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79)
‘두꺼비’는 납작해졌다.
네발을 힘껏 뻗어냈지만, 몸통이 주먹 아래 깔리며 납작해지는 상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라면, 짐승이나 벌레의 형상을 지닌 몬스터라면 이렇게 엎어진 채로 짓눌린 다음에는 그저 땅바닥을 긁다가 축 늘어질 터였다.
‘두꺼비’는 그렇게 늘어지지 않았다.
‘두꺼비’는 머리를 뒤틀었고, 네 다리와 납작해진 몸의 골격도 뒤틀어 다시 맞춰 넣었다. 엎어진 몰골에서 드러누운 몰골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런 채로 ‘두꺼비’는 물갈퀴가 없는 발, 두꺼비와 닮기는 했지만 물갈퀴 대신에 발가락 끝에 둔해 보이는 발톱이 달린 발로 자신을 짓누르는 불꽃이 맺힌 주먹을 긁었다. 그러면서 겨우 뻗어낸 혀가 그 거대한 주먹을 다시 핥고 갉아내려 했다.
화륵!
그러나 불길이 물결처럼 흐르며 ‘두꺼비’를 덮어 눌렀다.
그 ‘견고함’이 ‘두꺼비’를 버둥거리게 했다.
괴조를 맛볼 때와 같았다.
불이라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 괴이한 불길을 두른 주먹은 ‘두꺼비’가 삼킬 수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견고함’을 간직할 수 없는 것이 불인데 어찌 된 것일까?
화르륵!
불꽃이 빙그르 돌며 핏빛을 머금었다.
‘두꺼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여기서 온전히 빼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곧바로 ‘두꺼비’의 네 다리가 티끌처럼 흩어졌다.
납작해진 몸에서는 불로 이뤄진 작은 도마뱀이 흘러나왔다.
그 도마뱀에 흩어진 ‘두꺼비’의 티끌이 들러붙고 있었다.
티끌을 몸에 얼룩처럼 붙인 불도마뱀들이 곧 사방으로 달아나려 하는데, 단숨에 바닥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흩어지려는 불도마뱀의 발목부터 몸까지 그 시커먼 색이 번져갔다.
시커먼 색채로부터 핏빛의 고리가 피어났다.
‘두꺼비’는 혀를 휘두르며 최후의 단말마를 내질렀다.
소리가 되지 못한 괴성이 주변을 향해 파괴력을 발휘하려는 순간, 불기둥처럼 오롯하던 거대한 주먹이 폭포처럼 흘려내리며 ‘두꺼비’를 지워버렸다.
괴조, 벌레 떼는 자신이 구축한 형상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회색의 강철, 보거나 닿는 자에게 그냥 그렇게만 보이는 외피(外皮)는 벌레 떼가 세상을 속이기 위해 만든 변질된 형상이었고 그 형상의 본질은 여전히 벌레 떼였으니까. 그 외피를 깨뜨리고 본질까지 파고들어 녹이고 태우는 불길에 벌레 떼가 대적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 너무 명확했다.
이 불의 울타리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거대한 불기둥 주먹에 짓눌린 채로 으깨지며 익혀지고 녹다가 재가 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벌레 떼는 매우 빠르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불의 장막 너머로 울음소리를 전할 수 없다는 부분까지 쉽고 빠르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이 사나운 불길, 폭발하면서도 견고하기 이를 데 없어 벌레 떼의 외피를 너무 쉽게 파괴한 적에 대해서는 알려야 했다.
그렇게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벌레 떼는 파괴되는 괴조의 형상 속에서 준비했다. 먹지 못할 것과 대치하는 사이에 떨어져 나간 것이 마지막으로 불의 장막 너머에서 보내왔던 신호를 바탕으로 위치를 파악했고, 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을 통해 겨냥했다.
화아앗!
녹아가는 회색의 강철이 꿈틀거리며 갑작스럽게 괴조의 머리가 돋아났다.
새로 돋아난 머리가 불의 장막을 향해 부리를 들이댔다.
부리가 열렸고 소리 없는 숨결이 쏟아졌다.
회색 이슬방울이 부리에서 몇 방울 튀어나오며 숨결이 지닌 파문을 허공에 그려내 드러나게 했다.
그냥 그 괴상한 행태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하지만 괴조의 부리에서 굴러나온 조금 굵고 큰 벌레 하나는 그 숨결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쏘아진 돌처럼, 화살처럼, 번개처럼 불의 장막에 부딪혀 찰랑이는 숨결의 중심을 노리며 허공을 돌파하고 있었다.
그 한 마리 벌레가 보는 풍경은, 구멍이었다.
강대한 마력, 형상이 장악한 공간(空間)이 뒤틀리며 담고 있던 모든 것을 옆으로 밀어내며 열어준 구멍이었다. 그릇이 되는 공간이 담고 있던 내용물과 함께 뒤틀렸기에 구멍은 정상적인 감각, 세계가 허락한 감각 속에서는 보이지도 않았고 구멍으로 이어지는 바위 같은 바람결 또한 포착될 일이 없었다.
이 뒤틀린 채로 느릿하게 맴도는 회오리 숨결의 길은 오직 그 발생자(發生者), 괴조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회색의 강철 껍질로 둘러싼 벌레 떼만이 감지하고 접촉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 길을 따라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를, 뒤틀린 회오리가 공간의 간격조차 비틀었기에 느릿하게 기어도 번개처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벌레 한 마리를 방해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 한 마리를 지원하는 벌레 떼도 그저 온 힘을 다해 숨결을 유지하며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그래서 벌레 한 마리는 무사히 불의 장막 너머에 도달했다.
도달한 한 마리는 곧바로 몸을 울렸고 세계가 허락하지 않는 감각을 통해 멀리 뿌려뒀던 일족, 가까이 떨어져 나갔던 일족, 아직 몇 마리라도 모여 있는 다른 벌레 무리와 접촉하려 했다.
시익, 벌레 한 마리로부터 티끌조차 겨우 밀어낼 듯한 작은 숨결이 토해져 나왔다.
찰랑이는 파문이 주변으로 흐릿하게 퍼져 나갔다.
세계가 허락하지 않는 공간의 뒤틀림이 피어올랐다.
벌레 한 마리는 이성(理性)이 부족해서 뭐가 잘못되었는가를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뒤틀림 속에 다른 무리와 접촉하는 순간, 그 접촉이 이뤄지는 찰나에 무리와 함께 되돌아온 본능적인 이성으로 깨달을 수는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 벌레 떼…… 무리를 이루는 동질(同質)의 일족에게 이 끔찍한 상황에 대해, 이런 상황을 이뤄낸 어떤 존재에 대해 감각적으로 쌓아온 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도였다. 결코 일족을,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형상을 구성해서 또다시 어딘가에 갇히는 일이 없도록 분산했던 일족 여럿을 이 자리에 모으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모였다.
공간을 뒤틀며 분산된 벌레 떼가 자리한 곳곳의 풍경이 엿보이는 순간, 벌레 무리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움직였고 모두 이 자리로 건너왔다!
벌레 한 마리가 불의 장막을 건너온 것처럼, 애초에 이 자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강제로 옮겨졌을 때와 달리 무리의 힘으로 열어놓은 공간의 뒤틀림을 통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모두 왔다!
한자리에 모인 순간, 벌레 한 마리의 당혹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당혹보다 강렬한 의지가 불의 장막 너머에서, 벌레 떼를 한꺼번에 덮쳐오는 맹렬한 의지가 퍼져 나왔다.
―뭉쳐라, 내게 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벌레 한 마리,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벌레가 분산된 일족 모두에게서 한 마리씩 뛰쳐나왔다. 이 정상적이지 못한 상황을 회피해 달아나기 위해서, 새로운 공간의 구멍을 열기 위해서 나왔다.
수많은 무리 속에서 튀어나온 우두머리 벌레는 다른 벌레보다 두어 배 더 컸다. 그렇기에 아주 쉽게,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에 의해 포착되고 말았다.
실뱀 화살이 여러 무리로 나눠진 탓에 여러 마리가 된 우두머리 벌레를 하나씩 꿰뚫었다. 고작해야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였지만 실뱀 화살은 거대한 통나무 과녁이란 듯이 꿰뚫었고, 몸을 부풀리며 구부러져 자신의 꼬리부터 삼키다가 꿰어버린 벌레까지 삼켜버렸다.
괴상하게 부푼 몸을 지닌 실뱀은 자신이 꿴 벌레까지 포함된 고리를 계속해서 삼켰고, 핏빛으로 물들었다. 곧 실뱀은 얼룩진 핏빛 고리가 되었고, 허공에 뿌려진 핏방울처럼 응축되며 사라졌다.
우두머리 벌레가 모두 사라졌을 때, 벌레 떼는 우왕좌왕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의 무리로 다시 통합되었다. 어느새 불의 장막이 사라지며 완전히 익고 녹아내리던 벌레 떼 또한 그 통합에 합류했다.
이를 지켜보는 듯했던 불기둥 주먹이 불티를 지워내며 시커먼 기둥처럼 변해갔고, 풍경 속에 녹아내리듯이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 * *
까닥까닥, 투란은 머리를 흔들었다.
“재밌는 녀석이네. 형상 의태(擬態)가 자유로운데 하나 꽂히면 그것만 고집하는 습성이라니…… 그래서 그 모양대로 웜버드라고만 부르고 있었어요? 특별하게 제작된 종소리로 한곳에 모아 봉인만 하고 다른 부분은 몰랐던 거예요?”
카이람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고, 하이람이 꽤나 피곤한 표정으로 툭 던져진 투란의 호기심 가득한 물음에 답한다.
“아무리 밀폐된 영역 안에 가두고 말살(抹殺), 아예 물질이 존재하는 위상영역까지 분해시켜도 기어코 어딘가에 한두 마리가 살아 돌아다니다가 다시 괴조의 형체를 갖추고는 했다. 결국 한자리에 모아서 가두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었지. 그러기 위해서 왕의 마법까지 동원해야 했고. 설마 공간간섭으로 탈출로를 열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저렇게 공간을 점유하는 물질까지 뒤틀어버리면, 왕의 눈으로도 읽어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이제 알았다.”
어딘가 길게 변명하는 듯한 고대의 궁정 마도사, 투란은 하이람에게서 그런 낌새를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얼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 가지를 묻기로 했다.
“그런데 그냥 잘 먹고 잘 번식하는 정도가 아닌 거예요? 저 두꺼비, 정령포식자인가는 정령을 먹어치우고 지워서 자연 자체를 파괴하니까 확실히 재앙으로 보이는데, 웜버드는 뭣 때문에?”
하이람이 움찔했다.
마법사의 습관 때문에 구체적인 위험을 넘기고 재앙이란 몬스터의 특성에만 치중해 말하고 있었던 것을 뒤늦게 알아챈 것이다. 이런 하이람을 대신하듯이 카이람이 혀를 차고 허공에 띄워진 웜버드, 벌레새의 환영 석판을 손가락으로 짚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정체불명의 어떤 것이 도시를 잡아먹고 도시로 의태하고 있었지. 그 도시가 통째로 몬스터이고, 아직 정교하고 섬세한 면이 부족해서 거리의 인간, 짐승의 형상 위로 벌레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벌레가 꾸물거리는 꼴이라서 이변(異變)을 겨우 파악해냈다. 그 도시를 통째로 지워 없애는 과정에서 원흉인 것처럼 저 괴조가 튀어나왔어. 그다음에는 추적, 탐지, 말살 시도, 봉인…… 그렇게 된 거야.”
투란은 눈을 깜박였다.
드라고니아가 ‘어?’ 하는 소리를 흘렸다.
검푸른 비늘의 아칸이 조금 힘겹다는 듯한 말투로 속삭인다.
“춤추는 산맥에서 마지막으로 사라져야 했던 바위 요정의 요새, 언더록의 파괴자가 저 괴조였군요.”
투란은 드라고니아를 흘깃했다.
씁쓸한 듯이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심상을 통해 이야기한다.
―고대의 도시야. 요정족 최후의 보루라고도 불렸다지. 춤추는 산맥의 뒤틀린 영향력조차 막아내며 요정족을 온전하게 지켜주는 마법을 간직한 도시이기도 했어. 그 도시에서 벌레에게 먹힌 듯한 바위 요정족이 출현하면서…… 인간 왕국의 연합이 도시를 파괴했다고 알려졌다. 그냥 그렇게 된 일이야.
상당히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지만,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에서 자라난 투란에게는 그다지 낯선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마도 도시를 거점으로 살아가던 요정족, 춤추는 산맥에서 마지막까지 견뎌내려던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먹혀버렸을 것이다. 먹힌 다음에 그들의 형상을 빌린 벌레 떼가 새로운 먹이를 찾으려 했을 테고……. 토벌(討伐)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종족 간에 꽤나 험악한 논쟁과 오해도 일어났으리라.
“……음, 그렇게 된 일이네.”
적당히 중얼거리다가 투란은 문득 갸웃하며 석판을 둘러봤다.
재앙이라고 띄워준 것을 몇이나 정리했던가?
아닌 줄 알았는데 소소한 재앙으로 툭 튀어나왔던 태양의 파편, 아이들이 되었다는 녀석까지 정리했는데…….
카이람이 그 눈치를 챈 듯, 빠르게 말한다.
“넷! 앞으로 넷만 정리하면 나머지는 왕가의 군단만으로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어!”
“석판도 넷 남았네요.”
떨떠름하니 투란이 대꾸했다.
하이람은 살짝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카이람을 바라봤다.
재앙으로 평가된 강력한 괴물들에 대해 뭔가를 숨기고 있다가 뒤늦게 내놓는 듯한 말투는 대체 뭔가! 이미 석판을 통해 알려야 할 부분을 모두 드러내고 있는데!
드라고니아가 ‘닮았네.’라는 묘한 중얼거림과 함께 투란과 카이람을 흘깃했고, 검푸른 비늘의 아칸은 아예 무슨 상황인가 모르겠다는 듯이 눈길을 돌려 멀리 보는 척 외면했다.
“어디 보자…….”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란은 슬쩍 관심을 돌렸다.
환영의 석판이 조금 더 확대되며 투란 앞에 가지런히 모였다.
붉은 보석이 반짝이며 조금은 여유가 있는 재앙, 남은 넷의 풍경을 훨씬 세밀하게 투란의 마음으로 전해줬다.
남은 재앙이란 넷은 ‘두꺼비’나 웜버드보다도 느릿하게, 더 힘겹게 봉인에서 풀려난 채로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어찌 된 일인가 어리둥절해서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알 바 아니란 것처럼 오만한 분위기도 슬그머니 풍겨내면서.
하이람이 투란의 관심을 따라가듯이 말한다.
“남은 넷은 그냥 강력하다. 전염도, 감염도, 세계의 이치를 붕괴시키는 일도 없어. 그냥 강력해.”
“재밌네요.”
투란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