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4)
‘산 자가…… 아니야!’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림 존의 마력, 영목의 그늘 아래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그 존재력을 과시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단지 마력의 결정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샤오는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던진 몇 마디, 그 얼굴…….
“시조의 망령이라고?”
믿을 수 없기에 샤오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란이 다녀가며 팔다리 끊어 놓은 일 따위는 순식간에 잊을 정도의 충격이 마음을 덮쳐 왔다. 그림 로드의 위명(威名)이 생겨나게 한 경험조차도 샤오가 지금 받은 충격을 덜어 줄 수 없었다.
스륵, 더 자세히 보란 듯이 두건이 젖혀졌다.
샤오는 기억 속의 생생한 초상화가 실체가 되어 눈앞에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거부하고 싶었다.
시조의 망령, 로그람 왕국의 비전 마법에 의해 구현된…….
“누가, 누가 왕이 되었지? 어떻게 당신까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샤오는 오래된 기억을 바탕으로 맹렬하게 추정을 거듭하며 묻고 있었다.
아마도 투란이 보석을 되찾게 해 준 누군가일 터지만, 왕국 최후의 힘이라고 속삭여지는 망령군단을 그 최고 지휘관일 것이 분명한 로그람 시조 왕의 망령까지 구현시킨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
“지금 그게 중요하냐? 넌 정말 반성을 하지 않는구나!”
가만히 샤오 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조금 더 자세히 보겠다는 듯이 샤오의 턱을 손끝으로 밀어 얼굴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시늉까지 하며 내놓은 말이었다.
필사적으로 생각을 거듭하던 샤오는 한층 더 당황하고 말았다.
망령군단이 출현할 지경의 사건이라면 샤오콴 마을 또한 피할 수가 없는 거대한 흉사(凶事)일 터다. 하지만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는 별다른 조짐이 없었잖은가? 그저 늘 있는 수준의 범람, 난동이 몇 년 안에 있지 않을까 싶은 소소한 상황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왕이 되었기에…….
“정신 차리기 싫으냐?”
따악!
거친 으르렁거림과 함께 샤오의 주름진 이마 위를 손가락이 두들겼다.
장난치는 아이에게 어른이 가볍게 꾸짖으며 건드린 듯한 손짓이었지만, 샤오는 순식간에 이마 한복판이 부풀고 골이 쩌렁쩌렁 울리는 충격이 절대로 장난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림 존이 아니었다면, 투란에게 험한 꼴 당하며 마력을 끌어 올려 방어를 강화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방금의 한 방으로 두개골이 깨지고 뇌수가 흩어질 뻔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시조 왕의 망령은 그런 샤오를 보고 한숨과 함께 혀를 차며 말한다.
“허튼 생각이 가득하구나!”
때려죽일 생각이었다면 그냥 목을 베어 죽였을 거란 듯이, 옆구리에 삐죽 솟아난 칼자루를 툭툭 두드리는 손짓도 함께였다.
으득, 가볍게 이를 간 샤오는 몸을 일으켜 자세부터 바로잡았다.
숨이 서서히 다스려졌고, 그 과정에서 어깨와 다리의 새로 접합된 부분이 삐걱거리고 끼익거리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울려 나왔다. 그런 소리가 나는 이유를 샤오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투란이 이 의수, 의족을 갖고 다니면서 전혀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
“벌주려고 아껴 둔 모양이군.”
갑작스럽게 나온, 시조 왕의 태평한 말은 마치 샤오의 속내를 들여다본 듯하잖나?
그런 물품을 제대로 관리도 안 하면서 들고 다닌 바에 대해 뭐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한 기묘한 태도가 망령의 말투, 자세에서 꽤나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때문에 샤오는 아까부터 자신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망령 시조에게 다른 것을 묻기로 했다.
“투란을 돌보려고 따라다니는…… 겁니까?”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망령, 분명히 그렇게 느끼고 알면서도 어느새 샤오의 말투에는 오래된 조상을 대하는 미묘한 공손함이 담겨 있었다.
“아니, 난 너 벌주려고 왔는데.”
뻐끔뻐끔, 입술을 달싹였지만 샤오는 이럴 때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
망령군단. 왕국을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춤추는 산맥 깊은 곳에서 대혼돈이 터져 나와 이 세상을 덮을 대범람을 일으킨다 해도 한 번은 반드시 막아 낼 수 있다는 로그람의 비책이었다.
그런 망령군단의 최고 지휘관인 동시에 최종 병기로 꼽히는 것이 바로 시조 왕. 그 시조 왕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왕국의 비책이 발동할 정도로 커다란 사건이 있다는 뜻이고 왕국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고 말았다는 증명인 셈이다.
그렇다면 왕가의 혈통을 지키는 일은 꽤나 중요한 사항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투란처럼 후손을 볼 수 없는, 소모품으로 최적인 혈통이라면 더욱 ‘잘’ 돌볼 필요가 있었고 언제라도 ‘회수’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나름 따라다닐 이유가 될 만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망령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뭔가 지극히 사적인 목적으로, 굉장히 하찮은 이야기를 들고 와서 그림 로드에게 떠들고 있지 않나? 마치 시조 왕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돌아와 후손을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라니!
“이놈, 잔머리 굴리냐?”
쿡, 쿡.
갑자기 시조 왕의 손가락이 샤오의 이마를 찔렀다.
골이 관통될 정도로 무서운 위력…… 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화 중에 장난치는 아이를 건드리는 깃털처럼 가벼운 손끝!
“설명을 좀 해 주시죠?”
샤오는 결국 생각을 멈추고 솔직하게 물었다.
그리고 바로 냉소적인 반응을 봐야 했다.
“그건 네가 해야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투란에게서 수호자를 떼어 버리고 애를 그따위로 키웠냐? 너처럼 왕가의 구속을 끊고 자유를 누리게 할 생각이었다는 거짓말은 하지 마. 얼간이를 꼬드겨서 그 애를 혼돈의 늪에 제물로 처박은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자, 설명해 봐라.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아이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그 아이가 알지도 못하고 느낀 적도 없는 혈통의 의무를 강요한 것이냐?”
쿡, 쿠쿡, 쿠욱.
말과 함께 머리를 꿰뚫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하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손가락이 계속 샤오의 이마를 찌르고 있었다.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을 듯했지만 샤오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주름진 얼굴을 구긴 채 시조 왕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귀를 기울여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갸웃거리며 얼른 대답하라고 보채는 눈빛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구속은…… 끊을 수가 없었잖습니까. 결국 투란은 보석을 쫓아갔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의 혈통과 만나…… 망상을 좇으며 망가진 삶을 살아야 했겠지. 그렇게 살기 위해 발버둥이라도 친다면…… 차라리 끊어질 혈통의 마무리로 수십 년간 나라를 평온하게 할 제물이라도 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지. 빌어먹을 시조의 악랄한 마법을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었으니까, 나로서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최악이라고 자각은 했다? 거짓말하지 마. 넌 투란을 영목과 교감시켜 줄 수도 있었어. 보석과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끊어 줄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투란이 자신의 혈통에 대해 깨닫고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넌 그런 선택조차 못 하게 막아 버렸어. 도대체 왜 그런 거냐?”
“……하, 하, 하. 왜냐고? 그럼 당신은, 로그람의 시조라는 당신은 후손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 줬나? 산 제물이 되거나 죽은 제물이 되거나, 태어날 때부터 공물인 채로 성장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도록 길들여진 후손들에게 지은 죄를 인정하기는 하나? 자신이 망령이 된 채로 그러고 있으니까 후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도대체 왜!”
으르렁거림 속에는 은근히 피가 토해져 나오는 듯한 맹렬함이 섬뜩하게 맺혀 있었다. 더불어 샤오의 주름진 얼굴은 사나운 맹수처럼 흉포한 표정으로 가득 채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조 왕의 망령은 피식 웃으며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영목의 가지를 돌보고 왕국의 경계 한 곳을 책임진다, 그렇게 버티고 살아왔으니까 그런 변명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거냐? 너 자신을 조금 더 잘 살피고 되돌아보지그래! 너는 왕가에서 자라나 왕가의 구속을 끊어 버릴 모든 수단을 손에 넣었잖아? 다른 왕족에게도 그런 기회와 수단이 온전하게 주어져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 그런 네가 투란, 그 핏덩이 어린아이에게서 그 모든 것을 빼앗고도 어찌 그리 당당한 거냐!”
빡.
이번에는 제대로 된 주먹이 샤오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맞아서 옆으로 픽 쓰러지는 와중에도 샤오는 의구심을 가득 드러내며 낯을 구기고 있었다.
‘어째서…… 맞았지?’
망령이 자신을 패는데, 그림 존의 마력은 물론이고 영목조차도 그냥 있다니!
이중, 삼중으로 준비된 어떤 대응책도 발동하지 않았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그 마을을 유지하는 자신을 지키려고 준비한 모든 수단이 전혀 발동하지 않았다.
투란을 만류하지 않은 것처럼, 영목은 시조 왕 또한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그림 존의 마력을 잔뜩 먹여 키우고 지켜 온 것이…….
“왜, 신목의 파편인 영목이 살아 있는 왕가의 혈통인 너를 지키지 않아서 이상해?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나? 로그람의 영목이 가장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냐? 그래도 너 어린 시절에는 파릇하게 새싹이 돋으면 왕가의 정원에서 그 효과를 가르치고 배웠잖아?”
쿨럭.
샤오는 바닥에 머리를 찧고 험한 기침 뱉은 다음에야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삐걱거리는 새 팔다리를 처절하게 느끼면서 시조 왕의 망령이 한 이야기를 되새겼고, 한 가지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왕의 의지……. 로그람의 신목, 신목의 파편에서 자라난 모든 영목은 왕의 의지를 따른다. 그리고 그 왕의 핏줄을 따르고 지킨다. 그 얘기라면, 도대체 누가 왕이냐고 나도 다시 묻고 싶어집니다만?”
뒤엉킨 숨결을 섞어 샤오는 끈질기게 다시 묻고 있었다.
로그람의 시조 왕, 마법의 마령인 카이람 룬 로그람은 고집 센 후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누굴 닮아 이놈은 이렇게 고집이 센가?
그런 카이람을 향해, 샤오의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어이없는 생각을 하셨죠? 전부 다 할아버지 자손이거든요.”
갑작스럽기는 카이람이 등장할 때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평온하게 거적문을 밀고 나오는 모습이 꽤나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그 안 어딘가에 샤오의 거처로 통하는 비밀 통로라도 있는 듯하지 않나!
어찌 보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듯한 등장이었다.
하지만 카이람의 등장을 겪으면서 경계의 수위를 높인 상태였던 샤오로서는 그때보다 더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 얘 눈치가 없네! 네가 키운 나무잖아. 그 나무가 왜 로그람의 영목인지 몰라? 집구석 뛰쳐나간 다음에 다 잊은 거니? 영목, 영적인 힘을 간직하고 여과하고 통과도 시켜 주는 신목의 파편이라고. 아직 몰라?”
“……망령의 문?”
샤오가 겨우 쥐어짜 낸 대답에는 확신이 없었다.
따악!
이번에는 고개만 살짝 꺾일 정도의 주먹질이었다.
“그건 다른 나라 녀석들이 놀리려고 쓰는 말이고! 집 나갔다고 집안 욕하고 놀리는 데 한몫 끼려는 거냐?”
카이람이 시조 왕인 동시에 집안 어른으로서 으르렁거렸다.
“할아버지, 그만하세요. 머리 나쁜 애, 더 바보가 되겠어요.”
다시 차갑게 울린 목소리에, 샤오는 기울어진 고개를 바로 세우고 두 번째로 나타난 선조의 망령을 바라봤다.
잘못 본 것도,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목소리만 여성스러운 게 분명히 아니었다.
초상화 아래에 분명히 적혀 있었던 까마득한 선조, 로그람의 여제였다.
여왕을 초월해서 대평원의 제국조차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로그람의 선조가 망령이면서도 살아 있는 듯한 자태로 샤오 앞에 나타났다!
“이게…… 이게 가능하다고?”
시조 왕 카이람과 여제 아리엔이 동시에 구현될 리가 없었다.
둘 중 하나만이 망령군단의 지휘관이 되어야 하니까.
로그람의 대마법은 상황에 따라 더 적절한 쪽을 골라 최고 지휘관으로 되살리게 되어 있었다.
살아 있던 시절의 역량을 그대로 발휘하게 하려면 둘을 동시에 구현할 수도 없을 터였다. 시조 왕이나 여제는 홀로 군단의 역량을 초월한다는 압도적인 강자였기에 다시 망령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소모될 마력 또한…….
“넌 정말 잡념이 많고 망상이 심한 아이로구나.”
여제가 시조 왕을 흉내 내듯이 말했다.
샤오는 오한을 느끼며 떨다가 다시 묻고 말았다.
“누가…… 망령의 군세를 끌어냈습니까? 누가, 왕이 된 겁니까? 잃어버리고 단절된 혈통을 대체 누가 이은 거죠?”
“이제 와서 너에게 그게 중요하냐?”
짜증 난다는 듯이 심드렁하니 카이람이 대꾸했다.
“얼굴에 주름 좀 생겨서 뻔뻔해진 거니? 아까부터 넌 한마디도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는구나.”
미간에 고랑을 뚫는 표정으로 아리엔 또한 상냥한 척하는 섬뜩한 미소를 입꼬리에 단 채로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샤오는 궁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