 모양이었다.
‘아홉 그릇을 모두 채워야 하는 마법이네?’
어이없는 웃음이 투란의 입가에서 새롭게 맺혔다.
자식이 아홉이라도 한 번에 다 갖다 바쳐야 할 지경이잖은가!
왕이 방탕해서 자식이 수십이라도 두어 번이면 모조리 심장 뽑혀 죽는다니!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갖다 바치도록 했겠냐?
드라고니아가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무슨 망상이냐는 듯이 핀잔했다.
‘저 아저씨라면…… 했을지도?’
여전히 카이람을 바라보는 채로, 한 번 더 가슴에 손을 가져가는 채로 투란은 키득거리는 웃음을 더 짙게 입가에 새겨넣으며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세 번째 심장이 세 번째 ‘그릇’에 담겼다.
안개와 구름의 벽이 영롱한 반짝임을 머금으며 왕도로 퍼져나가는 여린 빛무리를 뿌려내는 듯했다.
그 빛의 여린 파문이 무슨 의미인가, 투란은 맥동하는 심장과 호응하는 마력의 파동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간신히 매달린 채로 형태만 겨우 유지하던 마법, 훼손된 마법이 다시금 마력을 머금으며 원형을 되찾고 본래의 위용을 다시 드러내고 있었다.
이를 알고 난 투란은 금방 ‘알고’ ‘깨우칠’ 수 있었다.
왕가의 마법, 왕의 심장을 열쇠 삼는 마법은 왕족의 심장을 더함으로써 그 잠금을 풀어낸다. 너무 오랫동안 잠긴 채라 손상된 부분이라도 다시 한 번 심장이 그릇을 채우고 마력의 문이 열리게 되면, 마법 또한 원형을 되찾는다!
그 규모는…….
‘더 필요하네?’
왕국의 경계까지 이르게 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제물, 왕족의 희생을 요구하도록 되어 있었다.
심장의 맥동과 교류하는 마법, 투란은 그 마법이 감각적으로 알려주는 바를 깨달으며 해야 할 일은 바로 정했다.
툭, 툭, 툭…….
빠르게 ‘그릇’ 안에 심장이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다.
카이람이 반응한 것은 네 번째 심장이 자리 잡고 다섯 번째 심장이 떨궈질 때였다.
“야, 야, 야아아!! 하이람! 하이람! 이거 뭐야, 이런 일은…… 하이람!”
‘하이람?’
투란은 그 외침 속에 담긴 이름에 갸웃했다.
―아…… 로그람의 건국왕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어. 마도에 능숙했다는…… 하이람일 거야.
드라고니아가 새삼 놀란 듯이 말했다.
그 놀라움을 증명하듯 카이람의 곁에는 새로운 형상이 맺혀지고 있었다.
마력이 엮이면서 이뤄진 형체는 카이람과 꼭 닮았지만, 그 눈빛은 붉었고 눈썹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탈색된 모습이었다.
여섯 번째 심장이 ‘그릇’을 채울 때, 하이람의 형체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투란이 살짝 갸웃하며 그 형체를 살피는 채로 다시 가슴에 손을 가져갈 때, 하이람이 핏기 없어 보이는 입술을 열며 음성을 토해낸다.
“대변혁을 일으키려는 거냐? 그건 로그람 왕국뿐 아니라 너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어! 몬스터 로드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몇 마디는 곁에서 투란을 초조하게 보던 카이람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하이람!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쟤 좀 말려보라고! 이대로는…… 하이람!”
붉은 눈, 하얀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카이람에게 거부하는 듯했다.
때문에 카이람은 더 놀라는 듯한데, 하이람은 투란을 똑바로 바라보는 채로 하던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아홉 심장이 바쳐지게 되면, 로그람은 망가진 마법을 복구하고 왕국을 원래 꿈꿔왔던 형태로 재구성하려고 할 거야. 그 과정에서 닥쳐올 위협은 너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될 터이다. 그래도 할 것이라면, 그릇을 모두 채워라.”
투란은 눈을 살짝 깜박이며 하이람이 진심인가를 가늠하려 했다.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투란의 뇌리를, 가슴을, 심상을 울리는 포효를 터드리며 하이람의 갑작스럽고 엉뚱한 이야기에 대해 강경한 말을 쏟아내는데.
―하지 마! 로그람 시조왕의 형제는 독자적인 길을 걸은 대마법사이지만 그 성정은 시조 카이람보다 더 과격하다고 했어! 일단 멈춰, 투란! 무슨 일인지 자세히 들어보…… 야, 야, 야아아!!
그 틈새에 카이람은 하이람을 향해 한 팔을 뻗어 거의 멱살잡이하듯, 투란을 바라보며 옆으로 뻗은 탓에 조금 괴상한 모양이지만 어쨌든 그 가슴팍을 꽈악 잡아당기는 모습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너 대체 애한테 뭔 말을 하는 거야! 저 애는 아무거도 몰라! 지금 그딴 얘기를 할 때가……!”
“버려진 아이로 자라게 방치했잖아. 그런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왕의 의무를 떠넘기기까지 했어. 그렇다면 왕으로서 저 아이가 무엇을 하든 받아들여야지! 설혹 그 결과가 로그람의 멸망이라 해도!”
가만히 자신의 가슴을 붙든 카이람의 손위에 손을 얹어가며, 떨쳐낼 생각은 없는 듯이 그저 손을 겹치는 채로 하이람이 말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이 확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품고 있는 비탄에도 불구하고 로그람의 시조로서 투란에게 희생을 강요한, 자연스럽게 희생할 자리로 몰아넣은 카이람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이람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권하고 있으니까.
카이람도 어처구니가 없는 듯, 황당해서 투란을 보던 눈길까지 돌려 하이람을 보는데…… 제정신인가 아닌가 확인하는 눈빛이 아주 또렷하게 갈색 눈동자에 맺히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이람은 붉은 눈동자를 또렷하게 드러내며 투란을 바라봤고, 고개를 끄덕이는 태도로 투란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다시 한 번 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쌍둥이 형제, 똑같이 생겼을 터이나 어째서인가 조금 다른 외모로 형성된 둘을 보며 투란은 미묘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
카이람의 행동은 마음에 거슬렸지만, 어딘가 투란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느끼고 인정해야 했다. 나라를, 세상을 뒤집어엎을 듯한 사고가 터지고 있는데 무슨 상세한 설명 따위를 한단 말인가. 일단 뭘 하듯 해놓고 볼 일이지!
그 일이 투란 자신에게 그리 득이 있는 일은 아닌 듯하지만…… 어쨌든 사냥에 미쳐버린 몬스터 헌터가 자신은 물로이고 가족, 동료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딱 카이람이 그 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이람은…….
‘홀시딘 닮았단 말이.’
투란이 깊이 인연을 쌓은 상아탑의 대마법사가 부추기는 듯하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