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77)
투란은 왼쪽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아귀에서 불끈거리며 살점이 거품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그 거품 안, 빛의 여운에는 블러디 데몬메이든의 잘린 손목이 담겨 있었다. 환상을 살덩어리 속에 비춰 넣은 것처럼.
“흠.”
―뭐냐?
흘깃한 드라고니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투란은 억지로 왼손을 꽉 쥐었고, 잠시 후 펼친 손을 뒤집었다.
손등을 보며 펼쳐낸 손가락 끝에는 자수정의 손톱이 핏빛의 테를 두른 채로 선명하게 빛났다.
―블러디 데몬메이든의 블러드 네일이냐?
드라고니아가 살짝 얼떨떨하다는 듯,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호기심에 대신 응해주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현장에서는 ‘칼로드’가 형체를 감추며 주변을 정리한 다음이었다.
파괴의 흔적, 블러디 데몬메이든이 날뛰고 지나간 자취가 깨끗하게 지워지고 나서 느닷없이 그 정수가, 온전하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최소한 데몬메이든이 가장 분명하게 과시하던 흉기의 정수가 갑작스럽게 투란의 손에, ‘천칭’을 통해서 그 형상을 갖춰낸 광경이었다.
“그런 것 같지?”
투란이 조금 어리둥절한 말투로, 설마 이렇게도 될 줄은 몰랐다는 듯 답했다.
‘칼로드’의 말대로 대이적의 여운일까, 아니면 대이적에 얹힌 반지의 마법일까?
―야, 너무 한가한 거 아냐?
투란의 왼쪽 어깨에서 황금매를 통해 몬스터 세란드의 투덜거림이 전해져왔다.
어째서인가 꽤나 여유로워진 듯한 투덜거림이었고 투란도 빙긋 웃으며 답한다.
“한가해져야 하잖아? 너도 정리 다 된 거지?”
―보면 알잖…… 썩을! 저놈 좀 조용히 시켜!
넋두리처럼 답하던 몬스터 세란드가 짜증을 냈다.
투란은 곧 그 주변의 풍경으로 마음을 옮겼다.
곁에서 누가 뭐라 하는 소리는 드라고니아에게 떠넘기는 마음가짐으로!
* * *
워어어어어!
하늘 높이 두 손에 든 검은 도끼날을 치켜올리며 킹 타우루스가 포효했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힘이 파동이 주변을 울리며 킹 타우루스가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가를 증명하는 듯했다. 굵은 뿔이 허공을 찌르며 10여 미터에 달하는 신장(身長)과 우람한 체격이 주는 위압감과 더불어!
묘한 자세로 이를 내려다보는 몬스터 세란드는 이빨 사이로 아득거리는 작은 소음을 섞은 채로 투덜거려야 했다.
“상처가 없는 거냐, 상처를 지운 거냐.”
‘퀸 라미아의 비늘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았을걸. 아니면 저 강체파동 효과로 몸이 철벽이라 상처가 없을 수도 있고. 그런데 왜 짜증 낸 거야?’
투란이 투덜거림에 슬쩍 친절한 해답을 주는 척하면서 되물었다.
아득아득, 창백한 손에 든 고목(枯木)의 심지 같은 것을 이빨로 긁적이면서…… 왜 그런 괴상한 짓을 하는가를 따지기 전에 도대체 어찌하면 10여 미터가 넘는 거구를 허리 아래로 내려다보는 중인가부터 따져야 할 모습으로 몬스터 세란드가 투덜거림을 잇듯이 대꾸한다.
“그냥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메아리 울릴 때마다 잔가지 모으는 일이 훼방이란 말이야! 야, 묻기 전에 먼저 좀 둘러봐! 둘러보면 지금 상황 그냥 알 수 있잖아!”
‘어…… 뭐…… 음.’
말한 대로이기에 투란은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전장의 마무리는 이미 느껴 아는 그대로였다.
킹 타우루스는 멀쩡했지만 다른 타우루스, 여기저기 뒹구는 미노타우루스와 타우곤까지 모두 온갖 마법의 폭격에 휩쓸려 멀쩡함과는 완전히 단절된 듯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수축을 일으키는 마법에 당해서 팔다리 한 짝이 오그라든 경우, 머리가 오그라든 경우도 있었고 번개나 불길에 반쯤 숯이 된 채로 땅바닥에 처박힌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몸통만큼 머리가 커져 주체를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경우도 있고, 얼음에 반쯤 갇히거나 그냥 몸 한쪽이 얼어붙어 버석거리는 몰골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알 수 있는 마법의 흔적을 보이면 다행이란 듯, 한쪽에서는 도대체 무슨 마법에 당했는가 모호하고 이상해서 짐작도 어려운 경우도 잔뜩 있었다.
왜 가죽을 벗겨내고 힘줄을 당길 정도로 몸을 긁는 중인가, 무슨 장난을 하자고 한 다리를 정지된 것처럼 들어 올리며 걷는 시늉으로 멈춘 듯한 몰골인가, 제자리에서 맴돌며 왜 자꾸 자기 엉덩이를 보려 하는가, 혀를 날름거리며 배꼽을 핥으려는 해괴한 태도는 또 뭔가!
그리고 아예 토막 나거나 잔해만 남았지만 여전히 맥동하는 생명력으로 짓뭉개진 형체가 되어 문장에 회수되지 않은 녀석들까지!
타우루스의 군단이 왕의 강대함과 별개로 꽤나 치열하고 끔찍한 전장을 겪었다는 증거를 가득 드러내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틈새로 보이는 잔가지…….
마수가 된 거대한 영목을 파괴하고 그 밑동을 깔고 앉은 몬스터 세란드의 어깨 위에 작은 요정처럼 앉은 하피 여왕, ‘천칭’이 아닌 황금매의 여왕이 킹 타우루스의 포효 사이로 새 나오고 스며들어 번지는 듯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에 따라 꿈틀거리며 마법의 씨앗을 머금은 영목의 파편, 나무토막과 가지, 껍질이 꿈틀거리고 꾸물거리며 몬스터 세란드의 발아래로 모여들고 있었다.
괴수라 해도 어울렸던 영목, 재앙이라는 스펠트리의 핵은 몬스터 세란드의 두 손에 쥐어진 채로 그 미간 앞을 장식한 듯한 구슬…… 거대화한 탓에 몬스터 세란드의 눈 사이에 매달린 조그마한 장식처럼 보이는 옴니앙에 의해 마법으로 해체당하며 이빨 사이에서 갉히는 중이었다.
‘떨어져 나간 가지나 껍질은 완전히 독립한 건가?’
문득 느끼면서 투란이 물었다.
“아득! 보다시피. 뭐, 새 나간 쪼가리는 없어. 가디언이 외곽을 지키잖아.”
몬스터 세란드의 말에 투란은 가디언 세란드의 위치를 바로 느꼈다.
마력이 가득했던 안개가 통제되고 있었고, 그 영역의 경계선이 새로운 마법에 의해 그어지고 있었다. 스펠트리의 영향을 확대해 나가던 영역이 이제는 파워 서클에 의해 정화되는 울타리 노릇을 하는 셈이었다.
그 안을 로드 오브 몬스터, 황금매의 하피 여왕이 지배하며 스펠트리의 잔가지…… 이제는 독립한 채로 마법을 간직한 수목형 몬스터인 파편들을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거기에 킹 타우루스가 포효하며 슬쩍 훼방을 놓는 꼴이고!
‘진정시켜야겠네.’
결국 투란은 어쩔 수 없이 몬스터 세란드의 투덜거림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피 여왕의 노래는 저 포효가 아니었다면 훨씬 강력하고 깔끔하게 스펠트리의 잔가지들을 싹 다 모았을 테니.
그래서 투란은 킹 타우루스를 향해, 융합되어 그 몸을 연못 삼아 유영(遊泳)하듯이 움직이는 퀸 라미아를 향해 고르고니아 세 자매의 속삭임을 전했다.
―잘했다, 이제 돌아오렴.
푸릇! 워어어어어!
마지막 괴성을 내지르며 킹 타우루스가 두 손을 가슴으로 모으며 무릎을 굽히고 몸을 숙였다. 그 어깨 위로 퀸 라미아의 머리가 살짝 얹히듯이 솟아나고 허리와 다리를 감싸는 뱀의 형상이 옷감처럼 드러났다. 그렇게 온전하게 존재를 과시하며 고대의 예법을 따르는가 싶다가, 킹과 퀸의 형상이 재가 되어 폭포처럼 흘러내려 사라졌다. 그 흘러내림과 함께 타우루스의 군단 역시 함께 재로 휘날리며 지워졌다.
투툭, 시커먼 도끼날 두 자루만이 킹 타우루스의 위치에 내리꽂히며 조금 전까지 보였던 타우루스 군단이 환영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하피 여왕의 노래가 보다 또렷하게 울려 퍼졌고, 덜그럭거리며 스펠트리의 잔가지가 더욱 빠르게 모여들었다. 뱀처럼 기고, 돌처럼 구르고, 바람결에 날리듯이…….
‘야, 그런데 말이야, 너 거대화하는 능력도 있었어?’
불쑥 투란이 물었다.
스펠트리의 본체, 거대한 영목이 마수화되어 대형 괴수라 해도 인정할 듯한 크기의 거대 수목이 남긴 밑동은 2, 30미터는 거뜬히 넘길 듯한 굵기인데 그걸 의자 삼아 깔고 앉았고 10여 미터가 넘던 킹 타우루스를 허리 아래로 내려다볼 정도로 커져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게다가 이제 막 마지막 부분이 갈려 나간 스펠트리의 핵을 움켜쥐고 압박한 저 손, 투란에게는 낯설기 이를 데 없는 몬스터 세란드의 형상이 아닌가! 전에 봤는데 잊은 채라면 은근히 자신에게 섭섭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황금매와 함께 얻은 몬스터의 형상인데, 여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니!
“뭐가 그리 섭섭해? 오늘만이잖아, 오늘 처음 봤으면서. 아, 이 크기로 몸을 키운 것은 내 능력이 아니야. 이건 그냥 로그람의 고대 마법에 슬쩍 얹힌 것뿐이야. 대이적인가 아닌가는 애매하다만, 거인화 비술이라고 분류된 것이었어. 그리고, 아니, 야! 이런 걸 뭘 부러워해? 굳이 거대화 없이도 거대하게 뿜어낼 수 있으면서! 내 손은 그만 궁금해하고, 나중에 도서관이라도 찾아봐. 사냥한 것이 아니라 망할 마도사 새끼한테 석화된 유물로 얻은 거였으니까. 그니까, 야, 인마! 여기도 겨우 정리 중이지만, 아직 싸우는 녀석도 있잖아! 이제야 깨어나는 재앙도 있나 본데, 정신 차려!”
‘쳇, 알고 있어. 내가 아니까 너도 아는 거잖아.’
툴툴거리면서도 투란은 일단 하피 여왕을 주시했다.
새하얗고 거대한 꼬리, 은근히 의자처럼 펼쳐진 꼬리를 배경으로 괴물 여우가 고개를 까닥였고 그 어깨에 올라앉은 하피 여왕이 가만히 고개를 들고 보다 크게 목소리를 울려 냈다.
잔가지가 한데 모여 엮이고 서로를 짜 맞추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갔다.
그 형상을 향해 금빛의 바람이 몰려들고 황금매의 고유 마력을 흘려내며 보자기처럼, 그물처럼 덧씌워갔다.
멀리 경계를 선 가디언 세란드가 여백을 채우듯이 보다 강력하게 마력의 영역을 조였고, 스펠트리의 영역을 지워나갔다.
마무리를 지시한 다음, 투란은 마음 한쪽을 남겨 지켜보는 채로 보다 격렬한 난투가 이뤄지는 광경으로 옮겨갔다.
* * *
시커먼 벽이 벌겋게 금이 갔다.
금은 붉게 달아올랐다가 흘러내리며 다시 시커먼 결정으로 변화해 벽을 보수하기는 했다.
그러나 연이어 닥쳐오는 충격파가 다시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내는데, 벽이 감싸는 영역은 가히 1킬로가 넘는 들쭉날쭉한 원의 형태였다.
한쪽이 부풀면 다른 한쪽이 오그라들고, 오그라든 쪽이 부풀면 부푼 쪽이 오그라들어 균형을 맞추는 광경이었다.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가까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의아할 수밖에 없는 괴현상이었다.
하지만 가뿐히 1킬로를 넘게 치솟은 절벽이 가로막고 차단한 광경을 엿볼 수는 없었다. 절벽 위를 검은 구름과 안개가 덮어씌우기까지 했으니, 높이 나는 새라 해도 감히 내려다볼 수 없었다.
그 풍경 속으로 투란의 마음이 스며들었다.
볼케인, 볼카닉 로드는 격노를 감추지 않았다.
내지르는 주먹이 화산처럼 폭발했고, 그 충격파는 역방향으로도 우악스럽게 쏘아져 나갔다. 연이어 사방으로 폭출되는 화산의 분출은 연쇄폭발이었고, 충격파 또한 파도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산자락 하나는 순식간에 용암의 평지로 만들고도 남았을 터인데…… 폭발로 터져 나온 용암은 역류했고 새로운 벽을 쌓으며 느릿한 몰골과 다르게 도도하고 견고하게 버텨내며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내지르고 난 뒤에 허공을 메우는 검은 재, 그 재가 그려내는 동그라미가 겹쳐지다가 두꺼워지며 터져 나오는 충격파는 화산의 폭발을 거스르며 훼방 놓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자잘한 거슬림이라 무시했으니 차츰 두꺼워지고 강해지는 재의 폭발이 터지려는 화산의 맥을 끊으며 폭발을 아예 저지하는 경우까지 생겨나는 중이었다.
원래라면 누가 그러거나 말거나 터져 나간 용암을 다시 역류시켜 끌어모으고 이전보다 두세 배는 더 강렬한 폭발을 일으켜 단숨에 치고 나가면 그만이었을 텐데, 흘러나간 용암의 흐름 또한 절반 이상이 거스르는 쪽에 합류하며 작은 화산이 폭발력을 모으지 못하게 한다!
때문에 볼카닉 로드, 볼케인은 자신의 적수가 나타난 것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저 벽, 이 바닥과 머리 위의 기괴한 덮개까지 만들어내는 존재가 볼케인 자신처럼 용암, 마그마에 대한 지배력을 가졌으며 그 속성은 아주 닮은 꼴이지만 성향이 완전히 반대되는 무엇이란 것!
그리고 볼케인이 완전하게 홀로 선 존재인 것과 다르게 저 기괴한 존재에게는 흉흉한 동반자가 붙어 있다는 점 또한 분명했다.
아무리 성향이 다르다 해도, 서로의 힘이 서로를 완전히 억누르지 못하는데 이렇게 한자리에 감금당한 채로 볼케인이 힘의 확산을 저지당하는 일은 저 존재 하나로는 불가능하니까.
오로지 본능만으로 이를 파악해내면서 볼케인은 모든 것을 뚫어낼 강렬한 폭발을 위해 힘을 가슴에 모았다. 응축되는 힘이 격렬한 고동(鼓動)을 일으키며 볼케인의 가슴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덩어리가 생겨났고, 가슴 언저리의 표면까지 달아오르며 한 점을 통해 그 고동이 집결된 한 방이 터져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두근.
시커멓고 붉은 줄기가 불끈거리며 돋아난 벽, 볼케인의 적수가 그 벽에 기묘한 그림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을 열고 포악한 뿔을 지닌 그림, 실체가 없는 그 그림이 일으킨 맥동이었다.
그 맥동이 볼케인의 가슴에 스며들며 격렬한 고동을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