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0)
투란은 고요하게 선 채로, 몸속을 누비는 변화를 감상했다.
심장이 변화하고, 핏줄이 변화하고, 힘줄과 뼈대, 살갗으로 섬세하게 번지고 채워 가면서 자리를 잡는 악마의 심장.
약 여덟 달 동안 작은 섬을 중심으로 뿌려 두었던 굵은 줄기들이 투란의 변화에 맞춰 섬세하게 분화한 잔가지를 뻗어 냈고, 투란에게 밀려왔다.
여전히 고요하게, 투란은 이를 받아들였다.
두근, 두근…… 쿠쿵!
투란의 몸에서 사람과 다른 강인한 생명력이 뿜어져 나갔다.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강하게 짓누를 듯한 압력이 잠시 투란을 휘감았다.
‘역시, 되네.’
투란의 간단한 감상은 담담했다.
악마의 심장이 괴물의 오러를 다루며 가늠했고,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되든 안 되든 여덟 달간 붙잡고 도전한 일이었고, 성공을 거뒀다.
그 경험을 통해서, 악마의 심장을 이용해 오러 몽거의 ‘어비셜 볼텍스’ 스타일로 오러를 다뤄 본 것이다. 사람의 생명력과 다른, 몬스터의 생명력을 기반으로 한 오러였다. 드라고니아에게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던 그 힘이었다.
이 힘은 흘러드는 줄기의 속도를 부추겼고, 북돋웠다.
곧 작은 섬을 감싸며 넓게 퍼져 있다가 드레이크의 큰 몸을 만들고도 남았던 굵은 뿌리줄기가 모조리 몰려들며 가늘게 갈라지고 회오리처럼 투란을 휘감았다.
넓게 확산된 지각 능력을 통해, 투란은 자신을 근원으로 한 악마의 심장 넝쿨, 뿌리줄기가 모조리 귀환하고 회수된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형성된 오러 몽거 스타일의 오러가 광폭해지는 것도 분명하게 느꼈다.
‘과연 이렇게 되는군.’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일어나면 쉬지 않고 잠들지 않는다.
오러 몽거라면 견뎌 내지만, 악마의 심장은 아니었다.
고르고니아 내부에서는 그대로 터뜨렸지만, 지금 투란이 터뜨린다면 고르고니아처럼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는, 온몸이 붕괴되는 피해를 입을 것이다. 고르고니아의 강인한 몸조차도 그 내부의 파괴를 견뎌 내지 못했다.
심장에 축적된 오러는 질량을 짓눌렀고, 투란의 작은 몸에 방대하게 뿌려진 줄기를 모조리 압축했다. 당연히 일어난 반발이 심장을 짓누르며 투란의 몸을 흔들었다.
악마의 심장이 닥쳐온 위기를 분명하게 투란에게 전해 줬다.
‘그래, 다음 단계야.’
침착한 생각과 함께, 투란은 오른쪽 가슴에 덩굴줄기에서 또 하나의 심장을 키웠다. 이번에는 강한 경고가 악마의 심장의 고동과 함께 느껴졌다.
결코 둘이어서는 안 된다고, 이 작은 정원에 지배자를 하나만 둬야 한다는 경고였다. 악마의 심장에게는 분명히 그래야 하는 ‘원인’이 되는 본능이 있었다. 이제까지 투란이 어렴풋이 느끼던, 체험을 통해서 분명히 겪고는 있던 본능이었다.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지.’
이제는 투란이 보다 분명하게 그 ‘원인’을 납득했다.
드라고니아가 말했던 ‘섀도 하트’로서의 성질이었다.
그림자 심장으로 완전한 본체를 재생하는 능력, 그러기 위해서 흩어진 채 따로 존재하는 모든 기억을 한자리에 모아야 하고 완벽한 기억을 이뤄야 한다. 그 완벽한 기억에는 이견이 존재해서는 안 되므로, 모든 그림자는 반드시 하나로 뭉쳐야 하고!
이전에는 투란이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 일이었다.
다시 경고를 하기 위한 듯, 바르르 떨면서 축적된 오러의 중량에 허덕이는 악마의 심장을 향해 투란이 고요하게 속삭이듯 의지를 전했다.
‘괜찮아…….’
오른편에 빠르게 성립된 또 하나의 악마의 심장을 향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작은 핏줄이 빠르게 번져 갔다. 두 심장의 가운데 정도 자리에 작고 단단하게 피어난 독특한 생명의 핵, 그로부터 퍼져 나오는 색다른 핏줄이었다. 이 핏줄은 오른쪽 심장 속으로 흘러갔고, 주변의 맥동하는 생명력을 흡수하면서 꼬이고 뭉쳐 들었다.
쿠쿵, 쿠쿠쿵.
새로운 맥동이 바로 투란의 오른편 가슴속에서 치솟았다.
왼편에 자리 잡은 악마의 심장이 납득한 듯, 그 맥동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투란은 입을 열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샤머닉 트롤의 심장이 그 숨을 끌어당기며 보다 세차게 뛰었다.
악마의 심장이 박자를 맞추며 맹렬하게 호응했다.
하지만 두 개의 심장이 아무리 열심히 뛴다 해도, 투란은 오러 몽거가 아니었다. 그저 사람의 형상을 유지한 채였다. 강인하고 잔혹한 오러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맹렬하게 투란의 몸을 파괴할 정도의 밀도와 질량을 드리웠다.
‘나의 작은 늪이여, 돌이여…….’
투란의 염원이 새롭게 문장에 스며들었다.
악마의 심장이 움찔하며, 새로운 조각이 자신의 안에 자리 잡은 것을 알렸다.
작은 늪이 악마의 심장 속에서 소용돌이쳤고, 작은 돌의 힘이 투란의 몸을 잔잔하게 채우며 번졌다.
괴물의 오러는 작은 돌에 집중되고 밀도와 질량을 잃은 채로 삼켜졌다.
투란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그어졌다.
드레이크의 ‘삶’ 속에 담겨 있던, 드레이크에게는 납득하기 힘들었던 괴상한 경험이 있었다. 드레이크가 쉽게 때려 부술 수 없었던, 두 번 보기 싫은데 두 번째로 나타났던 녹색의 뒤틀린 덩어리 같은 놈을 저 깊은 절벽에서 굴러온 티끌 하나가 박살을 내 버린 일이었다. 원래 동경하듯이 바라보지만, 본능 깊은 곳에 새겨진 금기인 탓에 드레이크가 절대로 넘으려 하지 않는 커다란 절벽, 투란이 작은 돌을 얻으며 넘어왔던 곳이다.
거기서 굴러 나온 티끌이 드레이크에게 그런 광경을 보였다면, 고무쇠를 말려 죽인 물결을 낳은 작은 돌, 심장 속에 아주 조그마한 ‘작은 늪’을 꾸며 낸 돌은 오러 몽거의 이 포악한 ‘어비셜 볼텍스’를 견뎌 낼 수 있지 않을까?
견뎌 냈다.
이 강력하고 포악한 생명력을 거침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받아들였다.
투란의 어설픈 짐작대로!
작은 돌은 이전에 살짝 투란에게 맛보게 해 줬던 버텨 내는 힘을, 보다 제대로 본격적으로 확인시켜 줬다. 고르고니아를 쓰러뜨린 힘조차, 견뎌 낼 수 있다고!
하아아…….
투란의 입김이 허옇게 토해져 나왔다.
더워진 듯한 몸에서 모락모락 작은 김이 피어올랐다.
누구에게 보여도 완전한 사람의 몸일 수밖에 없는 외형.
투란은 눈을 감았고, 주변을 느끼며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사라져 버린 드레이크의 감각을 되새기며.
파아앙!
날개가 펼쳐졌다.
금빛을 머금은 비늘이 촘촘하고 작은 깃처럼 수놓아진 가죽 바탕 역시도 금색을 일렁이는 어린 날개였다.
투란은 조용히 날개의 형상을 감상하며, 몸의 변화를 점검했다.
목뼈를 타고 올라온 드레이크의 등뼈, 투란의 엉덩이 갈라지는 곳에 닿지 않은 채로 날개의 중심부에서 살짝 꼬물거리며 아래로 처진 듯이 생겨난 꼬리, 귀 뒤편을 따라 목을 타고 몇 개 나란히 그어진 살갗의 틈새…….
등 쪽과 다르게 앞쪽은 가슴 근육이 부풀고 어깨가 조금 넓어진 정도로 소소하게, 달라 보이는가 아닌가 애매한 정도만 변했다.
투란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니, 목덜미를 따라 등 쪽으로 그어진 틈새가 바람을 들이쉬고 날개 속으로 흘려 넣는 것이 느껴졌다. 더불어 서서히 짙어져 가는 햇살이 날개 속으로 말려 들어오는 것처럼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빛과 바람…….’
투란은 드레이크에게 이 두 가지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드레이크의 ‘삶’에 담겨 있던 경험을 지금 이 순간, 사람의 몸에 돋은 어린 드레이크의 날개로 확인할 수 있었다. 드레이크의 몸이 되었을 때는 날지 못했다.
서서히 발이 땅에서 떼어지고, 투란의 몸이 느릿하게 부유하기 시작했다.
아직 투란은 날개를 꼼짝도 않았다.
하지만 날개는 빛을, 바람을 삼키면서 기묘한 부양력을 갖춘 채로 투란을 하늘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천천히 투란의 눈길이 하늘을 향했다.
비를 멈추고 흐릿해진 구름이 조각난 채로 흩어지는 광경이 아련하게 보였다.
아주 낮게 몰려든 구름인 탓인가, 뭔가 닿을 듯 말 듯 한 느낌마저 들었다.
‘닿을까?’
작은 의문을 되풀이했고, 투란은 날개를 저었다.
쿠아앙!
폭음을 남긴 채, 투란의 몸은 한순간에 작은 섬을 떠나 치솟았다.
‘아, 이런…….’
어느새 까마득하니 내려다보이는 작은 섬, 곁을 스쳐 간 채로 이젠 발아래 작은 섬과 함께 보이는 구름 조각을 향해 투란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린 드레이크의 날개였지만,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날개였다.
드레이크를 받치며 빠르게 날기에는 덜 여문 날개였지만, 사람은 한순간에 수백 미터의 창공으로 밀어 줄 수 있었다. 그 속에 담긴 부양력은 굳이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사람 하나 정도는 그대로 띄워 줄 정도를 유지했다.
시이이잉.
몸을 스쳐 가고 사방에 가득한 바람을 느끼면서 투란은 눈을 잠시 감았다.
눈꺼풀에서 금빛 비늘이 번져 나갔고, 눈가와 이마를 채웠다.
다시 투란이 눈을 떴을 때, 눈동자는 연하고 푸르스름하게 번지는 고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멀리, 넓게 보면서 투란은 아련하고 깊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드레이크의 눈은 투란이 겪은 드레이크의 시야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키워 주겠어. 오래 걸리겠지. 알아, 그래도 키워 볼 거야.’
투란은 자신을 향해 되뇌었다.
아늑하게 먼 풍경, 선명하지 않은 흐릿한 시야의 경계를 확인하며.
쿠륵, 쿠르륵.
귓가에 들려온 미묘한 소리가 투란의 눈길을 발아래로 옮기게 했다.
저 아래 있을 것이라면, 작은 섬일 텐데…….
“엥?”
투란은 작지만 분명히 놀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작은 섬이 꾸물거리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애벌레처럼, 스윽 접었다 펴는 동작을 과시하며 작은 섬이 도망치고 있었다.
뭔가 머리 한구석이 멍해진 채로, 투란은 그 꼴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온통 늪과 섞인 듯한 단단한 진흙으로 풀도 자라고, 거기서 산책하는 녀석도 있었고, 투란이 거의 여덟 달간 맴돌며 감싸기도 했으며, 여덟 달보다 긴 듯한 하루를 보낸 장소가 기어서 달아난다니!
“뭐냐, 넌…….”
겨우 열린 투란의 입가에서 약간 질린 듯하고 기막혀하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뭐긴, 클레이웜이구만.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이 바로 귓속으로 스며들듯이 뇌리를 울렸다.
“켁! 넌 또 뭔데!”
투란은 꽥 소리치듯이 외쳤지만, 금세 알아차렸다.
드라고니아가 말한 것이다.
—응? 투란, 듣는 방식이 바뀌었나?
“너, 말하는 게 바뀐 거라곳!”
나오는 말에 바로 반발했지만, 결국 투란은 한숨을 푹 쉬면서 열심히 도망가는 작은 섬의 마지막 자태로 눈길을 돌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탓인지 작은 섬의 꼬락서니는 진짜 애벌레 같았지만, 투란은 그것이 150미터 이상의 길이를 지닌 거대한 땅덩어리라는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위에서 퉁퉁 퉁기며 굴러다니는 온갖 잔해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으므로.
“클레이웜……이라고?”
묻는 듯, 마는 듯 투란은 중얼거렸다.
—그래. 어스웜(Earthworm)의 변종인데, 작은 늪을 서식하는 거처로 삼기 때문에 대부분은 커 봐야 2, 30미터지. 너희가 대습지라 부르는 정도의 거대한 늪지가 아니면 저 정도 크기는 쉽게 보기 힘들었을 거야.
“야, 난 클레이웜이란 거 처음 들어 본다고!”
‘쉽게’라는 말에 투란이 투덜거렸다.
소문만 들어도 달달 떨게 한다는 지진의 원흉, 어스웜의 변종이란 말을 너무 쉽게 하잖는가!
—……어스웜은 아나?
조금 한심하다는 투의 물음이었다.
기껏 설명해 줬더니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는 듯한!
“지진을 일으키고 다닐 정도로 큰 괴물이란 소리만 들었지.”
—음, 그런가. 확실히 그놈이 지하를 관통하고 지나가면 지반이 흔들리니 지진이기는 하군. 하지만 모든 지진의 원인이 그놈은 아니다.
“다행인 거냐?”
—불행이겠지. 지진을 막기 위해 그놈만 잡으면 되는 상황이 아니니까. 몬스터 큰 거 하나 잡아서 지진을 막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유쾌한 이야기가 있겠나?
투란은 뭔가 헷갈리는 느낌에 고개를 젖혔다.
창공의 빛, 바람이 새삼스럽고 명확하게 느껴졌다.
펼쳐진 날개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선명하게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두 개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 속에 번졌다.
투란은 날개를 살짝 기울였고, 발아래 구름을 둔 채로 미끄러지듯이 날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진 늪의 흐름을 역류하는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