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69)
“불가해(不可解)한 능력을 자랑하는 대마도사와 오랜 교류 끝에 얻어냈지요, 편안히 쉬도록 하시지요. 태고(太古)의 아칸이며 드라코눔 최초이자 최후의 반역자시여.”
점잖은 말투였지만 혹독한 비난이 깊이 새겨진 채였다.
거기에 드라코눔의 배반자가 어떤 반응을 하기도 전에 향해 드라고니아가 포효하며 빛의 창을 내지르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은 그 빛의 창을 거부하지 않았고 깊이 받아들이며 중심에서 반짝이는 별빛으로 모았다.
드라고니아가 창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펼치니, 그 손아귀에서 또 다른 별빛 구슬 하나가 찬란하게 빛을 머금고 떠올랐다. 어둠을 향해 움직였던 다섯 가닥과 달리 홀로 남은 한 가닥의 빛이 맺힌 듯한 광경이었다.
어둠이 이 손짓에 반응하며 시커먼 회오리바람처럼 흐르며 흔들렸다.
드라코눔의 배반자가 다시 크게 외치는 듯했지만 그 메아리는 어둠 속에서만 울려퍼질 뿐이었다. 그리고 어둠은 소리와 형체를 모두 잡아먹으며 작은 흉갑(胸甲)의 형태로 압축되었다.
빛의 무장을 두른 드라고니아가 그 어둠의 흉갑을 향해 별빛 구슬을 받친 손을 내밀었다. 흉갑은 시커먼 자취를 빛으로 가득 찬 허공에 남기면서 곧장 별빛 구슬과 겹쳐지며 손 위로 얹어졌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단도나 다름없는 손톱이 돋아난 손이 번개처럼 쥐어졌고, 손목이 튕기면서 별을 삼킨 어둠의 흉갑을 저쪽으로 날려 보냈다. 동시에 드라고니아는 가슴을 두드리며 빛의 무장을 해제하며 나지막하니 속삭인다.
“투란, 날 지워…….”
‘바빠, 나중에.’
단칼에 자르듯 거절하는 투란의 대꾸는 드라고니아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빛의 무장이 섬광이 되어 다시 천계의 문을 넘어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움찔, 드라고니아는 살짝 당황했고 검푸른 비늘의 아칸이 물보라 속에서 완전한 형체를 갖추며 어둠의 흉갑을 받아쥐는 모습을 흘깃했다. 보다 빠르게 드라고니아는 심상의 영역을 통해 투란에게 다시 말한다.
―야, 여기 끝났다고! 얼른 이 형상을 지워달란 말이야!
‘바쁘다고! 지금 어리광 피울 때 아닌 줄 알잖아!’
―어리광은 무슨!
‘벌거숭이가 되어서 오랜만에 고향에서 찾아온 일족을 마주하기 싫다는 거잖아! 그러게 왜 잘 입고 있던 갑옷을 홀랑 벗어 던져? 좀 더 써먹어도 될 상황인데!’
으르렁거리고 비비 꼬인 투란의 대답, 드라고니아는 잠깐 멍한 기분을 느끼며 당황하다가 깨달아야 했다. 아직 상황이 정리되기도 전에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강력한 무장을 떨쳐버린 것에 굉장히 짜증 내고 있다는 것!
―그건 그렇게 쓸 아티팩트가 아니라고!
‘아, 시꺼! 얼른 와! 바쁘다니까!’
역시나 투란은 복잡한 것을 다 떨쳐내고 짤막하게 대꾸하고 있었다.
더불어 드라고니아가 흘깃거리는 검푸른 비늘의 아칸 쪽으로 광금룡, 골든 드레이크가 가볍게 눈길을 겨누는가 싶더니 웅장한 목소리가 간결하게 전해지기까지 하잖는가.
“멀리서 오신 손님에게 실례가 되겠지만, 잠시 와서 기다려줄 수 있겠습니까?”
드라고니아가 화들짝 놀라 입을 열었지만 검푸른 비늘의 아칸이 그보다 빠르게, 입은 꿈쩍도 않고 혀만 벼락처럼 움직인 듯이 대꾸한다.
“불청객에게 관대하신 배려를 베푸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검푸른 날개가 물보라를 휘감듯이 펄럭였고 천계의 문이 닫혔다.
드라고니아는 골든 드레이크가 크게 포효하며 빛의 숨결을 거둬들이고 허공을 채웠던 빛의 속박이 해제되는 광경을 보며 잠시 공중에 멀뚱거리며 떠 있어야 했다. 자신이 예상한 마무리랑은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려는 조짐을 엿보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족, 그 일족 중에서도 하필이면 가장 꺼리는 존재인 또 다른 아칸이 투란의 초대에 응한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상황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드라고니아는 한숨처럼 골든 드레이크 위로 몸을 얹어야 했다.
―야, 너 정신 똑바로 차려. 드라코눔의 아칸이 다 나 같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고.
‘네네. 알았으니까 빨리 와!’
건들거리면서도 투란은 재촉할 뿐이었다.
드라고니아는 환영으로 치솟은 로그람의 신목에 가려진 왕궁, 그 창공에 놓인 듯한 마법의 궁전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하얀 머리카락은 전과 다르게 금빛이 맴돌았고 붉은 눈동자를 대신한 하늘빛 허공을 닮은 눈동자가 선명한 하이람이 이전과 다른 마력을 바탕으로 보다 실체에 가까운 새로운 몸을 갖추고 바닥에서 나오고 있잖은가.
드라고니아는 적잖게 당혹스러워서 투란을 바라봤다.
투란은 까닥 고갯짓하며 자신이 엿본 바를 바로 심상 속에 공유해주기는 했지만, 그 공유와 함께 드라고니아랑 동시에 위를 바라봐야 했다. 붉은 보석이 색다른 보랏빛을 머금으며 반짝인 탓이었다.
그 보랏빛은 카이람과 하이람 또한 새로 합류한 검푸른 비늘의 아칸에게서 관심을 돌려 위를 바라보게 했다.
갑작스럽게 모두 위를 보는 묘한 광경에 검푸른 아칸은 가만히 한쪽에 서며 함께 위를 올려다봤고 나직하게 갸랑거리는 목젖울림으로 자신이 놀랐다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했다.
미묘한 침묵이 맴돌려는 듯한 찰나, 투란이 먼저 입을 열어 묻는다.
“태양의 파편, 봉인에서 새 나온 것은 전부 치웠습니다만?”
물음과 함께 던져진 눈길에 카이람은 살짝 멍한 눈길을 하이람에게 돌리면서 보태 묻는 말을 꺼낸다.
“태양의 파편이 왜 갑자기 다 자란 채로 우리 왕국, 왕도의 하늘에 저렇게 서넛씩이나 둥실둥실 떠 있는 거냐? 저건 아무리 봐도 파편이 아니라 태양의 아이들이라고 이름 붙인 다 자란 놈 같다만,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냐?”
말투 속에 담긴 당혹스러움, 더불어 마법사에 대한 짙은 불만이 가득 담긴 투덜거림이 선명하게 투란에게 전해져 왔다. 물론 함께 타박이 섞인 질문을 받는 하이람 또한 투란과 똑같이 느낀 모양이었다. 단지 투란처럼 어떤 대답을 할 것이냐 따지는 대신에 하이람은 이 상황에 필요한 대답을 꺼내고 있을 뿐이었다.
“봉인된 파편이 아니야, 당연하잖아. 저건 호출, 소환된 것들이다. 우리가 봉인한 태양의 파편, 그 근원을 함께하는 형제들인 셈이지. 카이람, 기억나지 않나? 우리 후손이 저걸 봉인하기 전에 추방했던…….”
“그게 돌아왔다고! 우리 애들이 그 발악을 해서 춤추는 산맥 깊은 곳으로 날려 보낸 것이 이제 와서? 이런 썩을!”
카이람은 격분하고 있었다.
하이람은 그런 카이람을 향해 고개를 젓는 채로 투란에게 눈길을 돌려 말한다.
“다 자란 태양의 파편은 태양의 아이들이라고 불렀지. 지상에 가까워지는 것만으로 불길을 일으키고 내리꽂히면 이 왕도의 몇 배 면적을 단숨에 불태우며 바위조차 녹아 흐르게 할 거야. 그리고 새로운 파편의 씨앗을 뿌린다. 원래 여러 번 하는 짓이 아니긴 하지만, 저렇게 서넛이라면…… 아니, 투란 그건 무리야. 봉인되어 쇠락했던 파편처럼 몬스터 엠블럼을 형상화해 삼킬 수 없을 거야. 태양의 아이들이 내뿜는 광량(光量)과 초열(焦熱)은 마도술식의 이적조차 지워낼 정도거든. 모든 물질을 소멸시키는 금기의 마법조차 없애더라. 그래서 그 점유한 영역을 통째로 오려서 날려 보내는 전이의 술식을 써야 했어. 그래, 그것도 왕가의 자식이 여럿 죽어서 간신히 해낸 일이다. 물론 지금 너라면 희생 없이…… 투란?”
투란은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 듯했다.
단지 ‘태양을 삼킨다라…….’라는 말을 툴툴거리듯이 되뇌면서 드라고니아를 향해, ‘넌 또 벌거숭이구나.’라고 핀잔주는 몇 마디를 더하고는 뭔가에 몰입하는 투란이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는 그런 투란을 짜증 어린 눈길로 잠깐 보다가 카이람과 하이람을 억지로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로그람의 대이적이 돕는다면, 태양의 파편이고 아이들이고 전부 처리할 수 있습니다. 궁정 마도사…… 아니, 가디언 하이람 돕겠습니까?”
“돕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어떤 형상을 갖추려 하는가?”
하이람은 더 뭐라 따지지 않고 신중하게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적절한 것이 아니라면 하이람 나름대로 처리할 수단을 사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꿋꿋한 눈빛이 어린 물음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혀를 찼고, 드라고니아가 그 소리를 설명해주듯이 말해야 했다.
“펜리르, 펜릴의 전설을 이용할 겁니다. 대마도사가 남긴 유물을 얻어뒀거든요.”
“그 전설을 실현하겠다고? 그게 되냐?”
얼빠진 듯한 목소리로, 놀라서 격분조차 어디론가 날려버린 듯이 카이람이 묻고 있었다.
하이람 또한 비슷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미 투란의 어깨, 오른쪽 어깨에 얹힌 언덕처럼 늑대가 입을 열고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 탓이었다. 어스름한 빛을 머금은 어둠을 털가죽처럼 두른 늑대 머리와 다르게 그 몸은 네발짐승이 아니라 털로 덮인 인간…… 웨어울프의 형태였다.
그 형태는 거뭇한 그림자처럼 치솟았고 로그람의 신목을 이룬 환영 속으로 스며들었다. 곧 하늘을 향해 활짝 가지를 펼치고 나뭇잎을 매단 숲처럼 펼쳐진 가지 너머로 거대한 웨어울프가 머리와 어깨부터 밀어내며 올라선 듯이 나타났다.
환영이었지만 섬세한 그 모양은 결코 누군가의 망상을 투영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실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단단히 각인시켜주는 듯했는데…… 웨어울프가 두 손을 머리 위에 얹는 듯하더니 자신의 머리에 손톱을 꽂으며 쪼개고 있었다.
단숨에 세 갈래로 나뉜 머리는 뭉클거리며 제각각 온전한 늑대 머리를 이뤄냈고, 세 개의 머리를 지닌 웨어울프는 높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한껏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세 머리에서 흘러나간 혀는 하늘을 핥는 어둠의 채찍처럼 쭉쭉 뻗어 나가며 휘둘러졌다.
* * *
왕도의 누구나 고개를 들면 볼 수 있었다.
왕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왕도에서 먼 곳에서조차 왕도 쪽의 하늘이 몰상식하게 밝아지며 몇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나 짙은 햇살, 때문에 그 온화함보다는 후끈거리는 뜨거움을 먼저 느낄 지경인 과도한 정오의 풍경이 왕도를 덮친다고 보였다.
그나마 왕도를 덮는 커다란 나무 덕분에 그늘이 져서 조금은 나은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의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를 분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듯한데, 명확하게 ‘저런 것은 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외쳐줄 수 있는 마물의 형태가 나타났다.
당당하게, 어처구니없이 거대한 신목의 가지 사이로 튀어나와 신목의 웅장한 자태를 발판 삼아 하늘에 떠 있는 몇 개의 태양을 향해 뛰어오르는 괴이한 늑대, 어둠이 엮여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 어두운 자태이면서 인간의 육신이 더해진 듯한 그 늑대의 머리가 입에서 하늘을 관통하며 흐느적거리는 창을 뻗은 듯했다.
그 어두운 창이 태양을 꿰어버렸고, 휘감았고, 당겼다.
세 개나 되는 늑대의 머리가 선명해진 것은 그다음 순간이었다.
쟁반 위에 놓인 고깃덩이를 날름 핥아 삼키는 것처럼, 늑대의 입은 커다랗고 휘황한 태양을 단숨에 삼키고 있었다. 마치 하늘이란 쟁반에 놓인, 태양이란 고기는 언제나 자신의 먹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했고, 그 권리는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로 행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가장 높은 태양 아래에서 명멸(明滅)하던 조금 작은 빛의 조각들도 단번에 웨어울프의 손짓과 다시 뻗은 혀에 휩쓸려 사라졌다.
지나치게 밝았던 햇살, 뜨거웠던 풍경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웨어울프가 네발로 거대한 나무 위에 서면서 온전한 늑대의 형태로 돌변하며 꼬리를 흔들고 높은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시늉을 했다. 아직 하나 남은 태양도 삼키고 싶은데 그건 너무 멀어서 입이 닿지 않아 서운하다는 듯이.
그 울부짖음이 끝나면서 늑대의 형상이 다시 거대한 나무의 환영 아래로 가라앉으며 사라졌다.
* * *
살랑살랑.
투란의 오른쪽 어깨에 매달린 늑대가 꼬리를 흔들었다.
어스름한 빛을 머금은 늑대가 장난감처럼 투란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네발로 투란의 팔을 후비적거리는 채로 매달린 모습이었다.
그 늑대의 눈동자가 심상찮은 빛을 머금었는데, 한쪽은 해처럼 사납게 번뜩이고 한쪽은 달처럼 온화하고 밝았다. 애교 부리듯이 간간이 까닥거리는 고갯짓으로 드러나는 늑대의 목과 가슴에는 금색 반점이 별처럼 일렁이는 것이 색다르게 보였다.
“된 건가?”
투란이 늘 그렇듯이 드라고니아를 향해 확인해 물었다.
하이람이 대신 대답한다.
“태양의 아이들은…… 끝났군. 거느리고 있던 파편, 다 자라지 못한 조각들까지 모두 쓸어냈어. 온전하게 성장을 이룬 태양의 아이가 셋, 나머지는 아직 덜 자란 파편인 채로 그 주변을 맴돌며 네 번째가 있는 척한 것뿐이었으니까.”
카이람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버럭 외쳐 묻는다.
“어떻게 그런 것을!”
“운명의 인도? 그런 마법에 휩쓸린 탓이니까, 나도 몰라요.”
투란은 단칼에 질문을 끊어버리듯이 말했다.
드라고니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슬그머니 날개를 당겨 몸을 감싸는 외투처럼 두르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투란이 할 말을 다 했다는 것처럼!
붉은 보석이 투란의 앞에서 새롭게 반짝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