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76)
Chapter 236. 재앙의 왕자, 열전 Ⅳ
자수정의 심지를 머금은 핏빛줄기의 손톱이 베고 지나간 자리에는 여운이 남겨져 있었다. 허투루 상처를 회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요사스러운 독성을 머금었고, 상처를 한층 더 갉아먹는 음습한 중독이 담긴 여운이었다.
그런데 ‘칼로드’의 몸은 상처를 수복하지 않았다.
흉터 없이 신속하게 재생하거나 흉터를 간직한 채로 치유되지도 않았다.
상처 주변으로 살점이 속이 꽉 찬 거품처럼 피어나고, 그 흉한 몰골로 상처를 향해 소용돌이를 일으켜 오그라들 뿐이었다. 마지막 작은 점이 구멍에 빠진 것처럼 사라지면, 상처도 사라져 버린다.
마치 몸의 깊은 어딘가에 상처를 삼키는 늪이라도 있는 것처럼, 상처를 함몰시키며 집어삼킬 뿐이었다. 그리고 몸은 불끈거리는 미세한 경련과 함께 원래 형상을 유지한다.
잘려 나갈 듯했던 팔도, 하염없이 베어져 나가 너덜거리는 다리도 그렇게 원형을 유지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 광경에 짜증 난 듯, 자수정 심지를 지닌 핏빛줄기가 크게 확산되어 펼쳐진 채로 단번에 팔과 다리를 베어 끊기도 했지만…… 베어나간 단면을 삼킨 거품은 다시 원형을 짜 맞출 뿐이었다.
그 짜 맞추는 속도는 블러디 데몬메이든의 가속과 거의 맞물린 것이 상처 입는 속도가 그대로 반영되는 듯했다.
어찌 보면 신체의 한 부분이 망가지면 즉각 다른 곳에서 해당 부위를 가져와 끼워 붙인다고도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최초의 원형에 맞게 맞춤으로. 그 과정은 살점과 거품, 소용돌이라는 흉한 몰골이었지만!
이 흉악함은 블러디 데몬메이든을 본능적으로 질리게 했다.
새로 입혀놓은 상처가 누더기처럼 오롯한데, 그 자리를 끼워 맞춰 상처가 없는 듯한 몰골이라니!
과연 자신이 속도를 잃을 때까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저럴 수 있는가? 없는가? 이 싸움은 누가 먼저 지쳐버릴 것인가를 겨루는 것인가?
이렇게 데몬메이든이 본능에 따라 전투 상황을 가늠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변고가 생겨났다.
파칫!
가속하고 있던 데몬메이든의 핏빛이 가득한 날개가 찢어졌다.
계속해서 부숴 나가던 ‘칼로드’의 핏빛줄기, 그 파편 중 제법 크게 남은 것이 바스러지기 전에 데몬메이든의 날개에 닿은 탓이었다.
가속으로 인해 날개의 열상(裂傷)은 더 심하게 확장되는 듯했다.
때문에 데몬메이든은 잠시 거리를 두고 온몸에 핏빛 무늬를 반짝이며 멈춰야 했다.
누구랑 다르게 데몬메이든이 날개를 회복하는 일에는 시간과 정성이 적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칼로드’는 그 순간을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쿠웅.
한 걸음이 강한 충격과 함께 디뎌졌다.
활짝 펼쳤다가 오므리는 ‘칼로드’의 두 손, 손뼉 치는 동작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 손끝에 매달린 핏빛줄기가 허공을 가르는 상황은 대상을 무참히 절단하겠다는 강렬한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발 구름으로 상대의 균형을 방해하면서 가해오는 참격(斬擊)이었으니, 그 날카로움을 고려한다면 실로 끔찍한 공세였다.
그리고 블러디 데몬메이든에게는 반격의 기회였다.
발 구름 탓인 것처럼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며 ‘칼로드’의 한쪽 겨드랑이를 향해 달려들며 자수정 심지가 박힌 손톱으로 휘둘러지는 팔을 베고, 몸통을 절단한다, 블러디 데몬메이든이 온몸의 핏빛 무늬를 번쩍이며 블러드 네일의 광채를 흘려내는 채로 시도한 일이었다.
지옥으로부터 물려받은 본능적인 전투감각이 이제까지 ‘칼로드’를 도륙하며 쌓아온 관찰을 바탕으로 해서 최고의 선택을 골라낸 것이었는데, 블러디 데몬메이든은 전투감각의 판단이든 자신의 관찰이든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와드득.
‘칼로드’의 뼈마디 입이 움직인 순간, 데몬메이든의 한쪽 손목이 사라졌다.
손목이 사라진 팔은 ‘칼로드’의 손에, 데몬메이든이 절단하려던 팔의 끝자락에 웅켜쥐어진 채였고 또 다른 ‘칼로드’의 손끝에 매달린 블러드 네일이 몸을 절단하기 위해 휘둘러지는 중이었다.
극단적인 위기의 순간, 블러디 데몬메이든의 결단은 과감했다.
재빠르게 자신의 겨드랑이부터 날개의 발톱으로 치올려 베어내서 잡힌 팔을 떨궈내고 바닥을 박차며 거리를 둔다.
판단은 옳은 듯했고 그 시도는 반쯤 성공했다.
바닥을 박차고 몸을 띄운 다리가 허벅지부터 끊어지는 소소한 일이 있는 탓에 의도한 대로 멀리 거리를 두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블러디 데몬메이든은 자신의 핏빛이 사그라들며 뭔가에 언제부터인가 지독하게 두들겨 맞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고 그걸 이제야 느낀 탓에 상처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도대체 뭔가?
그 실체를 알아내기 전에 먼저 바로 낯짝을 들이밀며 영체(靈體)를 사로잡는 지옥의 눈빛을 번뜩이는 채로 블러드 네일을 휘두르는 놈부터 밀어내야 했다.
그래서 블러디 데몬메이든은 얼굴을 쏘아버렸다.
눈을 크게 뜨며 눈빛 대신에 눈구멍 가득히 블러드 네일을 쏘아내는 가면 같지만 진짜인 얼굴이 ‘칼로드’를 덮쳤다.
박치기인가 입맞춤인가 애매한 격돌이었다.
그사이에 데몬메이든은 날개를 움직이며 거리를 두려 했다.
사각.
그러나 허리가 베어졌다.
날개도 끊어졌다.
단 일격에 넓은 범위가 베어졌다.
그 일격을 담은 블러드 네일, ‘칼로드’의 손톱에는 자수정 심지가 박혀 반짝거리고 있었다.
파삭, 가면 같은 얼굴이 으깨진 광경은 그다음에 명확해졌다.
‘칼로드’의 뿔이 웅장하게 울리며 퍼진 음향의 파동이 철벽처럼 펼쳐지기도 했다.
동강난 허리, 상체가 날개의 여력으로 튕겨 나가는 것과 반대로 하체는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다가 ‘칼로드’의 무거운 걸음에 짓밟혀 사라지고 있었다. 데몬메이든에게는 어딘가 낯설었지만 동시에 희미한 기억을 자극하는 광경이었다.
캬아앗!
충격파를 머금은 음향이 데몬메이든의 입에서 쏘아졌다.
‘칼로드’가 그 충격을 가르며 다가서려 했다.
그러나 핏빛이 자욱하게 데몬메이든의 몸, 절반에 불과한 상체를 휘감았다.
블러디, 데몬메이든에게 붙은 이명(異名)의 머리말이 무엇 때문인가를 밝히려는 것처럼 핏빛을 머금은 피의 흐름이 쏟아져 내리며 사라진 하체를 구성해냈다. 마치 동강 난 허리 아랫부분을 피로 그려서 대체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핏빛 발걸음이 빠르게 뒤로 물리었고 블러디 데몬메이든은 얼굴이 사라져 구멍 난 머리를 들이대며 한층 더 강렬하게 포효했다.
구멍 속에서 핏덩이들이 쏘아져 나갔다.
핏덩이마다 가면 같은 얼굴이 돋아났고 여전히 돌격해오는 ‘칼로드’를 포위했다.
상하좌우, 전후를 모조리 차지하겠다는 듯이 펼쳐진 얼굴의 포위진은 일제히 눈을 부릅떴고 입을 열며 핏빛다발을 쏘아냈다. 눈과 입으로 쏘아낸 핏빛다발은 블러드 네일이었고, 베기가 아닌 찌르기로 단번에 ‘칼로드’를 세상에서 지워내려는 듯이 사납게 뻗어 나갔다.
서걱.
블러디 데몬메이든은 그나마 온전했던 팔 하나가 썰린 것을 알아차렸다.
뭔가가 데몬메이든의 몸을 묶고 당기며 간단하게 ‘칼로드’의 간격 안으로 끌려 들어간 탓이었다.
그사이에 얼굴들이 하나씩 뭉개지며 블러드 네일의 폭포같은 공격이 지워지고 있기도 했다. 어째서인가 ‘칼로드’가 몸에 두른 가죽이 더 이상 블러드 네일에 뚫리거나 베이지 않는 탓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데몬메이든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칼로드’가 다시 한 번 내지르는 빈손, 우악스럽게 할퀴는 손짓을 담은 그 손에서 자수정의 심지가 반짝이며 블러드 네일의 격(格)이 달라진 것을 증명했으니까. 보다 높은 격을 확보한 ‘칼로드’의 뼈 갑옷이 그에 걸맞은 내성(耐性)을 얻어 더 이상 데몬메이든의 블러드 네일, 자수정 심지가 누락된 블러드 네일은 전혀 위력이 닿지 못하며 이제는 자수정 심지가 박혀 있다 해도 절반을 겨우 파고들 뿐이란 것을, 날개 끝자락에 번뜩이는 자수정 핵(核)을 간직한 발톱으로 베려 하다가 알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수단이 필요해졌고, 데몬메이든은 머리의 텅 빈 구멍 안으로 입과 코가 없이 눈구멍만 뚫린 얼굴을 채워 넣었다. 핏덩이가 구멍 깊은 곳에서 치솟아 빈자리를 채우는 순간, 그 눈구멍을 열며 핏빛의 눈알을 드러낸 채로 데몬메이든은 ‘칼로드’를 바라봤다.
키앗!
위협보다는 경악한 비명 같은 소리가 저절로 데몬메이든에게 새 나왔다.
여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 탓이었다.
‘칼로드’의 뼈 갑옷, 뼈 장식 사이로 드러나 살랑거리던 털 가닥, 그 잔잔하고 별 의미 없어 보이던 털 가닥이 굵고 길게 자라난 채로 주변을 꽉 채우고 있다!
그 투명한 줄기가 데몬메이든의 목 줄기를 휘감아 묶었고, 날개와 어깨를 말아 감고 있잖은가!
‘칼로드’와 데몬메이든의 눈이 마주쳤다.
뼈로 된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칼로드’가 손을 내밀었다.
거부할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상황으로 그 손에 데몬메이든은 머리를 붙들렸다.
잡혀 움켜쥐어진 채로 더 당겨져 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최대한 그 눈길을 피하기 위해 데몬메이든이 얼굴을 뒤트는데 그 붉은 시야 안에 잘려나간 자신의 손 하나가 보였다. 손목부터 착실하게 도려내진 채인데 이상할 정도로 온전하게 ‘칼로드’가 손에 쥐고 있잖은가?
핏빛의 눈빛을 쏘아내며 데몬메이든이 잘려나간 몸의 파편을 움직이려 하는 순간, 그 머리가 으스러졌다. 데몬메이든의 몸도 투명하게 휘감은 줄기에 의해 파쇄되며 사라져 갔다.
파괴던 얼굴, 한쪽만 남은 데몬메이든의 눈구멍이 움직이며 ‘칼로드’에게 저주라고 걸려는 듯이 노려볼 낌새를 흘려냈다.
‘칼로드’는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봐줬고, 그 순간 데몬메이든은 기억해냈다.
아주 오래전, 봉인에 감금되기 전에 만났던 하찮은 포식자들. 포식자임에는 틀림없지만 너무나도 하찮았던 그들의 계승자, 최강으로 완성된 포식자가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몬스터 로드 ‘칼로드’란 것을.
데몬메이든은 핏빛을 잃어가며 이 기억을 온전히 지옥으로 갖고 돌아가기를 본능적으로 염원했다. 그리고 남은 눈구멍이 파괴되며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들며 지옥으로 귀환하는가 싶은 순간이었다.
* * *
팅, 팅, 팅.
망치 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팔락거리는 뭔가에 자신이 눌어붙은 것을 깨달아야 했다.
데몬메이든은 자신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도 느껴야 했다.
블러디, 그 이명을 더했던 핏빛의 힘이 분리된 채로 곁에 박혀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 힘이 분리될 수가 있을까?
데몬메이든은 자신이 뭔가에 박혀 있는 탓인 것을 깨달았고, 박힌 채로 자신이 낱낱이 해체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본능에 따라 움직여야 했던,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소환의 조건이었기에 받아들여 이성과 지성을 모조리 억눌러야 했던 상황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지옥이 아니란 것도 알아차려야 했다.
“호오? 대단하군. 단순한 악마종이 아닌 줄 알았지만, 진짜 지옥의 정예일 줄은 몰랐어. 대단하네. 소재도 좋고, 정수도 꽤 우수하고…….”
뭔가가 데몬메이든을 평가하고 있었다.
데몬메이든은 그 뭔가를 볼 수 없었다.
그저 그 존재를 느낄 뿐이었다.
저편, 이 기묘한 풍경의 중심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그 주변을 맴돌며 저절로 움직이는 망치,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존재는 보이지 않았지만 말을 하고 있었고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을 어떻게 지옥으로부터 가로챘는가를 묻고 싶었지만, 데몬메이든은 물을 수가 없었다. 의문을 떠올린 순간, 자신이 어디에 속박되었는가를 알아차린 탓이었다.
공포와 절망, 납득할 수 없는 기괴한 환희가 데몬메이든을 덮쳐왔다.
커다란 책의 한 페이지, 몸의 곳곳이 따로 그려진 듯한 책의 한쪽에 그림이 되어 박혀 있는 상황이라니!
이 알 수 없는 풍경만큼이나 납득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닌가!
“인지 능력도 상당하네? 이 작은 공방을 느끼고 자신이 책 속에 새겨진 것도 알고 말이야. 하핫, 뭐 앞으로 종종 펼쳐보도록 할게. 오늘은 이만.”
책이 덮였다.
데몬메이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모든 느낌이 사라졌고 시간조차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자아, 이 정도면 충분히 실험된 것이지? 투란, 칼로드는 여기서 잠시 물러난다. 아, 그 전에…… 이런 대이적이라면 이 정도는 괜찮겠지? 뭐 놀라지 말라고, 과정 따위 몰라도 결과를 분명하게 파악해냈다면 당연히 마음껏 재현할 수 있잖아. 몬스터 로드이니까. 우리의 문장은 그러한 신비(神祕)잖아? 그럼, 잘 받아두라고.’
‘작은 공방’이, ‘투란’이 ‘칼로드’의 마음가짐으로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