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0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198)
시장통에 널린 다양한 점포 중에 붉은 어금니 멧돼지 고기를 파는 곳은 이름 그대로의 독특한 식재료로 묘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춤추는 산맥 바깥쪽에서는 아예 그 품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붉은 어금니 멧돼지’가 애초에 식용으로 키울 수 있는 가축이 아닌 데다 사냥을 나가서 잡으려 해도 최소한 몬스터 헌터의 역량은 있어야 하는 난감한 짐승인 때문이었다.
춤추는 산맥의 숲에서 몬스터랑 어울리며 살아남은 짐승을 주재료로 삼아 튀겨 판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인의 발상에서 벗어났다고 평가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괴상한 점포는 이미 3대째였고, 올센은 그런 가업을 물려받은 요리사였다. 상황에 따라서는 칼 들고 몬스터를 산 채로 해체할 수도 있다고 자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아, 침 뱉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누명을 씌우는 꼬마를 해체하는 정도는 올센에게 정말 일도 아닐 터였다. 그러나 가판대 너머에서, 올센이 식재료에 침을 뱉었다고 우기는 꼬마 녀석도 보통은 아니기에 사흘째 울화만 쌓이는 중이었다.
“이 자식, 너 또! 대체 왜 그러는 거냐!”
올센의 점포는 가판대를 겸비하고 있기에 꼬마의 행동이 한층 더 얄미울 수밖에 없었다.
깨끗한 도마 위에다 눈앞에서 분명하게 보여 준 식재료를 곧바로 썰어 내 기름이 펄펄 끓는 통에 넣고 바로 튀겨 주는 것인데, 거기에 침 뱉은 거라고 나불거리다니! 차라리 말을 하다가 침이 튀어서 기름통이나 고기에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덜 억울할 텐데, 그런 일이 없도록 올센은 아예 입을 가리는 천까지 두르고 있었다.
도대체 저 꼬마는 왜 저럴까?
처음에는 궁금했지만, 사흘 정도 되고 나니 이놈을 잡아서 한 대 때려 주고 싶다는 감정만 앞섰다.
물론 꼬마는 그런 올센을 보며 실실 웃고 갸웃거리는 시늉을 하며 도마 위에 올려놓은 고기를 흘깃거릴 뿐이었다!
붉은 어금니 멧돼지의 살코기를 얇게 썰어 기름에 담갔다가 바싹하게 익는 순간에 바로 꺼내는 묘기로 만들어지는 요리를 보며 침을 삼키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올센도 처음에는 속았다.
설마 그런 꼬마가 침 뱉었네 같은 소리를, 막 값을 치른 고기를 입에 가져가는 손님 앞에서 할 줄이야!
그 손님은 물론 올센까지 황당해할 때, 꼬마는 곧바로 지껄였다.
“난 침 묻혀도 잘 먹는데.”
그 순간에 손님도 올센도 깨달았다.
이 꼬마가 이 가게의 명품 튀김 요리를 거저먹으려고 수 쓰는구나, 하고.
그런데 그렇게 속이 훤히 드러나는 수작을 꼬마는 지치지도 않고 몇 번이나 했다!
걸리는 손님마다 어이없어했지만, 정말 그 수작에 넘어가서 고기를 내려놓고 돈 도로 달라고 하는 경우까지 간혹 있었다. 때문에 올센은 요 사나흘 꼬마랑 으르렁거리며 눈치 보는 싸움을 이어 나가는 참이었다.
오늘도 꼬마는 지치지도 않고 와서 이번에는 손님이 근처에 다가올 낌새도 없는데 저러고 있었다!
어찌 보면 오늘도 어제와 같을 것이라고 선전포고라도 하는 꼴!
해서 오늘만큼은 반드시 그 이유를 알아내겠다고 다짐하는 올센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온 꼬마이고, 왜 저러고 있는가를…….
“아저씨 침 범벅인데, 그냥 하나 줘요.”
“침은 무슨…… 야! 너 도대체 어디서 온 놈인데 우리 집 장사에 자꾸 훼방질이야!”
올센은 슬슬 가판대를 뛰어넘을 준비를 하며 으르렁거렸다.
꼬마는 슬슬 도망칠 준비를 하면서도 혀를 날름거려 조금 더 약 올리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며 대답한다.
“에이, 훼방은 아니죠. 다들 장난친다고 잘 알잖아요!”
“그러니까, 왜, 그 장난을, 우리 가게에서…….”
“어? 저 할아버지 누구?”
“할아버지를…… 어?”
엉겁결에 꼬마의 말을 따라 하다가 올센이 흠칫했다.
집안에서 할아버지라 불릴 만한 이는 올센의 부친과 조부(祖父) 두 사람이었다.
부친이 식재료를 위해 사냥을 떠난 지금은 오직 조부만이 꼬마에게 할아버지라 불릴 만한 것이다. 올센의 조부는 3대째 이어지는 점포, ‘붉은 어금니’를 창업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꼬마의 장난기를 알면서도 올센은 돌아봤고, 정말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힘들게 나와 서는 것을 확인했다. 나이가 많아 슬슬 노망이 온 것이 아니냐고 이웃들이 수군거리는, 올센의 조부는 지금도 그런 말이 나오게 하는 흐리멍덩한 눈길과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나오셨어요? 침대가 불편하세요?”
올센은 잠깐 꼬마를 잊고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야 했다.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조부는 이제 다리 힘이 모자라서 몇 걸음 걷다가 풀썩 주저앉기 일쑤이니까. 정신과 함께 몸도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노년, 거의 100세에 가까운 조부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모습이었지만 올센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쿡쿡 쑤시는 듯했다.
올센의 형제는 물론, 부친 또한 결코 쇠락하지 않을 듯했던 조부를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부가 이렇게 쇠약해진 채로 어린 시절의 몹쓸 기억을 더듬어 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형?”
오늘도 조부는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일을 되새기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들어가세요.”
그런데 올센이 억지로 조부의 팔을 잡아끌려는 참이었다.
“앗, 뜨거!”
꼬마가 괴성을 지르며 눈길을 확 돌리게 하고 있다!
“야, 너 무슨 짓을!”
올센은 조부의 팔을 잡은 채로 버럭 소리치고 말았다.
그가 조부에게 주의를 돌리는 사이, 망할 꼬마 놈이 썰어 둔 고기를 기름통에 몰아넣더니 바로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조심스러움이라고는 전혀 없이, 맨손으로 고기를 쓸어 넣고 맨손으로 끓는 기름에서 후다닥거리며 꺼내는 탓에 당연히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꼬락서니였다!
하지만 올센은 곧 자신이 꼬마를 너무 얕봤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야, 야! 너 그렇게 막……!”
우걱, 아각.
“뜨거어어어어!”
입에 기름방울이 튀는 고기를 마구 몰아넣고 뜨겁다고 팔딱대는 저 몰골을 대체 뭐라 해야 하는가?
사나흘을 침 뱉었다는 헛소리로 고기를 거저먹으려 한 녀석이기는 했지만, 설마 끓는 기름을 두고 저 난리까지 피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형……!”
그 와중에 갑자기 조부가 꼬마를 향해 돌진하면서 팔을 뿌리치는 바람에 올센은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급하게 소매라도 잡으려 했지만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아야 했다.
“할아버……!”
조부가 어디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얼른 일어나려던 올센은 자신의 외침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을 의식했다.
할아버지가 가판대를 뛰어넘는 모습은 붉은 어금니 멧돼지처럼 날렵했고, 꼬마를 부둥켜안는 모습은 멧돼지의 어금니가 사람을 꿰어 버릴 때처럼 강렬했던 것이다!
“형! 형! 형아!”
그리고 연이어 터져 나온 조부의 말은 단순하지만 크고 명확했다.
“뜨거!”
거기에 꼬마가 하악거리면서 튀겨진 고기를 양손에 꽉 쥐고 입에 욱여넣는 모습이 기묘하게 섞인 풍경…….
올센은 당황스러웠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얄미운 꼬마보다는 조부부터 챙겨야 해서 막 가판대 옆문을 돌아 나가려는 참이었다.
“아르피엔, 이거 너무 뜨거! 후아앗, 근데 맛있다!”
“형! 형, 나 살았어! 안 죽고 살았어!”
“응, 그래. 우리 아르피엔, 아주 잘 살았어. 같이 먹을래?”
“어, 같이 먹을래! 같이 먹고 싶어서 가게까지 만들었으니까!”
조부의 고풍스러운 이름을 꼬마가 부르는 순간부터 이상했다.
거기에 조부가 또렷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걸 들은 올센은 그대로 걸음을 멈추고 마법에 걸린 것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바삭, 우걱.
조부는 꼬마가 주는 고기를, 닿는 것만으로 뜨거울 터인 고기를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꼬마는 그런 조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고 있었다.
건장한 조부가 꼬마를 안기 위해 무릎을 땅에 댄 채인데, 그런 조부를 꼬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 다루듯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피엔, 키가 형보다 더 크다?”
“어, 형은 열 살도 못 넘겼잖아! 난…… 난 아주 나이를 많이 먹었어.”
“그래,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아르피엔이 형보다 훨씬 훌륭한 사나이가 되었어!”
“형이…… 형이 죽었으니까. 형, 미안해.”
“형은 아르피엔이 자랑스러운데! 미안해하면 안 돼! 넌 형이 시킨 대로 했잖아!”
“어, 형이 시킨 대로…… 했어. 미안…… 미안해…….”
절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올센은 문득, 토닥거리는 꼬마와 그 꼬마를 형이라 부르는 조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알아차렸다.
올센의 조부 아르피엔은 이름처럼 오래된 분위기의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은 아르피엔이 일곱 살 무렵에 몬스터들에게 약탈당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죽고 간신히 한 곳에 몰려 버티던 이들 몇몇만 구조될 수 있었다.
군단병의 구원이 닿기 전, 일곱 살의 아르피엔을 벽난로 속에 숨겨 둔 채 문을 닫아걸고 버틴 것은 갓 열 살이 되기 전의 형, 오르피엔이었다.
형이라고 해 봐야 결국 꼬마였을 뿐인데, 그 어린 형은 동생을 숨긴 벽난로를 등지고 선 채 막대기랑 부엌칼만으로 문이 부서지기까지 버텼다.
문이 부서진 다음에도 쳐들어온 코볼트인가 고블린인가, 하는 놈의 눈알을 찍어서 한 번은 물러서게 만들었고.
그렇게 죽어 간 형의 모습을 아르피엔은 평생 잊지 못했다.
때문에 벽난로에 숨겨 주면서 형이 남긴 마지막 말에 매달렸을 것이다.
“잘 숨어 있으면 형이 붉은 어금니 멧돼지 잡아서 바싹하게 튀겨 줄게! 절대로 나오면 안 돼! 군단병 아저씨들 올 때까지 절대로 나오지 마!”
형이 왜 그런 말을 했던가, 아르피엔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형의 죽음을 눈에 담았고, 그 마지막 말만을 기억했다.
그렇게 자라서 군단병이 되었고, 군역을 마친 후에는 사냥꾼이 되었다.
그리고 형이 해 준다고 약속했던 요리를 만들어 냈다.
아들에게 그 요리와 함께 이야기를 전했고, 손자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기에 아르피엔의 손자인 올센은 기억해 낼 수밖에 없었다.
오르피엔, 조부가 자기 형의 이름에서 딴 ‘올’이란 마디를 아들에게도 손자에게도 붙여 주고 이야기를 전했으니까.
다만 올센이 눈앞의 두 사람을 보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꼬마가 정말 조부의 형인 오르피엔이라 하더라도, 도대체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아르피엔, 맛있게 잘 먹었어.”
“어, 나도 맛있었어.”
“나중에 또 먹자.”
“나중……?”
“아르피엔도 군단에서 깨어날 거니까, 형처럼.”
“형처럼……?”
“응. 왕의 명령이야.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라고, 로그람의 망령군단에 속한 자들에게 힘을 나눠 줬거든.”
순수한 꼬마의 웃음과 함께 나온 말은 올센을 경악하게 했다.
“왕의…… 망령군단!”
요 사나흘 동안, 거리에 퍼진 이야기가 올센의 뇌리를 울렸다.
“곡물 가게 미망인이 죽었다며?”
“어, 죽은 남편이 돌아와 죽였대!”
“사엘 녀석이 넋이 나갔던데…….”
“야, 넋이 안 나갈 수가 있냐? 은혜를 베푼 주인이 돌아와서 냅다 부인이랑 그 재혼한 남편을 죽였는데!”
“그 둘이 독살했다며? 남편 시체를 치안병이 다시 파냈는데, 중독이 맞더래.”
“어우, 죽은 사람이 돌아와 복수라니…….”
“귀족 가문의 망령이 아니라도 그럴 수 있다는 거…….”
올센은 문득 깨달았다.
오르피엔, 조부의 형은 로그람 왕국의 어린 용사라고 군단의 병적에 이름이 올랐다고 했다. 겨우 열 살도 안 된 나이에 죽었지만 왕국의 군단은 결코 그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 이름이 기억된 자는 망령군단으로서 죽어서도 싸우는 자가 될 것이라고, 사망한 군단병에게 늘 그렇게 하듯이 기록된 것일 뿐이었다.
그런 일이 꽤나 많기에 그냥 의미 없는 공치사(功致辭)라고 여겼는데…….
올센에게는 더 이상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 되고 있었다.
군단병으로서 올센도 조부처럼 복무했고 부친과 형제들도 모두 군역을 마쳤다.
군역을 마쳤기에 모두 이름이 군단병부에 올라 있는 것이다.
“나중에…… 또…….”
오르피엔이 꼬마의 모습으로 말하고 있었다.
올센은 문득 스산한 기운과 함께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조부가 죽으면 대체 어떤 모습으로 가게 앞에 나타날 것인가?
기뻐할 일인가, 무서워할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