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1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0)
“넌 자신의 근원을 알고자 했지, 그것을 뿌리치려고 하지 않았잖니?”
투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리엔이 답해 주고 있었다.
많은 것이 생략된 그 한마디에 투란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붉은 보석을 탐하기는 했지만, 몬스터 엠블럼을 새기고 나서 그 영향력에서 많이 벗어나기는 했지만, 한 번도 ‘지우려’ 한 적은 없었다. 자신의 것, 유일하게 자신의 일부라고 느꼈던 그 보석에 집착은 있을지언정 끊어 내고 없애려 한 적은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상급의 몬스터 로드가 스스로 받아들일 마법과 거부할 마법을 골라내 버렸다는 이야기랑 겹치는 경우가 아닌가.
몬스터 로드로서 아무리 숙련되고 강력해졌다 해도 스스로 뿌리치려 하지 않았기에 로그람의 마법은 혈통을 잇는 투란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문득 등을 뒤로 깊이 기대면서 투란이 웃었다.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홀가분해진 웃음이었다.
마침내 마음 한구석을 늘 가렵게 하던 일을 해결한 것 아닌가!
보석은 붉은 빛을 간직한 채로 유니콘홀드의 목걸이에 얹혀서 그 일부인 것처럼 보였고, 보석과 함께 맥동하는 그림자 정령 셰이아는 고이 간직된 ‘그릇’에 얹힌 아홉 심장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려 주었다.
쥴의 반지는 손가락을 살짝 조이며 ‘검은 심장’을 삼킨 ‘해골’과 ‘거미’가 제각각 어떤 형태의 심상을 구성하는가를 마음 한쪽에 비춰 내며 투란에게 그 다스릴 방법을 선택하라고 신중하게 제시하는 듯했다.
‘늑대’와 ‘매’는 원형과 다르게 변형된 ‘어둔늑대’와 ‘황금매’의 문장 속에서도 여전히 그 바탕이 견고함을 느끼게 해 줬고, ‘어둔늑대’와 ‘황금매’가 얼마나 특별한가도 깨닫게 해 줬다.
‘이것 참…… 음?’
‘천칭’의 심상만이 아닌 여러 문장의 심상이 동시에 투란에게 ‘보였’고, 그 안에서도 특이하게 변화하는 ‘해골’ 속의 ‘검은 태양’이 강렬하게 존재를 과시했다. 애초에 삼킨 적이 없었을 터인 기괴한 정수였다.
그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태양의 파편’이 ‘검은 심장’에 오염되어 뒤틀리고 변이된 것, 그것이 바로 시커멓게 타오르며 어둠을 빛처럼 뿌려 대는 ‘검은 태양’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해골’의 공허를 어둠으로 채우고 찢고 나올 듯한 압도적인 위용이 심상 속에서 미쳐 날뛰는 셈이었다. 하나도 아닌 여러 ‘검은 태양’을 잠시 느껴 보던 투란은 ‘해골’의 심상을 흔들었다.
둘 혹은 셋 정도만 남기고 ‘검은 태양’이 모조리 ‘해골’의 밑바닥, 굳게 꼬아 앉은 골반의 깊은 곳에 열린 구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태양의 파편’이었으나 ‘검은 심장’의 마력을 머금으며 변이되어 날뛰던 정수 둘 혹은 셋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검은 심장’조차도 쏟아붓던 광폭한 마력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한창 쏟아내며 시커멓게 물든 태양의 파편을 더욱 뒤틀던 짓을 멈추고 얌전해진 격이었다.
한쪽 ‘거미’가 쪼개 삼킨 ‘검은 심장’의 반쪽은 대해(大海)를 이루는 공허의 거미줄에 담긴 채로 한껏 오그라들어 얌전히 마력의 실을 자아내고 있었다. ‘거미’의 본성을 따르겠다는 것처럼!
그런 ‘검은 심장’에 대항하는 마력을 뿜어냈던 재앙들, 봉인에서 풀려났다가 다시 로그람의 대이적을 두른 투란에게 삼켜진 재앙들은 ‘천칭’의 풍경 속에서 서열 정리가 된 채로 얌전히 자기 자리를 찾아 거처를 꾸미는 중이었다. 감히 투란에게 대항할 본능 따위는 없다는 듯이.
‘늑대’는 겨우 자신의 본질인 ‘어둔늑대’에 걸맞은 사냥감을 먹어 치웠다는 점에 만족한 듯이 ‘천칭’ 속에 둔 형상을 그릉거렸고 ‘매’는 황금매의 형상 그대로 날개와 깃을 손질하며 평온할 뿐이었다.
투란은 살짝 쥴의 반지를 손끝으로 긁적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심상이 나름 정리되었고, 이제 왕궁에서 볼일은 끝났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출생에 얽힌 사연도 그럭저럭 알게 되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사연이 결국은 로잭이나 다른 고아들이 서로 추측했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고아들의 상상력이 풍부해서가 아니라, 예상 가능한 범위를 꽤나 다채롭게 잡아 버린 탓일 터였다.
부모가 자식이 번거로워서 슬쩍 내다 버린 경우라든가, 도저히 키울 수 없어 남에게 떠넘긴 경우라든가, 이는 부모가 그나마 살아 있는 경우에 몰아서 생각했고 부모가 죽은 다음에 오갈 곳 없게 된 상황도 다채롭게 상상했다. 도시에서 살해 사건에 휩쓸린 경우부터 마을에서 몬스터에게 살해당한 것까지…… 그리고 애를 잃어버린 경우도 슬쩍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부모는 때로는 귀족이었고 상인이었거나 그냥 못사는 농부, 사냥꾼일 경우까지 가정해 봤다. 샤오콴 마을의 고아들은 대부분 괴물 왕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좋아했기에 혹시 왕족이거나 그 방계로 희미해진 핏줄일 경우도 당연히 떠들고는 했다.
‘와, 진짜 예상 범위에서 전혀 벗어나질 못했네.’
어쩐지 어이없어 헛웃음이 절로 입가에 매달렸다.
그 웃음과 함께 투란은 문득 로잭을 떠올렸다.
로잭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예르카 아저씨랑 티아라는?
가서 뭐라고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말문이 막히잖는가!
왕의 혈족을 공양하는 미친 마법에 대해서 막 떠들고 다녀도 되려나?
그 이야기 빼고 그냥 덜렁 어쩌다 왕의 자리에 앉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자리에 오래 앉아서 왕 노릇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긁적, 긁적.
어느새 턱을 괴고 하늘을 보다가 볼을 긁으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는가?
‘키린, 왕이 되지 않았지?’
좋은 본보기가 당연하다는 듯이 투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박차고 올라왔다.
아리엔이 조심스럽게 투란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눈을 마주한 채로 속삭인다.
“아가야, 무엇을 염려하고 있지?”
“그냥…… 뭐, 걱정하고 고민할 일은 아니에요. 단지, 음…… 이만 떠나고 싶다? 이런 곳이…… 낯설어서 그러죠.”
투란은 마주친 눈동자를 향해 두서없이 대답해야 했다.
아리엔보다 먼저 작은 여우 아리아가 끼잉거리는 나직한 소리와 함께 킁킁거리며 코를 내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문득 투란은 묻는 말을 꺼내야 했다.
“얘는 어떻게 되는 거죠?”
원래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자라면서도 함께 있어야 했다는 수호의 영수.
작은 여우의 형상만이 아니라 조금 묘한 인간의 형상까지 갖출 수 있는 마법의 존재.
그동안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이 왕궁의 마법 속에 홀로 머물고 있었다는 듯한데, 투란이 돌아와 다시 보석을 갖춘 지금부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 너와 함께해야지.”
아리엔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확고했다.
투란에게는 조금 부담스럽고 위험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뭔가 이상한 염려를 하는 모양이구나? 혹시 아리아가 늘 이렇게 형체를 갖춘 채일까 봐 걱정이니? 여우라든가, 여우 귀를 가진 소녀라든가, 그런 형상을 반드시 유지한 채로 네 곁을 촐랑거리며 따라다닐까 봐? 그런 일은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도도한 아리엔의 말에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아리엔이 그 표정을 보며 조금 쓴웃음을 머금은 채로, 미묘하게 한숨을 섞어 말을 잇는다.
“아가야, 원래 아리아의 본질은 그 보석에 담겨야 한단다. 새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변함없이 말이야. 아리아는 너와 떨어져 버린 탓에 보석으로 귀환할 수 없게 되었지. 그래,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본질과 격리당해서 왕궁의 마법 한쪽에 웅크린 작은 여우의 모습으로 하염없이 널 기다려야 했던 거야. 하지만 보석이 다시 완성된 지금, 아리아는 보석 안에 담긴 채로 너를 수호하는 의무를 다 해낼 수 있게 되었지. 그러니 아리아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군요?”
살짝 맹한 대답을 하는 투란이었다.
대충 알아듣기는 했는데 구체적으로는 뭔 이야기를 하는가 잘 모르겠다는 듯한, 아리엔은 그런 투란의 속내를 읽었다는 듯이 살짝 새는 웃음을 머금고 작은 여우를 내밀어 투란의 가슴에 안기듯이 넘겼다.
그 순간, 간절한 눈빛을 한 작은 여우가 냉큼 투란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것처럼 움직였다. 작더라도 짐승의 형체를 한 것이 그리 물면 놀라야 할 듯하지만 투란은 이 쪼그만 여우가 입을 열고 혀로 보석을 핥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 묘한 짓의 결과는 금세 드러났다.
여우의 형체가 하얗게 변하다가 금빛의 잔상을 남기며 보석의 주변을 맴도는 붉은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더불어 투란은 목에 걸린 채로 눈가에 닿지 않는 보석이 훤히 보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의식의 한쪽을 밝히며 보석이 나타난 것이다. 그 과정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결과로 드러난 현상은 투란에게 익숙하다 할 수 있었다. 문장의 심상을 보거나 프로브와 연계해서 다른 곳의 풍경을 볼 때, 그 경험과 아주 닮았으니까.
다만 수호 영수라는 작은 여우가 다시 소녀의 형상인 채로 여우 귀를 쫑긋거리며 책장과 선반에 둘러싸인 커다란 깔개 위에서 뒹구는 풍경은 낯설기만해서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왕족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을 위한 준비가 모두 갖춰진 심상을 볼 수 있지? 교재와 여러 가지 도구의 본보기들, 원래라면 아리아가 있는 심상의 환영을 꿈처럼 바라보며 그 안에서 배웠을 것들이야. 무투술이라든가, 마법에 대한 교양이라든가…… 이해가 가니?”
아리엔의 말에 투란은 쓴웃음을 삼키며 적당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에…… 뭐.”
그저 그러려니 했던 부분이 새삼스럽게 투란의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만약 보석을 지니고 있었다면, 아리아가 함께했다면…… 키린의 그 무시무시한 학습법에 조금이라도 덜 시달렸을 수도 있잖은가?
기묘한 아쉬움은 결국 투란의 입꼬리에 새는 웃음을 매달고 말았다.
아리엔이 그 웃음을 보며 이야기를 멈추고 가만히 옥좌의 곁으로 옮겨서는 듯하다가 몸을 굽혀 투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지만 그 부드러운 손길 속에서 투란은 문득 느낄 수 있었다.
붉은 보석이 두근거리며 전하는 바였다.
로그람의 왕가, 그 선조들 중에서 이렇게 마법의 형상을 입을 수 있는 이들은 오랫동안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을 터, 죽어서도 자신들의 후예가 겪는 일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태로 기다려 왔으리라.
먼 미래에 있을지 모를 한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로그람의 선조들은 망령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왕족뿐 아니라 왕의 칙명으로 작위에 오른 귀족들, 공적을 세워 왕의 훈장을 받은 영웅들, 이름 없이 스러져 갔지만 ‘죽어서도 싸운다.’라는 의지를 왕국에 새겨 넣은 이들 또한 망령 군단이란 깃발 아래에서 기다려 왔던 것…….
아련함 속에서도 명확하게, 마치 몬스터의 정수로부터 본능을 깨치는 것처럼 투란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하고 싶은 일 있죠?”
아리엔이 웃었다.
“당연하잖니?”
무엇이 당연한가를 투란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보석이 반짝이면서 그 느낌을, 분위기를, 오랫동안 마법에 의해 망령인 채로 지내온 이들의 심경이 어떠했는가를 알려 줬으니까.
그래서 투란은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왕을 대신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뭐라 하죠?”
“섭정(攝政), 왜?”
살짝 고개를 돌려 마주하는 투란의 눈길을 바라보며 아리엔이 갸웃했다.
옥좌에 올랐다 해도 이제 겨우 왕으로서는 첫걸음이겠지만 투란에게는 조언을 해줄 이가 넘쳐났다. 비록 직접 닿을 경우에도 대부분이 망령이겠지만, 나라 곳곳에 정신 똑바로 박힌 이들이 살아서 아직 버티고 있기도 했다. 이제부터 그들을 하나씩 왕도로, 왕궁으로 끌어와 기용하면 될 일이었다.
한데 어째서 투란은 몽땅 떠맡길 궁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의아해하는 아리엔을 향해 투란이 슬그머니 가라앉힌 목소리로 묻는다.
“하고 싶지 않아요?”
“……뭐?”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금방 아리엔의 얼굴에 드러났다.
“한 번 더 말하자면,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해 보고 싶지 않냐는 거죠. 카이람이나 하이람처럼 말이에요, 뭐,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지 않기도 하지만…… 아리엔이라면 섭정이 잘 어울리고, 잘할 것 같거든요.”
나직하게, 두서없는 듯하지만 확실하게 요점을 짚어 말하는 투란이었다.
겨우 무슨 이야기인가 알아들었다는 듯, 아리엔은 입술 끝에 한숨 섞인 웃음을 매달고 나서야 답한다.
“건국왕 카이람, 내 할아버지인 분을 너무 가볍게 얕보는 것 같구나. 아가야, 그분을 내가 싫어하는 까닭은 자기희생을 확실히 한 영웅 노릇을 후손에게도 강요했기 때문이야. 그런 강요를 할 만큼 철저했다는 부분도 꽤 크지. 네 덕분에 로그람 통치를 위한 마력은 넉넉해졌다고 하지만, 내게 배당된 부분은…….”
느릿하게 한 가지씩 짚어 가며 이어지려던 이야기가 멈추었다.
투란이 가만히 내미는 왼손, 그 펼쳐진 손바닥 위에서 맴도는 마력이 바람을 일으키더니 여린 빛을 드리우며 원을 그리다가 구슬을 만들어 내고 있는 탓이었다. 그렇게 잠깐 드리운 침묵을 밀어내듯 투란이 말했다.
“함부로 왕국의 마력을 소모해서 날뛰지 못하게 해 놨겠죠. 수많은 후손들이 죽어서도 억울해하다가 형체를 갖춘 망령이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지금도 재앙이 될지 모르는 대범람을 막기 위해서 마력을 잔뜩 끌어다 쓰면서도 새 나가지 않게 굉장히 조심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아리엔, 섭정을 맡아 준다면 하이람이 간섭하지 못하는 마력을 부여해 줄 수 있어요. 왕궁을 중심으로 왕국을 위해 축적된 마력이 아니라, 내가 여행하며 얻은 마력의 원천을 이용해서 말이에요. 그러면 아리엔은 나 대신에 왕국을 다스릴 수 있잖아요? 필요한 일에 망령 군단을 부릴 수도 있고, 카이람 할배도 놀려 먹고…… 마음에 들지 않아요?”
“마음에 들어.”
아리엔은 짧게, 분명하게 답했다.
이야기가 주섬주섬 이어지는 사이에 투란의 어깨에는 손에 얹힌 구슬을 노려보는 금빛매의 형상이 나타나 있었다. 금빛매의 깊은 눈빛에 닿은 구슬 속으로는 아주 복잡한 마법의 인장(印章)이 새겨지며 한껏 마력의 맥동이 시작되는 중이기도 했다.
그 구슬을 보며 아리엔은 투란이 누군가, 심오한 마법의 지식을 지닌 자의 도움을 받아 로그람 왕가의 마법과 파워서클의 마도술식을 엮어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마법인가, 아리엔이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답을 찾기 무섭게 투란은 구슬을 아리엔의 손에 닿게 했고, 마법은 아리엔에게 스며들었다.
“섭정 아리엔, 왕의 대리로서 죄를 지은 자에게는 벌을 공을 세운 이에게는 상을……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그래, 분명하고 당연한 기준이로구나.”
융합되고 중첩되는 마법, 그 속에 깃든 강렬한 투란의 의지!
아리엔은 자신의 형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변화하며 건국의 궁정 마도사 하이람이 새로 얻은 가디언의 형상과 닮았지만 다른 형태로 자리 잡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분명히 아리엔을 위해, 섭정으로서 기능하게 하기 위해 새로 조정하고 구성해 낸 마법이었다. 마력 또한 로그람 왕국에 귀속되지 않은 채였다.
때문에 아리엔이 새로운 몸을 느끼며 의문을 드러낼 때, 투란은 옥좌에서 일어서며 맞닿았던 손을 떼고 있었다. 완성된 마법이 순식간에 아리엔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웠다.
“투란, 아가야. 넌 이제 어찌하려는 것이니?”
섭정으로서 왕의 마법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까지 깨달으며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릇’에서 아홉 심장이 맥동하고 투란이 살아서 마력이 맥동하는 한, 아리엔은 자신이 섭정으로 지속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마법을 당연하다는 듯이 구사한 투란의 의도가 무엇인가는 알기 쉬웠다.
왕이 되었다 해도, 투란은 옥좌를 지킬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간절한 물음과 함께 살짝 아리엔이 뻗은 손길이 투란의 팔에 닿았다.
그 안에 담긴 염려, 선조로서의 책임, 여제라 불렸던 이의 의무가 고스란히 투란에게 전해졌다. 그래서 투란은 차분하게 아리엔이 내민 손을 마주 잡으며 대답했다.
“딱히 정한 계획은 없어요. 단지…… 내가 왕궁에 오는 동안 겪은 일이 있거든요.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어요. 샤오콴 출신의 친구, 동료가 죽거나 다치기도 하면서 날 도왔죠. 그러니…… 뭐, 내가 왕이라고는 못 해도 대강은 알려 줘야죠. 이제 걱정할 일 없다고요. 아리엔, 걱정할 일 없게 해 줘요. 어, 그다음에는…… 샤오콴에 가서 샤오 영감님이랑 대화를 좀 해야 할 것 같죠? 뼈를 분지르고 살도 좀 발라내고……. 에이, 죽이진 않아요. 그래도 다 자랄 때까지 지켜 줬으니까. 그리고 그다음에는…… 여행? 아마 여행을 할 거예요. 아, 걱정 말아요. 왕이 멋대로 돌아다닌다고 소문나지 않게 상아탑 마법사, 그냥도 아니고 대마법사의 도움을 받을 거예요. 뭐, 재앙을 품은 몬스터 로드인 나를 하급 몬스터 로드로 위장해 주기도 했으니까, 분명히 도움이…….”
“로열클래스를 획득했었니?”
주섬주섬 이어지는 이야기를 끊으며 아리엔이 물었다.
살짝 눈을 크게 뜨며 투란이 바로 되묻는다.
“그게 뭔지 알고 있어요?”
“원래 왕족을 위해 상아탑이 준비한 마법이었으니까. 왕족이 아니라면 굉장히 까탈스럽게 설정되는 마법일 텐데…… 알았다, 아가야. 하고 싶은 대로 하려무나. 내가 너를 대행하도록 할게. 꼭 네가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알리는 것도 잊지 않을 거야.”
가만히 투란의 두 손을 잡아 주며 아리엔이 말했다.
투란은 빙그레 웃었다.
이제 떠날 때였다.
기억에도 없는 어린 아기 시절과 다르게, 자신이 누구인가, 누구의 후손인가를 잘 알며 앞으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다음에 선택한 여행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붉은 보석이 반짝이며 그 안에 깃든 수호 영수가 목젖을 갸릉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또한 품고 있는 여러 문장이 ‘천칭’의 심연을 중심 삼아 쥴의 반지에서 잔잔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 ∞ ∞
풍종호입니다.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의 본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만 에필로그가 있습니다!
조금 길게 이어지는 에필로그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상황이 그러하니까!
(당당!)
에필로그까지 마친 〈허무왕〉으로 《몬스터×몬스터》는 디 엔드(The End), 끝…….
……인가 하면 아닙니다.
시작으로 돌아가서, 〈부랄 사냥〉이라든가 〈샤크레온> 등등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져 갈 것입니다.
〈드래곤 로드〉라든가 〈괴물 왕자〉라든가…….
꽤나 장기 계획인 듯하지만, 어쩌면 금방 끝날 수도 있습니다.
정리 정돈에 익숙하지 않은 몸이 되어 자잘한 시간이 소모될 일이 많기는 하지만, 아무튼 계획대로!
기다려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기다려 주실 분들께 고맙습니다.
아닌 분들께는…… 음, 언젠가 다시 보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보죠!
그런 날 오려나 의아하기는 하지만, 일단 ‘See You Later!’입니다.
아직 살아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건강한 내일을 기대하며,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