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8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80)
실밥 오우거, 온몸에 실밥이 가득한 모습이 원형(原形)이었기에 그렇게 불렸다.
쓰다 남은 가죽, 재료를 이어붙인 듯한 최초의 형태는 봉인될 무렵에는 실밥이 뱃가죽으로 집결되는 모양이 되었다. 봉인하지 않았다면 실밥 오우거는 그 뱃가죽의 꿰맨 흔적까지도 지워냈을 수도 있었다.
단순히 최초의 형태에서 변환된 것이 아니라 처음에 미약했던 소재를 강화하듯 실밥 오우거가 다른 형질을 섭취하고 흡수해서 스스로 개량했기 때문이다.
제작한 마도사의 의지조차 무시하는 ‘풀려난’ 의사생명체였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포식하는 괴물이 돼버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실밥 오우거는 최초의 제작 목적, ‘괴력무쌍(怪力無雙)’이라고 하는 목적만큼은 본능으로 각인되었다고 했다. 성벽을 관통하는 오러 몽거를 초월하는 괴력을 갖춘 존재가 되기 위해 뭐든 잡아먹는 포식자로 거듭난 것이었다.
그리고 봉인에서 풀려난 지금, 실밥 오우거는 나무와 돌, 흙까지 끌어당겨 실밥이 풀린 채로 속이 드러난 배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그 배 속은 정상적인 내장이나 근육, 골격의 흔적 따위는 없었고 푸르스름하고 간간이 붉게 맥동하는 젤리로 꽉 채워져 거기 담기는 ‘물질’을 모두 ‘분해’하고 ‘섭취’하는 중이었다.
오랜 봉인으로 인해 쇠약해진 몸, 말라버린 오우거의 신체는 그 과정을 통해 다시 부풀고 있었고 본능에 각인된 목적을 다시 추구하고자 하는 태세가 풀풀 흘러나오는 셈이었다.
그렇게 서두르는 손짓 사이로 풀려난 실밥이 하늘거리며 보다 영양가 있는 ‘물질’을 찾듯이 주변을 더듬어 벌레나 풀뿌리 따위를 휘감기도 했다.
“나름대로 적응하고 성장하는 경우려나?”
덤덤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렸다.
실밥 오우거는 이에 번개처럼 반응했다.
구부정했던 몸을 단숨에 튕겨 올랐고 소리 난 방향으로 쏘아지듯 뛰쳐나가며 냅다 손을 들어 목소리를 울린 대상을 움켜쥐려 한 것이다. 3미터가 살짝 넘는 거체에 어울리는 그 손아귀는 어지간한 사람의 허리 언저리는 그대로 움켜쥘 만했다.
턱.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물렸다.
조금 마른 실밥 오우거의 손가락, 가득 부푼 듯한 새파란 손가락이 맞물린 채로 뿌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팽팽히 맞서는 광경이었다.
이는 실밥 오우거가 다른 손을 내밀며 한 번 더 재현되었다.
우득, 빠드득.
손가락과 손가락이 엉킨 것이라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흠? 진심으로 힘겨루기를…… 할 리가 없지.”
살짝 어이없어 중얼거리던 투란은 실밥 오우거가 냅다 두 발을 올려 바헬키마의 허리를 감으며 실밥으로 찔러 오는 광경을 확인해야 했다. 이 ‘풀려난’ 오우거가 마도사의 제작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바헬키마까지 삼키려는 것이잖은가!
이렇게 서로 두 손을 맞잡은 채로 허리를 감고 살갗부터 핥아 먹는다면, 먹으면서 동시에 오우거의 몸이 재구성되고 강화된다면, 재앙이 아니라고 하는 편이 이상할 것이다.
―봉인될 때까지는 그저 단독개체였다만 이렇게 바헬키마에게까지 들이댈 특성이라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 놈인가 염려해야 했겠지. 기록을 보니 오러 윌더와 배틀메이지까지 잡아먹었다는 모양이다. 먹을수록 식탐이 커지고 포식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는 듯싶어. 미리 잡아두지 않았다면 무슨 재앙이 되었으려나 섬뜩하네.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감각을 점검하며 투덜거렸다.
실밥이 바헬키마의 파란 살갗을 핥는 중이었고 그 실밥은 푸르스름한 젤리로 물들어 있는 채였다. 마도사가 유사생명체로 제작한 마도구가 몬스터와 융합된 채로 그 소재의 능력을 완전히 발휘한다는 기괴한 현상을 보이는 셈이었다.
‘포식자라 불리던 시절의 몬스터 로드가 이렇게 보였으려나?’
문득 쓴웃음을 피워내며 투란은 바헬키마의 형상이 본격적으로 그 위력을 발휘하도록 움직였다. 순간 바헬키마의 등에 파인 네 갈래 흉터에서 불그스름한 아지랑이가 피어났고, 실밥 오우거의 손가락이 꺾였다.
와드득.
두 손이 으스러졌지만 실밥 오우거는 배를 더욱 활짝 열었고 더 많은 실밥을, 뚜껑 열린 그릇에서 쏟아져 나오듯이 뭉클거리는 젤리를 쏟아붓고 있었다.
젤리의 소화능력이 곧바로 바헬키마를 더 짙게, 깊게 핥기 시작했다.
* * *
바싹 마른 키클롭스는 광대뼈를 긁었다.
세로로 열린 눈꺼풀이 깜박이고 굵직한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자신이 정말 해방되었는가를 확인하듯이 주변을 훑어내렸다. 눈동자는 무지갯빛으로 다채롭게 빛났고, 마침내 문명의 흔적이 끊긴 야생의 한복판에서 해방된 사실을 확인했다.
꾸르륵.
키클롭스는 배에서 울리는 허기(虛飢)의 외침을 들었다.
숲을 가로지르는 냇물, 어딘가 고여 있는 진흙탕, 나무 틈새의 작은 짐승들과 벌레, 파랗고 붉은 색으로 섞인 나뭇잎이 울창한 풍경…….
오랜 세월의 감금 끝에 찾아온 해방 앞에서 키클롭스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두리번거렸다.
박박, 찌익.
결국 광대뼈를 덮은 살갗이 무딘 손톱의 거친 움직임을 견디지 못하고 뜯겨 나왔다.
두 개의 눈알이 키클롭스의 볼 위쪽에서 데굴거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삼안(三眼), 세눈박이 키클롭스는 마침내 자신이 자유란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구속자가 주변에 없다는 것까지 파악하며 포효하기로 했다.
가르르…….
입을 열고 목젖을 올리며 준비하던 시도가 뚝 끊겼다.
“키클롭스라며? 그거 외눈박이란 뜻 아니었어? 왜 눈알이 세 개야? 기록에는 그냥 마안(魔眼)이라더니.”
키클롭스를 둘러싼 울창한 숲, 굵직한 덩굴에 묶인 훼손된 돌기둥…… 봉인을 주도하던 석주(石柱)의 위에서 누군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개미 다리가 비비적거리는 듯한 크기로 중얼거린 탓이었다.
―그 마안이 다중분화(多重分化)의 능력을 지녔다고 써 있었잖아!
“그게 눈알 수 늘리는 능력이었냐?”
―야, 떠들 때가 아냐! 저놈, 튄다!
‘엥?’
투란은, 우람한 키클롭스의 형상으로 돌기둥 위에 걸터앉아 있다가 흠칫 놀라서 빼빼 마른 채임에도 나무를 짓밟아 뭉개며 달아나는 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뒤통수랑 등짝만 보이는 중인데, 몸을 펴고 달아나는 꼴이 7, 8미터 길이의 쇠몽둥이가 오우거의 손에 들려 휘둘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광경이었다.
‘일부러 중얼거리긴 했다만, 보통 키클롭스의 귀가 아닌데?’
목소리를 들은 것을 알아챈 투란이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중분화를 중첩시켜서 역량을 강화한다는 기록이 있었잖아! 골(骨) 밀도, 근(筋) 밀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오러 윌더의 칼날을 막아내고 일격에 쳐죽일 수 있다 했지. 저 달리면서 처먹는 꼴 봐라. 저대로 질주하면 곧 몇 배나 가속할 수 있다고! 빨랑 잡아!
드라고니아의 잔소리에 투란은 목소리를 높여 투덜거렸다.
“거참, 해괴한 놈일세.”
그 투덜거림과 함께 투란의 등에서 금빛 비늘의 날개가 돋아났다.
허투루 쫓을 생각이 전혀 없기에 단숨에 드레이크의 날개를 꺼내 찍어누를 작정을 한 것이었다.
* * *
고블린은 온몸을 신속하게 움직였다.
팔다리가 땅을 팠고, 바위 밑을 후벼내며 손가락 발가락에 걸리는 것을 닥치는 대로 끌어당겼다.
고블린이 뒤에 남긴 흔적에서는 오랫동안 덮여 있다가 금이 가서 밀려난 석관의 뚜껑이 투둑거리며 부서지는 중이었다. 마력의 지원이 끊어지며 내구성을 상실한 석관의 최후였다.
고블린은 그 석관에서 기어나왔고 나오자마자 흙냄새를 맡고 돌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헤집고 있었다. 석관이 파묻혀 있었지만 풀 이파리 하나 없이 돌만 가득한 언덕에서 돌이 아닌 것을 찾으려 하는 몸짓이었다.
언덕을 내려가면 금방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을 듯했지만, 고블린은 자신이 그런 욕심을 부리다가 또다시 수백 년을 감금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희미한 냄새를 쫓는 중이었다.
다시 한 번 감금당하면 그때는 정말 죽어서 영력(靈力)만 남아 움직이는 데드워커 고블린이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깨달았던 것이다.
고블린을 잡아 가둔 인간들은 고블린 자신보다도 그런 고블린의 특성을 잘 알기에, 그 능력을 밑바닥까지 파악했기에 수백 년이 지나도 돌만 가득한 언덕에다가 석관을 파묻었던 것이니까!
키카캇!
마침내 손끝에 원하던 것이 닿는 순간, 고블린은 환호했다.
동시에 벌거숭이나 다름없는 고블린의 몸에 가죽처럼 들러붙었던 마른 식물의 질감이 티끌처럼 흘러내렸다.
그 대신이란 듯, 고블린은 손가락 끝에 걸려 나온 풀뿌리를 손바닥 위에 고이 올려놓았고 두 손으로 받치듯이 들어서 눈높이를 맞췄다. 풀뿌리가 바람결에 흔들리듯 살짝 굴렀고 숨결을 따라 덜덜거렸다.
아주 미약한 그 움직임 속에서 풀뿌리가 스스로 꿈틀거리는 듯한 움직임이 피어났다. 풀뿌리는 새로운 가지를 돋아냈고 곧 고블린의 손바닥에서 꾸물거리며 굵어지기 시작했다.
고블린의 온몸을 휘감는 넝쿨, 뿌리로 이뤄진 옷자락이 생겨난 것은 서너 번 숨을 쉬는 사이였다. 그 옷자락은 순식간에 살갗처럼 들러붙었고, 몸 안으로 뿌리내렸다. 그와 함께 고블린의 몸집이 단단해지고 조금 두꺼워지며 숨결이 고르게 가다듬어졌다.
스윽, 다급하게 흙을 헤집고 바위 밑을 파내던 몰골 따위는 환상이었다는 듯이 고블린은 똑바로 언덕 위에 선 채로 사방을 둘러봤다. 멀리 산이 담벼락처럼 서 있는 풍경 앞으로 돌과 흙이 가득한 황야처럼 보이는 풍경과 와글거리는 나무들이 쉴 새 없이 바람을 토해내는 것처럼 뭉클거리는 숲의 풍경이 상반된 방향에 놓여 있었다. 고블린이 선 언덕은 그 둘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처럼.
고블린은 양쪽을 번갈아 보다가 코를 킁킁거렸고 산을 벽으로 두른 황야의 풍경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땅 위의 풍경은 메말랐지만 황야 아래로 흐르는 물 내음, 수맥(水脈)의 맥동이 고블린의 코끝을 찡끗거리게 했다.
카캇!
기쁨을 담은 숨을 토해내며 고블린은 곧바로 손톱을 세우는 모습으로 황야를 향해, 저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목표란 것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고블린 곁에 덜그럭거리며 구르는 해괴할 몰골이 따라붙었다.
딱딱하고 새까만 흑요석(黑曜石)으로 이뤄진 몰골은 두 발로 뛰다가 엎어지며 네발로 뛰는 시늉을 했고 그 등에서 날개까지 돋워내고 있었다.
고블린은 이 기괴한 석상(石像)을 감지하자마자 앞으로 구르고 두 손까지 발로 삼아 더 빠르게 내달리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 도달한 순간,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잠시 언덕 위에 섰을 때의 당당함 따위는 홀랑 잊은 것처럼, 다시 석관의 뚜껑을 열심히 두드리며 비참하게 기어올라 흙을 헤집던 모습을 되살리는 것처럼, 고블린은 땅바닥을 헤집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급한 모습과 다르게 고블린이 한 움큼씩 퍼내는 흙에는 돌조각이 섞여 있을 지경이었다. 흡사 괴력으로 땅을 가르며 뽑아내는 듯한 광경이 고블린이 몸에 두른 뿌리 옷자락으로 인해 어떤 차이가 생겼는가를 증명하는 듯했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이며 가속하는 채로 네발로 뛰어온 석상이 그런 고블린의 등짝을 후려치려는 순간, 고블린은 땅 밑으로 꺼지듯이 숨어들었다.
푸웅!
물주머니 마개가 텁텁하게 열리는 듯한 소리와 굵직한 구멍만이 고블린이 남긴 자취였다.
“겁쟁이란 말은 없었잖아?”
투덜거림이 석상에서, 투란에게서 흘러나왔다.
―아주 지능적이고 전술적인 책략을 지녔다고 했잖아.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을 가장 빠르게 확보할 길을 제대로 찾았지. 숲 쪽이 아니라 이런 황야를 고른 것만 봐도 확실하네.
드라고니아가 로그람의 옛 기록을 더듬고 인정할 때, 투란은 갸웃했다.
‘이 녀석, 넝쿨을 다루는데 왜 숲이 아니라 여길 고른 걸까?’
―춤추는 산맥에 잠식된 숲이다. 너 같은 추격자가 있는 상황에서 저 숲으로 들어가 숲의 마수나 괴물이랑 싸울 수는 없다고 판단한 거지. 기록을 봐라, 옛날에도 다른 몬스터의 둥지를 탐하다가 기습당해서 봉인되었잖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겠지. 어차피 이쪽에서 자리 잡고 힘을 키운 다음에 느긋하게 점령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야. 그래서, 어쩔래? 여기 지하 호수까지 이미 파고든 모양이고, 저 정도라면 최소한의 넝쿨성은 네가 도달할 때쯤이면 완성시키고도 남을 텐데?
‘넝쿨성이라…….’
석상의 손을 움직여 볼을 긁적이며, 덕분에 불티를 휘날리는 채로 고블린이 남긴 구멍을 노려보며 투란은 생각해야 했다.
뿌리와 줄기, 넝쿨로 이뤄진 성(城)을 지배하는 고블린.
트릭스터의 능력을 거의 대마법사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넝쿨 성주(城主)라 불리기도 하며 동족을 장악하는 전술적 지능도 갖췄기에 고블린 로드로 칭해지는 작은 괴물을 어떻게 깔끔하게 잡아버릴 것인가?
또 다른 풍경에서 데굴거리고 구르는 황금의 톱니바퀴를 확인하면서 투란은 고민을 좀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