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3)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지루함을 담은 노인의 투덜거림이 나올 뻔했다.
소년의 몸을 감싸는 마력이 거대해지며 지독한 압박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무슨 의미 없는 소리를 지껄이냐고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아 줄 참이었다.
투덜거림도 손짓도 막아 버린 막대한 마력을 과시하며 투란이 빙긋빙긋 웃는 낯을 그대로 노인의 코앞에 들이대며 속삭인다.
“할배, 못 이기면 벌 받아야 한단 얘기야.”
콱.
노인은 자신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투란이 그저 말만 한 것이 아니란 점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샤오는 자신의 그림 존이 그런 투란에게 전혀 반응하지 못했으며 늦게나마 막아 내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투란의 목소리가 시시덕거리는 말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가 옛날……은 아니고, 얼마 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된 것 같은데…… 아, 몰라! 아무튼! 내가 도적의 창고를 턴 적이 있는데 거기서 아주 재밌는 물건을 찾았거든. 팔다리가 없는 사람이 끼우면 팔다리 노릇을 하는 아주 이상한 마도구……는 아니란 것 같아! 하하핫, 흔히 말하는 의수, 의족인데 흔하지 않은 희귀한 물건이야! 아무튼! 그걸 할배한테 선물하려고 보니까…… 이런, 이런, 이런, 할배는 두 팔, 두 다리가 멀쩡하잖아? 이 물건을 쓰려면 할배가 한 팔, 한 다리여야 하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선물하는 건데 안 받아 주면 섭섭하니까 할배는 꼭 받아 줄 거잖아? 그래, 이렇게 방해가 되는 팔다리 하나쯤이야! 그림 로드라는 할배한테는 없어도 되는 거지? 그렇지? 역시 그렇구나!”
샤오는 낭랑하고 명랑한 울림 속에서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느끼고, 알아야 했다. 단계적으로 차분하게 이뤄지는 일, 그 기묘한 체험은 명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너무 또렷해서 오래 살아온 샤오로 하여금 잠시 아무 생각도 못 하게 할 지경이었다!
왼팔이 사라졌다.
오른 다리도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저 뜯겨 나간 줄 알았다.
절단면이 순식간에 뜨거운 뭔가에 지져지는 것을 알았을 때는 초열(焦熱)의 집중에 의해 이뤄진 절단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 경우라면 토막토막 이쁘게 썰려 나갔을 터인데…….
‘찢었어!’
너무나도 울퉁불퉁하고 우악스럽게, 봉제 인형이 찢기는 것처럼 살과 뼈가 찢기고 부서지면서 떨어져 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까지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뒤이어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초열로 상처 자리를 뭉갰다!
순식간에 당한 상황이었고, 반격을 위해 집중할 여유도 없었다.
그다음 곧바로 어깨와 다리, 사라진 자리에서 뭔가 맞물리며 삐걱거리고 뽀각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나온 탓이었다. 없어진 것을 대신에 뭔가가 그 자리에 채워지는 와중에 ‘의수’와 ‘의족’이란 낱말이 나오는 대목이 귓가를 울렸다.
알기 쉽기는 했다.
멀쩡한 팔다리 뜯어내고 그 자리에 의수와 의족을 붙여 주겠다고 떠들면서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으니까.
정상적인 사고,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무슨 포악한 짓이냐고 식겁할 일이 분명하지만, 살면서 팔다리 없는 대상 한두 번 본 것도 아닌 입장에서는 뭔가에 보복하기 위해 그랬나 보다고 끄덕일 수는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이 자신이고 자기 몸뚱이가 그 꼴을 겪는다면 뒤늦게라도, 미미하더라도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대항을 할 수밖에 없잖은가?
그림 로드 샤오에게 이런 상황에 대한 대항 수단은 이미 갖춰져 있기도 했다.
요즘에 와서는 거의 쓸 일이 없었지만, 어쩌면 한 백 년은 쓰지 않은 듯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이고 잔혹한 폭력의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대항 수단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샤오콴 마을의 중심을 차지한 영목이 움직였다.
수령(樹齡)을 짐작할 수 없는 이 거대한 나무는 반쯤 죽은 것으로 여겨졌다.
새싹이 돋는 영역이 좁고 열매는 거의 열린 적이 없으니 그렇게 여겨질 만도 했다.
그러나 촌장 노인이 그 거대한 영목의 둥치와 뿌리 부분을 파고 들어가 집으로 꾸몄고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 영목의 뿌리줄기를 따라 지붕과 벽을 붙여 거처를 만들어 가면서 그런 식의 주거 형태가 전통이 된 지도 오래였다. 그만큼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자태를 과시하면서, 반쯤 죽었다고는 해도 마을을 거의 절반 이상 덮는 큰 가지를 드리운 풍경의 중심인 것이다.
그 영목의 뿌리 중심이 꿈틀거리며 굵은 밧줄 같은 잔가지를 움직여, 촌장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면서 강제로 의수, 의족을 갖다 붙이고 있는 투란을 휘감아 구속하려 했다.
그림 존도 그 움직임을 보강하고, 한층 더 거센 힘을 실어 주며 오랫동안 함께해 온 이유를 드러내려는 참이었다.
“야, 하지 마.”
투란의 간단한 한마디!
그 한마디에 촌장의 거처에서 한꺼번에 움직이려던 뿌리, 잔가지가 그림 존의 요동치는 마력을 거부하며 멈춰 버렸다.
그것은 그림 로드 샤오에게 팔다리가 뜯기고 갈아 치워지는 것보다 더욱 충격적인 일이었다.
“뭐? 왜…… 어떻게…… 어째서……!”
두서없이 노인의 입에서 당혹스러움이 마디마디 토해져 나왔다.
“좋아, 잘 끼워졌네!”
그러거나 말거나, 투란은 유쾌하게 떠들면서 스윽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노인 샤오는 그제야 자신이 투란에게 깔려서 꼼짝도 못하던 채란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저 밀고 엉덩이로 배를 깔고 앉아버린 자세, 투란이 한 짓은 딱 그뿐이었는데 그림 로드라고 불리기까지 한 샤오가 한낱 늙은이가 되어 꼼짝없이 당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영목은 그 와중에 동반자인 샤오보다 투란에게 더 순순히 호응했다!
로그람 왕궁에서 잔가지를 구해다가 이 자리에 심고 거의 이삼백 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해 왔는데!
삐걱, 뽀각, 삐익.
몸을 일으키던 샤오는 갈아 치워진 자신의 왼팔, 오른 다리가 뻑뻑한 물레바퀴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는 사태를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뜯겨 나간 원래의 팔다리는…….
샤아아, 낼름!
지붕을 대신하는 듯한 거대한 환영이 샤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고 이제 겨우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팔다리를 흩날리는 핏방울과 함께 삼켜 버렸다. 그 거대한 혓바닥, 심각하게 섬뜩한 눈동자는 환영이 그저 드레이크를 모사한 것이 아니라 마치 실재하는 드레이크가 환영처럼 모습을 드러내 간식을 먹어 치운 상황이라는 듯했다.
“응, 멋있어!”
갑자기 투란이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말했다.
샤오는 주름진 얼굴을 구기면서 자신의 다리를, 팔을 살펴봐야 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뼈 모양의 팔과 다리가 하나씩 끼워져 있었다.
엉덩이뼈까지 단단히 물린 듯했고, 어깨뼈는 통째로 갈려 나가 맞춰진 듯했다.
살면서 이렇게 사지 절단의 수준에 몰려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절단된 적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며 샤오는 투란을 노려봐야 했다. 이렇게 당하고 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투란이 방금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붙잡고 알아내야 할 필요가 생긴 셈이었다.
한데 투란이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흔들더니 뒷걸음질 쳐서 나가고 있었다.
“좋지? 할배, 앞으로 한 오십 년…… 아니, 할배니까 백 년쯤이 좋겠다. 그러고 살아, 기적의 마법이 담긴 약을 얻어도 팔다리 새걸로 갈아 치우지 말고 그대로! 그러면 더 이상 벌 받지 않을 거야. 이거 다 내가 상냥하게 할배를 배려한 일이거든. 어? 이해가 안 가? 뭐…… 차차 알게 될 거야. 아, 이런…… 난 이만 가 볼게. 오랜만에 얼굴 봐서 재밌었어! 할배, 안녕!”
당연히 그냥 둘 수 없어 샤오는 어떻게든 붙들려 했지만, 환영이 기괴한 울림을 토해 냈다.
크르르르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드레이크, 보통 드레이크보다 더 크고 긴 드레이크의 환영이 토해 낸 울음이 샤오를 진동시켰다.
종 속의 진자(振子)처럼, 샤오는 전신이 통째로 울리며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쓰러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목조차 그 울림에 부들거리며 간신히 버틴다는 느낌이 뒤이어 전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포효하는 몬스터, 이상한 명동 현상을 일으키는 몬스터는 적잖게 보았다.
하지만 환영으로 그 자태를 드러내고 뼈와 살을 발라내듯이 전하는 이 기괴하고 심오하기까지 한 진동은 대체 뭔가?
흡사 세계를 흔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샤오는 잠시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투란이 사라진 빈자리만 흘겨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샤오는 새로운 손과 발을 꿈틀거려 겨우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끼우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격렬하고 기묘한 진동을 겪은 덕분인지, 의수와 의족은 삐걱대는 듯하면서도 제대로 작동하여 그 제작 기술이 굉장하다는 것을 바로 입증해 주었다.
보통의 감각으로는 며칠 걸릴 적응이 그렇게 단숨에 끝났고, 몬스터 로드로서 이 의수와 의족이 오히려 흉악한 무기도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은 샤오는 잠시 멍하니 주저앉아 천장을 꾸민 영목을 바라봐야 했다.
‘왜……?’
그림 존의 마력을 바탕으로 움직인다지만, 영목에는 나름대로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는 수백 년을 거쳐 성장했고, 때때로 그림 존을 이룬 그림 폴의 마력조차 배제한 채 가지와 줄기를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즉, 영목이 샤오를 돕기보다 투란의 말을 따른 것은 스스로의 의지를 반영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샤오는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투란이 왕가의 혈통이란 점은 분명히 아니었다.
샤오 또한 왕가의 혈통이니까, 그것이 원인이라면 오히려 더 오래 함께한 샤오의 편을 들었어야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멍청한 놈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네.”
갑작스럽게 들린 한마디에 샤오는 주름진 표정을 굳히고 말았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이 투란이 사라져 간 문 너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샤오 자신이 잠들어 있던 침실 쪽, 거적문을 치우며 나타난 이가 그의 등 뒤에서 말한 것이었다.
침실에 비밀 통로 같은 게 있지도 않은데 그 안에서 불쑥 나타나다니!
무슨 마법을 썼다고 여겨야 할 일이지만, 샤오는 그림 존에서 자신의 허락 없이 날뛸 수 있는 마법사는 없다고 확신했다. 투란이 날뛸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몬스터 로드이기 때문이었다. 저지르면서 말한 그대로, 몬스터 로드가 형성해낸 그림 폴의 마력도 결국은 고유 마력이니 또 다른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으로 상쇄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그 마력의 용량이 몇 배나 거대하다는 점은 불가사의했다.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가?”
복잡한 그의 심경을 놀리는 듯이 다시 들려온 말에, 샤오는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적문을 열고 정말 누가 나타났는가를 확인해야 했다.
더욱 복잡해진 마음으로 돌아본 샤오의 입이 절로 열렸다.
“배틀…… 로브?”
로그람 왕가에 전승되는 전투 복식이었다.
머리를 누른 두건, 어깨부터 흘러내리면서 몸을 감싼 로브는 겨드랑이 앞쪽으로 길게 줄을 긋든 갈라져 빈틈을 열었고 두 팔을 언제라도 앞으로 뻗어 낼 수 있는 형태였다. 가슴을 따라 주욱 내려간 로브의 앞자락은 그 안쪽에 다양한 포션병을 걸 수 있는 띠를 숨겨 주었다.
“입어 본 적은 있냐?”
약간 비웃는 말투가 샤오의 정신을 자극했다.
그 배틀 로브는 왕가의 혈족이 정체를 드러낸 채로 여행할 때 입는 전통적인 복장이었다. 춤추는 산맥을 여행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몬스터를 만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투까지 준비했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왕가의 문장이 등과 가슴 쪽에 동시에 박힌 복장을 당연히 갖춰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그람 왕가의 문장이 박힌 저 배틀 로브를 샤오가 입은 적이 있던가?
비웃음을 담아 한 말이었지만, 샤오는 상대가 자신의 과거를 정확히 짚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 수 있었다.
왕가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처음 여행을 떠날 무렵의 샤오는 자신의 혈통에 대해 한없는 증오를 품고 있었기에 왕가의 문장이 박힌 복장을 하지 않았다. 하는 척만 하고 모험가들이 선택한다는 기본 장비를 따로 챙겨 입었다.
그런 과거를 아는 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샤오를 놀라게 한 것이다.
“당신…… 어디서 본……? 산 사람인가?”
그림 존의 마력에 틈새를 만들고 서 있는 자에 대해 새로운 의문이 찾아들었다.
투란처럼 자연스럽게 섞인 것도 아니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 마력으로 제 영역을 꾸민 것도 아니었다.
샤오에게 어딘지 낯익으면서도 낯선 기괴한 존재감으로 그림 존의 마력에 틈을 만들고 거기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치매 걸렸냐? 내 얼굴, 처음 보는 시늉을 하네?”
……보다 노골적인 야유까지 던지면서.
샤오는 로브의 두건 아래 드러난 얼굴을 향해 찌푸린 눈길을 고정한 채 으르렁거림을 담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얼굴이 진짜라고 우기려는가? 로그람 시조의 낯짝이 진짜 자신의 것이라고? 마력을 혼란시켜 탐지를 막은 탓에 난 당신이 산 사람인가도 의심스러운데?”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해야지, 얼빠진 놈아!”
차가운 대꾸에 샤오는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