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72)
팅, 유니콘홀드의 목걸이가 투란의 목 줄기에서 살짝 울렸다.
‘음, 쉽네.’
투란은 트롤킨이 제 발로 유니콘홀드의 환영 속으로, 그 실체화한 성채 안으로 걸어들어와 기꺼이 ‘포박’되어 준 바에 안도하며 감사했다.
―얕잡아 볼 일 아니거든!
마음가짐과 사고방식이 엇나간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소리 없이 잔소리했다.
살짝 눈길을 돌려 무시하는 시늉을 하며 투란은 트롤킨의 판화를 손짓해서 지웠다.
처리한 녀석까지 남겨둘 수 없다는 그 무덤덤한 손짓에 하이람이 입술을 살짝 달싹이려다가 그냥 다물었다. 카이람은 그럴 수 없다는 듯이 눈가를 잔뜩 찌푸리고 투란을 노려보며 묻는 듯이 말한다.
“아무리 마물이 돼버린 이동요새라고 해도 그 샤머닉 트롤조차 견뎌내지 못한 저주를 완전히 봉쇄할 수는 없을 텐데……? 너, 괜찮은 거냐? 야, 그 눈빛은 뭐야? 걱정돼서 묻는 거잖아!”
슬쩍 눈꼬리 치켜뜨고 쏘아보는 척하다가 외면하는 시늉을 하는 투란을 향해 하던 말을 잊고 으르렁거려보는 카이람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눈가에 핏대만 세운 표정으로 카이람은 투덜거리면서도 더 묻고 따질 수가 없었다. 그 전에 투란이 옹알거린 몇 마디 때문이다.
“이 화산괴물…… 용암만 제압하면 될 줄 알았는데!”
드라고니아가 한숨을 쉬는 시늉을 했고, 검푸른 비늘의 아칸이 한쪽에서 고요하게 있다가 입을 가린 물보라를 열면서 바로 대꾸하듯 말한다.
“볼케인의 용암은 부수적인 형체일 뿐입니다. 그 불길에 휩쓸린 탓에 녹아 흐르는 매질(媒質)일 뿐이지요. 볼케인은…….”
“알아, 이미 말해줬으니까.”
드라고니아가 불쑥 끼어들며 이어지려는 말을 잘랐다.
투란이 소리 없이 ‘너보다 더 떠들려는 것 같은데?’라고 투덜거린 순간이었다.
아칸은 납득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지만, 카이람이 불평하듯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뭔데? 어떻게 잡는지 안다는 거야? 갈아 없애지도 못해서 간신히 봉인했는데, 너네는 저 화산 불덩이를 세상에서 지울 방법을 찾아낸 거냐?”
“옛 왕의 물음에 적절히 답해드릴 수가 없군요. 드라코눔은 정령술을 통해 그 피해를 줄이고 상쇄할 대항책만을 마련했을 뿐입니다. 만약 필요하시다면 지금 힘을 보태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칸이 검푸른 비늘을 찰랑이듯 고개를 들며 말을 멈췄다.
투란이 듣는 척도 안 하고 있었고, 드라고니아는 팔짱을 끼고 날개를 잔뜩 웅크린 채로 고개를 젓고 있는 탓이었다.
카이람이 이 상황에 한층 더 화가 난 듯, 그래도 바쁜 척하는 투란이 아닌 드라고니아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뭔데! 말 좀 해달라고!”
하이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카이람을 달래는 말투로 드라고니아를 보며 말한다.
“그냥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오. 과거의 희생을 아파하고, 어쩌면 앞으로 있을 희생을 막고 싶어 저러는 것이니 관대하게 양해해주시오.”
“알고 있습니다, 저도 투란도. 지켜보시면 됩니다.”
드라고니아가 친절한 설명을 위해서는 입도 벙긋할 낌새도 안 보이는 투란을 대신해서 대답하고 말았다.
―야, 작작 좀 해!
‘싫어! 메롱이닷!’
소리 없이 나온 대꾸는 매우 짓궂을 뿐이었다.
* * *
볼카닉 로드, 볼케인은 걸음을 멈췄다.
겨우 서너 걸음을 디딘 다음이었다.
그때마다 격렬한 지진이 퍼져 나갔고 주변 수백 미터를 가뿐히 뒤집어 버리고 있었지만, 볼케인이 본능적으로 예측한 범위보다 너무 좁은 영역만이 그 영향력이 닿을 뿐이란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볼케인은 갸웃하다가 한 팔을 들고 주먹질을 했다.
봉인되기 전, 이 주먹질 한 번이면 볼케인의 앞쪽 풍경은 수 킬로미터가 훤히 열리며 불타오르고는 했었다. 뭔가 가로막고 있다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이 주먹질에 으깨지고 불타 사라질 터였다.
퍼억, 콰아아아!
치솟는 불길! 터져 나가는 용암이 가득 얹어진, 가볍게 가늠한다 해도 수십 미터를 거뜬히 넘는 크기의 끓어오르는 바위 더미가 얹힌 산의 주먹은 장렬한 불꽃의 장막이 되어 치솟았다.
이글거리는 용암이 불꽃 안에서 물컹거리며 배어 나왔고 화산의 폭발력이 어린 열풍(熱風)과 파괴력을 집어삼키며 땅 위로 흘려내 버렸다. 걸어 움직이는 화산으로 보이는 괴물에게 수백 미터의 반경, 그 지체의 일부가 겨우 닿는 영역 안에서 벗어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라도 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보다 분명하게 그 존재를 드러내듯, 시커먼 결정이 용암의 장벽 안에서 울타리를 이루는 뼈대처럼 드러났다. 이리저리 가지 치며 듬성듬성한 큰 구멍이 여기저기 뚫린 엉성한 그물처럼, 시커먼 결정은 수백 미터의 화산 주변을 알뜰하게 둘러싸며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쿠릉, 콰르릉.
화산이 진동하며 용암과 불줄기를 분출시켰다.
다시 한 번 거대한 화산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퍼억! 콰아앙!
충돌과 함께 폭발이 요란하게 시커먼 결정을 뒤덮었다.
용암이 안개처럼 뿌려졌고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화산으로 이뤄진 거대한 형체가 그 용암을 끌어들여 몸에 둘렀고, 바닥에 흐르는 용암의 가닥은 울타리를 향해 쓸리듯이 빠르게 흘렀다.
볼케인의 머리 부분, 거대한 눈구멍이 용암을 눈물처럼 흘리며 커졌다가 줄었다가를 되풀이하며 갸웃거리는 듯한 분위기를 풍겨냈다.
마치 왜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흐르는 용암이 존재하냐는 듯,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듯.
울타리는 볼케인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불쾌함으로 물든 듯, 시커먼 결정 곳곳에서 둥글게 벌겋게 달아오른 덩어리가 나타나며 껌벅거리듯이 볼케인을 노려보는 형태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렇게 괴이한 눈길은 결국 서로와 마주쳤다.
콰릉!
* * *
“이것들…… 뭐냐?”
몬스터 세란드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되뇌었다.
격렬한 전장에 갑작스럽게 쏟아진 것은 한창 날뛰는 적을 향해 공격해나가니, 분명히 투란이 보낸 우리 편이 맞기는 했다. 한데 어째서 하나같이 소머리를 하고 도끼를 들고 있는가?
가디언 세란드가 가볍게 몬스터 세란드 곁에 내려서면서 물음에 답하듯 말한다.
“타우루스, 꽤 다양하게도 삼켜뒀군. 여기 다 풀어놓는 모양이다만.”
몬스터의 입술이 실룩이며 성난 속삭임이 튀어나온다.
“누가 그걸 보고도 몰라! 왜 소대가리냐고! 괴수화된 나무잖아! 더 확실하게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데, 왜 도끼 든…… 설마 지금 나무가 적이라고 나무꾼 흉내 낼 녀석들을 대이적으로 현화(現化)시켰다는 얘기냐! 대체 무슨 생각으로……!”
“디스펠에 집중해라. 저 괴물 나무의 주문은 이 마력 안개 밖으로 나가면 독립해버린다. 어서 집중해!”
가디언 세란드는 매우 냉정하게 투덜거림을 막으며 양손에 하나씩 쇠뇌를 쥐고 쏘아대며 말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보며 몬스터 세란드도 두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퍼져 나오는 마법의 파편을 막았다.
“아, 좀! 떠넘기지 말고 제대로 좀!”
하지만 투란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외침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에 호응하듯, 둘의 앞쪽에 커다란 일렁임이 피어올랐다.
일렁거리는 허공에서 느닷없이 시커먼 도끼날의 윤곽이 둘이나 튀어나왔고, 단숨에 간격을 찢으며 한껏 가지를 부풀리며 마법의 주문을 담은 씨앗을 부리는 괴물 영목을 내리찍었다.
콰직, 콰악.
거친 소리와 함께 영목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나뭇가지, 넝쿨, 껍질이 느슨한 촉수처럼 흔들거리며 그 자리에 작은 숲을 이루는 것처럼 요동치며 퍼졌고 흩어진 잔가지들이 땅을 파고들고 번식하며 곧바로 넝쿨뿌리를 뻗어내는 꼴은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니라 보살핌을 받은 듯했다.
그 광경에 몬스터 세란드가 입가를 실룩이는데, 가디언 세란드가 먼저 차갑게 말한다.
“버티질 못해서 저런 거야! 봐라, 도끼질이 제대로 먹히고 있잖아.”
“알아, 안다고!”
뒤늦게 짜증을 섞어 내뱉은 뒤, 몬스터 세란드는 창백한 두 손을 휘둘러 주변에 금을 그었다. 그어진 금을 따라 창백한 광채가 번져 나갔고 마력을 품으며 희미하고 차가운 빛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그 장막 안에서 몬스터 세란드는 길쭉한 귀를 앞으로 누이며, 그 사이에 영롱한 빛의 구체를 띄웠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마법, 온갖 주문의 씨앗과 안개가 빛의 영향을 받으며 확장을 멈췄다.
십여 미터가 넘는 거대한 타우루스, 킹 타우루스가 그 몸에 융합된 퀸 라미아의 꼬리를 휘두르며 허공의 구멍을 관통하듯 뛰쳐나왔다. 그 두 손에는 우악스러운 도끼가 시커멓게 한 자루씩 쥐어진 채였고, 다시 한 번 허공을 가르고 간격을 찢는 참격(斬擊)을 뿌려냈다.
온갖 색과 털, 발굽…… 때로는 인간의 두툼한 발을 지닌 미노타우루스까지 포함된 도끼잡이 타우루스들은 왕의 참격을 슬쩍 비켜서는 듯하다가 그 참격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돌격했다.
마법을 품은 씨앗을 뿌리고 마력의 안개와 함께 가지와 뿌리를 촉수처럼 휘두르는 괴물 나무가 몰려온 나무꾼을 만나 미쳐 날뛰며 저항했다.
땅이 뒤집히고 뿌리가 치솟으며 타우루스가 떼로 허공으로 튕기는 와중에 미노타우르스가 그 뿌리에 도끼를 박고 매달리는가 하면…… 꿈틀거리며 땅거죽을 뒤집으려던 뿌리가 십여 자루의 도끼에 단숨에 두들겨 맞고 토막 나 땅 아래 그대로 매장되기도 했다.
마법을 해제하고, 마법을 흩뿌리는 과정이 교차했다.
나뭇가지가 꿈틀거리며 몽둥이질을 하고, 그 몽둥이를 향해 도끼질이 이뤄졌다.
격렬한 전장은 한층 더 짙은 안개와 마법의 광채를 머금었다.
* * *
‘피해가…… 번질 일은 없네? 왜 이렇지?’
투란은 갸웃했다.
재앙이라 불릴 수 있는 몬스터, 수백 미터를 웃도는 큰 놈도 있지만 몇 미터에 불과한 작은 경우라도 그 영향력은 단숨에 왕도 하나 정도는 집어삼키고 제약 없이 확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재앙이 봉인에서 풀려났다면, 지금 포착하는 대로 주변환경부터 시작해서 상당한 살상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야 할 터였다. 하지만 봉인이 해체되고 어리둥절한 사이에도 하염없이 그 영향력을 흩뿌리고 있음에도 마침 지나가던 운 나쁜 짐승과 숲, 바위 따위가 그 피해를 입을 뿐이고 정작 봉인을 주도한 인간 쪽의 피해는 없었다.
가만히 그 상황을 다시 짚어보니 어렴풋이 짚을 수 있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다.
“봉인한 장소가 모두 국경 너머네요?”
재앙을 봉인한 곳은 모두 태양의 파편처럼 국경 안에 두고 지속적으로 순찰할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예 봉인이 깨질 때를 대비해서 국경 밖에, 인명피해라든가 도시가 파괴되지 않도록 한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도 이상한 점은 봉인된 곳 주변에 오래된 폐허가 점점이 박혀 있는 광경 또한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봉인 후에 그 지역에서 마을이나 도시, 요새를 철수시켰던 것인가?
투란의 의문에 하이람이 허공에 손짓해서 커다란 지도를 투영하며 대답한다.
“원래는 국경 안쪽이었어. 봉인하고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최소한의 경계, 수비는 가능한 영역 안에 봉인해야 했지. 하지만 춤추는 산맥의 침식, 긴 세월 동안 이뤄진 범람으로 인해 국경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옛날에 비하면 줄어든 것이 로그람의 영토야.”
투영된 지도에는 현재 로그람의 전체지형과 함께 과거 로그람의 국경선, 변해버린 지형과 사라진 도시가 다른 색으로 겹쳐진 채 담겨 있었다. 현재의 녹색(綠色)과 과거의 적색(赤色)이 완연히 별개인 곳, 두 가지 색이 겹쳐진 곳…… 그 안에 점으로 박힌 봉인의 장소는 대부분 적색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투란은 그중에서 현재의 국경 안, 도시와 가장 가까운…… 그래도 거의 백 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는 있지만 그나마 가까운 재앙이 깨어난 곳에 주목했다.
‘블러디 데몬메이든…… 진짜 다크레이디는 아닌가? 꽤 닮았는데…….’
―몸통이 인간 여성형일 뿐이다. 특징이 전혀 다르잖아! 아니, 그게 지금 따질 일이 아니잖아! 저거 곧바로 도시를 겨냥하고 있는 거 아니냐? 빨리 처리해야 하잖아!
드라고니아도 문득 지도 위에서 도시, 요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빠르게 명멸하는 재앙을 알아차린 듯이 외치고 있었다. 근엄하게 팔짱을 끼고 아무 문제 없다는 듯한 태도로, 오직 투란에게만 들리도록.
‘그래, 빨리 막기는 해야 하는데…… 에잇, 모르겠다! 최강의 몬스터 로드, 믿고 맡겨보자고!’
투란은 겨우 소녀의 체격인 몬스터, 그럼에도 재앙이라고 일컬어지며 끔찍한 과거를 기록하고 있는…… 얼핏 보면 딱 다크레이디의 추억을 떠올리는 몬스터가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하고 ‘보냈다’.
뿔수리의 문장이 기억하는 최강의 몬스터 로드, 칼로드가 완성한 형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