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6)
Epilogue 2. 망령(亡靈), 영령(英靈)
시장통, 왕도의 남쪽 성벽을 넘어 펼쳐진 거리에는 그런 이름이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왕성 밖, 성벽을 바라보며 모인 이들이 가볍게 꾸민 임시 거처였는데 그대로 자리를 잡아 왕도의 남쪽에 바싹 붙은 도시처럼 돼 버렸다는 소문도 있는 거리였다.
그 소문을 긍정하는 이들은 시장통이 성벽 밖에 위치한다는 점, 왕도의 남쪽을 향해 훤히 열린 길을 따라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는 점을 꼽는다.
반대로 부정하는 이들은 도로를 따라 수로(水路)까지 마련된 배경을 짚었다. 애초에 왕도의 남쪽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성벽을 쌓기는 했지만 동시에 사람이 거주할 구역도 설계하여 미리 갖춰 둔 것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시장통이란 거리의 시초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이 많지만, 지금 시장통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다들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 망령이야!”
“유령이다, 유령!”
“거리에 유령이 나타났어!”
“아냐, 마법의 망령이래!”
며칠 동안 시장통의 거주민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낯선 이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아주 낯익은 모습들이 격렬한 화제가 되었다. 그들의 출현은 왕궁 쪽에서 거대하고 기괴한 이적(異蹟)이 드리워진 다음이었기에 아무도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 이적으로 인해 수로를 따라 정령의 힘이 깃든 물이 흐르고 정화(淨化)의 힘이 퍼져 나갔던 그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기에 모두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냐고, 흔히 하는 말처럼 세상이 대체 어찌 되려는가 주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낯선 이들이 출현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며 지켜봐야 했다.
낡거나 오래된 옛날 차림새를 한 이들도 있었고, 어딘가 잔뜩 찢어진 몰골이 중상을 입고 어떻게 저리 잘 돌아다니나 의아하게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발견했다.
죽었던 이가 돌아와 거리를 둘러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한두 명이 그러나 곧 여러 사람이 알아차렸다.
춤추는 산맥에 자리 잡은 왕국, 로그람에 속한 시장통이었기에 그 발견은 일단 무장하고 맞서는 준비로 이어졌다.
죽은 자를 뒤집어쓰고 나타난 몬스터가 어떻게 왕도 안에 존재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일은 잠시 뒤로 미뤄진 셈이었다. 죽은 자의 모습으로 출몰하는 몬스터가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막기부터 해야 하니, 잘못된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대응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멈춰졌고, 치워졌다.
죽은 자들 중 누군가 말을 꺼내면서 몬스터가 아니라고 알게 된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왕국의 대마법에 의해 재현된 존재로, 로그람의 오래된 전설이 말하는 망령이었고 몬스터와 싸우기 위해 남겨진 의지가 구현된 것임을 거리의 사람들이 알게 된 것이다.
동시에 춤추는 산맥 안쪽, 왕국의 영토 곳곳에서 흘러 들어오는 여러 가지 소식이 있었다. 범람의 조짐이 다가왔다는 것, 왕국의 군단이 총동원되어도 막기 어려운 대범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 여러 소식에 공통적으로 담긴 핵심이었다.
때문에 시장통 거리의 사람들은 놀랐다, 왕국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대범람이라고 해도 전설에나 나올 망령군단이 나타난 일은…… 전설에나 나왔으니까.
과연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조짐인가?
며칠의 뒤숭숭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로그람 왕국도 멀쩡했다.
시장통 거리에는 여전히 어슬렁거리는 망령이 있고 화제의 중심도 그들이었지만, 몬스터가 아니니 그냥 구경만 하고 넘길 수 있었다.
며칠이란 시간이 그렇게 여유를 주고 안도감을 퍼뜨린 셈이었다.
누군가 망령에게 죽기까지…….
“몬스터였어?”
“아냐, 몬스터는 아니랬어.”
“사람을 죽였다며?”
“원한를 푼 거래.”
“뭐? 원한? 망령이 원한을 풀어?”
“그럼 몬스터 아냐?”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망령, 유령에 대한 경계심이 다시 시장통 거리를 채워 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시장통 거리에서 누군가 죽고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새로운 소문이 왕국 곳곳에서 들려왔다. 시장통 거리뿐 아니라 로그람이란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은 시장통에서 벌어진 살해처럼, 다른 곳에서도 망령이 산 사람을 죽인 이야기였다. 다만 시장통과 다른 점이라면 귀족가에서 혹은 왕국 곳곳에 자리 잡은 귀족 가문의 영지에서 벌어진 일로, 그 결과가 귀족 가문의 문장(紋章)과 함께 공시(公示)되었다는 것이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배덕자를 처단한다. 가문의 율법에 따라, 왕국의 법에 따라…….
그 공시의 시작은 이러했고, 어째서 징벌이 이뤄졌는가에 대한 사연이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징벌자가 자신을 드러내며 남긴 서명도 달려 있었다.
“조, 조상이 후손을!”
“어, 그래. 선조가 망령이 되어 돌아왔다잖아.”
“아니, 그렇다고 후손을 죽여?”
“응,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아예 한 명도 안 남기고 몰살시킨 데도 있다며?”
“어. 그리고 어디선가 부모도 모를 고아를 데려왔다는데…….”
“고아가 아니라 가문의 사생아라고 했어.”
“그, 뭐냐…… 그러니까 죄지은 후손은 다 죽여 버리고 그 후손들이 내다 버린 사생아를 데려다가 가문의 대를 잇게 했다고?”
“그, 그래도 되나?”
“어, 된다네.”
“맞아. 임금님 명령이었다는데…….”
“임금님!”
소문의 끝은 로그람 왕국의 모든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갑자기 망령이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로그람의 왕이 내린 명령, 어명(御命)이었다니!
그것은 진짜니 가짜니 하던 왕자, 에테온에서 거의 백 년 가까운 옛날에 있었던 일처럼 춤추는 산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귀환했다는 왕자가 마침내, 미루고 미루던 왕위 계승을 마쳤다는 뜻이니까.
무슨 문제가 있는가, 왕자가 돌아왔음에도 이십 년 가까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귀족들이 혈통의 진위를 의심해 훼방 놓는다는 소문도, 그냥 가짜라서 왕자 시늉만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귀환한 왕자는 에테온의 괴물 왕자 키린처럼 왕위를 계승하기에 결격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괴물 왕자는 후손을 볼 수 없는 몬스터 로드이기에 아우에게 왕위를 넘겼다고 하잖던가.
그래서 잠시 귀환한 왕자가 몬스터 로드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후작가의 공녀와 결혼해서 재빠르게 애까지 낳았기에 그 소문은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그 때문에 더욱 왕국의 사람들에게는 수수께끼였다.
도대체 누가, 뭐가 왕위 계승을 막고 있는가?
옥좌가 채워져야 왕국의 많은 일들이 술술 풀려나갈 텐데 왜 등극하지 않는가?
거의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갑자기 망령이 등장하고 이적이 일어나더니 덜렁 왕이 명령을 내렸다?
춤추는 산맥에 자리 잡은 왕국의 옥좌는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채워도 되는 자리가 아니기에 한층 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왕의 마법이란 강대한 힘이 발휘되느냐, 마느냐?
왕의 마법이 발휘될 때 왕국의 군단이 격이 다른 전력(戰力)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래.”
“뭐? 아니라니?”
“그 귀환한 왕자가 왕자가 아니래.”
“어? 그 왕자 가짜란 소문이 진짜라고?”
“그래, 비참하게 쫓겨났다는데…….”
“그럼 임금님은 누구야?”
“몰라. 귀족들도 아직 모른다더라고.”
“뭐야, 그게!”
“가짜 왕자가 쫓겨났으니까 진짜 왕자가 돌아온 거 아냐?”
“어, 여왕님이라던데…….”
“무슨 여왕?”
“왕자님이 아니라 공주님이라고.”
“어? 그럼 우리 임금님이 여왕님?”
“귀족들은 섭정 전하라고 하더만.”
“섭정? 그 후작이 하던 거?”
“아니, 왕가의 피를 이은 여왕님 맞다는…….”
“이런 씨!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맹렬하게 퍼져 나갔다.
누구도 그 진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채로, 소문은 국경을 넘어갔다.
시장통 거리에는 국경을 넘어갔다가 돌아온 소문까지 맴돌았다.
“건국 왕이 나타났대!”
“건국? 어느 나라?”
“젠장, 당연히 로그람의 시조잖아!”
“어? 검투만으로 몬스터를 학살했다는?”
“궁정 마법사가 강력하게 지원했을걸.”
“아, 시조 왕 시절의 궁정 마법사면 거의 대마법사잖아?”
“거의가 아니라 진짜 대마법사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시조 왕이 나타나? 죽은 지 천 년도 더 지난 거 아냐?”
“망령…… 아니, 영령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죽어서도 싸우러 왔대.”
“망령군단!”
“어, 그래! 군단을 지휘했다더라.”
“군단을 지휘했다면…….”
“범람을 쫓아냈대.”
“대범람이라며? 쫓아내?”
“쳐들어갔다더라.”
“뭐어어?”
로그람의 국경이 확장되었다는 소문은 시장통을 뜨겁게 달구었다.
시장통에 붙은 ‘시장’이란 상인들이 많다는 의미이고, 시장통 거리는 거대한 상거래가 쉴 새 없이 진행되는 중심지였으니까.
그런 중심지인 거리에서, 수많은 소문이 떠도는 와중에, 망령이 산 사람을 죽였다.
그렇기에 시장통의 소문은 단숨에 그 사건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 벌어진 일, 귀족 가문의 공시가 걸린 일 따위는 남의 일이지만 이 시장통 거리에 사는 누군가가 어슬렁거리던 망령에게 죽는 일은 결코 구경만 할 수 없는 큰 사건이니까.
그래서 살해가 벌어지고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시장통 사람들 대부분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쁘게 그 소문을 옮기며 술배를 채운 술꾼들의 활약이 컸고, 불타오르는 관심이 너무 강렬했기에 굉장히 빠르게, 그럼에도 꽤나 세세하게 전해진 이야기였다.
“커험! 내가 다 들었어!”
“아냐, 내가 먼저 들었어!”
“아무나 빨리 불어!”
“한잔?”
“나중에 준다!”
대부분 이렇게 여흥이 붙은 채로,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그 이야기는…….
“죽은 놈이 나쁜 놈이었다네. 죽인 망령은 원래 그놈과 친구 사이였는데, 함께 군역을 하다가 그놈이 다쳤대. 군역은 다치면 치료받은 후에 계속해야 하잖아? 그런데 그 망령이 친구를 먼저 집에 보내고 자기가 군역 기한을 전부 채우겠다고 한 거야. 어, 그래. 대리 군역의 조건은 갖췄다네. 대신, 그놈이 먼저 귀향해서 망령의 가족을 돌보기로 했다는 거야. 그러라고 군역 중에 받아 모은 봉급까지 함께 줘서 보냈대. 아, 그러니까 대리 근무가 가능했겠지. 망령은 자기네 가족 중에 생계를 꾸릴 사람이 다쳐서 얼른 귀향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그놈은 다치는 바람에 귀환할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다고. 근데 그놈이 돌아오는 중에 망령이 죽었다는 거야. 어? 아니, 그때 죽어서 망령이 된 거지! 아무튼! 소식을 전해 들은 그놈이, 친구란 새끼가 망령한테 받은 봉급, 돈을 가로챘대. 망령네 가족한테는 죽었다는 소식만 전하고 입 싹 씻은 거야. 자기 가족도 힘들다고 외면하다가 결국은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을 했고. 그래, 쓰레기 썩힌 놈이 맞아. 그런 새끼를 친구라고 그 망령은……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거야. 그것도 엄청 용감했던가 봐. 이번에 망령군단이 나타났을 때, 죽은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나타날 수 있었을 정도로……. 아, 원래 죽고 나서 한참 있어야 된다나? 아닌가? 아, 몰라! 그 얘기는 딴 놈에게 물어! 어쨌든! 그 망령이 군단에 속했으니까 나가 싸워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가 고향에 나타났대. 꽤 많나 봐, 그런 경우가. 아무튼, 고향에 떡하니 나타나서 산 사람들을 보게 되니까 궁금하잖아, 가족이 말이야. 그래서 가족을 찾아갔지. 그리고 본 거야, 거지꼴이 되어 있는 걸. 간신히 마련했던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거지. 그 바람에 가족을 찾느라 하루인가 이틀인가 걸리기도 했대. 그러니 어쩌겠어? 귀족 가문에서도 한다잖아? 망령도 그 친구인 척했던 쓰레기를 벌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