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7)
“……명하셨다.”
망령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모처럼 눈을 뜬 세상은 시끄러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가, 망령이 바라본 거리는 아직 낯익으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웃음이 망령의 주름진 얼굴에 피어났다.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 자가 살았던 거리를 이렇게 다시 돌아보다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이 강하게 망령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심장의 박동은 곧바로 강한 자각을 불러왔다.
심장이 뛰고, 팔다리가 움직이며, 숨을 쉬는 몸…… 죽은 자에게 부여된 이 몸에 피가 흐르고 살이 붙어 있다.
“왕이시여!”
도대체 어떤 마법이기에 이토록 생생한 몸을 죽은 자에게 부여하는가?
망령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거리의 풍경이 온갖 감각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으니까.
살아왔던 거리를 향해 골목 깊은 곳의 그늘에서 일으켜진 몸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익숙한 길목, 낯익은 간판…… 거리의 풍경을 통해 망령은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몇 년이 흐르긴 했지만 십 년 이상은 아니라고, 자신의 죽음이 일어난 때는 십 년보다는 안쪽이었을 것이라고.
살아 있을 적에 여행을 떠났다가 일이 년 만에 돌아와 낯익은 풍경을 볼 때의 느낌이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터덜터덜.
갈 곳을 딱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망령의 걸음은 살아 있을 적의 버릇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디뎌졌다.
살던 곳을 향해서.
애초에 가깝고 친숙한 거리였던지라 헤맴 없이 망령은 도달했다.
“내 가게…….”
두어 층을 쌓아 올린 시장통의 건물은 변함이 없었다.
아래층에는 창고와 거래를 위한 점포가, 위층에는 생활을 위한 거실과 침실 등이 배치된 집…….
망령은 문득 자신이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을 느꼈다.
망령의 표정이 그 기억과 함께 찌푸려졌다.
몸이 꾸며지고 왕의 기묘한 명령이 새겨지면서 기억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순간이다.
망령이 죽음을 맞이했던 그 순간…….
“하, 하, 하.”
억지웃음이었지만 참을 수 없는 소리가 망령의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망령은 자신이 왜 죽는가를 죽는 순간에는 알지 못했다.
갑자기 심장이 멎고, 숨이 막혀서 죽었으니까.
살아온 나날이 적지 않았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기에 찾아온 죽음이려니 했다.
군역을 거치며 살아남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몬스터 헌터로서 잠시 활동했을 때, 망령은 각오를 확실히 다졌다.
적어도 몬스터에게 찢겨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래서 자신의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그 숨 막힘과 심장이 욱신거리는 고통이 오래가지 않기만을 바랐다.
소망이 조금은 이뤄진 듯, 망령이 겪은 죽음의 고통은 고작해야 한 시간을 넘지 않았다. 아쉽다면 그사이에 아무도 곁에 없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없다는 정도?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기에 따로 유언장도 마련해 두지 않았다는 점이 살짝 아쉬울 뿐이었다.
그런 죽음이었으니 불평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죽음에서 일으켜져 자신이 죽은 자리로 돌아온 망령은 기억해 내고 있었다.
죽음과 함께 살아온 시간 속에 ‘죽어도 싸운다.’라고 되뇌었던 그 순간들이 찾아오며 로그람의 마법을 통해 망령군단의 병사로서 기록되었기에, 망령은 자신의 죽음 뒤에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지켜볼 수 있었다.
“죽었어?”
“아직 숨 쉬나?”
“이제 안 움직여?”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안 죽어?”
“몬스터 헌터였으니까.”
“독이 안 통하는 거 아냐? 그냥 칼로…….”
“안 돼. 칼을 쓰면 흔적이 남아!”
“그 독, 정말 흔적이 안 남아?”
“안 남아. 안 남는다고 했어.”
“뭐, 자기가 갖고 있던 독이니까.”
독살(毒殺)당했다.
망령은 이제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숨통을 조여들던 것이 자신이 갖고 있던 독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생하게 느끼며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이지만 원래 목적은 몬스터를 상대로 쓰는 것이었고, 표적이었던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남은 적은 분량은 나중에 처분할 작정으로 집에 그냥 두었을 뿐이다.
일부러 뚜껑을 따고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고 하수구에 던져 넣어 물과 섞이기만 해도 바로 희석되기에 굳이 주의하고 경계를 곤두세워 치우기보다는 생각날 때 치우려 했던 것이다.
그 독이 자신을 죽이는 데 사용되었다.
누가 자신에게 원한을 품었기에 그랬을까?
망령은 웃었다.
살면서 사이 나쁜 인간들이 몇몇 있기는 했다.
그들과는 단절된 채로 살았다.
그들도 망령과 굳이 엮일 필요 없이 다른 곳에서 자기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굳이 찾아와서 정성껏 준비된 요리에 독을 타서 죽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망령을 죽이기 위해 망령이 가진 독을 쓴 자는…….
“어? 어? 어?”
점원 소년은 가게 문턱을 나서려다가 입을 크게 열고 숨을 몰아쉬면서 양손으로 두 눈을 비비적거려 씻었다. 그리고 다시 봤지만, 눈앞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주인어른!”
소년을 이 가게에 거두고 먹이고 입히다가 점원으로 채용했던 주인, 그가 정정한 모습으로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놀라움 그리고 경악!.
소년은 그 감정을 금방 떨쳐 냈다.
요 며칠 사이에 나라를 흔드는 온갖 괴상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중에는 죽은 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있다 했으니까.
그래서 소년은 목청껏 외칠 수 있었다.
“아주머니, 주인어른이 돌아오셨어요! 주인어른도 다시 나타나셨어요! 어서 나와 보세요!”
주인의 가게를 물려받은 부인, 주인아주머니에게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소년은 금방 돌아서며 반가움과 함께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옛 주인을 향해 나지막하게 속삭여야 했다.
“아, 부인께서 말이죠…… 어르신 돌아가신 다음에…….”
“재혼했다고? 알아.”
망령이 입을 열었다.
소년은 흠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지난 며칠간의 소문에 의하면, 죽었지만 다시 정정하고 건장한 몸을 하고 나타난 망령들은 이런 식으로 살아 있는 이들 중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지켜보다가 다시 사라진다고 했다.
자신이 죽은 뒤에도 살아 있는 이들은 무엇을 하는지 그저 지켜볼 뿐이고 딱히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고, 몬스터가 아니라고 말이다.
물론 귀족 가문에 나타난 망령, 보통 망령이 아니라 영령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가문의 명예라든가 규율이라든가 하면서 어설픈 짓, 나쁜 짓을 저지른 후손을 잔혹하게 징벌한다고.
하지만 눈앞의 주인처럼 거리를 떠도는 망령들은 다만 지켜볼 뿐이라 했다. 귀족 가문의 망령이 아니라면 그저 살았던 곳을 둘러보다가 웃거나 울거나, 여러 가지 표정을 지은 채 떠나간다고.
소년은 주인어른의 망령도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이 궁금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라 전체에 걸린 엄청난 마법 덕분에 고마웠던 주인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 그저 반가웠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데려와 키워 주고 일감까지 줘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이제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반갑지 않을 리가 없잖은가.
“저…… 어르신, 제가…….”
고맙다는 말을 꺼내려 하는데 망령의 손이 덥석, 소년의 머리를 덮듯이 다가왔다.
죽은 자의 느낌이 전혀 안 나는 부드러운 손길, 손바닥에서 체온마저 느껴지는 손짓이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지내고 있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어, 예? 저야 뭐…….”
문득 주인어른이 살아 있을 적을 떠올리며 소년은 배시시 웃었다.
그러나 곧 소년은 그 웃음을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꿔야 했다.
위층에서 내려온 주인아주머니, 원래 주인의 아내였지만 이제는 재혼해서 새로운 남편과 사는 부인이 덜덜 떨고 있는데…… 아무래도 악령을 본 듯한 표정이잖은가.
문득 소문을 들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소년의 뇌리를 스쳐 갔다.
“아, 저기…….”
“사엘, 저 여자는 날 두려워할 필요가 있단다.”
망령이 소년 사엘의 말을 끊어 버렸다.
사엘은 ‘네?’ 하며 어리둥절해서 주인어른을 바라봐야 했다.
전혀 죽은 이라고 여길 수 없는 생생한 모습과 차림새가 오히려 사엘이 한참 꼬마일 때 만났던 몬스터 헌터 시절 주인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데, 그 무렵의 날카롭고 위험했던 모습이 선명하게 돌아오고 있잖은가!
“……어, 어르신?”
순식간에 초로(初老)에서 한창의 장년기로 돌아온 변화가 놀랍기도 했지만, 사엘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 당황했다.
어째서 주인어른의 부인이 돌아온 주인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자세한 설명 따위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되뇜을 이으며 망령이 분명한 주인어른이 주저앉아 떨고 있는 부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엘을 쓰다듬었던 손이 부인의 머리를 향해 내밀어지는 순간…….
퍽!
쇠뭉치가 망령의 어깨를 후려쳤다.
“어…… 무, 무슨 짓이에요!”
사엘이 외쳤다.
소년을 놀라게 한 쇠뭉치는 가게 한구석에서 뛰쳐나온 이가 휘두른 것이었고, 소년이 알기로 그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혼자가 된 부인이 재혼한 상대인 만큼 망령으로 돌아온 전남편이 못마땅할 수는 있겠지만, 쇠뭉치로 패기까지 해야 할까?
게다가 연이어 머리통까지 깨려 드는 움직임이라니!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그러나 담담한 목소리가 망령에게서 울려 나왔다.
쇠뭉치는 망령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유령다운 자태를 보인 망령의 손이 쇠뭉치를 든 손목을 잡았다.
실체와 허상이 뒤엉키는 기묘한 상태, 망령은 그런 모습으로 쇠뭉치를 빼앗았다.
사엘이 기겁하는 사이에 쇠뭉치가 원래 들렸던 이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피와 살이 으깨진 머리통에서 뇌수와 함께 터져 나와 바닥에 뿌려졌다.
그리고 부인이 지른 비명이 날카롭게, 높고 크게 울렸다.
망령은 그 비명이 달콤하다는 듯이 귀를 기울이는 것 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숨을 다 토한 듯 부인이 비명을 멈추었다.
“끝인가? 오랜만에 들은 당신의 목소리라 그런지, 듣기 좋았는데……. 그럼 다시 작별이군. 이번에는 당신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거야.”
망령이 중얼중얼, 혼잣말 같지만 선명한 말을 토해 내고 있었다.
놀라 지켜보던 사엘은 금방 망령이 쇠뭉치로 부인마저 으깨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쇠뭉치는 옆으로 던져졌고, 대신 망령의 손이 부인의 머리를 쥐었다.
아이 손에 쥐인 장난감처럼 부인이 높이 치켜 올려졌다.
그 모습에 사엘은 문득 기억할 수 있었다.
건장한 주인은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쯤 더 컸고, 단련된 힘으로 보통 사람의 머리를 쥐고 대롱대롱 매달듯이 들어 올릴 수가 있었다. 괴력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모자라겠지만 그런 힘으로 주인은 몬스터를 사냥했고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가게를 차렸다.
고아였던 사엘을 거둔 것은 정착해서 가게를 꾸려 가던 무렵이었다. 부인이 자녀를 낳지 못해 아쉬워했던 주인은 사엘을 거둔 일로 부인과 조금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엘로서는 이웃집 할머니에게 들은 얘기일 뿐, 부인이 직접적으로 나쁘게 대한 적은 없었다. 뒤로 무슨 말을 했을지는 몰라도, 마주할 때는 늘 친절한 태도를 유지했다.
콰드득.
망령의 손이 여인의 두개골을 부수며 파고들었다.
“왕이 명하셨다…… 치정으로 남편을 독살한 죄, 벌을 받아야지.”
사엘이 놀라는 사이, 망령은 시체가 된 여인을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휙 돌아서며 사엘을 향해 웃질 않는가!
“왜, 왜, 왜요?”
놀라서 제대로 된 물음도 아닌 외마디만 되풀이하는 소년을 향해 망령은 한층 더 짙게 웃는 얼굴로 답을 준다.
“저 둘이 공모해서 나를 독살했단다. 너에게 가야 할 재산도 가로챘지. 사엘, 너를 데려올 때 이야기했잖아. 난 네 아비에게 부탁받았고, 네가 크면 네 아비의 재산을 물려줄 거라고.”
소년, 사엘은 멍하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소문과 뭔가 다른 듯하다는 점만 실감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