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75)
“전염에 대한 내성(耐性)이 가장 강한 소재이기는 했다. 위상변이를 통해서 그 내성을 한층 더 증폭하고 강화했으니까, 마력이 고갈(枯渴)되지 않는 한에는 봉인에 문제가 없다고 봤지. 외피(外皮)까지 둘러놨고 봉인상태에 이상이 없었으니까, 안쪽 상태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어.”
이를 가만히 듣던 카이람이 언짢은 듯, 하이람을 살짝 흘겨보는 듯하다가 보태 말한다.
“예상은 했지. 최악의 경우로 말이야. 그래서 봉인의 외피는 이차원 장막이었고, 완전한 단절, 격리상태로 유지하도록 해놨어. 느닷없이 왕의 부재란 상황이 터지고 연이어 왕가의 마력이 단절되고, 불가능할 줄 알았던 섀터드 패턴의 보수되며 흔들린 틈새, 파워 서클의 형성까지 이뤄지며 흔들어댔으니 튀어나온 거라고!”
“흐음.”
투란은 건성으로 흘려들었다는 듯한 소리를 냈고, 바이올렛 정크의 판화에 가볍게 손가락질했다. 판화가 한 번 일렁이는 듯하다가 사라졌다.
카이람이 움찔하며 투란을 노려봤고, 하이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돌린다.
“바이올렛 정크는 해결된 것이지? 그러면…… 저 블러디 데몬메이든은 저대로 둬도 괜찮은가? 저것이 내키는 대로 이동을 시작하면 추격할 방법이 거의 없다만…….”
“묶어놨으니까, 금방 마무리할 거예요. 뿔수리의 칼로드는 최강의 몬스터 로드니까, 지옥에서 온 숙녀인지 뭔지 까불어봐야 얼마나 오래 버티는가만 셈하고 있으면 돼요.”
투란은 으스대듯이 히죽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하이람은 투란의 곁눈질이 카이람을 향한 것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자극받은 카이람은 끙끙거리는 표정부터 짓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리잖는가.
“왜 최강의 몬스터 로드인데? 칼로드? 뿔수리? 그게 대체 뭐야!”
투란이 혀를 날름했고 드라고니아는 안 보겠다는 듯이 슬그머니 눈길을 돌려버렸다.
하이람도 이 심각한 상황에서 무슨 여유가 있느냐는 듯이 카이람을 살짝 흘겨보기는 했지만, 카이람이 발끈해서 투란을 바라보는 꼴을 보고는 살그머니 눈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검푸른 비늘의 아칸은 그렇게 오가는 눈길의 의미 따위는 알 바 아니란 듯이 새롭게 말문을 열고 있었다.
“옛 왕이시여, 칼로드는 수백 년 전에 춤추는 산맥에 찾아왔던 황금매의 대재앙을 막아냈던 몬스터 로드입니다. 그에 대해 기억하는 이들은 적고, 기록 또한 온전하지 않으나 드라코눔은 그 이름의 편린을 겨우 보존하고 있지요. 만약…… 칼로드가 남긴 유물을 계승했다면 최강이라 자부한다 해서 지나친 일은 아닙니다.”
“황금매?”
카이람이 적잖게 놀라서 되뇌었다.
하이람은 흥미롭다는 듯, 투란을 바라보며 말한다.
“드라코눔과 다르게 왕국 쪽으로 그 이름이 전해진 바가 없다. 그저 이름 모를 어떤 강자(强者)라고만 어렴풋이 소문처럼 전해졌을 뿐이야.”
투란도 드라고니아도 이에 대꾸하지 못했다.
검푸른 비늘의 아칸은 대꾸하고 있었다.
“칼로드의 뜻이었다고 하더군요. 황금매의 대재앙이 남긴 상처가 너무 컸기에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에게는…… 인류에게는 힘들 거라고. 그와 교류하던 드라코눔의 원로가 남긴 기록이 최근에 발견되어 저 또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투란이 움찔했고, 드라고니아가 황당해서 빠득 이를 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이갈림 사이로 ‘이 망할 영감이!’라는 몇 마디가 저절로 새 나오기도 했다.
이는 카이람에게 넉넉한 단서가 된 모양이었다.
“최근이라…… 용족 영감님이라면 오래 살면서 무슨 이상한 짓을 해도 이상하다고 할 수가 없기는 하지. 그런 모양이네.”
검푸른 비늘의 아칸은 입을 다물었다.
아칸의 호기심 가득한 눈길이 드라고니아를, 투란을 스쳤지만 둘은 이제 입을 꼭 다물고 당장 할 일이 매우 많다는 태도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당장 할 일이 있기도 했다.
탈키오 영감에 대한 이야기는 슬그머니 회피하고 몰라라 해도 괜찮으니까!
* * *
물컹물컹, 푸둥푸둥.
금빛과 보랏빛이 뒤엉킨 형체가 꿈틀거리며 쉭쉭거리는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극단적으로 응축되고 있었다. 금빛이 그 응축을 주도해서 강제로 보랏빛을 압축시키고 있는 듯했는데, 보랏빛 또한 특별한 저항 없이 자신의 중심에 자리 잡은 시커먼 조각을 보듬듯이 휘돌며 그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어 붙여 겨우 원형을 갖춘 시커먼 조각은 보랏빛의 물컹거리고 둔한 격류에 은근히 물드는 듯하면서도 바탕이 되는 흑색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이 살짝 자극적이고 신기해 보였다.
흑색이 투명하게 변해가며 잘게 부서지는 광경이 가속되는 현상은 그 자극과 신기함을 한층 더하는 듯한데…….
금빛이 포동거림이 기둥처럼 뭉쳐들며 바람을 들이켜고 단숨에 오그라드는 격동을 일으켰다. 보랏빛이 그 격동을 발판삼듯이 시커먼 조각과 투명한 티끌 사이로 곧바로 파고들었고, 한순간에 휘황한 광채를…… 색채만큼은 철저한 보라색을 유지한 광채를 흘려내고 금빛의 실금과 삼색의 늪을 받아들이는 듯하다가 촛불처럼 훅 꺼지며 사라졌다.
이제 홀로 남은 금빛이 꿈틀거리며 기둥처럼 꼿꼿했던 형체를 정리하는데…… 출렁거리는 포동포동한 금빛의 거대한 민달팽이가 보이지 않는 나선 껍질을 두른 것처럼 웅크리며 오그라들다가 희미해졌다.
금빛의 잔상은 그 자리에 오래 남았지만, 그 비어버린 자리를 휩쓸어간 회오리는 거칠고 사나운 만큼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오래된 왕국의 폐허, 인적이 끊어진 자리는 이제 짐승이나 벌레, 나뭇잎 조각도 잃어버린 것처럼 비워져 버렸다.
이를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눈길도 사라졌다.
* * *
‘이놈 봐라? 이래서 재앙이었나?’
투란이 미궁옥과 하나가 된 것처럼 꿈틀거리는 보랏빛 덩어리, 바이올렛 정크를 확인하며 웅얼거렸다.
소리 없는 그 속삭임에 ‘천칭’의 풍경 한쪽의 별빛무리가 찰랑이며 곧바로 소리를 일으켜 대꾸한다.
“로그람의 기록을 봐놓고 뭔 말이냐?”
‘보긴 했지, 의심할 만한 기록이었잖아?’
투란의 작은 반발에 드라고니아가 다시 소리를 내어 ‘천칭’의 풍경을 울리는 채로 말한다.
“분화(分化)도 소실(消失)도 없이 단색으로 물들이고 삼키는 놈이니까 재앙으로 분류했겠지. 설마 대충 확인하고 왕가의 자원을 소모해가며 하찮은 괴물을 봉인했겠냐? 검은 심장에 대항하는 마력까지 쥐어짜 낼 정도의 재앙이 맞으니까 그 기록도 바로 비춰 보여준 거잖아.”
‘음, 그 부분인데 말이야…… 미궁옥을 유지하는 마력을 공급하면서 거기서 다시 검은 심장을 조이는 마력을 쥐어짜 낸다는 이야기, 다른 녀석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얘한테는 좀 아닌 것 같지 않아?’
투란이 ‘천칭’의 풍경 속에서 미궁옥을 거처로 삼아 한껏 오그라들며 공허의 껍질과 아예 닿을 낌새도 보이지 않는 바이올렛 정크를 다시 살피며 말했다. 어디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는 환자에게 거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병마가 숨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특이한 경우이긴 하겠지만, 미궁옥의 마도술식을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닐걸?”
‘어? 미궁옥의……?’
“바이올렛 정크에 물든 채로 쉼 없이 최초의 형태로부터 부여된 마법을 수행하고 있잖아. 내부를 변화시키고 미로를 만들어 왜곡된 위상 속으로 바이올렛 정크가 스며들도록 하지. 그 활동(活動)에 마력이 동반된다. 어쨌든 몬스터니까. 세계와 어긋난 존재가 움직여서 생겨나는 마력을 이용한다는 말이야. 분화 없이 무제한으로 팽창, 확산되고 극소단위로도 소실하지 않는 마물의 움직임은 작더라도 멈추지 않잖아? 대량의 마력을 한꺼번에 뽑아낼 수는 없더라도 가늘고 길게 한없이 끌어낼 수는 있지.”
‘아하…… 이제 알겠어. 그러니까 이놈은 마물이면서 어찌 보면 파워 서클처럼 일정량의 마력을 계속 걸러내줄 수 있단 이야기네. 음, 납득했다. 그럼, 나도 비슷하게 활용하면 되려나?’
“네가 그걸 활용하려면 미궁옥의 마도술식을 완벽하게 다뤄야 할걸?”
살짝 아니꼽다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흐드러진 별빛무리가 찰랑이며 찌푸린 표정이라도 짓는 분위기인 것을 느끼며 투란은 키득거리는 답을 한다.
‘잊었냐? 이 미궁옥의 마도술식, 로그람의 고대마법이라고. 왕의 마법 앞에서는 그냥 완벽하게 복종하지!’
* * *
뚜득, 고개를 가볍게 옆으로 누이니 뭉친 근육이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풀리는 듯했다. 그런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두껍고 무거운 목소리로…… 다른 이들에게는 신중함을 더하는 듯하지만, 투란에게만은 몹시 짜증 난 기분을 고스란히 전하는 말을 한다.
“바이올렛 정크는 이제 마무리되었잖아. 확산을 멈췄다면 된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데몬메이든을 빠르게 정리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 좋아. 오랫동안 붙잡아 둘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아무리 켈베로스의 눈이라고 해도 말이야, 블러디 데몬메이든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바탕은 헬메이든이라잖아. 타르타로스에서 비롯된 명계의 능력에 대해 대항할 수단이 있을 거야. 그걸 꺼내기 전에 끝을 보라고.”
“그렇게 말한다면.”
대강 고개를 끄덕이면서 투란은 ‘칼로드’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작은 공방’을 다루며 ‘칼로드’가 남긴 궁극의 형상을 다루는 자신, ‘투란’에게 조금 더 힘을 옮겨주는 투란의 볼을 향해 곧바로 황금매가 부리를 들이댔고 몬스터 세란드가 으르렁거리는 메아리가 귓가로 스며든다.
―이런 썩을! 묶어놓은 한 마리보다 여기가 더 급하거든!
‘어? 잠깐 참아봐. 울타리는 더 보강해둘 테니까.’
―야, 인마! 너 진짜 오늘만이야! 다음은 없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잔소리하지 말고 어떻게든 먼저 그걸 쓰러뜨릴 궁리를 하라고.’
―뒈졌어! 이 빌어먹을 것!
투란은 몬스터 세란드가 나무를 향해 도약해서 격돌하는 과정을 느끼면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투덜거리고 있었고 더 많은 지원을 바라는 듯했지만 몬스터 세란드는 어떻게든 괴수화된 영목, 스펠트리란 별명으로도 불리는 재앙을 처단할 틈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나직하게 불렀다.
투란에게 다른 곳에 한눈팔지 말라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음, 거의 다 파악했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도 너무 빨라서 까탈스럽기는 한데…… 이제 정리될 것 같아.”
점잖은 말투로, 슬쩍 한눈팔던 짓 따위 없었다는 시늉으로 대답하며 투란은 ‘칼로드’의 주변을 살피고 점검했다.
* * *
소리는 아주 느리게 퍼져 나갔다.
격돌이 이뤄진 곳이 비워지고 한참 후에야 소리는 간신히 메아리의 자격을 획득한 것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아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광경도 아니었다.
그저 우뚝 선 형상을 향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가 그림자처럼 빠져나가는 괴이한 형상이 풍경을 장식할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소리가 번질 때는 천둥이 울리는 듯했고 그 형상이 충돌할 때는 벼락이 번쩍이는 듯했다. 한 번이 아니라 연이어 수십 차례나 되는 천둥, 벼락의 난무(亂舞)는 주변을 초토화하며 티끌로 뭉개 멀리 보내는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기괴한 광경을 직접 체험하는 ‘칼로드’와 블러디 데몬메이든만이 서로의 교착(交錯)과 상태를 확실히 알고 있는 듯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칼로드’는 여유롭게 방어하는 자세를, 블러디 데몬메이든은 한층 더 사납고 신속하게 공세(攻勢)를 더해 갔다.
상처는 ‘칼로드’에게서만 일방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핏빛줄기로 뻗어 나간 ‘칼로드’의 손톱은 자수정의 심지를 지닌 데몬메이든의 손톱, 발톱, 날개와 꼬리의 핏빛과 만나면 그저 부서질 뿐이었다. 이슬처럼 영롱한 ‘칼로드’의 손톱 뿌리마저 금이 갈 정도로 그 충격은 거셌다.
하지만 이런 손톱, 블러드 네일의 파손(破損)은 ‘칼로드’의 몸에 남겨진 상처랑 비교하면 오히려 스쳐 지나간 듯이 가벼웠다.
단숨에 팔이 절단될 듯한 상황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허벅지와 발목도 마찬가지로 난자(亂刺)당했으며 몸통은 크고 작은 구멍이 수십 번, 수백 번 뚫린 채였으니!
상처가 나지 않는 부분은 오직 머리 언저리였는데, 이는 데몬메이든이 우물거리는 입의 움직임을 일부러 외면하는 때문이었다. 뿔이 일으키는 기괴한 울림에 휩쓸리면 위험하다고 파악한 것처럼. 다른 한쪽으로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불길한 눈동자, 눈구멍 속에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켈베로스의 눈을 꺼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일부를 제외하고는 쉴 새 없이 베이고 패이며 제자리를 빙빙 돌며 막는 것도 급급해 보이는 것이 ‘칼로드’의 현재 상태였다.
하지만 ‘칼로드’는…… ‘작은 공방’의 심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투란’은 여유롭게 관조(觀照)하며 블러디 데몬메이든이 온몸에 피칠을 하며 거센 공격을 하면서도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광경을 즐기는 중이었다.
‘칼로드’가 남긴 최강의 형상이 한층 더 강해질 단서를 발견한 기쁨을 한껏 머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