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68)
“추방? 거짓말하지 마라! 그런 가벼운 벌이 아니었잖아!”
“정정하지, 날 죽이려 했었지.”
“네놈 탓을 한 적도 없어!”
“그렇군, 죽이려고 했고 미워했지.”
드라고니아의 말에 어둠으로 인해 보다 뚜렷한 형체를 드러낸 자가 척척 대답했다.
그 어둠의 형체는 시커먼 외뿔이 미간 언저리에 솟구쳐 있고, 부드러운 날개를 어깨에 얹어 늘어뜨리고 길게 살랑이는 꼬리로 이곳저곳을 찌르듯이 살랑이며 붉은 눈알이 핏방울을 떠올리게 했다. 윤곽과 기본적인 형태가 그리 드러났지만, 여전히 몸 곳곳에 어둠의 장막을 두른 탓에 손과 발의 형상은 흐느적거리는 듯한 것이 위험한 낌새를 가득 드러내고 있었다.
그 색채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드라고니아와 체격의 차이는 있어도 동일한 종족이란 것이 명확한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짙은 어둠으로 물들여져 변해버렸다는 특징은 너무나도 분명했지만, 결코 다른 종족이라 할 수 없었다.
“그 미움이 까마득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그만큼 긴 세월이었다면 나에 대한 관점도 어느 정도는 변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어쩔 것이냐? 그렇게 나에 대한 증오를 간직했다면 내가 지닌 일족의 무장(武裝)에 대해서도 알 텐데? 마도술식이 아무리 거창하고 대단해도 이 흑암(黑暗)의 고유무장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잊었나?”
음침한 웃음이 섞인 말투로 묻고 있었다.
그 어둠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서늘한 광채를 머금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대답하는데.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면서도 드라코눔이 과거 그대로일 것이라고 말하나? 역시 어리석어! 자신의 선택이 잘못이었다는 진실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하겠어! 드라코눔의 긍지로 너를 심판하겠다!”
이렇게 빛의 풍경 속으로 메아리쳐가는 말에는 숨겨진 음향이 있었다.
빛을 수놓는 새로운 파문이 감춰진 음향 속에서 퍼져 나오며 어둠을 휘감는 마법은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망령이 된 어리석은 일족이여, 심판은 네가 아닌 내 몫이다. 흑암무장에 대해서 망각한 채로 용의 일족을 부정하려 하는 그 멸룡의 마도술식이 얼마나 헛된 망상인가, 이 자리에서 잘 배우고 사라지도록 해라.”
어둠이 음침하게 흘려내는 속삭임 또한 감춰진 소리를 머금은 채였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둠의 소리로부터 격한 파동이 흘러나왔고 블랙 드레이크를 감싸며 빛을 막아내던 장막이 요동치며 허공에 두꺼운 장벽을 쌓고 성채처럼, 철갑처럼 단단한 질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흑암무장의 시동(始動)을 보는 순간, 드라고니아는 빠르게 투란에게 청했다.
―지금!
‘간다.’
투란의 짧은 대답과 함께 골든 드레이크가 날개를 젖히며 황금의 바람결을 거세게 등 뒤로 모았다. 짙은 황금빛이 물결치며 뭉쳐들고 거대한 환영을 드리우는데, 그 모양은 입을 크게 벌린 드레이크의 두부(頭部) 형상이었다.
그 머리 모양은 빛을 모은 골든 드레이크가 아니었다.
황금빛의 물결이 격류로 변하며 빛이 일궈놓은 풍경 전체를 울리며 쓸어나갔다.
너무나도 강렬한 빛의 격동이 어둠의 장벽을 짓뭉갰고, 그 질감이 흐트러졌다.
그럼에도 블랙 드레이크의 가죽, 살갗과 골격으로는 더 짙고 깊은 어둠의 장갑(裝甲)이 맺히는 모양이기는 했다.
‘이 모양으로는 더 안 되는 것 같은데?’
투란은 빛을 울리는 사룡의 격동, 이를 받아 온몸으로 떨쳐내는 골든 드레이크의 견고한 능력을 확인하면서 낯을 찌푸린 것처럼 말했다.
세상을 짓뭉개고 갈아버리는 사룡이 머리만 나타나 포효하는 셈이었는데, 어둠의 장벽과 그 속성은 움츠러들기만 하고 파괴되거나 소멸될 낌새가 없는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흑암무장이니 뭐니 하는 것이 저런 위용(威容)을 떨쳐내는 듯했다.
―지원만 하고 있어! 연다!
드라고니아가 당연하다는 듯 마음으로 속삭이는가 싶더니, 골든 드레이크의 등 한복판에서 한 손을 높이 치켜올려 하늘을 찌르는 자세로 숨을 한껏 모아 내뱉으며 천둥처럼 외쳤다.
“긍지 높은 드라코눔이여! 여기 전락한 자가 탄원하노니, 천계의 문을 열고 광휘의 그림자를 허락하소서! 저 어둠을 심판하려는 자에게 허위의 광휘를 부여하소서!”
손이 향한 하늘, 빛으로 채워진 풍경이 일그러졌다.
일그러짐은 곧 갈라졌고, 갈라진 틈의 주변은 마치 열린 문과 같은 형상을 이뤄냈다. 원과 사각형, 삼각형이 겹쳐진 문은 그 열린 틈새로 광채를 머금은 기물(奇物)을 드러냈고, 빛의 풍경 안으로 그 그림자가 떨궈졌다.
그림자는 곧바로 드라고니아의 손까지 늘어져 닿았다.
격변이 곧바로 드라고니아를 휘감았다.
빛으로 이뤄진 갑옷과 방패, 투구에서 창까지 장비 일체가 단숨에 드라고니아에게 겹쳐지며 입혀졌다.
틱, 장비 안에서 뭔가 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섯!
드라고니아가 갑자기 수를 세더니, 날개를 펼치며 골든 드레이크의 등에서 튕겼다. 스스로 발을 굴렀고, 사납게 반발하는 광금룡의 등뼈가 보내주는 힘까지 더해서 단숨에 빛의 풍경을 가로지르며 어둠을 향해 돌진한 셈이었다.
틱, 풍경을 반쯤 가르고 어둠의 영향이 짙어질 때 다시 한 번 드라고니아를 감싼 장비가 맑은 소리를 흘렸다.
―넷.
드라고니아가 세는 수가 똑똑히 투란에게 전해졌다.
투란은 바로 낯을 구겼지만 알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돼버린 듯한 드라코눔의 배신자, 저 배반자가 지닌 아티팩트 흑암무장에 대항하기 위해 제작된 빛의 무장, 원래 이 아티팩트는 몬스터로 전락하고 투란에게 삼켜진 정수가 돼버린 드라고니아가 온전히 사용할 수가 없는 것.
그나마 대이적을 통해 어느 정도는 분명히 본래의 몸을 갖췄기에, 거기에 주변 상황과 환경까지 맞춰냈기에 탄원의 주문을 이뤄낸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드라고니아는 온갖 꾀를 다 내고 가진 역량을 모두 몰아넣은 셈이었다. 그럼에도 제한시간이 있었으니, 고작해야 다섯을 셀 동안만 저 빛의 무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단숨에 돌격한 드라고니아가 허공에서 창을 내지르니, 창대에 무수한 실 가닥과 굵은 끈을 감은 문양을 지닌 빛의 창끝이 벼락처럼 갈라지는 가지를 치며 블랙 드레이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꿰뚫었다.
허공에 못 박은 것처럼 블랙 드레이크가 그 몸을 감싼 어둠과 함께 멈춰졌고, 그 틈에 닿은 드라고니아의 발끝이 그 머리를 밟고 단번에 두 번째 창의 공격을 내질렀다. 블랙 드레이크의 목 위에 모습을 드러낸 어둠은 꿈틀거리는 채로 두 번째로 갈라진 창끝에 곳곳이 꿰이고 있었다.
“얄팍하군, 겨우 광휘를 두른 무장이냐? 그래 봐야 흉내에 불과하잖나? 어둠을 빛으로 치환시켰을 뿐이지. 그 정도 개념은 옛날에도 넘쳐났어. 아, 설마 드레이크와 나의 정신공명을 이용해 내게 심령계통의 충격이라도 줄 생각이었나? 그건 훨씬 더 하찮은 시도이다만?”
어둠이 음침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코앞에 마주한 드라고니아를 향해, 붉은 비늘과 황금의 뿔에 숨결이 닿을 정도로 머리를 기울이며 조롱하고 있었다. 더불어 관통당했던 어둠의 장막이 짙은 그림자를 흘려내며 요동치는 채로 빛줄기를 휘감아 삼키고 있기도 했다.
너무나도 짙은 어둠으로 인해 빛이 사그라들고 꺼질 듯이 보이는 위태로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 또한 어둠 속에서 겨우 그 형색을 드러내는 붉은 그림자 같은 눈동자를 노려보며 냉소하고 있었으니.
“결국 그 비열한 본성은 고치질 못했구나. 힘을 탐하면서도 그 힘에 대해 치러야 할 희생은 거부하는 저열함! 그것이 약점이란 것도 아직 깨닫지 못했나!”
―둘, 하나!
어둠을 향한 외침 위로 투란에게 셈이 전해져 왔다.
동시에 그 외침과 함께 감춰진 채로 토해진 주문이 힘을 발휘하려는 듯한 순간, 드라고니아를 감싼 빛의 무장이 반짝임을 멈추고 얼어붙었다. 맹렬하게 피어나려던 파동이 함께 멈춰졌다.
크윽크윽, 기괴한 웃음이 어둠에서 새어 나왔다.
오직 세상에 단둘만이 있다는 것처럼 어둠이 뿔과 입의 형상을 드러내며 드라고니아에게 바싹 그 코끝을 들이대는 모습으로 섬뜩하게 속삭인다.
“내 본성이 약점이라…… 처음 듣는 말도 아니다. 언제나 같은 것을 노리면서 그렇게 지껄였지. 그래서 너희는, 겁먹은 드라코눔은 나를 잡지 못했다. 이 흉악한 왕국의 수작만 아니었다면 나는…….”
쿠웅!
허공이 울리며 빛의 우리가 흔들거렸다.
격돌하는 빛과 어둠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골든 드레이크가 긴 목을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열린 천계의 문이 다시 한 번 그 틈새로 뭔가를 쏟아내고 있었다.
물보라를 시작으로 물줄기가 팽창하며 폭포처럼 문을 넘어왔고, 그 폭포가 허공에 일으키는 물보라를 받침 삼듯이 공중의 샘을 이뤄냈다. 그러고도 장막처럼 쏟아지는 폭포 속에서 물방울을 끌어당기며 하나의 형체가 맺히는데, 완성이 되기도 전에 검푸른 비늘이 덮인 커다란 손을 폭포 사이로 내밀며 허공을 두들기는 음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음향은 언어가 되어 빛의 풍경, 어둠을 가두는 빛의 우리를 두들기며 퍼져 나갔고 격돌하며 서로를 힐난하는 틈새로도 스며들었다.
“허(許)하노라, 심판자여 징벌하라.”
격돌하던 둘은 간신히 그 끝자락의 몇 마디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의미에 어둠이 흠칫하면서도 어리둥절한 사이, 드라고니아는 온 힘을 쥐어짜 낸 듯한 큰 숨을 몰아 내쉬며 포효했다.
“지혜로운 어둠이여! 어리석음을 삼키는 상냥한 어둠이여! 깨어나, 묶어라! 드라코눔의 긍지 맺힌 여섯 별이 그 보상일지니!”
창을 들지 않은 드라고니아의 손바닥이 손톱을 세운 채로 어둠을 후려쳐 갔고, 그 손바닥에는 여섯 조각 반짝임이 맺혀 있었다. 반짝임은 한층 더 밝아졌고 밤하늘의 별처럼 또렷한 형체를 갖추었다.
“휘성(輝星) 봉인 따위에 걸릴 것 같으냐! 어둠이여, 별을 삼켜라!”
어둠이 격렬하게 저항하며 외쳤다.
드라고니아는 그저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어둠, 드라코눔의 배반자가 움찔했고 붉은 그림자처럼 맺힌 눈동자가 화들짝 놀라 커졌다. 흑암무장을 향해 내질러진 여섯 별 중의 다섯이 꽂혀들고 하나가 빠져나가는 광경은 어둠을 한 번 더 요란하게 흔들었다.
“네놈! 설마 흑암무장에……!”
“애초에 너의 소유물이 아니었지. 암룡(暗龍)의 가호 또한 거짓임을 밝혀냈다. 올바른 아칸이 명한 징벌, 심판의 언령(言靈)을 피해낼 수 없는 것이 당연하잖나?”
도도한 조롱, 드라고니아는 말과 함께 그대로 발길질도 하고 있었다.
어둠과 함께 블랙 드레이크와 엮여 있던 드라코눔의 배반자가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결코 끊어질 리가 없을 결속이 해체된 순간이었다.
사나운 포효와 함께 빛을 쏟아내고 휘두르는 광금룡의 이빨이 시커먼 드레이크의 목 줄기에 박혀들었다. 빛나는 날개가 장막처럼 휘둘러졌고, 금빛을 잔뜩 머금은 발톱이 시커먼 드레이크의 몸통에 박히고 움켜쥐었다.
드라코눔의 배반자는 오랫동안 함께 봉인되었던, 완전히 하나라고 여겼던 블랙 드레이크가 증오 어린 눈동자로 자신을 돌아보는 채로 빛의 격동에 뭉개지고 갈려 나가며 사라지는 광경을 분명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이용해 맺어뒀던 정신공명이 산산이 부서진 결과였다.
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처음 광휘의 창이 꽂혀들고 일으킨 특이한 파문이었다. 블랙 드레이크의 내부를 물들이며 격렬하게 퍼진 그 파문은 드라코눔의 마법을 해체했고 가식(假飾)으로 맺어졌던 정신공명을 지워버렸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드라코눔의 배반자는 자신의 심신(心身), 영육(靈肉)을 동시에 조이고 묶어오는 ‘힘’을 느꼈다.
“닥쳐! 물리쳐! 이러지 마! 넌 내 거……!”
어둠이 확장되며 검은 형질로 이뤄진 드라고니아를 삼켜나갔다.
저편에서 황금의 뿔, 붉은 비늘을 지닌 채로 완전한 빛의 무장을 지닌 드라고니아가 지켜보고 있었다.
드라코눔의 배반자는 격노와 증오를 담아 자신이 영원한 어둠에 감금당해 완전히 봉인되기 전에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을 실행했다.
“멸망해라, 이 나라와 함께! 파멸의 어둠이여, 현신하라!”
강렬한 염원, 그 의지를 담아 내지른 검은 손길로부터 빛을 삼키는 시커먼 구슬이 튀어나왔다. 어둠을 머금는 구슬은 주변이 빛으로 가득 차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확장되며 빛의 영역을 지워버리고 닿는 것이 무엇이든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듯한 위세를 드러냈다.
그 어둠, 파멸옥(破滅獄)을 향해 붉은 비늘과 황금빛 손톱이 맺힌 손이 내밀어졌다. 빛의 무장이 그 손길에 반응했고.
“별이여, 상냥한 어둠을 일깨우길.”
작은 속삭임에 모여들며 퍼져 나가는 어둠을 덮는 그물을 그려냈다.
그물 속에 둥그렇고 시커먼 구슬이 담기며 요동쳤지만, 구슬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어둠은 사라졌다.
그 광경은 드라코눔의 배반자를 경악시켰다.
“불가능해! 파멸옥을 어떻게!”
대답은 검푸른 비늘을 머금은 자로부터, 물보라를 딛고 폭포의 장막 안에 선 드라코눔의 아칸으로부터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