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6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59)
“마법사랑 엮여서 좋을 꼴 볼 것 같냐!”
몬스터 헌터들이 투덜투덜 자주 입에 담는 말이었다.
투란도 홀시딘과 엮이면서 그 까닭을 몸소 자주 느꼈다!
홀시딘의 경우에는 투란에게서 확실하게 헤쳐나갈 힘이 있다고 봤기에 일을 엮는 편이지만, 마법사 중에는 될 대로 되라고 엉뚱한 사람을 엮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세상을 떠도는 로그메이지라면, 악당이면서 마법사란 그 호칭처럼 대부분 엮이는 사람 사정 따위 무시하고 자기 일만 중시해서 덤터기 씌우는 일을 꺼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하이람은 어떤 경우인가?
―하지 마!
드라고니아는 강력하게 막으려는 중이었다.
카이람 또한 ‘안 돼! 야, 하지 마!’라고 하이람 곁에서 투란을 향해 급하게 외치는 중이었다. 어떤 까닭에서인가 투란에게 달려들어 붙잡는 짓은 못 하는 모양이지만 그 태도는 이미 몇 번이든 달려들어 멱살잡이했을 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 속에서 꿋꿋하게 투란을 보며 원하는 대로 하라는 태도인 하이람…….
키득,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웃음을 입꼬리에 매달고 투란은 손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아홉 ‘그릇’에 아홉 심장이 보다 빠르게 채워졌다.
격동이 찾아온 것은 그 아홉 번째 심장이 ‘그릇’에 떨궈져 닿는 순간이었다.
‘그릇’을 지탱하는 지팡이, 조그마한 기둥이라 해도 좋은 지팡이들이 투란에게서 멀어지며 크게 펼쳐졌다. 로그람의 성수, 투란 앞에서 이름과 함께 피를 얻어간 왕의 마도구가 핏빛 보석을 투란 앞으로 이슬방울처럼 떨어뜨렸다.
보석은 붉은 광채를 머금고 투란의 앞쪽에 머물렀다.
어느 순간, 투란은 자신이 마도구, 로그람의 성수를 마주하며 아홉 심장을 머금은 아홉 ‘그릇’이 원형으로 포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투란을 중심으로 아홉 심장이 ‘그릇’ 안에서 박자를 맞춰 연주하는 듯한 맥동을 퍼뜨렸다.
동시에 투란은 로그람 왕국의 전경(全景)을 볼 수 있었다.
환영(幻影)으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지도…… 그 중심에 덩그러니 돌출되어 표시된 것은 로그람의 왕도였고, 거기서 한 번 더 튀어 오른 것이 왕궁이었다.
“저건 뭐죠?”
왕궁을 덮개 삼아 지하 깊숙이 파묻힌 거대한 어둠, 심장처럼 맥동하며 섬뜩함을 드러내는 시커먼 것이 있잖은가.
결코 왕의 휘하에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몬스터 로드의 본능으로, 왕의 마법을 통해 투란은 문득 알 수 있었다.
명백한 위협…… 도대체 무엇인가?
왕궁을 덮개 삼아 지하에 깔아뭉개고 있는 저 시커먼 어둠은 왜 로그람의 풍경이 드러나는 순간에 아홉 심장과 함께 맥동하고 있는가?
“그래서 하지 말라고 했잖아앗!”
카이람이 외쳤다.
“하지 않았어도 깨고 올라왔을 거야, 알잖아?”
하이람은 냉정하게 이리 말하고 있었다.
로그람의 건국왕과 그 쌍둥이 형제의 주고받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 투란은 알 수 없었고, 알아볼 틈도 없기는 했다.
퍽!
“사고치고 나서 하루가 지났냐! 여기 오기 전에도 펑펑 터뜨렸잖아! 홀랑 무너뜨려서 파묻힌 지가 하루가 지나길 했냐고! 왜 내키는 대로 일단 저지르고 보냔 말이야! 딱 봐도 수상한 마법사가 수상하게 권하고 있는 거잖아! 도대체 왜 내 말을……!”
“앙헬?”
투란은 머리통을 세게 내리찍은 주먹을 보고, 입을 벌려 자신에게 퍼붓는 커다란 형체를 바라보며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낼 수 있었다.
황금빛 뿔, 황금빛이 맴돌지만 붉은 바탕이 노골적으로 번들거리는 비늘, 굵고 거대한 이빨이 가득 박힌…… 어찌 봐도 용이 분명한 머리통, 드레이크의 날개가 두툼하게 부푼 어깨 너머에서 당당하게 자리 잡은 모습은 투란에게 저절로 드라고가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오랫동안 품고 들어야 했던 드라고니아라니!
“이 자식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응? 엥? 엉? 헉? 크읏!”
으르렁거리는 말투가 투란의 추측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지만, 그다음에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는 외마디 소리들은 드라고니아 자신도 이 사태를 전혀 짐작도, 납득도 못 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투란은 바로 이 상황에 대해, 이 자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존재를 향해 물음을 던진다.
“왕의 마법?”
하이람이 투란의 살짝 돌린 고갯짓에 마주 끄덕이며 대답한다.
“대이적(大異蹟), 소망구현(所望具現)일 거야. 오직 심장을 바친 자, 그중에서도 왕이 된 자만이 시행할 수 있는 마법이다. 지금 그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 하지만 투란, 네가 시행한 마법이 아니지? 너 말고 자격을 가진 자가 전혀 없는 지금, 그 마법의 바탕을 건드려서 왕의 힘까지 자극한 결과를 끌어낸 것은 저것이다. 그래, 저 검은 심장이 왕의 마법조차 간섭해서 생겨난 일이다.”
“검은 심장? 몬스터?”
따딱, 손가락을 퉁기면서 투란은 바로 되물었다.
가벼운 투란의 손짓은 곧바로 투란의 사고를, 드라고니아의 행동을 가속시켰고 하이람과 카이람 또한 그 가속의 영역 안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 카이람은 ‘뭔 재주냐?’라고 흠칫했지만 하이람은 전혀 당황하거나 주저함 없이 투란이 짧게 던진 물음에 대해 길게, 가능한 한 정확하고 적합한 설명을 꺼내고 있었다.
“혼돈을 머금은 괴물, 어느 시대의 기준으로 본다 해도 몬스터라 부를 수 있다. 정확한 명칭은 티탄의 검은 심장, 심장처럼 고동친다고 해서 그리 부르는 것이 아니야. 정말로 저건 혼돈을 품고 섭리를 찢어발기며 이 세상에 침투하려 했던 티탄에게서 빼앗은 심장이고, 저 어둠에는 티탄이 머금었던 혼돈의 힘이 가득 채워져 있단다. 저것이 세상에 노출되면 당장 그 주변부터 혼돈의 파문으로 물들여가지. 바위도, 풀 이파리도, 짐승도 그 파문에 휩쓸리면 괴물로 변화한다. 그 변화는 되돌려지지 않아. 만약 주변에 있는 것이 이미 변해버린 몬스터라면, 한 번 더 그 혼돈이 강화되며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왜 저런 것이 왕도 한복판, 왕궁의 아래에 있느냐 하면…… 애초에 저것을 봉인한 자리에 왕궁을 세운 탓이다. 그래, 저것을 우리가 이 자리에 봉인하기 위해서, 그 봉인을 위해서 로그람 왕국이 탄생한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춤추는 산맥의 여섯 왕국, 이제는 고대라고밖에 부르지 못할 그 시대에 세워져야 했던 여섯 왕국은 이쪽 지형이 아직 춤추는 산맥이라 불리기도 전에 혼돈의 파문을 막기 위해 나서야 했던 제국의 여섯 군단을 기반으로 한단다. 까마득한 전설이라 이제는 제대로 기억조차 못 하는 지난 일이지. 아, 검은 심장 이야기를 더해야겠구나. 그래, 로그람뿐 아니라 다른 왕국도 제각각 짊어져야 했던 혼돈의 파편이 있단다. 로그람의 경우에는 저 검은 심장이었지. 처음부터 봉인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야. 처음에는…… 심연의 각인자들이 백여 명 이상 동워노디어 저 혼돈을 찢어발기고 지워버리려 했다. 그 백여 명이 모조리 미쳐서 괴인, 괴물로 변해버렸지. 그 실패 속에서 간신히 성공시킨 것이 봉인이었다. 응? 아, 그래. 처음부터 실패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일이 맞아. 티탄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 세상에 개입할 근거를 없애고자 했지만 결국 저 검은 심장이 남겨졌다. 과연 겨우 백여 명이 희생을 각오했다고 막을 수 있을까? 막으면 좋지만 막지 못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래, 그 만약의 대비를 한 탓에 간신히 봉인했다. 카이람이 심장을 바친 마법으로 간신히 말이야. 지금 이 시대에는 전해지는 바랑 다르지? 그래, 많이 다를 거야. 하지만 그게 진실이란다. 카이람은 저 검은 심장을 봉인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바쳤어. 뭐 심장이 없는 채로 일 년을 더 살기는 했지만…… 강력한 마법과 오러 윌더로서의 능력 덕분이었어. 그리고 그 일 년 동안에 겨우 봉인을 완성했고, 카이람은 혈통을 이을 자손을 얻기도 했지. 하지만 그 봉인은 완벽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희생이 필요했고, 새로운 마법이 필요했어. 불완전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저 검은 심장도 강하게 반발했다. 끝내 금단의 수단마저 동원해서 겨우 억누르고, 희생을 쏟아붓고…… 그렇게 오늘까지 버텨왔어. 그 방벽이 오늘 틈을 보인 거야. 검은 심장은 오랫동안 배워온 인고(忍苦)를 보답받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를 묶는 사슬을 해방의 열쇠로 삼아 저렇게 자태를 드러내는 거야.”
긴 이야기를 쉼 없이 흘려내던 하이람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켰다.
해가 지는 길을 드러내던 천장의 틈새, 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검은 먹구름이 꿈틀거리며 퍼져 있었고 심장처럼 뭉클거리는 형체를 이룬 채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치 이제 겨우 손에 넣은 자유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 자유를 위해 단숨에 왕궁을, 왕도를 짓이겨버리겠다는 것처럼 그 맥동이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예리한 눈길로 보던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심상을 가속하며 투란에게 말한다.
“소망구현이 무슨 뜻인가 알겠지? 저건 실제로 봉인을 깨고 나온 것이 아니야. 봉인에 간섭해서 봉인 밖에 자신의 형체를, 형태를 새로 만드는 거다. 그 여파로 인해 너의 심상, 이미 독자적으로 마력사용을 허가받은 내가 네 허락 없이 이렇게 형체를 갖춘 거야. 너의 소망은 아니었겠다만, 네 안에 있는 탓에 내 소망…… 커흠! 널 한 대 꼭 치고 싶다는 소망을 위한 몸이 생긴 셈이야.”
“봉인 밖에 형태가 갖춰지면 봉인이 깨지잖아. 간섭을 했든 말았든, 저건 이미 혼돈의 파동을 일으키고 있어. 저 모양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몬스터잖아? 그렇지?”
투란은 떨떠름하게, ‘뭔 소망이 일단 날 때리는 거냐!’라는 눈길을 잠깐 흘리기는 했지만 곧 드라고니아의 말을 분석하고 새롭게 확인하며 말하고 있었다. 이는 바로 하이람의 동조를 얻어냈으니.
“제대로 봤다. 소망구현으로 드러난 형상이 일부에 불과해도 상관없어. 티탄의 검은 심장은 그 형상의 파편이 구현되는 자리라면 어디든 상관없이 혼돈의 파문을 흘려낼 수 있어. 그 파동에 휩쓸리면 정상적인 것이든 이미 비정상적인 것이든 새로운 격변에 휩쓸린다. 자, 그러니까 투란, 심장을 아홉이나 바친 너에게 이에 대처할 수단이 있는지 말해다오. 없다면…….”
“있어요. 구경이나 해요. 괜히 나서지 말고.”
투란은 짤막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하이람은 말을 멈추고 빙긋 웃더니 아예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카이람이 그 모습에 분통을 터뜨린다.
“야, 진짜로 구경하려고! 야, 아무리 심장을 쑥쑥 뽑아내는 쟤라고 해도……!”
“카이람, 여전히 성질 급한 내 형제여. 저 아이가 한 말을 되새겨보게나. 몬스터 로드로서 저 자리에 선 왕은 없었잖은가. 아홉 심장을 보고서도 그 의미가 와닿지 않는가? 저 아이는 우리가 고르지 못한 선택을 할 수 있으니, 지켜보게나.”
“말투 거슬려! 그러지 마!”
말의 내용보다 카이람은 점잖음을 한껏 갖춘 하이람의 말투에 더 괴롭다는 듯이 자신의 귀를 막으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카이람 역시 투란에게 더 뭐라 하지 않겠다는 듯, 투란을 향해서는 다시 더하는 말이 없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어찌하든 일단 지켜보겠다는 듯, 그 결과에 대해 감수하겠다는 듯한 카이람과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하이람…….
투란은 둘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허공을 노려봤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그런 투란의 뒤편에 붙으며, 주변을 둘러싼 ‘그릇’과 심장을 흘깃거리며 묻는다.
“정말 대책 있는 거지? 저건 그냥 삼켜서 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 알고 있는 거지? 투란, 지금 으스대고 장난칠 때 아니니까 말 좀 해봐!”
“너도 그냥 구경만 해야 할걸?”
“뭐……?”
불쑥 나온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는 움찔했다.
말을 제대로 안 해준 것이 아니라 드라고니아가 마법으로,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 이렇게 실체를 얻은 상황에서도 구경만 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는 투란의 말투가 너무 노골적이지만, 그 마음에 머금은 바가 진실이잖은가!
도대체 뭘 하려고?
드라고니아는 그 의아함을 더 물어서 해결할 수가 없었다.
냉큼 신목을 향해, 허공에 부드럽게 뜬 채로 투란을 향해 붉은 광채를 뿌려주는 보석을 향해 내밀어진 손…… 그 손에 끼워진 반지가 마법의 광휘를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하이로드 쥴이 건네준 반지, 때문에 투란과 이야기할 때 그냥 쥴의 반지라고 부르는 마도구가 그 마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전 그 마법이 드러났을 때는…… 왕도를 놀라게 하는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건만!
투란은 그때 일 따위는 기억에도 없다는 듯이 다시 반지의 마법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드라고니아가 뭘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투란의 앞, 양쪽으로 두 가지 문장…… 두 개의 몬스터 엠블럼이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형태로 맺히고 있었다.
하염없는 공허(空虛)가 두 문장, 해골과 거미를 상징으로 하는 두 가지 몬스터 엠블럼으로부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보이드……?”
드라고니아가 그 실상을 간파하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