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8)
뭔가 잘못되었다.
곧바로 냉혹할 정도로 차가운 생각이 투란의 뇌리에 퍼졌다.
드레이크를 분명히 저 아래 깊은 곳으로 담가 지워 버렸다.
그렇다면 지금 이런 상태일 리가 없을 텐데?
새끼 드레이크를 놓고 자기 피붙이라니!
‘나는 드레이크다!’
또다시 강한 반발이 지독한 떨림과 함께 투란의 뇌리에 찾아들었다.
그리고 되풀이되는 혼란과 당황 속에서 투란은 생각을 되새기며 더듬고, 샘솟는 침착함과 냉정함을 바탕으로 깊은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런 일이 시작되었는가?
두근거리는 기억이 깊고 깊은 세월 너머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단단한 껍질이 깨어지는 순간부터, 기억이 되새겨지고 있었다.
새파란 뭔가는 끔찍하게 무서웠다.
자신을 가둔 것을 부수고 나가야 한다는 본능을 압도할 정도로!
너무 무서워서 일단 그 새파란 것을 앞발로 콱 찍었고, 바로 깨진 틈새에 뭉툭한 꼬리를 대고 엉덩이로 눌렀다.
나가야 한다는 본능을 잊어버린 행동은 등에 돋은 날개로 몽클거리는 뿔이 살짝 삐져나온 머리를 감싸고, 너무 단단해서 깨지 못한 아래편의 껍데기 쪽에 몸을 기울이게 했다.
꼬리랑 엉덩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 앞에 보이는 것이 단단하고 튼튼한 껍데기니까 자신은 안전할 거라고 여긴, 세상을 전혀 모르는 드레이크 새끼의 매우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와지근, 콰직!
엉덩이와 꼬리가 끼인 조각 주변이 한꺼번에 박살 났고, 이는 새끼에게 온 세상이 박살 나는 풍경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세계가 새끼의 앞에 압도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푸르스름한 색채, 빛나는 황금의 광채가 그 틈새를 가르고, 저 멀리 반짝이며 흘러가는 물결, 살짝 살랑이며 다가오는 바람…… 모든 것이 알이 박살 나면서 새끼에게 다가온 풍경이었다.
그리고 새끼는 바로 자신이 뭔가에 덥석 물리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껍데기를 다 깨고 나오기를 기다렸던 듯한 저 무서운 것이 더 못 참고 새끼를 가뒀던, 보호했던 알을 그냥 물어 깨 버리면서 덤으로 문 것이다.
하지만 새끼가 비명이고 뭐고 지를 겨를 없이 다시 한 번 세상의 풍경이 확 변했다.
바라보던 모든 풍경이 저 아래편으로 흘러가며, 새로운 세계가 보다 압도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게 드레이크 어미는 새끼를 입에 물고 날아올랐다.
쉼 없이 어미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바람결이 새끼의 뼛속까지 스며들었고, 높이 날아올라 맞이하는 바람은 저절로 새끼의 여린 날개를 펼치게 했다. 바람은 날개를 단련시켰고, 빛은 몸을 두드리며 담금질해 갔다.
‘뭐지?’
투란은 잠시 당혹스러웠다.
새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새끼였을 때라니!
부르르, 저절로 투란의 몸이 한 번 더 떨렸다.
기억은 선명했다.
새끼로서, 드레이크의 삶은 꽤나 길었다.
온갖 바보짓을 했고, 온갖 기괴한 위험을 겪으면서 새끼는 살아남았다.
어미 드레이크가 잘 보살폈기 때문에 겨우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끼는 더 이상 새끼라 불릴 수 없는, 어미와 거의 비슷한 덩치의 드레이크가 되었다. 똑같이 머리를 치켜 올려도, 어미가 오랜 세월 키워 온 뿔의 모양이나 크기에 조금 차이가 날 뿐인, 한창 자라나서 부풀어 오른 몸집은 몇 년만 더 있으면 어미보다 더 커질 듯했다.
드레이크는 그런 덩치를 자랑하며 과시했다, 어미에게.
그러다 어미의 뿔에 몇 번 머리통을 찍혀 나뒹굴기도 했지만, 드레이크는 이제 새끼가 아니었고 자신의 자랑과 과시하는 장난질이 어미에게 별로 해롭지 않은 것처럼 어미 역시 더 이상 자신에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괜찮았다.
다 자란 드레이크는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시간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어미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드레이크는 그 곁에서 어미가 깨어날 때까지 머물렀다.
해가 뜨고 지고, 어미의 몸에서 더 이상 빛의 파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달의 시간이 흘렀고, 드레이크는 깨달았다.
어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살아 있지 않다.
‘윽.’
투란은 두통을 느꼈다.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가슴에서 치고 올라온 뭔가가 머리를 후려치는 느낌이었다.
어미를 잃었던 드레이크의 기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결코 다른 누군가, 다른 무엇인가의 감정이 아닌 투란 자신의 기분이고 느낌이었다.
‘젠장…….’
냉정하게 욕을 떠올리면서도, 투란은 멈추지 않았다.
이 기억, 이 과거를 파고들어야 했다.
드레이크는 어미를 떠날 수 없었고, 그냥 머물 수 없었다.
이는 드레이크의 본능을 움직였고, 본능이 내놓은 답은 바로 드레이크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드레이크는 어미를 먹었다.
날개, 꼬리, 네 발과 몸통, 그 육신을 먹어 치웠다.
남은 잔해는 단단한 뼈와 뿔, 하지만 이 또한 드레이크는 그냥 두지 않았다. 계속해서 핥고, 그 속에 담긴 정수를 낱낱이 흡수했다.
뿔의 마지막 한 조각, 거기 서린 빛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거의 1년 이상을, 드레이크는 어미를 섭취하는 데 소모했다.
그렇게 어미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나서야, 드레이크는 깨달았다.
이제 자신도 어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
투란의 가슴이 기묘하게 뭉클거리면서, 푹 파여 빈 곳에 살짝 뭔가가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투란은 자신이 내뱉었던 소리를 기억해 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새끼의 어버이라고, 자신이 그렇다고 했던.
두근거림 속에서 투란은 드레이크가 어떻게 어버이가 되는가를 궁금해했고, 기억은 바로 답을 꺼내 줬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다른 짐승처럼 짝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드레이크에게는 짝이 필요 없으므로.
필요한 것은 바람과 빛, 충분한 먹잇감이었다.
드레이크가 자신을 유지하려면 바람과 빛만으로 충분했다.
바람과 빛이 모자란다면 자면 된다, 바람과 빛이 넉넉해질 때까지!
하지만 몸속에서 알을 만들고, 그 알을 낳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조각’으로 이뤄진 양분이 필요했다. 거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드레이크의 ‘삶’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자신의 어버이에게서 독립하고, 자신의 새끼를 얻기 위해서.
투란은 멍하니 주저앉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드레이크의 ‘삶’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투란의 정신 속으로 스며들었다.
받아들이기를 망설이거나 막아내거나 할 수가 없었다.
벌써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각인된 채였고, 그저 회상될 뿐이었으니까. 그저 한 번도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 시작하자 그대로 번져 나오며 투란을 물들일 뿐이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부르르, 잠깐 투란의 몸이 떨렸다.
발목을 가볍게 감아오는 덩굴줄기가 멍해진 투란을 깨우려는 듯이 살짝 더듬고 있었다. 그 감촉이 투란의 눈길을 무릎 사이로 이끌었고, 투란은 조금 굵은 뿌리줄기가 땅거죽 틈새를 연 채로 솟아나는 것을 봤다.
“어?”
흙 사이를 헤집고 나오는 줄기에는 뱀 가죽이 감겨 있었다.
잠시 그걸 보다가 투란은 자신의 배 아래, 가랑이 쪽을 봤다.
시원하게, 홀랑 벗겨진 채로 알몸이 드러나 있었다.
“풋, 푸하하하…….”
투란의 입가에서 저절로 웃음이 새 나왔다.
당연한 일을 잊고 있었다.
몸이 드레이크가 되면, 그 체격의 변화 때문에 아무리 질기고 잘 버티는 뱀 가죽이라 해도 찢기거나 터져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냥꾼의 매듭으로 아주 잘 묶어 놨으니, 갈기갈기 더 잘 찢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투란의 몸에서 흘러 나간 악마의 심장 줄기는 이를 따로 빼돌려 보관했다.
문득 투란은 오른손을 들어 봤다.
손아귀 틈새에 말랑한 것이 있을까?
스륵, 사악.
엉덩이 아래에서 기어 나와, 허리를 거쳐 팔로 옮겨 가더니 투란의 손목을 감는 뿌리줄기 한 가닥이 빼꼼하게 말랑거리는 형체가 된 샤벨투스의 이빨을 내밀었다.
가만히 이를 보면서 투란의 웃음이 멈췄다.
새삼 주변을 둘러보니, 조용히 다가오는 뿌리줄기의 형체가 곳곳에 보였다.
드레이크의 몸을 이루느라 잔뜩 소모했고, 강제로 벗어 버리느라 양분으로 축적도 못한 채로 날려 먹었다. 그러나 이 작은 섬을 둘러싸도록 뿌린 악마의 심장 줄기는 아직 상당히 남아 있었다.
그 줄기 무리가 귀환하려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근원, 몬스터 로드를 향해서, 잔잔한 오러만을 풍겨내며, 오롯한 사람의 모습으로 주저앉은 투란을 향해서.
‘나는 사람이다, 몬스터 로드인…….’
차분하게 투란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레이크지.’
씁쓸하게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드레이크의 ‘삶’은 길었다.
드레이크는 단순히 알을 낳을 수 있는 언젠가를 준비하며 지내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본능이 있었고, 그 본능에 따라 춤추는 산맥 안쪽을 헤맸다. 늘 바라보던 곳은 저 아늑하게 깊은 곳이었다.
알을 품지 않은 드레이크는, 새끼를 돌볼 일이 없는 드레이크에게는 이곳이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보금자리였다. 알을 품고 새끼를 돌보기 위해서 찾아올 정도로, 귀찮게 하는 이상한 것들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섬과 함께 고르고니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드레이크는 이곳에서 새끼를 키우고, 고요하게 자신의 ‘삶’을 끝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 자란 새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준 채로.
그 ‘삶’은 드레이크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 본능에 따라 무엇인가를 찾고 알을 낳아 새끼에게 자신을 물려주고…… 그런 것이다.
지금 투란에게는 있을 리가 없는 분명한 목적을 갖춘 ‘삶’이었다.
천천히 투란은 툭툭 엉덩이, 맨살에 붙는 흙을 털어 내면서 일어섰다.
새끼 드레이크를 바라보니, 여전히 투란의 가슴 한구석이 파여 나간 기분이 피어났다. 드레이크로서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것, 미래의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새끼를 잃었을 때, 드레이크가 광분해서 고르고니아에게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든 기분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투란은 느껴 알고 있었다.
만약 드레이크가 새끼가 작은 섬에서 엎어져 버린 꼴을 보고, 그 죽음을 느끼고 광분하지만 않았더라면 고르고니아를 향한 복수는 넉넉히 할 수 있었다. 고르고니아를 죽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두고두고 괴롭힐 수 있었다. 고르고니아가 그 존재를 후회할 정도로!
과거에도 드레이크는 자신이 직접 박살 낼 수 없었던 것, 너무 단단해서 어떻게 해도 부숴 버릴 수 없던 녀석들을 처리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했다면…….
생각하면 아쉬움이 저절로 샘솟는, 너무나도 그 순간의 감정에 휘둘린 판단이 드레이크를 이 자리에 쓰러지게 했다. 투란에게는 아주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람으로서는 찾을 것도 잃을 것도 없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어?’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이어지던 생각이 투란의 기억 깊은 곳을 건드렸다.
잃은 것, 찾아야 할 것…… 과연 자신에게 그런 것이 없던가?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던 어린 투란의 눈앞에서 붉게 맥동하며 언제나 가슴 위에 놓여 있는 듯했던,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서 뜯겨 빼앗긴…….
‘보석.’
투란의 손이 가슴을 어루만졌다.
몬스터 엠블럼이 고요하게 마력을 품고 자리 잡은 곳, 보석은 그 자리에 늘 있었다. 어리고 어린 투란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그 순간이 떠올랐다. 보석을 갑자기 빼앗긴 날, 투란은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하지만 보석은 투란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락, 사라락.
일어선 투란의 발목을 따라 좀 더 가늘고 섬세한 뿌리줄기가 기어올랐다.
오러를 탐닉하고 핥듯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악마의 심장 줄기 가닥 무리는 투란에게 귀환하고 싶어 했다. 절대적인 몬스터 로드의 의지에 따르는 처지임을 투란에게 일깨우려 하면서.
투란의 눈길이 고요하게 작고 어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주 큰 드레이크 새끼에게 쏟아져 들어갔다. 드레이크가 자신을 낳아 준 어미와 어떻게 끝을 맺었는가가 다시 투란의 뇌리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