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9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82)
고블린은 당황했다.
뭔가가 자신의 성, 넝쿨로 이뤄진 성에 간섭했다!
훤히 두 눈 뜬 채로 온몸을 더듬고 만지며 속살까지 스며드는 괴이한 감촉!
분명히 넝쿨성주인 고블린, 자신의 지배하에 있어야 할 넝쿨줄기가 단번에 호응하게 하는 기이한 그 느낌은 낯설지도 않았다!
때문에 그 느낌을 더듬어 대체 무엇인가 가늠해 보려는 순간이었다.
키잇? 카앗!
가시넝쿨을 손등부터 손목까지 감은 손이 촘촘한 넝쿨 틈새에서 튀어나와 고블린의 머리통을 냉큼 잡아버렸다.
고블린이 이에 대응한 짓은 몸에 줄기를 박아 강화시킨 근력을 몽땅 끌어내서 넝쿨줄기를 움직이고 주먹질을 한 것인데, 그냥 무시당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눈과 귀로, 몸으로 느끼는 풍경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변(轉變)했다.
깊고 깊은 땅 밑, 수맥의 한 귀퉁이에 뿌리를 내리고 이제 막 안락해지려는 넝쿨 보금자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황량한 들판……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담장처럼 보이고 한쪽에는 와글거리는 마수와 괴물의 낌새가 물씬 풍기는 숲이 융단처럼 깔린 풍경을 둔 황야 한복판에 다시 서다니!
당황한 고블린의 이마로 시커먼 결정으로 이뤄진 손끝이 스며들었다.
붉은 줄기 사이로 핏빛 고리가 맴도는 무늬를 가득 채워 담고 있는 손의 형태가 한 번 더 변화해서 칼날이 되는 와중이었다.
고블린은 넝쿨성과 함께 자신이 붕괴된다는 것을 느꼈다.
* * *
카앗!
괴성을 지른 고블린은 흠칫했다.
온몸이 녹아내린 듯, 티끌이 된 듯 부서져 나가는 순간이었는데 느닷없이 자신이 이상한 석실에 있는 탓이었다.
“호오? 트롤 공(公)이 부르셨소? 대단하시오.”
달칵거림이 섞인 말투로 떠든 이를 향해 홱 고개를 돌린 고블린은 화들짝 놀랐다.
해골, 인간 기사의 복장, 그럼에도 움직이며 말을 하는데 어째서 고블린인 자신이 그 말을 알아듣는가?
“지성이 완전히 개화(開化)했군. 그럴 만도 한가? 앉거라.”
다시 굵고 무거운 소리로 전해진 말에 고블린은 아주 천천히, 본능을 찍어누르는 그 위압적인 분위기에 저절로 움츠린 몰골이 되어 그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고블린이 이렇게 거의 맨몸인 채로는 정말 만나기 싫은 괴물이 있었다.
우악스럽고 사나운…… 딱히 거친 말투라든가 몸짓이 없어도 보기만 해도 날름 혀를 내밀어 인간 어린아이 크기인 고블린 정도는 가볍게 삼킬 여유가 있어 보이는 트롤이라니!
“자각하지 못하고 있군. 앉으라고,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니까.”
다시 울린 트롤의 말에 고블린은 눈을 깜박였다.
이야기? 누구의?
―얘, 괜찮은 거야?
갑작스럽게 고블린의 온몸을 관통하는 말이 있었다.
순간, 고블린은 깨달았다.
유니콘홀드, 트롤킨, 언데드인 기사, 몬스터 로드…….
“죽어서 다시 태어난……?”
한순간에 망가진 듯한 목소리로 고블린이 웅얼거렸다.
트롤킨이 웃었다.
고블린으로서는 경악해서 떨 수밖에 없는 이빨을 드러낸 채로!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군. 그러니, 앉으라고. 난 네가 지닌 샤머닉의 재주에 관심이 많거든.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일족에 대한 호기심이지.”
고블린은 눈을 깜박였다.
흉악한 트롤의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고블린을 위로하고 있었다.
“일……족? 형제라고?”
“호오? 금방 배우는군. 맞아, 우린 서로를 그렇게도 부를 수 있는 사이라네.”
트롤킨은 아까보다 한층 더 자상한 웃음을 섞어 대꾸하고 있었다.
팅, 언데드 기사가 탁자 위에 돌을 두드리며 말한다.
“유니콘홀드에 온 것을 환영하지. 노는 법을 조금 알려줄 테니 잘 배워보게나, 말하고 생각할 줄 아는 고블린이여.”
“말…… 생각……!”
고블린은 자신의 변화를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트롤킨과 언데드 기사는 그런 고블린을 보며 웃는 채로 택틱스의 놀이를 이어나갔다.
* * *
투란은 낯을 구기고 고개를 까닥했다.
넝쿨성의 고블린이 너무 자연스럽게 유니콘홀드로 흘러들 줄은 몰랐던 때문이다. 트롤킨이 은근히 유도한 듯한데, 어째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인가?
드라고니아가 곁에서 살짝 눈짓하며 소리 없이 속삭인다.
―샤머닉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잖아. 언더섀도우의 혈족도 몇몇은 그 호기심 때문에 유니콘홀드로 담가버렸지.
‘이상한 버릇이 생겼었냐!’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은 바로 관심을 돌렸다.
실밥 오우거와 세눈박이 키클롭스, 이 녀석들도 거의 정리가 된 참이었다.
다만 험악하고 참혹한 광경을 잔뜩 꾸며놓고 마무리 단계에서 둘 다 끈질기게 까불고 있었다.
* * *
실밥이 풀려나서 흐느적거리는 실 가닥은 푸르스름하고 걸쭉하게 물든 채로 바헬키마의 몸에 감기며 계속 꼬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들러붙고 묶으려는 듯한 움직이었지만 바헬키마의 근육이 부풀 때마다 툭툭 끊어질 뿐이었다. 걸쭉한 탓에 그럼에도 끊어진 실 가닥은 남겨졌고 실밥을 잃은 오우거는 온 힘을 다 쏟아 끊어진 실밥에 다시 닿으려고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그 난동과 복잡함을 바헬키마는 매우 냉정하고 분명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콰앙! 퍼억!
밟고 친다, 이 간단한 동작에 실밥 오우거는 허벅지가 함몰되며 맨땅에 짓이겨졌고 머리가 몸통으로 찍혀 눌리며 가슴이 부풀고 뭉개지는 섬뜩한 몰골이 되었다.
그러나 실밥 오우거는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기괴하게 제작된 것을 자랑하듯, 실밥 오우거는 망가진 몸과 이어진 실 가닥을 다시 당기고 배 속에서 물컹거리는 퍼런 젤리를 쏟아내어 찢긴 자리에 흘려 넣고 처바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망가짐과 동시에 자가수선을 하는 땜장이 같았다.
바헬키마가 아무리 뭉개놓는다 해도 결국 끈적거리고 퍼릇한 젤리와 실 가닥으로 다시 꿰어맞추면 그만이라고 고집부리는 듯도 한데, 단순한 괴력만으로는 결코 말살할 수 없는 몬스터의 위용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잘근잘근 뭉개고 밟아 바닥에 도포(塗布)한 꼴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실밥 풀리고 실 가닥이 꿈틀거리며 오우거의 형체를 다시 깁고 있었다.
거기에 바헬키마가 클클거리는 괴이한 웃음과 함께 손을 터는 시늉을 하니, 거뭇한 재가 뿌려지고 푸르스름한 젤리 속으로 시커먼 잉크 방울이 스며들며 핏빛 고리가 잉크 속에서 명멸하기 시작했다.
* * *
키클롭스는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타고난 눈알과 볼따귀의 두 눈알을 더해 열심히 사방을 살폈다. 뭐가 자신을 묶었는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돌풍과 함께 허공에 띄워졌고 몸부림치는 와중에 뭔가 열심히 부수고 깨다가 끊어냈다 싶었는데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된 탓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보이는 것이 없는가?
세눈박이로 불리는 키클롭스의 고민은 눈 한 번 깜박이는 사이에 사라졌다.
더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팔다리를 더욱 무겁게, 더욱 촘촘하게 엮어서 묶은 대상의 부담을 늘려 도망치면 되니까!
하지만 키클롭스의 이런 본능적인 선택에도 몸을 묶고 띄운 뭔가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계속 허공에 대롱거리는 채로 마냥 몸의 밀도와 중량이 더해지고 있을 뿐, 키클롭스의 해방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뭔가가 키클롭스의 귓가에 마침내 속삭임을 흘렸다.
“도대체 무슨 능력인가 모르겠네…… 분화, 중첩이라고? 눈알을 더 만들기도 하고 팔다리의 힘줄을 더 질기고 튼튼하게 한다? 이게 어떻게 이어붙이는 능력인 거야? 새로 만드는 거냐, 더 세게 하는 거냐. 너처럼 애매하고 이상한 놈은 처음인 것 같은데?”
세눈박이 괴물은 무슨 이야기인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단지 뭔가가 자신의 귓가에 닿았다는 부분을 확인하며 재빨리 입술을 오므렸고 귓바퀴 언저리에 똑같이 오므린 새로운 입술이 돋아났다. 그 입술이 열린 순간, 굉음(轟音)이 쏘아져 나왔다.
……르릉!
멀리서 친 벼락의 메아리가 겨우 닿는 듯한 음향의 여운이 맴돌았다.
한데 그 결과로 인한 변화가 없었다.
키클롭스는 당황했다.
이 필살의 일격이라면 자신을 띄우고 묶은 뭔가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일단, 눈알부터 치우긴 해야겠다.”
덥석, 키클롭스는 자기 힘의 원천인 마안을 덮는 검은 보자기를 느꼈다.
찰랑거리며 눈알 속으로 스며들고 눈구멍을 가득 채운 검은 이슬의 보자기였다.
눈물을 대신한 이슬 보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가, 그 느낌이 닿는 순간 키클롭스가 비명을 질렀다.
이슬에 녹은 눈알이 사라졌으므로!
힘의 원천이기에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튼튼하게, 칼날도 마력도 스며들지 못하게 단련해온 눈알이 단숨에 키클롭스의 몸에서 떠났다!
그리고 키클롭스의 온몸 또한 하얗게 물들다가 투명한 티끌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새로 만든 키클롭스의 두 눈, 볼에 박힌 눈알은 그 티끌의 바탕에서 맴도는 바람결이 핏빛 고리를 이루는 안개라는 것만 겨우 엿볼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허공에 키클롭스를 묶어둔 무색의 안개가 핏빛 고리를 띄운 것이었다.
* * *
“내가 언제부터 이런 안개를 부렸어?”
투란은 솔직하게 물었다.
쓸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쓰기는 했는데, 키클롭스의 시각에서 벗어나 앙칼지게 묶어버릴 수단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떠오른 능력이었는데, 기억이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흘깃 투란을 내려다보다가 볼을 긁적이며 입을 반쯤 가리는 손짓과 함께 대답한다.
“드라클레스.”
다른 말은 더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투란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언더섀도우, 뱀파이어의 일족…….
거기서 그들을 상대하며 얻은 능력인 모양이었고, 적절하게 필요한 순간에 본능적으로 끌어내 쓸 수 있으면 된 것이니까.
지금 따질 일은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발휘한 능력이 아니란 것을 되뇌며 투란은 붉은 보석을 바라봤다. 마치 이제 내 할 일은 끝났는데 너는 언제 채워지느냐고 따져 묻는 눈길이었고, 붉은 보석은 이에 반응해주고 있었다.
조금씩 채워지던 보석의 내부가 빠르게 채워져 갔고, 대이적의 마력이 그 안을 넘나들며 로그람의 마법을 그리고 새겨넣었다. 성스러운 나무를 닮은 왕가의 천칭이 빙글거리며 다시 느릿하게 움직이며 마법을 흔들었다.
투란은 허공에 뜬 채로 못 박힌 듯했던 보석이 자신에게 밀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금 흔들거리면서, 서서히 부유할 힘을 잃은 듯이 기우뚱거리면서.
“떨어진다.”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그 말과 함께 보석이 느릿하니 던져진 듯이 투란을 향해 날았다.
냉큼 한 걸음 내디뎌 가슴으로 막아서며 손바닥을 펼쳐 부딪친 보석을 받으려던 투란은 문득 알아차렸다. 발바닥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던 마법이 사라져 이제 멋대로 나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빙긋, 웃음과 함께 투란은 손가락으로 보석을 허공에서 잡았다.
보석의 광채가 붉게 맥동하며 투란의 손끝으로 미묘한 울림을 전해왔다.
‘아…… 이런 거였구나.’
오직 투란 자신만을 위한 보석,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가 투란을 증명하는 마법의 보석을 이룬 것은 다름 아닌 투란 자신의 피, 그러니 이 붉은 광채를 보게 되면 투란은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것이라고.
키링, 치리링.
부드러운 울림이 투란의 주변에서 울렸다.
아홉 ‘그릇’이 심장을 담은 채로 다시 가라앉고 있었다.
마법의 궁전, 그 안으로 스며들며 아직 남아 있는 마력의 맥동을 유지하며 그 의무를 다하겠다는 듯이.
그 광경을 보며 투란은 ‘공식적’으로 자신이 할 일이 끝났음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드라코눔의 아칸, 프로디운. 로그람 폐하에게 인사 올립니다.”
이렇게 느닷없이 검푸른 비늘의 아칸에게 예의가 가득한 인사를 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곁눈질을 하니, 드라고니아 또한 당황한 모양이었다.
“야, 이봐! 지금 그런…….”
촤아악.
검푸른 비늘의 날개가 바닥에 비스듬히 누이듯이 깔렸고 아칸의 우아한 동작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가 부드럽게 떼어내며 인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모습이 얼마나 멋질 수가 있는가를 자랑하는 듯했다.
더불어 그 날개 안쪽에서 가득 맴도는 물방울은 투란의 기억 한구석을 푹 찌르고 있었다.
“아, 네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