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71)
Chapter 235. 재앙의 왕자, 열전 Ⅲ
거대한 나무는 가볍게 5, 60미터를 넘는 높이와 2, 30미터를 넘는 굵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 굵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지가 치렁거리며 비처럼 쏟아지며 늘어진 넝쿨줄기를 드리웠고, 그 큰 규모를 받쳐주는 증거처럼 굵은 뿌리는 땅을 갈아엎으며 튀어나왔다가 다시 파고드는 짓을 되풀이했다.
그 포악한 움직임에 따라 고목(古木)에 엉킨 씨눈이 튕겨지듯, 고괴(古怪)한 거목(巨木)에서 튕겨나온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뭉개지며 제멋대로 주문을 토해내며 주변을 뭉개고 있었다.
때로는 태우고, 때로는 얼리고, 때로는 뭉개고, 때로는 밀어버리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것들 사이로는 변형된 이물(異物)이 끼어 있기도 했다.
멀쩡했던 바위가 갑자기 짐승처럼 변해 어슬렁거렸고, 단단히 뿌리박혀 있던 나무는 거목의 본보기를 따르듯이 느닷없이 뿌리를 뽑아 올려 걷고 긴 가지를 휘둘러 주변을 마구 두들겨 팬다!
마력을 머금은 안개가 가득 펼쳐져 있지 않았다면 이 해괴한 광경은 아주 멀리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을 듯하다.
“봉인의 일부가 아직 남았다는 얘긴데, 투란 이걸 다시 봉인하자는 미친 소리는 하지 마라. 저건 무조건 제거야! 그러니까, 일단 저 촉수괴물 나무를 썰어버릴 나무꾼이 필요하다고! 야, 난 마법만 막는 것만 해도 아주 벅차질 예정이라고!”
몬스터 세란드는 하염없이 으르렁거리며 호소하는 중이었다.
‘알아, 아니까 잠깐만!’
투란은 몬스터 세란드의 상황을 살피면서도 또 다른 광경에 주의를 기울이며 살짝 관심을 보태야 했다.
* * *
여섯 개의 팔은 좌우로 셋씩, 뒤집힌 세모꼴로 어깨에 뿌리내린 채였다. 두꺼운 가슴, 잘록한 허리가 그 여섯 팔과 어긋난 모습을 꾸몄지만 허리 아래로 이어진 다리는 허리만큼 두꺼운 굵기로 여섯 개의 팔 정도는 당연히 있을 만하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팔다리의 형체가 뒤틀린 모양 때문에, 등짝에 가득 박힌 얼굴은 어쩐지 무덤덤하게 넘겨볼 수도 있는 자태!
트롤킨, ‘저주받은 트롤키아’라고도 불리는 재앙은 겨우 이 미터를 조금 넘는 체격과 괴이한 모습을 한 채로 느릿느릿 바닥을 밟아 십 센티 이상의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다.
가야 할 곳을 모르겠다는 듯, 왜 자신이 걸어야 하는가도 의아하다는 듯이.
그럼에도 발은 꾸준히 옮겨 닿는 대로 걷고 있는 모습은 한없는 피로, 탈진 상태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금방이라도 엎어질 듯하면서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해 보일 지경.
그럼에도 그 발에 밝히는 것은 부드러운 흙이든, 단단한 돌이든 가차 없이 발자국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 ‘저주받은 트롤키아’의 발이 자국을 박을 수 없는 포석을 만났다.
‘저주받은 트롤키아’가 멀뚱히 그 포석을 내려다봤다.
뒤엉킨 고름과 포진(疱疹)이 가득한 얼굴, 멀쩡했다 해도 트롤의 일족이기에 흉악하다 할 만한 얼굴은 병마와 저주로 인해 한층 더 포악하고 끔찍한 형상인데…… 그 눈꺼풀이 열리며 드러난 눈동자는 허옇게 망가진 듯하면서도 끈적하고 또렷한 의지를 품은 채였다.
닿는 것을 일단 부수겠다는 그 의지에 따라 다시 한 번 걸음이 내디뎌졌다.
포석은 이전보다 센 압력을 받았지만 굳건하게 버티며 발자국을 용납하지 않았다.
용납한 것은 쌓인 먼지를 발 모양으로 살짝 털어낸 정도에 불과했다.
‘저주받은 트롤키아’, 트롤킨은 빗자루가 된 발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더 세게 걸음을 내디뎠고, 무거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쿠웅, 두웅.
멀리 퍼질 듯한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억센 울림을 머금으며 돌아왔다.
트롤킨이 고개가 돌아갔다.
포석이 이어진 앞에 벽이 울리고 있었다.
깊은 계곡, 산중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채의 벽이었다.
하지만 트롤킨은 생각하지 않았다.
바라본 쪽으로 다시 걸으며, 이어진 포석을 짓뭉개고 싶다는 듯이 밟으며 벽을 향해 팔 하나를 휘둘러 주먹질을 할 뿐이었다.
두웅, 쿵.
벽이 억센 메아리와 함께 탁한 반응으로 트롤킨의 주먹질을 거절했다.
트롤킨은 뼈가 으스러진 주먹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여섯 팔을 한꺼번에 휘두르며 격렬하게 주먹의 소나기를 퍼부었다.
쿵, 쿠쿵, 쿠쿵, 두두둥.
해괴한 울림, 메아리가 퍼져 나갔고 어느 순간에 트롤킨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것을 알아야 했다. 여섯 주먹이 모두 뼈가 으깨지고 살이 찢겨 나갔다.
갸웃하던 트롤킨은 문득 벽과 포석이 이룬 통로, 복도를 알아차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트롤킨에게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듯한 길이잖은가.
왜 사방이 무너진 계곡, 산속인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 이렇게 해괴하게 나타났는가.
트롤킨은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인도한다면, 그저 가볼 뿐이라는 듯했다.
걷는 걸음마다 고름이 떨어지고, 핏방울마다 얼룩진 거품과 포진을 남기는 채로 트롤킨은 포석이 이뤄낸 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저 먼지를 지워낸 발자국이 찍힐 뿐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포석은 핏방울이 짙게 번지고 고름이 피어오르며 포진이 낙인처럼 박혀들고 있었다. 흡사 저주를 담은 질병의 자취를 흘리듯이.
그 걸음걸이가 잠시 멈춘 것은 트롤킨이 얼굴 한쪽을 무심결에 손으로 문지른 때였다. 얼굴이 가죽을 벗기든 피와 고름, 포진이 얽힌 부분을 떨궈버린 탓이기도 했다. 트롤킨에게는 있을 수 없는 변화인 듯했고 갸웃하며 일그러진 얼굴 가죽이 엉킨 손아귀를 내려다보는데, 그 손이 뚝 바닥에 떨궈졌다. 손목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어깨로부터 팔이 통째로 분리되며 바닥에 처박히고 있었다.
반쪽만 멀쩡해진, 그래도 여전히 트롤의 낡은 가죽과 흉악함이 어린 얼굴이 두어 번 더 갸웃거렸다. 아까와 다르게 트롤킨은 잠시 뭔가 생각이라도 해보는 시늉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곧 트롤킨은 자신의 앞에 길게 늘어서는 포석, 든든하게 좌우를 채워놓는 벽으로 이뤄진 길이 도전하며 흘리는 유혹에 넘어갔다. 더 못 걷느냐고 비웃는 듯한, 아직 밟아볼 길이 꽤 머니까 그만 주저앉으라는 듯한 풍경을 향해 트롤킨은 조금 더 사납게 걸어나갔다.
그렇게 트롤킨이 지나친 자리, 포석과 벽은 느릿느릿하니 하나로 엮이며 닫히고 있었다.
* * *
산이 불타오르며 터졌다.
용암이 흘러내리며 붉은빛의 뜨거운 강이 되었다.
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일으켰고, 뜨거운 강을 뒤집어썼다.
줄기줄기 흘러내리는 용암, 정수리가 터진 산이 머리가 되어 일어선 거대한 형체는 그 용암을 옷자락처럼 두르고 붉게 타오르는 구멍을 열었다. 머리 부위에 열린 구멍답게 시선이 흘러나왔고, 시선을 따라 용암이 눈물처럼 흘러넘쳤다.
팔다리가 분별되지 않은 거대한 형체가 머리와 목, 어깨 언저리로 보이는 부분만 꿈틀거리며 길게 몸통을 기울이며 늘어뜨리듯이 움직였다. 용암이 흐르며 튕겼고, 간간이 그 몸통에서 폭발이 터져 나오며 구멍이 열렸다.
거대한 형체는 작은 몸짓으로 꿈틀거리는 듯했지만 그 크기가 이미 수백 미터에 이른 체구였기에 단숨에 수십 미터의 용암줄기, 파편이 사방으로 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곳곳에서 구멍을 뚫듯이 폭발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처음에 산맥의 굴곡을 담고 얌전히 자리 잡은 산자락 주변이 활화산의 풍경으로 바뀌었고 높디높이 치솟은 괴이한 화산으로 인해 용암을 폭포처럼 떨궈내는 몰골로 변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쿠쿠쿵.
거대한 산의 정상, 머리가 조금 더 또렷해졌고 목과 어깨가 한층 더 두툼하게 그 형체를 다듬었다. 팔이 몸통에서 분리되며 허공으로 휘젓는 동작은 마치 기지개 같은데…… 거대한 크기와 함께 용암이 펑펑 터지고 콸콸 흐르는 탓에 불길을 일으키고 이 세상 풍경을 오로지 화산 풍경만으로 채우려는 짓이 아닌가 싶은 결과만이 풍경에 남겨질 뿐이었다.
그리고 줄줄이 맺힌 용암을 흘리면서 그 다리가 하나 갈라져 나와 디뎌질 때는 가뿐히 지면을 요동치게 만드는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두 걸음, 세 걸음 지진은 더욱 맹렬하게 증폭되었고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땅의 파동으로 인해 지형이 완전히 갈아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산을 품은 거대한 인형(人形)의 괴물이 깨어났다.
‘화산거신수(火山巨神獸), 볼카닉 로드, 볼케인. 이름만 몇 가지냐, 도대체!’
투란은 투덜거렸다.
드라고니아가 입가를 꾸물거리는 채로 몰래 심상을 통해 바로 대꾸한다.
―본질을 칭하는 호칭은 따로 있다, 나중에 그 속성을 조금 더 연구해서 붙인 이름이지. 마그마 로드랑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니까. ‘대지를 파쇄하는 견고한 불꽃‘…… 아마 그런 이름이었을 거야. 그 파편이 몇 번 날뛸 때 붙은 별명이 볼카닉 로드일 것이고, 어느 정도 커진 다음에 저렇게 드러나면 거신수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어야 했지. 뭐, 이래저래 귀찮은 사냥꾼들은 간략하게 볼케인이라고 불러버린 모양이다만…….
너무 은밀하게 전해온 이야기에 투란은 드라고니아를 흘깃했다.
완전히 딴청 부리고 있는 자세인데, 은근히 검푸른 비늘의 아칸 쪽을 경계하는 태도가 꽤 노골적인 드라고니아였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너무 티 내고 있는 셈이었다.
어쨌든 지금 따질 일은 아니었기에 투란은 볼케인…… ‘대지를 파쇄하는 견고한 불꽃’이라는 그 속성에 붙여진 이름을 되뇌면서 놓인 환영의 판화 위로 마음 한 자락을 확실히 배치해야 했다.
화산, 용암이란 말에 마그마 로드로 대강 대처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아무래도 볼케인, 볼카닉 로드는 예상보다 훨씬 더 난폭한 몸짓으로 봉인에서 풀려난 해방감을 과시하고 있는 탓이었다.
‘트롤킨인가 뭔가가 훨씬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입맛이 씁쓸한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아주 얌전히, 비록 저주를 흘리는 채이지만 차분하게 유니콘홀드로 들어선 샤머닉 트롤의 뒤틀린 형상을 확인해야 했다.
로그람의 판화, 그 환영에는 트롤키아라고도 쓰인 그 ‘트롤의 일족’, 트롤킨이었다.
* * *
“여기는 어딘가?”
돌이 마주하고 갈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누구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트롤킨이 먼저 놀란 듯, 손을 들어 올리다가 한 번 더 놀라고 있었다. 여섯 가닥의 팔 중에 남은 것이 둘뿐이란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탓이었다. 그리고 트롤킨은 자신이 질문을 던진 대상을 보고 한 번 더 놀라서 헛웃음 같은 숨을 토해냈다.
투구, 쇠갑옷이 낡을 대로 낡았지만 뭔가 격식은 확실히 갖춘 무장을 한 해골…… 뼈만 남은 기사가 작은 탁자를 손짓하며 앉기를 권하고 있었으니까.
트롤킨은 그 손짓에 따르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상태를 다시 돌아봤다.
어째서 자신이 최소한의 이성을 회복하고 이럴 수 있는가를 따져야 했다.
답은 꽤 간단했다.
이성을 방해하던 저주, 그 저주로부터 일족을 지키기 위해 제물로 내줬던 자신의 몸…… 등짝에 가득 채워져 있던 저주의 희생자들까지 트롤킨에게서는 분리된 채였다. 결코 그렇게 될 리가 없는데!
갸웃하던 트롤킨, ‘저주받은 트롤키아’는 문득 느꼈다.
자신의 등 뒤, 원래는 등짝에 가득 채워진 희생자의 얼굴로 인해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시야가 확보되었어야 할 방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정상이 된 것처럼 트롤킨은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봤다.
꽉 찬, 혹은 완전히 텅 빈 방에 얼굴과 팔, 고름과 핏방울이 떠돌고 있었다.
그 광경의 의미가 트롤킨을 흠칫하게 했다.
투명한 바위 속에 트롤킨에게 들러붙어 있던 모든 저주가 갇혀 있다니!
게다가 그 저주가 흘려내는 악랄한, 결코 산 자의 목소리일 리가 없는 목소리가 트롤킨에게 닿았다.
“어떤 저주이든, 왕이 키우는 사냥개의 혓바닥을 벗어날 수는 없다오. 그러니, 앉아보시겠소?”
트롤킨은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번 기사의 복장을 한 해골, 언데드를 바라보니 저절로 트롤의 목소리가 의문을 담고 울린다.
“데쓰나이트?”
“아니외다, 이 몸은 그저 생자(生者)의 시절에 기사였기에 이런 의장(儀裝)을 갖추었을 뿐이라오. 왕께서 관대하게 허락해주셔서 말이오. 그보다, 혹시 택틱스란 유희(遊戲)를 아시오? 블랙 앤 화이트 택틱스라고…… 대마도사가 이계를 탐색해서 발견해낸 유희라 하오만…….”
“대마도사 카엘이 지성(知性)의 편린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흑백의 병사를 이용한 영토전을 말씀하시는가?”
“오호, 알고 계시는군! 아, 유희의 규칙도 아시오? 아니면 소문만 들었소?”
“규칙도 알기는 알지만…….”
“앉으시오, 나와 한판 놀아봅시다. 희고 검은 병사를 배치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오. 당신이 왜 다시 지성을 되찾고 내 앞에 앉아 유희를 할 수 있는가 말이오. 아, 물론 당신의 저주를 감금한 방에 대해서도 당연히 깨닫게 될 것이외다. 그러니, 지금은 나와 놀아봅시다.”
살점 없는 해골의 입가에는 어쩐지 웃음이 맴도는 듯했다.
트롤킨, ‘저주받은 트롤키아’는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부터 깨달았다.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