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81)
Chapter 237. 재앙의 왕자, 열전 Ⅴ
달칵, 달칵.
뭔가 걸린 듯한 소리를 내며 톱니는 제자리에서 하염없이 느릿느릿 맴돌았다.
처음에는 달랑 하나뿐인 톱니바퀴였고, 그렇게 돌면서 그저 찰진 흙바닥 위에 파인 흔적을 남기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파인 흔적에서 어느 틈엔가 금빛 티끌이 피어올랐고, 흔적을 채웠다. 빙글빙글 도는 톱니가 새긴 둥근 흔적은 속이 채워지며 잔가시를 흘려냈고, 톱니와 함께 잔가시가 맞물리며 함께 돌기 시작했다.
톱니는 어느새 둘이 되어 있었다.
하나는 누운 채로, 하나는 선 채로 구르다가 서로를 밀고 당기며 새로 생긴 톱니가 튕겨 올랐다.
일어선 두 개의 톱니는 살짝 엇나가 서로 다른 곳을 긁으며 맴돌았다.
잔잔하고 느린 그 움직임은 결국 톱니바퀴를 넷으로 불려냈다.
수가 많아졌기 때문인가 맴도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황금의 태엽심장이라고?’
투란은 이제 가로세로가 모두 30센티 크기로 성장한 톱니 형태로 맞물린 상자를 확인하며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소리 없는 중얼거림이지만 어째서인가 톱니 상자가 부르르 떨며 누군가의 눈길을, 관심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찰칵거리며 반응하고 있었다.
덩달아 톱니의 회전속도가 빨라지고, 금빛 티끌도 점차 짙어지며 보다 넓게 물들이며 번지고 있었다. 이렇게 확산이 가속된다면 산 한두 개는 며칠 만에 뒤덮고 톱니 상자로 가득 채울 수도 있어 보였다.
―산만 한 태엽심장을 봉인했다고 하잖아.
드라고니아가 기록을 짚어 말했다.
하루 두고 보자고 하는 사이에 몇백 미터 높이의 산봉우리처럼 자리 잡았다고 했다. 뒤늦게 마법의 방벽을 치고 억눌렀지만 그 마력조차 야금야금 갉아냈고, 하루 이틀 사이에 확산의 한계가 없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굉장히 다급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했다.
투란도 지금 다른 곳을 보다가 뒤늦게 관심을 주는 중이었으니, 조금 방심하고 놔뒀다가 이게 커지면 옛날 로그람의 선인(先人)들처럼 뒤늦게 당황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낯익잖냐?’
―뭐?
갑작스러운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잠깐 갸웃했다.
하지만 금방 드라고니아도 알아차렸다.
투란이 슬그머니 내비치는 기억, 과거의 단편을 느끼면서 함께 했던 순간을 바로 되새겼으니까.
―확실히…… 온전한 황금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 황금 결정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긴 하다만…… 마이두스 왕을 떠올리기는 하는군. 거기서 만난 고르곤도 저런…… 어라?
중얼거리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내민 황금빛 손, 톱니바퀴로 이뤄진 타우루스의 두툼하고 우람한 손아귀를 깨닫고 흠칫했다. 어느새 투란의 두 눈 또한 고르곤의 기묘한 눈알로 바뀐 채였다.
그 눈으로 보고, 그 손을 내밀어 보다 격렬하게 진동하는 톱니바퀴, ‘황금의 태엽심장’을 투란이 움켜쥐었다.
손아귀가 열렸고, 톱니와 톱니가 서로를 탐하고 핥는 것처럼 긁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미노스 왕성을 떠돌던 고르곤의 톱니 형상 속으로 옛날 로그람의 재앙이 될 뻔했던 ‘황금의 태엽심장’이 스며들어 융화되었다.
찰칵, 달칵.
맞물림이 끝났을 때, 흩어지던 금빛 티끌이 바람결을 타고 투란을 향해 몰려들었고 고르곤의 눈동자를 보다 짙은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눈알 속에 맴도는 톱니의 회전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콰드득, 황금으로 이뤄진 듯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투란은 피식 웃었다.
‘갈려 나갔던 부품……이라고 하면 되려나?’
드라고니아도 그 헛웃음이 동감하듯 중얼거린다.
―달리 뭐라 할 말이 없긴 하다만…….
하지만 이 풍경 속에 없는 누군가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 * *
“장난해?”
카이람이 이리저리 돌아가는 상황을 엿보다가 울컥해서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손만 내밀자 바로 재앙에 가까웠던, 그냥 놔뒀으면 분명히 재앙이 될 것이기에 미리 발견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왕가에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봉인했던 마물(魔物)이 냉큼 사라지다니!
투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검푸른 비늘의 아칸은 살짝 눈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환영의 석판이 드러내는 여러 가지 정보를 검토할 뿐이었다. 이 자리는 드라코눔의 아칸이 멋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못 박은 것처럼.
드라고니아는 팔짱을 낀 채로 슬쩍 투란의 곁에 서서 딴청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투란과 많은 교감을 하는 중이라는 티를 팍팍 풍겨내면서.
때문에 카이람이 거친 숨결로 다시 뭐라 하려 할 때 말릴 수 있는 이는 하이람 뿐이었다.
“쉿. 나중에 천천히 들어도 되는 일이잖아. 오히려 간단히 해결되어 다행이라고 여길 때야.”
울컥한 표정이 짙어지기는 했지만 카이람은 투란이 넝쿨성의 고블린 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파악하고 입술을 잘근거리며 말문을 닫았다.
이런 주변의 일은 전혀 모른다는 듯, 투란은 자신의 문장 속에서 소곤거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 *
“트릭스터가 아니라 샤머닉 고블린?”
달그락거리는 해골의 입이 되뇌임을 토해냈고 뼈마디뿐인 손가락은 탁자 위에 가지런히 그어진 선의 교차점에 작고 하얀 돌 하나를 올려놓는 중이었다. 블랙 앤 화이트 택틱스의 놀이를 하며 대화도 함께 진행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 물음에 대해 트롤킨, ‘저주받은 트롤키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주 앉아 다시 한 번 되풀이하여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 손은 마주 앉은 언데드 기사와 마찬가지로 놀이 말을 움직이는 채로.
“낯선 개념이기는 할 것이네, 인간에게는 말이야. 이 세상의 고블린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명계에서 기어나온 임프인 데다가, 뒤틀린 존재인 탓에 제대로 된 지성을 갖추는 경우는 아주 희귀하니까. 트롤 일족보다도 더 희귀해서 샤머닉 고블린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었을 것이네. 단지…… 다른 세상일지라도 같은 차원에서 끌려오거나 불려온 존재에게는 어렴풋이 그들의 상황이 엿보인다네. 샤머닉 트롤에게는 엇갈린 세상에서 만난 머나먼 친척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그나마 인간보다 수월하게 그 존재를 받아들일 수가 있지.”
“트릭스터로 분류하는 것이 틀렸던가?”
따닥, 돌로 선의 교차점을 두드려 내려놓으며 언데드의 기사가 물었다.
통, 다른 돌을 살짝 얹어놓으며 트롤킨이 이야기를 이어 대답한다.
“아, 그건 아닐세. 갑작스럽게 지성, 지혜의 단편을 얻었지만 온전히 활용할 수 없는 경우에 딱 어울리는 분류라고 해야겠지. 하지만 아주 드물고 이상하게 지혜의 단편을, 온전하지 않은 조각에 불과한 지혜이지만 거의 완전하게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 셈이라네. 자연의 일부, 생명의 일부에 몰입되어 마법처럼 활용하는 그런 경우인 거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는가?”
말끝의 물음은 언데드 기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언데드 기사는 가만히 턱뼈를 떨며 트롤킨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태도로 멈췄다.
‘저주받은 트롤키아’이지만 그 저주를 벽 안으로 몰아넣고 본래 모습을 거의 회복한 트롤킨…… 앉아 있지만 가히 2미터 7, 80은 너끈히 될 듯한 키와 유연한 근육이 섬세하게 자리 잡은 멀쩡한 트롤이었다.
지성을 갖춘 샤머닉 트롤답게 트롤킨은 유니콘홀드 안에서만 자신이 온전할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한 듯, 차분하게 택틱스의 놀이를 이어나갔고 ‘천칭’의 풍경을 울리며 투란이 품은 의문에 대해 알자마자 답을 하고 있었다.
정수가 삼켜진 몬스터로서, 그러나 명백하게 자신만의 기억과 지능을 지닌 존재로서 우아하게 그 존재를 드러낸 셈이었다.
그래서 투란은 묻기로 했다.
―해결할 방법은?
샤머닉 고블린, 넝쿨성의 주인 노릇을 하는 고블린을 적절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마다할 까닭이 없잖은가.
유연한 거구에서 목을 들어 올리며 트롤킨이 웃었다.
인간과 전혀 다른 두툼하고 억센 송곳니가 입가에서 빗살처럼 드러났다.
“마법사가 마도술식을 그 몸에 각인하듯, 샤머닉 일족은 그 몸에 주술비전(呪術祕傳)을 그려 넣을 수 있다네. 외형적으로는 닮았지만 그 근원은 전혀 다르지. 그대가 지닌 악마의 심장줄기로 넝쿨성을 잡아먹으려면 꽤 시간이 필요하다네. 그런 시간을 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주술비전으로 무력화시키고 파내야겠지.”
―주술비전을 새기고 쳐들어가라고?
갸웃하며 투란이 되물었다.
사념의 파동으로 되묻는 그 말을 트롤킨은 잠시 음미했다.
소리를 매개로 하지 않은 언어에는 감정과 함께 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채였다. 투란이 낯설어하는 주술비전, 마도술식과 닮았다지만 몬스터 로드로서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아함 등등…… 복잡한 잡념과 신중한 검토가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트롤킨이 주술비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은 전혀 없었다. 그 지식을 간직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몬스터 로드로서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만 확실할 뿐이었다.
트롤킨을 담고 있는 유니콘홀드가 수많은 자아로 분열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몬스터 로드로서 투란이 너무나도 독특하고 우수한 탓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트롤킨, ‘저주받은 트롤키아’에게는 상관없었다.
저주를 벗어낼 수 없던 자신이 저주를 분리해두고 마음껏 사유(思惟)할 수 있는 자리에 놓였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저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유니콘홀드의 지배자에게 기꺼이 협력할 터였다.
“새길 필요가 없다네. 가져와야 할 뿐이니까.”
투툭, 투드득.
트롤킨의 살갗에서 씨눈이 움텄다.
담담하면서도 긍지가 담긴 트롤의 목소리가 언데드 기사와 함께 앉은 방을 울리며 나온다.
“나는 수해(樹海)의 목령(木靈)을 품고 동화(同化)하였지. 그 덕분에 뒤틀린 존재가 돼 버린 채로 이 세상에 끌려온 일족을 덮쳐온 모든 저주를 대신 품을 수가 있었네. 그래 봐야 겨우 일족에게는 작은 시간을 벌어주는 정도였지만…… 그 저주를 이렇게 떼어낸 지금이라면, 넝쿨성의 정령과 교감하고 거둬들일 수도 있을 터. 그 틈새라면 충분하지 않겠나?”
―아, 넉넉하겠네.
투란은 트롤의 몸에서 돋은 새싹이 손가락이 되고 손목이 되었다가 팔뚝으로 성장하는 광경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트롤킨이 말한 ‘수해의 목령’이 어떤 의미인가를 명백하게 느낄 수가 있었으니까.
* * *
―치유도 재생도 아니구만. 그냥 새 몸을 성장시키는 쪽이라니, 이건 또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하나?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렸다.
‘트롤이잖아.’
투란은 간단히 대답하면서 황야의 한 곳을 둘러봤다.
날개가 사라진 흑요석의 몸에는 샤머닉 트롤의 팔이 형성된 채였다.
‘수해의 목령’을 활용하기 위한 매개체로서 트롤의 형상을 이용하려던 셈이었다.
트롤킨의 지식에 따르면 ‘저주받은 트롤키아’는 세상으로부터 저주를 끌어당기는 특성을 지녔기에 주술비전을 지녔다고 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했기에, 직접 형성하는 쪽을 살짝 피한 셈이었다.
어쨌든 샤머닉 트롤의 형상이니, ‘수해의 목령’를 임시로 받아들여 활용할 수 있지는 않겠는가?
―흥미롭군, 심장의 씨앗을 지닌 일족이라니. 게다가 원래 정령의 동반자를 지니기도 했었군? 벼락이 아니면 불이려나?
트롤킨은 투란이 오랫동안 품어온 샤머닉 트롤의 정체를 가늠하며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몬스터 로드답게 투란이 보다 강력하게 상황을 주도해야 하니.
‘고블린, 넝쿨성부터.’
―넝쿨줄기를 잡으면 되네.
한층 더 명료하고 간단한 지시였다.
물론 드라고니아는 짧게나마 의문을 드러냈다.
―정령의 동반자?
투란은 샤머닉 트롤을 중심으로 형성된 몸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고블린이 파고든 구멍 언저리를 문처럼 덮고 있는 넝쿨줄기를 거침없이 움켜쥐었다.
넝쿨이 부르르 떨렸고, 샤머닉 트롤의 손도 함께 울렸다.
‘아…….’
닿는 순간, 투란은 넝쿨성의 전모(全貌)를 마음속에 투영할 수 있었다.
‘수해의 목령’이 닿는 순간 숲과 나무, 풀의 전경(全景)을 읽어낼 수 있으니까.
―아직 미완성이로군.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탓인가. 위치를 파악했는데, 어쩌겠는가?
담담한 트롤킨의 말이었다.
그 순간, 투란은 ‘수해의 목령’이 지닌 또 다른 능력, 독특한 그 능력과 함께 ‘악마의 심장’을 엮고 거기에 무쇠뿔 오우거가 정령의 숲과 교감하던 때를 뒤섞는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로그람의 대이적은 곧바로 이런 투란에게 호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