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5)
“샤오쿠안 툴 로그람이 영목에 청한다! 왕은 누군가!”
잠깐 숨을 몰아쉬는 척하다가 벼락처럼 내지른 소리였다.
샤오의 멀쩡한 손은 바닥을 꾸민 영목의 줄기에 닿은 채였고, 그림 존의 마력이 맥동하며 영목을 강하게 자극하기도 했다.
“하아, 이 녀석 정말…….”
시조 왕이 한탄했다.
“그래, 못된 짓도 일관성이 있기는 하구나.”
여제는 즐거운 듯, 하지만 냉소를 담아 말했다.
그사이에 샤오는 들을 수 있었다.
영목이, 왕의 의지에 복종하는 신목의 파편이 혼을 울리며 토해 내는 아름다운 몇 마디를…….
―투란.
―카이람 켈 로그람.
―아카인 툴 로그람.
듣자마자 샤오는 황당해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이라고!”
왕의 이름을 전한 것일 텐데, 세 개의 이름이 나왔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설마 로그람이 세 조각으로 쪼개져 세 왕국이 되었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쪼개져서도 왕의 대마법은 유지가 되었고?
혼란스러운 심경이 샤오의 얼굴에 그대로 주름을 뒤트는 파문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어이쿠, 놀랐나 보네?”
시조 왕이 전설로 남겨진 위엄 따위는 자기랑 전혀 상관없다는 짓궂은 표정으로 놀리고 있었다.
“자비로운 이름이잖니? 왜, 네 마음에 드는 이름은 없었어?”
여제는 관대한 말투와 냉소가 짙은 표정, 전설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아냥거렸다.
살아온 세월 속에 이렇게 당황한 적이 있었던가!
샤오는 그런 옛날 경험을 찾는 대신에 머리 한구석부터 차갑게 식히고 세 개의 이름을 되뇌면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시작부터 또 다른 혼란을 안겨 줄 뿐이었다.
“투란…… 녀석이? 다른 투란이 아니고 방금 가 버린 그 녀석이…… 왕일 리가 없잖아! 몬스터 로드가 된 놈이라고!”
겨우 짜내 던진 샤오의 질문에, 두 가지 대답이 바로 나온다.
“그래서 뭐?”
“뭐 어쩌라고?”
시조 왕 카이람과 여제 아리엔은 마법으로 구현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기 가득한 태도와 자세, 표정으로 샤오를 조롱하고 있었다.
때문에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냉철한 마음을 되찾은 샤오는 다시금 왕가의 전통, 규율을 되새겼고, 마침내 깨달았다.
“그냥…… 관습이었나? 몬스터 로드가 왕이 되지 못한다는 법 따위는…… 없었어? 그런 겁니까?”
허탈한 중얼거림이었다.
대답은 샤오의 귓가에 동시에 스며들었다.
“후손을 못 두니까 꺼려졌을 뿐이지.”
“양자라는 좋은 수단이 있는데 괜히 외면한 것이잖니.”
카이람은 슬쩍 아리엔을 봤다.
동시에 대답을 하고 보니, 어째서인가 아리엔의 대답에는 카이람 자신보다 쾌활하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담겨 있잖나?
샤오는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로 여제의 말에 반박했다.
“왕가의 마법을 잇기 위해 피를 이은 후손이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 할아버지의…… 시조 왕의 피를 잇기만 하면 되니까 양자로 조카를 데려오든 사촌의 손자를 데려오든 상관없지. 굳이 왕이 직접 피를 물려주는 자식을 둘 필요까지는 없다고.”
“투란이…… 마지막 후손이 아니니까, 멋대로 떠드는 겁니까? 그럼 다른 둘은 누굽니까? 왕국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큰 변고가 있었다는 정도는 느꼈지만, 왕이 셋이라니!”
샤오가 으르렁거리며 마법으로 돌아온 선조의 망령을 추궁했다.
카이람이 먼저 웃었다.
아리엔은 잠깐 애처롭다는 듯이 샤오를 보다가 조금 늦게 웃었다.
“새삼스럽게…….”
“왕국을 걱정하는 거니, 네가?”
둘이 차분한 듯하면서도 냉정하게 던진 말이었다.
샤오는 주름진 입술을 꽉 다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가, 선조의 망령 둘이 샤오가 지금까지 살아온 바를 모두 알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피어나는 때문이었다. 어떻게 선택하고, 무엇을 지켰는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분위기가 너무 짙었다.
그런 선조를 향해 샤오는 어떤 변명도, 설명도 꺼낼 수가 없었다.
대신에 물었다.
“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요?”
팔다리를 뜯어내고 냅다 도망치듯 사라져 버린 투란을 따라갈 낌새는 전혀 없다는 것은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선조의 망령 둘은 그림 로드 샤오에게 대체 무슨 볼일이 있을까?
“뭐 한다고 우리가 영령(英靈)의 문까지 써 가며 네 앞에 있을까?”
시조 왕은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면서, 손가락 마디를 푸는 듯한 불량한 손짓까지 더해서 되묻는 소리부터 꺼냈다.
거기에 보태듯이 여제가 한 손으로 살짝 입술을 가리며 숙녀의 자세를 흉내 내는 우아한 몸짓과 함께 말한다.
“마음에 들든 아니든, 넌 나름대로 왕국에 도움을 주려 노력했잖니. 그 공적은 계산해 줘야지. 아, 그런데 그 공적보다 먼저 정산해야 할 죄업이 있더구나. 공적은 나중에 따지고, 우선 그 죄업부터 풀자꾸나.”
“죄업? 하! 죄업이라니…….”
으드득, 이를 갈며 샤오가 살아온 세월을 모두 담아 울분을 토해 내려는 찰나였다.
“난 그냥 화풀이야.”
콰앙!
시조 왕의 주먹이 샤오의 볼을 후려쳤다.
“할아버지, 저 아직 말하고 있거든요!”
새침한 목소리로, 하지만 전혀 말릴 낌새 없이 여제가 떠들었다.
“괜찮아, 얘 튼튼해서 이렇게 만져 주는 동안에도 잘 듣고 있단다.”
콰앙, 콰쾅!
주먹질이 아니라 바위를 두들기는 쇠망치가 낼 법한 소리가 이어졌다.
샤오는 그 소리가 자기 머리에서, 가슴에서, 엉덩이에서 골고루 터져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찔할 수가 없었다.
시조 왕 카이람은 무투의 역량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이 춤추는 산맥에 왕국을 세웠다는 전설을 남긴 이였다. 시조 왕이 남긴 무투술이야말로 춤추는 산맥의 여섯 왕국에 두루 퍼지면서 왕가의 무투술을 강화하고 발전시킨 원천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왕국에서 어떤 형태로 변화되더라도 결국은 로그람의 무투술에 더해질 뿐이라고 할 지경이었다.
그 시조 왕이 과거의 신체 역량을 고스란히 갖춘 채로, 그림 존의 마력조차 그 존재를 어찌하지 못하는 위력을 발휘하며 두들겨 패는 중이었으니 샤오로서는 피할 길이 없었다.
‘왜? 내 그림 존이잖아! 그런데 왜!’
한편으로는, 마법의 존재이지만 그 마법에 간섭할 수는 없다고 해도 최소한 사람의 형체를 했으니 움직임은 읽을 수 있어야 했다.
한데 샤오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바람이 스쳐 간 다음에 찾아오는 느낌, 한 박자 늦고 두 박자 늦은 다음에야 ‘맞았구나!’ 하고 알게 해주는 통증…….
“착한 아이잖아. 목을 뽑아도 되는데 굳이 반성할 여지를 주겠다고 팔다리를 뽑다니 말이야.”
쾅, 콰쾅!
“얼마나 착한지, 뽑은 자리가 불쌍하다고 다른 팔다리를 끼워 주기까지 했잖아.”
콱, 콰콱.
발끝이 위장까지 파고드는 듯한 충격을 남겼다.
그 와중에 샤오는 ‘어디가 착한데!’라고 반문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숨쉬기가 바빠서 말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정말 교묘하게 파고든 발끝이 숨길을 잠시 닫아 버릴 정도의 충격을 남겨놓았으니까.
“그런데 이 녀석은 그 아이에게 자기가 한 짓을 전혀 몰라요.”
빡, 빠박!
“그 애 부모에게 벌어진 일에도 아무 관심이 없어요.”
쾅, 쾅!
“그러면서 나라는 저 혼자 걱정하는 시늉을 하시네!”
퍽, 쾅, 푹, 쾅쾅.
“이 망할 후손 놈아! 애 하나 제대로 곱게 못 키워 놓고 얻다 집어넣었냐고!”
퍼억!
샤오는 코피가 터진 것을 알았다.
핏줄기가 눈앞을 스쳐 간 탓이었다.
그 전에 배나 엉덩이, 등짝, 허벅지 쪽으로 살이 찢어지기도 했지만, 피는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교하게 뼈까지 파고드는 충격만 남기는 타격이 이어진 셈이었다.
게다가 그 타격은 정말 교묘하게도 의수, 의족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이렇게 굴려 가며 때리고 차는 동작이면 의수나 의족이 충격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 아닐까 싶을 지경인데도!
아니, 이게 고정돼서 안 빠지는 건가? 이걸 어디서 얻은 거지?’
샤오는 투란이 끼워 놓은 의수와 의족 자체가 엄청난 물품이란 것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정말로 도적의 창고에서 훔친 것일까?
아니, 대체 도적의 창고에서 도적질은 왜 했는데?
“할아버지, 이제 그만하세요. 얘 무감각해졌어요.”
고요한 분위기를 한껏 두른 채로 구경만 하던 아리엔의 목소리가 카이람을 물러서게 했다.
샤오는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켜 앉았고, 선조의 망령을 올려다봤다.
카이람이 눈을 마주치며 혀를 찬다.
“독한 것 봐라, 감각을 제어하고 덜 아픈 척하네! 뭐, 더 아픈 척해도 또 때릴 거다만…….”
“때리고 싶은 만큼 때려도 상관없어요. 다만 말은 제대로 해 줬으면 좋겠군요. 다른 놈들에게 듣는 수고는 하기 싫으니 두 분이 제대로 이야기해 줘요.”
샤오는 입안에 고인 침을 뱉어 내며 덤덤하게 말했다.
선조의 망령을 유지하는 것은 왕의 마법, 간결하고 소소한 마법과는 전혀 다른 대마법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생동감을 유지하고 실질적인 충격을 남길 정도라면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터, 샤오로서는 최대한 양보하며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리엔이 한껏 놀리는 말투를 노골적으로 꾸며 하는 말이 심상치가 않다.
“어머? 사라지다니,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니?”
카이람도 그 곁에서 히죽 웃으며 보탠다.
“분명히 사라지기는 할 거야. 세상에 영원히 남아 있을 수는 없잖니? 영령이라 해도 기본적으로는 로그람의 망령이니까. 음…… 앞으로 백 년쯤? 아, 너무 짧게 잡았나? 아리엔, 한 이백 년은 잡아도 되겠니?”
“에이, 할아버지! 그게 최소한이라고요. 심장이 하나도 아니고 아홉이었잖아요. 게다가 착한 아이가 선조들 마음껏 하라고, 하고 싶은 일 무엇이든 다 하면서 놀라고 보태 준 것이 얼마인데요! 대충 잡아도 삼백 년 이상은 세상 구경할 수 있어요!”
아리엔이 상쾌한 말투로 유쾌하게 말했다.
샤오는 그 의미를 바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게 무슨……?”
자기 입으로 영령이라고 했으니, 왕의 마법 중에서도 그 전설의 진위(眞僞)를 알 수 없을 지경이라는 대마법이 발휘된 것이 분명했다.
단순히 한 가지 목적으로 제한된 시간 동안 지정된 영역에서만 움직이게 되어 있는 망령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의지를 품고 스스로 결정하는 영령이라면 거기에 부여해야 할 마력 또한 막대할 터, 혈통이 거의 끊어진 로그람에 그런 막대한 마력을 사역할 방법이 남아 있을까?
심장을 아홉이나 뽑는다 해도…….
“아홉…… 아홉! 아홉이라니! 왕족이 아홉이나 남아 있었다고? 그런데 투란이 남고 나머지 아홉은 죽었다는 말입니까? 대체 그게 무슨……!”
빠각.
이마가 터지면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샤오는 자신의 이마를 깨고 두개골에 구멍을 낸 발이 카이람의 것이 아니라 아리엔의 것임을 고개가 젖혀지는 와중에야 겨우 알아봤다.
도대체 발뒤꿈치의 저 날카로운 굽은 뭔가?
왜 저런 것을 신었는가?
아니, 영령이니까 구현한 것일 터인데 멀쩡한 신발 놔두고 저 삐죽한 꼬챙이를 단 구두는 뭐란 말인가!
“음? 샤오 너, 키 높이 구두 처음 보…… 얘야, 할아버지한테 그 꼬챙이 들이대지 마라! 찌를 놈, 앞에 따로 있잖냐!”
카이람이 화들짝 놀란 소리와 함께 옆으로 두어 걸음 튀었고, 아리엔의 삐죽한 굽이 달린 구두가 다시 샤오의 옆구리를 찍었다.
푹, 피슛!
가죽과 창자 한구석을 뚫어 버리면서 아리엔이 낭랑하게 외친다.
“옛날에 이런 양식의 구두가 유행이었단다. 요즘에도 있을 텐데, 이런 외진 곳에 틀어박혔으니 낯설 거야! 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단다. 나도, 할아버지도…… 아, 다른 아이들도 가끔 들러 볼지 모르겠네. 아무튼 여럿 온다고 생각하고 기대하렴. 심심하면 찾아와서 놀아 줄 선조들이 있다니, 넌 정말 행운을 타고난 것 아니겠니?”
샤오는 이마가 뚫리고도 살아 있는 자신이 신기했고, 옆구리에 구멍이 났건만 출혈량이 얼마 없다는 사실에도 감탄했다. 그러나 선조의 망령이, 역대 선조들이 가끔 들른다는 이야기가 금방 그 감탄을 지워 버리고 깊은 서늘함으로 등골을 채우고 있었다.
때문에 샤오는 외쳐야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