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1)
Chapter 25. 꽃이 흐르는 길
‘이렇게 심했나?’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래쪽 풍경, 그 파괴된 흔적을 살피면서 투란은 새삼 놀라고 있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나? 어째서? 잘 보고 있었잖아.
드라고니아가 이전보다 활기차게, 투란의 감상에 호응하며 선명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누가 곁에 있어도 전혀 듣지 못하는 소리지만, 투란에게는 마치 귓속에서 떠드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는 투란을 잠시 생각하게 했다.
분명히 드레이크의 눈으로 그 모든 파괴를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거의 수백 미터에 달하는 파괴.
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결과를 아주 심하게 축소시킨 듯하다. 수백 미터가 아닌 수천 미터의 영역이 드레이크가 뿜어낸 섬광에 긁히고 으깨진 몰골이었으니!
어째서 이런가?
투란은 곧 드레이크의 눈으로 보고 있던 자신과 지금 자신의 차이를 찾아냈고, 알아차렸다. 드라고니아를 향한 대답이 생각을 마치자마자 바로 흘러나온다.
‘눈높이가 달랐어.’
드레이크의 몸을 기준으로 생각했던 수백 미터. 하지만 그 기준을 드레이크였던 투란은 인간의 체격으로 착각했다. 그러니 2미터도 안 되는 지금의 몸을 기준으로는 저 파괴의 흔적이 당연히 열 배 이상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눈높이?
조금 의아하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반문이었다.
‘그래, 눈높이.’
살짝 스며드는 아쉬움 속에 투란은 담담하게 생각을 전했다.
그사이에 금빛 비늘의 날개가 투란을 낮은 구름 사이를 가르며 지나치게 했다.
습기가 몸에 닿는 순간, 투란은 악마의 심장이 상쾌함 속에서 저 아래 늪을 원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듯했지만, 동시에 악마의 심장이 그러는 이유를 투란은 명확하게 깨닫기도 했다.
이렇게 날아가는 것, 이게 안전한 방식이 아니다.
쿠어어어!
저딴 소리를 내면서 날아오르는 녀석들이 있으니!
금빛 비늘의 날개는 드레이크의 것이나 분명히 어린 날개였고, 투란의 형상은 드레이크의 위협적인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에서는 그저 먹잇감으로 취급당하기 딱 좋은 모습일 뿐!
하지만 투란은 날아드는 녀석들을 그렇게 위협으로 느끼지도, 보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보네. 저거…… 날개 달린 비비나비.’
뱀 가죽 속에서 봤던 놈들이다.
그때와 다르게, 활짝 펼친 날개가 몇 배로 부풀린 듯이 보였고 그 힘찬 날갯짓은 깃털과 다른 짐승의 털을 휘날리며 공중으로 두껍고 근육질인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가만히, 눈가에 금빛 비늘과 함께 솟아난 드레이크의 눈을 통해서 투란은 비비나비가 날개를 달고 어찌 움직이나부터 살펴봤다.
두 팔은 앞으로 늘어뜨린 듯이 덜렁거렸고, 두 다리는 가지런히 뒤로 모은 듯했다. 그것이 비비나비가 날개를 달고 쏜살같이 움직이는 자세, 그다음에 어느 정도 날갯짓의 힘이 쇠약한가 싶을 때는 팔다리를 네발처럼 휘두르며 공중에서 뛰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날갯짓이 비비나비를 더욱 맹렬하게 솟구치게 한다.
아무래도 드레이크의 날개처럼 특별한 부양력은 없어 보였다.
뭔가 그저 몸을 가볍게 해 주면서 바람을 타게는 해 주는 모양…….
—투란, 가까워지고 있잖나?
드라고니아가 신중하게 물었다.
확실히 가장 빠르게 높이 날아드는 비비나비 한 마리가 분명히 있었다.
다른 놈들보다 두 배는 더 빠르고, 더 높이 치솟은 놈이었다.
투란은 그 녀석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높이를 낮추면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응, 한 놈 낚는 중이야.’
슬슬 조금 더 간격을 줄이며, 힘이 떨어져 아래로 더 빠르게 활강하는 듯한 모양으로 투란이 대답을 전했다.
—드레이크의 날개, 새끼라도 이 정도면 저것보다 훨씬 낫다. 왜 저걸 잡으려 하나?
‘삼킬 생각은 없어.’
—……뭐?
‘먹을 거야.’
—몬스터잖아!
‘먹을 수 있거든.’
히죽, 미소와 함께 투란의 목과 입, 코 아래가 금빛으로 채색되듯 비늘로 덮였다.
귓가에 그어지며 목덜미로 나란히 열린 틈새를 통해 투란의 가슴으로 깊고 강한 바람결이 숨결이 되어 몰려들었다.
꾸어어어어어!
거의 5, 6미터까지 가까워지자 좀 더 강한 포효로 사냥감을 붙들려는 듯한 비비나비의 포효가 울렸다. 더 거친 날갯짓이 이뤄졌고, 그런 날개의 크기는 거의 투란의 펼친 날개보다 더 길고 넓어 보였다.
비비나비의 몸집 또한 2미터를 살짝 넘는 큰 체구였으니, 아무리 봐도 투란이 사냥감으로 보이고 느껴질 만했다.
화아아아아!
거칠고 센 입김이 투란에게서 터져 나왔다.
벌린 입속에서, 붉은 채광과 함께 구름처럼 흘러나온 입김은 곧장 허공을 불길로 물들이고 채웠다.
가장 먼저, 가장 빠르고 높이 날아든 비비나비는 그 큰 몸통을, 바로 뒤이어 활짝 펼친 날개를 완전히 불길 속에 담가 버린 꼴이 되었다.
꼼짝도 않던 금빛 비늘 날개를 살짝 좁히며, 투란은 시커멓게 그슬린 비비나비를 향해 날쌔게 날아갔다. 그의 발목이 비비나비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었고, 무릎 아래 정강이에서 돋아난 덩굴줄기가 비비나비의 윗몸을 묶었다.
그다음, 투란은 빠르게 상승하며 아래를 바라봤다.
불태워진 동족의 상황을 깨달은 나머지 녀석들은 순식간에 상승을 멈추고 다급하게 다시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활짝 펼치려던 날개를 접고 쏜살같이 내려가 숲의 정상에 닿을 무렵에야 다시 날개를 펴는 꼴이 굉장히 서둘러 달아나는 모습과 딱 어울렸다.
‘영리하네.’
작은 감상과 함께 투란은 허리를 접으면서, 두 다리를 올려 홀랑 타 버린 꼴인 비비나비를 가슴 앞으로 당겨 두 손으로 쥐고 먹어 치웠다.
—……비위도 좋구나.
드라고니아가 짧게 중얼거렸다.
비비나비의 날개는 털이 홀랑 사라지고 늘어진 채로 가죽과 속이 싹 구워져 있었고, 내장은 가슴 쪽 아래로 소화기관이 모두 숯이 되어 흩어졌다. 팔다리부터, 튼튼하고 든든한 고기라 할 만한 곳은 모두 적당히 구워진 채로 찢기고 삼켜졌다.
뼈대까지 드레이크의 어린 이빨로 으스러뜨려 씹어 없애면서 투란은 느릿하게 드라고니아의 감상에 답한다.
‘잘 구워 먹는데 왜? 날걸로 먹는 것도 아니구만.’
—구웠다고 몬스터를 잡아먹나!
‘먹을 수 있잖아. 몬스터라고 고기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뭘.’
태연하게 대꾸하며 투란은 손을 털었다.
특별한 날갯짓 없이 부양할 수 있는 날개 덕분에 이뤄진 공중의 만찬이 끝났고, 투란의 몸은 다시 허공을 미끄러지듯이 날았다.
한쪽을 향해, 똑바로.
이는 바로 드라고니아를 의아하게 했다.
—아까부터 계속 한 곳을 향하는군. 어디로 가는 중인가?
‘글쎄…… 일단 보니까, 저 삐죽한 산봉우리를 향하는 것 같네?’
남의 일처럼 대답하는 투란이었다.
바람이 스쳐 갔고, 투란의 눈가는 드레이크의 형상을 갖춘 채로 저 멀리 삐죽하게 높이 솟구친 바늘 같은 산을 향하고 있었다.
—……뭐가?
드라고니아는 의아함을 그대로 토했다.
투란의 말은 뭔가를 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한데 대체 뭐가 저 산봉우리를 향한다는 것인가?
느린 듯하지만 공중에서 거침없이 나아가는 탓에 아래에 길게 늘어진 파괴의 흔적은 이미 모두 지나쳤다. 늪은 강이 되어 갔고, 강은 여러 갈래가 뭉치고 흩어지며 각기 다른 지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투란이 그중 저 산봉우리를 향한 한 줄기를 굳이 골라낸 이유는 뭔가?
‘응? 뭐냐니, 눈깔꽃이잖아. 저기서 계속 흘러온다고.’
대답하며 투란은 좀 더 시각을 강화하여 자신이 보는 풍경을 선명하게 심상 속에 품었다.
길고 긴 여러 갈래의 강줄기 중에서 투란이 거쳐 온 늪을 향하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한 가닥을 따라 눈깔꽃이 옹기종기 무리 지으며 떠 오는 광경이었다.
약간 곤혹스러운 기척과 함께 드라고니아가 다시 묻는다.
—그걸 왜 쫓지?
고르고니아를 향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지만, 이제 고르고니아도 없고 투란에게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자유로운 날개가 있었다.
몬스터 로드로서 눈깔꽃을 삼킬 것이었다면 고르고니아를 노렸던 여덟 달 동안 기회가 넘쳤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투란은 눈깔꽃을 챙길 낌새를 보인 적이 없었다.
한데 이제 와서 저 흐름을 왜 쫓는가?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짧게 묻는 말 속에 담긴 긴 의혹을 느낄 수 있었다.
미묘한 웃음이 바로 투란의 입가에 맴돌았다.
‘음, 그러네. 좀 이상하지?’
—투란, 넌 지금 분명한 목적과 의미를 지닌 채 쫓는 중이다. 난…… 그걸 분명히 느낄 수가 있다.
‘어? 그래…… 그럼, 뭐…… 간단해. 대체 어떤 놈이 저기서 눈깔꽃을 뿌리고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뭐라고!
드라고니아에게서 분명히 놀라는 기척이 피어났다.
투란의 웃음이 조금 아련해졌다.
바람이 볼을 스쳐 갔고, 어린 드레이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광경은 확실히 그가 겪고 기억한 진정한 드레이크의 시야와는 달랐다. 하지만 완전히 성장한 드레이크가 이 영역을 보금자리로 삼으면서 품은 ‘기억’은 그 흐릿한 풍경을 보다 섬세하게 다듬어 줬다. 어린 드레이크의 눈으로 그 풍경이 서서히 또렷해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 투란에게 이상하게 즐거웠다.
그 즐거움 덕분에 투란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고르고니아가 저 클레이웜을 작은 섬처럼 타고 흘러온 것, 눈깔꽃이 그 뒤를 향해 우르르 몰려 내려온 것, 모든 것이 드레이크의 보금자리에 대한 침범이었다. 그 침범으로 인해, 새끼 드레이크가 호기심을 느끼고 움직이다가…….
‘고르고니아에게 당했지.’
—무슨 말이야, 그게?
‘응? 아, 혼잣말인데…… 설명하자면…….’
투란은 생각을 정리했다.
펼쳐진 날개는 바람을 거스르기도, 따르기도 하면서 투란을 산 쪽으로 옮겨 갔고, 그사이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정리된 생각을 전했다.
먼저 침묵이 드라고니아에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이야기를 확인하듯, 짚어 가며 말한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 드레이크의 영역에는 고르고니아, 스테노아가 없었다. 한데 저 눈깔꽃의 섬광과 더불어 들어선 것이다? 저기서 흘러나오는 눈깔꽃이 계속해서 고르고니아를 쫓아 나왔고, 고르고니아를 태운 클레이웜은 꼼짝도 못 한 채로 강의 흐름을 따라 늪으로 계속해서 흘러간 꼴이었다?
‘응. 그리고 새끼 드레이크가 거기 호기심을 느껴 움직였다가…… 그리 된 거고.’
—과연 이상한 이야기로군. 그런데 왜 확인하려는 거냐?
‘엥? 아니, 왜냐니?’
—고르고니아도, 드레이크도 모두 끝맺음을 했잖아. 눈깔꽃이 저리 흘러 봐야 이제 아무 의미도 없다. 투란, 네가 저걸 쫓아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는 거지?
‘헐!’
이번에는 투란이 조금 당황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 왜 모르냐는 듯한 그의 기척이 드라고니아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었다.
—눈깔꽃을 지배하는 힘을 탐내는 거냐? 저걸 대량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거야?
나름대로 이치에 닿는 것을 추측하며 이어 던진 말이었다.
투란은 멀리 바늘처럼 뾰족한 산봉우리를 보며, 고개를 젓는 모습으로 대답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냐! 어떤 놈이 저러고 있는지, 그게 몬스터 로드인지 아니면 몬스터인지 확인한 다음에 처리해야지. 저딴 식으로 강 따라 눈깔꽃에게 목표를 지정해서 흘려 내는 놈이 있는 걸 아는데, 그냥 어떻게 가냐고!’
—……확실히, 큰 문제를 일으킬 원흉이기는 하군. 하지만 투란, 너에게 그럴 의무라든가 책임은…….
‘있어. 난 몬스터 로드잖아.’
딱 부러지게 투란은 대답했다.
금빛의 날개가 살짝 좁아지는 듯했고, 날개 안의 바람이 보다 강하게 흘러나왔다.
빛을 더욱 선명하게 비늘에 품은 듯한 날개가 투란을 더욱 빠르게 날게 했다.
어느새 저물어 가는 햇빛이 붉게 세상을 덮는 풍경이 보였다.
드라고니아는 자신의 의아함을 다시 한 번 토해 낸다.
—키린이 한 말 때문인가? 몬스터 사명이니 뭐니 하는 거……?
‘사명? 그건 잘 모르겠고. 궁금하다고, 일단!’
투란은 바로 대답하며,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숲의 형상을 살폈다.
드라고니아의 잔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어 뇌리를 울린다.
—위험하잖아! 괜한 호기심이라면 그냥 가! 날개까지 있으면서 대체 왜 위험한 곳을 향하는데!
‘에헤이…… 사명은 잘 모르겠지만, 몬스터 로드라면 이런 일에 나설 책임이 있다는 건 안다고.’
투란의 몸이 서서히 아래로 기울어졌다.
저물어 가는 햇살과 함께, 밤을 머물 곳을 찾아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