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2)
“뭐? 지금 뭐라고 했냐?”
“에이, 들어 놓고 뭘 못 들은 척해요?”
투란은 방긋 웃으며, 어이없어 되묻는 노인에게 대꾸하고 있었다.
때문에 한층 더 어이없어하는 노인, 샤오 할배를 향해 투란이 한마디를 더 보탠다.
“할배를 위해서예요!”
말문이 막힐 정도로 황당한 지경이 아닌가!
샤오는, 촌장 샤오덴으로서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왜 그림 로드라 불렸는지는 알고 온 거냐?”
“그림 존을 영지로 삼은 로드, 그림 로드! 맞잖아, 할배!”
유쾌하기 이를 데 없는 대꾸였지만 투란의 장난기가 노인에게 분명히 닿고 있었다.
때문에 노인도 건성으로, 오랜만에 만났지만 세월을 잘못 넘겨서 아직도 덜 자라고 철없는 녀석을 향해 되묻고 말았다.
“그림 존에서 그림 로드에게 벌을 주겠다고?”
굳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제는 이백 년인지 삼백 년인지도 가물거리는 옛날, 이 마을을 샤오콴이란 이름으로 꾸밀 무렵, 그 덕분에 샤오콴이라고 꽤 잘 알려지게 된 그 시절에 그림 존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노인을 사냥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적잖게 있었다.
그들을 통해서 당시 샤오콴은 자신이 지닌 힘의 실체를 깨달았고, 강해졌다.
그로부터 이백 년, 적어도 그 정도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 노인이면서도 하루하루 강해져 가는 자신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잘 모르던 시절에도 이 그림 존에서 현상금을 쫓는 온갖 사냥꾼과 대적했고, 이 영역으로 파고들려는 춤추는 산맥의 괴물들과 다투며 버텨 왔다.
그러니 샤오는 비록 늙었다 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이 그림 존 안이라면 설혹 나라를 모두 아우르는 왕가의 대마법이라도 무효화시키고 뒤틀어 버릴 수 있다고!
그런 일이 가능했기에 샤오는 투란의 보석을 왜곡시킬 수 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그림 로드이기에 보석에 깃든 수호자와 투란을 단절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 수호자를 다시 보석에 깃들게 하고 왜곡을 풀어 보석이 제 기능을 갖추었다 한들, 그림 로드 샤오가 딱히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
누구도 이 그림 존 안에서는 그림 로드 샤오를 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림 로드의 심판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터다.
강보에 싸인 투란을 그렇게 마을에 들이지 않았던가?
샤오가 어쩐지 씁쓸해지는 상황을 느끼며 낯을 구기는데, 투란이 느닷없이 침착하고 냉철하게 말하고 있었다.
“할배, 그림 로드니 뭐니 해도 결국 몬스터 로드잖아.”
조금 전까지의 장난기가 진짜 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느닷없이 수십 년의 세월을 꿀꺽한 듯 진지한 자세였다.
더 이상 강보에 싸인 아이가 아닌 투란을 바라보며 샤오는 삐딱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설마 이 마을에 찾아온 몬스터 로드가 어설픈 한둘에 불과하다 여기는 것일까?
분명히 투란이 마을에 머물던 시절에는 상급을 넘나드는 수준의 몬스터 로드가 없었다. 애초에 그 수준에 이른 녀석들은 그림 존을 함부로 들락거리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 투란과 애송이들이 아는 몬스터 로드는 대부분 상급을 꿈꾸며 망상하던 녀석들이었고.
“왕가에 엄청나게 많은 기록이 있더라고! 할배도 많이 읽었지? 아니,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거기 얘기로는 말이야, 그림 존도 결국은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이라서 온갖 마법을 해제시키지만, 다른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랑은 그냥 꽝꽝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하잖아!”
떠들면서 유쾌하게 까르르거리는 투란이었다.
어째서 갑자기 열 살쯤 먹은 꼬맹이처럼 구는가 의아해하면서도 샤오는 투란이 하는 말을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앉아서 와구와구 먹고 마시는 상황에서 그대로 뒤로 돌리는 순간에 샤오도 느낀 바가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니까 이런 늙은이는 해볼 만한 거냐?”
몬스터 로드가 되어 돌아온 투란을 향해 노인은 씁쓸하게 물어야 했다.
왕가의 보석을 되찾았다 해도 몬스터 로드인 투란은 왕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터였다. 기껏해야 금전이나 은전, 기본적인 의식주에 보탬은 되겠지만 왕족의 권리 따위는 전혀 없는 것이다.
‘아니, 그냥 잘 먹고 잘 입으면 그만이려나?’
문득 노인은 쓴웃음 속에 깨닫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자란 투란에게 왕족의 권리니 뭐니는 어쩌면 의미 없는 일이지 않을까? 괴물이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일생을 즐길 만한 풍요로운 권리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보석을 갖고 나가 가짜 노릇 하는 엉뚱한 녀석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지금 노인의 앞에서 마을의 비상시를 대비한 식량과 식수를 맛있게 거덜 내는 꼴이 진짜배기로 보이는 투란이라면 왕족의 권리니 하는 일은 아예 몰라라 하고 오히려 즐거워할 수도 있을 듯싶다.
“할배, 해볼 만하네 어쩌네 하기 전에 먼저 잘못했다고 해야잖아?”
다시 조금 진지해진 말투로 투란이 혀를 차는 시늉을 섞어 물었다.
그야말로 철없는 늙은이를 향해 한바탕 훈계하는 태도가 꽤나 노골적이잖은가?
마을에서 촌장 노인 노릇을 오래 해 온 샤오에게는 황당하고 어이없어 얼빠진 표정을 짓게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샤오는 알아차렸다.
투란이 되찾은 것은 단순한 보석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의 출생에 얽힌 일과 왕족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가에 대해서도 모두 알아낸 듯했다. 때문에 이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겪은 바에 대해 촌장 샤오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식, 샤오는 늙은이의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투란의 맞은편에 대충 주저앉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잘못이라…… 살아오면서 많은 짓을 저질렀지. 나름 잘했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 나중에 보면 잘못한 일이 되기도 하더라. 그래, 넌 내가 어떤 잘못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냐? 어디 한번 들어 보자.”
“와, 할배 진짜 뉘우칠 생각이 없네? 이러면 참…….”
실룩실룩, 치솟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대꾸하는 투란의 모습은 살짝 괴상하다고 느끼게 했다. 노인의 입가에서 그에 대한 물음이 나오기 전, 투란의 흐릿했던 말이 또렷하게 이어진다.
“……벌주는 일이 즐거워지는데!”
“뭐? 이 녀석이…….”
하도 어이가 없으니 이제 절로 감정부터 튀어나오려 한다.
하지만 샤오는 늙은 입술을 바로 멈추고 말았다.
신나게 비상식량을 거덜 내고 있으면서 별다른 특징이라고는 입고 걸친 장비가 제법 쓸모있는 듯싶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투란, 오래전에 알던 모습과 별로 달라진 바가 없는 듯했던 소년 그대로인 몸에서 짙은 마력이 물컹물컹 피어나다니!
어지간하면 그저 상태를 지켜보며 관망하는 그림 존, 그 마력이 투란의 힘에 곧바로 반응해서 경계 태세를 펼칠 지경이다!
“너 대체 뭘……?”
고유 마력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몬스터 로드는 가능한 한 강력한 몬스터를 삼키고자 한다. 이는 몬스터 로드가 된 자에게는 거의 본능이나 다름없는 성향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몬스터는 그 정수를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몬스터의 본능에 휘둘린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 노릇을 하여 참극을 벌이는 경우가 더 많을 지경!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시대가 열려서 예전과 다르게 몬스터의 정수를 억제하는 다양한 비전이 유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몬스터 로드의 본질은 변할 수가 없었다. 천 년보다 더 오래된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국 몬스터 로드는 스스로의 역량으로 몬스터의 정수를 길들이고 그만큼의 마력을 성장시킬 뿐이다. 한 계단, 한 계단, 탑을 오르듯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강해지다가 특수한 재능이 발현한 이들이 몬스터 엠블럼에서 그림 폴을 뽑아내고 그림 존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림 존을 다루는 몬스터 로드는 거의 대부분 강자이며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 로드를 만나기가 어려운 처지에 도달한다.
샤오콴, 이 마을은 그림 로드라고 불리기까지 한 샤오가 늙은이의 모습이 되기 전에 완성한 특별한 그림 존이었고 지금 투란처럼 방대하고 짙은 고유 마력이 발동하지 않도록 억누르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 억압을 밀어내며 투란의 고유 마력이 자신만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뭘 사냥해서 삼킨 것이냐?”
오랜만에 몬스터 로드로서의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느끼며 샤오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그림 존의 마력, 그림 포스까지 버텨낼 정도의 고유 마력을 키워 내게 한 몬스터는 어떤 녀석인가? 시간이 뒤틀려서 아직 어린아이 그대로인 투란이 대체 뭘 삼켰기에 이리도 강력한 마력을 몸에 두를 수 있는가?
“뭘 삼키긴, 닥치는 대로 삼켰지!”
웃음이 더 짙어진 투란이 속삭이듯, 하지만 목소리는 꽤나 크게 해서 또박또박 대꾸하고 있었다.
“닥치는……? 여러 종을 삼켜서 모조리 통합했다고? 네가?”
상급 몬스터 로드라도 함부로 못 할 이야기를 거침없이 질러 대는 투란을 보며 샤오는 주름진 얼굴을 찌푸리고 작작 좀 까불라고 말하고자 했다. 하지만 점차 강렬해지는 투란의 마력, 그 마력 안에 어렴풋이 드러나는 기묘한 형체를 느끼며 늙은이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통합을 해서 형성한 것이든 아니든, 투란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마력이 담긴 형체는 크고 강하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뿔, 날개, 발톱, 가죽…… 설마 드라고니아를 본보기로 꾸민 것? 이 녀석, 어릴 때부터 괴물 왕자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더니만!’
샤오의 표정이 살짝 심각해지는데, 투란이 히죽 입꼬리를 더 치켜 올리는 웃음과 함께 불쑥 묻는다.
“할배, 괴물 왕자님 키린보다 강해? 키린 왕자님이랑 싸우면…… 아니, 그 왕자님이 물리쳤다는 광분의 드라고니아 정도라도 이길 수 있어?”
노인의 표정이 쓴웃음과 함께 구겨지고 말았다.
몬스터 로드로서 그림 로드니 뭐니 불리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한때 세상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몬스터 로드로서 샤오는 괴물 왕자의 소문을 처음 접했을 때 지금의 투란처럼 궁금해했다.
드라고니아가 광분해서 위협하는 왕도에 샤오 자신이 있었다면 어찌했을까?
전설로 바뀐 소문에 담긴 바에 따르면 괴물 왕자 키린은 왕도 전체를 덮는 불꽃의 장벽을 세워 드라고니아를 튕겨 냈고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게 지키면서 놈을 제압했단다. 그 과정에서 왕도의 성벽, 궁전이 꽤 부서지기는 한 모양인데 그 또한 드라고니아가 광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생긴 파손이었고, 괴물 왕자가 나선 후로는 길가의 돌멩이 하나도 안 부서졌다고 했다.
그야말로 드라고니아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른 괴물 왕자님의 전설인 셈이다.
하지만 다른 소문, 괴물 왕자를 조금 깎아내린 이야기도 있기는 했다.
도시 전체를 위협할 지경이었던 만큼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다행스럽게도 누군가 죽는 일은 어찌어찌 막아 냈지만 다친 경우는 꽤나 많았고, 그 때문에 드라고니아의 광분이 얼마나 무서웠는가 아주 똑똑히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고.
물론 어떤 소문이든, 결론은 괴물 왕자 키린이 무시무시하게 강해서 불꽃왕의 웅장하고 거대한 힘을 거침없이 휘둘러 미쳐 날뛰는 드라고니아를 제압하고 몬스터 로드로서의 자태를 드러냈다는 전설로 마무리된다.
그런 여러 가지 소문, 전설을 토대로 샤오도 한때 호기심 삼아 자신의 전력을 가늠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이라면 과연 광분하는 드라고니아를 어찌 상대하고 어느 정도까지 맞설 수 있을까?
그렇게 샤오의 호기심에서 비롯한 가늠의 결론은 간단하면서도 다소 실망스러웠다.
괴물 왕자 키린이 다룬다는 불꽃왕, 정령의 힘을 가득 머금고 도시를 덮을 정도로 방대한 불길을 일으킨다는 정령 계열의 몬스터와 샤오의 그림 존은 성향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드라고니아와 맞닥뜨려서 도시 전체를 구해 내는 일은 무리겠지만 그림 존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어떻게든 제압은 할 수 있다는 것이 샤오가 자신의 역량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그 결론을 시험해 볼 방법이 없었으니, 그저 심심풀이로 끝난 사유(思惟)의 유희(遊戲)로 까마득한 추억의 한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다.
한데 그런 추억을 끄집어내 다시 떠올리게 하다니…….
“진다고는 생각 안 한다만?”
문득 오래전의 놀이를 이어 가듯 노인이 대답했다.
마음 한쪽에서 대체 이 어린놈이 언제까지 저리 까불거리려나 보고 싶어졌기에, 자극하고 싶다는 묘한 충동이 일어났기에 도발하듯 던진 말이기도 했다.
“그렇지! 역시 그림 할배답게 배짱 좋아! 그러니까 할배는 산처럼 커다란 용암 덩어리랑 싸워도 버틸 자신이 있는 거지?”
“……그건 무슨 괴물이냐?”
광분해서 에테온을 발칵 뒤집을 뻔했던 드라고니아는 음유시인들이 이렇게 씹고 저렇게 씹으며 당시 어떤 자태를 보였는가 꽤나 많은 방향에서 토론되었기에 어느 정도 가늠할 척도가 있었다.
하지만 투란이 말한 용암 괴물은 샤오에게 낯설기만 했다.
물론 어디선가 들었는데 만난 적이 없어 그냥 잊어버린 걸 수도 있긴 했다.
“아, 산이 아니고 그냥 산을 담글 정도의 호수라고 해야 하나? 호수 같은 용암! 음, 이상한가? 그러면…… 드레이크는 어때? 날개를 펼치고 산 하나를 그냥 뭉갤 수 있는 드레이크 말이야.”
어째…… 소년의 호기심이 이상한 방향으로 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