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63)
―고대의 마법 중에서 손꼽히는 장교함을 자랑하는 마도술식이야. 드라코눔의 기록에 따르면 혼돈을 일으키는 마력을 섭리를 지키는 힘으로 변이시키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한가득 붙어 있었지만, 어쩌면 진짜일 거라는 추측도 가득했다. 드라코눔이 이 세상에 자리 잡기 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마법인지라 직접 관측한 적은 없어서 말이지. 아무튼 그게 진짜라면, 이렇게 진짜 있다고 한다면…… 검은 심장이 저 무지막지한 마력을 이용해서 몬스터를 찍어누르고 봉인시킬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찍어누른 몬스터를 쥐어짜 낸 마력으로 검은 심장을 역으로 견제하는 거야. 즉, 애초에 방출될 수밖에 없는 검은 심장을 이용해서 다른 강력한 몬스터, 괴이(怪異)를 억누르고 있었는데 지금 네가…….
‘한쪽을 해방했으니, 균형이 깨져서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 봉인을 자기 힘으로 밀어 올리고 나오는 놈들은 검은 심장의 힘에 대항할만한 힘을 내뿜고 있던 몬스터란 말이네? 그 마도술식이 힘의 크기까지 바꾸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런 얘기 맞지?’
―아마도?
소리 없이 대꾸하며 드라고니아는 흘깃 하이람과 카이람을 훑어봤다.
투란도 그 눈길의 의미를 알아차렸기에 입을 열어 로그람의 시조(始祖) 둘을 향해 묻는 말을 꺼내야 했다.
“몬스터의 습성, 특징은 파악된 놈들이겠죠?”
카이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이람을 바라봤고, 하이람은 깊이 숨을 고르는 몸짓과 함께 바로 허공을 향해 손짓하며 말문을 열고 있었다.
“왕의 눈을 통해 현재의 형태를, 출현한 지역을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봉인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 오직 그것만을 고려해서 처리해뒀었어. 봉인이 완성된 다음에 그 주변을 정리하고 이정표가 될 만한 시설을 갖췄지. 거기에 세월이 더한 변화, 시대마다 다른 상황이 더해진 결과물이 지금 상태라고 보면 돼. 그 지역별로 자리 잡은 몬스터는…….”
투란은 이야기와 함께 하이람이 보여주는 몬스터의 환영을 확인했다.
몬스터 도감에서도 못 본 듯한 특징이 가득한 것이 꽤 이상했다.
그래서 투란이 물으려는 찰나, 카이람이 불쑥 끼어들어 하이람의 말을 가로채듯이 보태 말하고 있었다.
“재앙. 검은 심장의 마력에 대항할 만한 힘을 쥐어짜 낼 수 있는 괴물은 어느 시대에나 재앙을 부르는 자, 아니면 그냥 재앙이라고 일컬어졌다. 공식적인 명칭도 생겼는데, 캘러미터 로드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 모양이네? 그래, 재앙을 삼킨 몬스터 로드를 일컫기도 한다 했어. 하지만 그 이름은 원래 최악의 등급에 이른 몬스터를 위한 별칭이었지. 로그람의 봉인은 그런 재앙들, 재앙(災殃)의 왕자(王者)라고 평가되는 몬스터를 잡아 감금해서 검은 심장과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뒀던 거야.”
어느 순간 길어진 말에 카이람아 살짝 숨을 돌리는 시늉을 했고, 하이람이 잠시 멈췄던 이야기를 바로 잇는다.
“견제하던 마력이 소실되기가 무섭게 튀어나온 경우만이 재앙의 왕자라 불릴 만한 수준이고…… 아직 들썩이면서 왕의 마법이 이뤄놓은 경계를 넘지 못하는 경우에는 며칠 여유가 있다고 보면 돼. 그러니까 당장 처리할 필요가 있는 위협적인 놈들은 이 녀석들이다.”
손짓 끝에 그려진 허공(虛空)의 판화(版畫)가 꿈틀거리며 몬스터의 형상, 그 습성을 담은 풍경화까지 곁들여진 채로 투란의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도감을 찢어서 허공에 박아놓은 듯한 광경이었기에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좋았다. 더불어 문자와 다른 직접적인 환영을 겹쳐놓아 다른 추측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대강의 상태를 파악할 수도 있었는데…….
“망할! 저 배신자까지 있었어!”
드라고니아가 그중 하나를 노려보며 억눌린 으르렁거림을 터뜨리고 있었다.
투란은 그게 뭔가 보다가 낯을 찌푸린 채로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잘 알아?”
짧은 물음 안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드라고니아가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대답한다.
“이 자리에서 가장 잘 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저놈은 내가…….”
“드레이크인데 왜 배신자야? 정말 잘 알아?”
투란이 다시 한 번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카이람 쪽을 흘깃하며 씁쓸한 말투로 다시 대답해야 했다.
“저 드레이크가 존재를 함께할 대상으로 선택한 놈이 드라코눔의 배신자야. 아직 드라코눔의 일족이 괴이의 위상을 벗어내지 못했을 때, 일족의 안전을 지킬 임무를 부여받고 일족의 힘을 위탁받은 놈이 블랙 드레이크를 찾아 정신공유를 일으켰다. 그리고…… 블랙 드레이크와 완전히 융합한 채로 일족을 버렸지. 일족의 힘을 모조리 훔쳐 달아난 꼴이었어. 우리 일족에게 있어서 최초의 배반이었고, 최후의 배신이었다. 일족이 간신히 괴이의 위상을 벗어 냈을 때에도 놈은 척살대상으로 바로 기재할 지경이었어. 하지만 드라코눔은 끝내 놈을 심판하지 못했다. 춤추는 산맥 깊은 곳으로 도주한 다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돼버렸거든.”
“그건…… 미안한 일이 돼버렸네. 우리 영토에 붙은 채로 숨어서 자기 영역을 꾸미려는 꼴을 보고 토벌에 나섰던 모양이야. 상당한 괴물인 것을 확인하고 말살하려던 것을 조금 더 안전하게 봉인하는 쪽을 골라버렸고.”
카이람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투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이 말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왕국의 안녕(安寧)을 위해 선택한 일이었겠지요.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다만…….”
“야, 인사하고 점잖을 때가 아냐. 저거, 곧바로 여기로 오는 중이거든? 오자마자 왕도를 통째로 불 지를 작정인 것처럼 훅훅거리고 있어.”
투란이 툴툴거리면서 블랙 드레이크의 판화를 당겨 드라고니아에게 들이미는 채로 말했다.
드라고니아는 이를 갈면서 하던 말을 멈춰야 했다.
카이람이 조금 멋쩍고 민망한 표정으로 투란을 흘깃거리며 말한다.
“봉인할 때 뭔가 저주가 어린 말을 했다는 보고도 있는 것 같아. 지성을 갖춘 마물이든 뭐든, 그 당시에는 검은 심장의 새나가는 마력을 상쇄시킬 좋은 소재로 여기고 왕족 중 하나가 심장을 바쳐 봉인했어. 이렇게 풀려날 상황은 예상 못 했지, 뭐…… 지성이 있는 놈이니까 여태 감금된 원흉을 제거하려고 곧장 씩씩거리며 오는 거겠지? 용족, 그런 셈 아닌가?”
“맞을 겁니다. 일족조차 내버리고 자신의 안전과 자유만을 원했는데, 마력을 쥐어짜 내는 몰골로 감금당하고 봉인되어 그 긴 세월을 지내야 했다면 복수심에 미쳐버릴 수도 있죠. 투란, 저놈의 능력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야. 이렇게 실체를 갖추기도 했으니까 내가 저놈을…….”
드라고니아는 고집스럽게 말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들어 블랙 드레이크의 둥실거리는 판화를 손끝으로 찍으며 말한다.
“드라코눔의 배반자가 용왕이라 불릴 수도 있는 드레이크를 손에 넣었어. 넌 그냥 마력으로 이뤄진 망령이나 다름없고. 혼자 나가서 씹어 먹혀도 죽는 일은 없겠다만, 그건 막아내는 일이 아니지. 게다가 지금 나설 일이 저거 하나도 아니고…… 정말 저놈 맡고 싶은 거야?”
“내 의무다.”
살짝 설득하려던 투란은 이 단호한 대답에 한숨을 쉬고 말았다.
들으란 듯이 소리 낸 대답은 짧았지만, 드라고니아는 드러낸 눈빛만 활활 불태운 것이 아니라 문장의 심상 속에서도 미친 듯이 외쳐대고 있었다. 저 배반자만큼은 반드시 드라코눔의 손으로 박살 내야 한다고, 이 몸이 산산조각 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야, 그 마력의 몸뚱이가 조각나든 말든! 지금 너 혼자 어떻게…… 아?’
소리 없이 타박하며 외면하려 든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어떻든 간에 저 흉흉한 생김새를 과시하며 날아오는 블랙 드레이크를 상대하기는 해야 했다. 시커먼 어둠을 몰고 오는 탓에 ‘검은 심장’이 저 모양이 되었나 의아할 정도의 흉포한 재앙의 왕이 로그람 왕도에 닿기 전에, 가능하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없이 높은 허공에서 끝장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대처는 무엇인가?
드라코눔의 배반자, 정신공유로 하나가 된 드레이크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함께 가라.”
“뭐?”
갑작스럽게 던진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흠칫했다.
더 자세한 것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투란의 발치, 여전히 왕의 마법에 의해 묶인 듯이 잠겨 있는 그 발목 옆으로 금색의 모래가 쌓이는 듯이 알의 형태가 갖춰지고 있었으니까. 완전한 알이 아니라 사 분의 일 정도가 깨져나가 흡사 아기를 눕히는 요람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 안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민 것은 누가 봐도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새끼…… 덜 자란 금빛비늘의 드레이크의 새끼가 눈을 깜박이며 주변을 둘러보고 잔뜩 겁에 질린 듯이 투란의 무릎에 들러붙을 듯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시늉을 했다.
왠지 뒤틀리고 삐뚤거리는 몇 마디를 건네고 싶다는 충동을 드라고니아가 겨우 억누를 때, 저편에서 카이람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뭐냐? 용족의 머리에 새끼 드레이크를 얹어서 저쪽 다 자란 드레이크랑 용족의 반역자를 상대시킨다고! 진심이냐!”
“좀 조용히 해요.”
하이람이 손을 들며 막지 않았다면 카이람의 성난 목소리가 조금 더 울릴 듯했다. 하지만 그 손짓과 함께 순식간에 카이람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방음(防音)이 되고 말았으니, 카이람은 잠시 입만 벙긋거리며 화난 표정으로 하이람만 바라보는 꼴이 되어야 했다.
피식, 문득 웃음을 짓고 나서 투란이 드라고니아를 흘겨보는 시늉과 함께 말한다.
“준비해, 뭘 할지 알잖아.”
“아, 그래. 알지, 알고는 있다만…….”
머리를 흔들며 뿔을 치켜올리는 채로 드라고니아가 대꾸했다.
아직 뭔가 모자란다는 듯, 정말 할 것이냐는 듯한 의혹이 여전히 드라고니아의 눈길 속에 담긴 채였다. 어찌 보면 그렇게 해도 괜찮으냐고 투란에게 되묻는 듯도 한 눈빛처럼 느껴지는 태도였다.
그래서 투란은 쾌활하게 외쳤다.
“광금룡의 일족이여, 깨어나라! 날아올라라!”
펄럭.
새끼 드레이크가 돌연 눈을 번뜩이며 조금 전까지 겁먹은 갓난쟁이였던 모습을 홀랑 잊은 것처럼 날개를 펼치고 알의 요람에서 뛰쳐나왔다. 알껍질이 금빛 모래로 부서져 내렸고, 그 티끌이 반짝이며 새끼의 몸에 덧씌워지는 듯했다.
그리고 일어난 변화는 압도적이었다.
단숨에 천장의 틈새를 뛰쳐나간 새끼는 포효했고, 그 포효의 메아리처럼 거대화(巨大化)하고 있었다. 커질수록 새끼의 어리숙한 모습은 사라졌고 날카로운 이빨, 발톱과 뿔, 우람한 체격이 또렷해지는 광경은 단순히 덩치를 키우는 거대화가 아니라 시간을 빠르게 돌려 단숨에 성체(成體)로 자라나는 상태였다.
그 날개에 금빛이 모여들었고, 비늘마다 영롱한 광휘를 품은…… 사나운 발톱이 돋은 발 하나로 천장 한편을 움켜쥔 채로 공중에 골든 드레이크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자태를 드러냈다.
드라고니아가 가볍게 날갯짓하고는 바로 골든 드레이크의 등으로 올라섰다. 그러자마자 드라고니아는 빠르게 앞을 살피며 투란에게 속삭임을 전했다.
“어둠의 숨결을 이미 방출하고 있어! 투란, 대항하지 않으면…….”
쿠워어어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골든 드레이크가 포효하며 찬란한 빛의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벌린 입으로만 토해내는 숨결이 아니었고, 햇살과 그림자 속의 반짝임마저 모조리 끌어모은 것처럼 온몸을 빛내며 방출하는 빛의 난무(亂舞)가 왕도의 하늘을 가득 채웠다.
저편에서 하늘을 가득 채우는 밤의 장막을 이끌며 몰려오는 어둠의 군무(群舞)와 곧바로 마주치는 빛의 돌격이었다.
빛과 어둠이 순식간에 로그람의 왕도, 그 창공(을 채우고 덧칠하며 격돌했다.
왕궁에서 치솟아 왕성을 가릴 정도로 확장된 로그람의 성수가 한편에 우뚝 선 풍경은 마치 창공의 무도회(를 관람하는 모양이었다.
“야, 말 좀 해봐. 이게 무슨 일이냐?”
카이람이 살짝 더듬는 말투로 묻고 있었다.
투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이람이 잠시 숨을 참고 허공을 노려보는 듯하다가 입을 연다.
“과연…… 문장조차 형상화가 가능했어. 당연히 품고 있는 몬스터의 정수를, 몬스터 로드의 권능을 형상화할 수도 있는 거야! 하하핫, 대단하다. 정말 놀라워! 이건 마치 마법사의 발상 같잖아! 몬스터 로드라더니…… 아이야, 넌 대체 어떤 몬스터 로드인 거냐?”
경탄, 감동, 호기심이 가득한 말을 한편으로 흘려내는 듯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투란이 둘을 돌아보며 묻는다.
“위험한 것부터 말해줘요. 똑같이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미쳐 날뛰는 것도 아닌 모양인데…… 당장 미쳐 날뛸 놈부터 짚어보자고요. 굳이 재앙의 왕자니 뭐니 하지는 않더라도, 살짝 풀려나도 일을 크게 만들 놈이 있다면 그것부터 짚어줘요. 봉인된 괴물, 마물이 재앙의 왕자 수준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하이람이 바로 입을 다물고 민망하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카이람이 혀를 차고 한숨짓는 척하며 투란에게 바로, 빠른 말투로 이야기한다.
“좋은 자세야, 그러면 먼저 태양(太陽)의 파편(破片)이란 것이 있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