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01)
Epilogue 3. 상아탑
“대마법사께서는 이번 사태에 상아탑이 어찌 대처해…… 마스터 홀시딘! 지금 졸고 있습니까? 장난칠 때가 아니라니까!”
점잖게 예의를 갖추어 나오던 공식적인 발언이 확 뒤틀리며 탁자에 작렬하는 쿵쾅거리는 주먹질을 동반한 으르렁거림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주변의 풍경은 그런 소소한 항의를 무시할 뿐이었다. 허공에 높이 솟아 둥실거리는 길고 긴 탁자, 그 탁자의 좌우로 길게 늘어진 의자 또한 공중에 뜬 채였고, 거기에 앉은 이들은 실물이 아니라 빛이 그려 낸 환영이었다.
그 한쪽 끝, 의자에 올라앉는 대신 그냥 의자처럼 둥실거리며 떠 있는 마법사, 알드바인에서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랐다는 홀시딘이 지친 얼굴로 반쯤 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
다시 낮게, 그러면서도 세게 누군가 불렀다.
홀시딘은 그제야 눈을 뜨고서 일단 대놓고 하품을 한 다음, 탁자 좌우로 즐비한 환영들이 투덜거리는 꼴을 둘러보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할 말…… 없잖아. 그냥 끝내지?”
간결한 몇 마디가 단숨에 고요함을 불러왔다. 환영들 사이에서 꽤나 못마땅한 눈빛들이 오가고 번뜩거렸지만, 아무도 상아탑이 오랜만에 배출한 대마법사에게 뭐라 하지는 못했다.
결국 대마법사의 직계가 주변의 눈짓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따갑게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차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최소한의 대책은 필요합니다. 먼저 마스터 홀시딘의 의견부터 확인하도록 하죠.”
“찬성이오.”
“음, 찬성…….”
“위계상으로, 절차적으로 옳은 의견이군!”
순식간에 대마법사를 향해 입을 열라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갖춰졌다.
홀시딘은 부르르 떨며 자신의 의견부터 확인하겠다는 제자를 흘깃했지만,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먼저 외면하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의…… 한 달가량 다들 확인하고 검토하고 있었잖아! 더 뭘 할 수 있었나? 없었지? 그러면 계속 지켜봐야지 어쩔 거야? 에테온의 경우랑 비교도 계속하고, 상아탑이 관리하는 파워 소스가 어찌 반응하는가도 계속 기록하고…… 그냥 하던 대로 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여기 더 보탤 것이 있나? 케이라, 있느냐?”
결국 제자를 향해 보내는, 나머지는 알아서 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과 함께 말이 맺어졌다.
환영 속에서, 역시 환영이지만 다른 이들과 다르게 같은 지역, 공간의 상아탑에 함께하는 중이기도 한 케이라가 스승을 돌아보더니 냉철하게 말한다.
“마법사의 관점만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집니다. 한 달 동안 상아탑의 마력이 호응하는 정도를 측정했고 춤추는 산맥을 아우르는 왕의 가호를 점검했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 상황이란 정도였지요. 그렇다면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춤추는 산맥에서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관점, 견해 또한 참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음, 마스터 케이라의 의견은…… 어, 역시 그건가?”
조금 노련한, 그 때문에 조금 지친 듯한 목소리가 탁자 한쪽 끝에서 흘러나왔다.
구체적으로 뭘 짚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피로함은 전해진 모양이었다.
환영으로 참여한 회의인데도 다들 직접적으로 심신이 피로에 물들었다는 듯이 표정이 제멋대로 구겨지고 한숨이 여기저기서 흘러넘쳤다.
홀시딘이 둥실거리며 그 꼴을 보다가 혀를 차는데, 케이라는 더욱 단호하게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섭정으로 등장한 여제가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당장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로 등극한 로그람의 왕이 누군가도 급하게 파악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고대의 대마법이 발동했고, 그 영향력이 춤추는 산맥에 드리워졌다는 현재의 상황이지요. 우선 알드바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브로큰 킹덤이라 불리는 칠왕국의 영토로 드라코눔의 사도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혀 부담 없는 모습이라는 것부터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드라코눔의 수호자가 춤추는 산맥의 일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그 손길이 닿을 지역인지라 우리부터 많은 부분을 재검토하고 고려해야 하니까요. 그들이 고대의 신목에 얼마나 많은 관심과 집착을 보여 왔는지 아시잖습니까?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다면, 바로 알드바인부터 들러 보려 할 게 분명합니다.”
“순수하게 알드바인만을 고려한 이야기로군. 아, 탓하는 말이 아니네. 마스터 케이라의 말에 찬성한다는 거지. 상아탑마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이고 다른 상황이면서도 이렇게 모여 의논할 사안이란 점에 과몰입했다고 지적하는 것이잖나. 마스터 케이라,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어. 상아탑의 마법사이니까 이렇게 산맥 전체에 드리워진 영향력을 맞닥뜨리면 각자의 처지나 상황보다 전체부터 보려는 경향이 너무 짙어지지. 오히려 세부적으로, 각자의 상황별로 해석하는 편이 쉬운 길일 수 있는데 말이네. 어떠신가?”
케이라를 잇는 덤덤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탁자 곳곳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더욱 깊은 호기심을 갖고 가까운 이들과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마저 금방 나타났다.
그럭저럭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다들 스스로 찾는 분위기가 짙어질 때, 둥실거리던 홀시딘은 문득 귓속 깊이 파고드는 목소리와 가슴을 울리는 상아탑의 마법을 느낄 수 있었다.
―우에엥! 홀시딘, 나요! 나 왔어요! 당장 만나야 해요!
‘……투란?’
―로열 클래스의 급한 일이라고요!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당장! 당자아앙……!
‘야, 야, 기다려! 나도 지금…… 회의 중이라고! 젠장, 금방 갈 테니까!’
로열 클래스, 그 마법의 맥동이 또렷해진 것을 파악한 홀시딘은 세게 헛기침을 하며 한층 더 피로한 표정부터 꾸몄다.
“그럼 오늘은…… 일단 이 정도에서 끝내지? 연락망을 유지하고, 정시 회의 때까지 주변 상황을 지켜보자고. 급히 서둘러 해결될 일도 아니잖은가? 조금 여유를 갖고 지켜보는 편이 좋을 거야. 찬성하지? 다른 의견은 정시 회의로 미뤄 줘. 긴급 연락이 필요하면 긴급 연락망을 이용하고! 그러면…… 케이라, 여기 좀 맡아 다오. 내가 좀 급하구나!”
“……스승님?”
케이라가 흐릿해져 가는 스승의 환영을 뒤늦게 노려봤지만, 뭐라 더 말하기 전에 홀시딘의 모습은 마법의 회의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음, 화장실이 급한 마법사라…….”
“알드바인의 화장실은 훌륭한가 보군.”
“엥? 어이, 바로크의 화장실은 대체 어때서!”
“설마 아직도 안 고쳤냐! 이 정신 나간……!”
채앵.
홀시딘이 마지막으로 남긴 모습에서 인간의 원초적 생리 현상과 그 해소 방안에 대한 각자의 소감과 상황을 멋대로 토해 내려던 분위기가 쇳소리 섞인 박수 한 번에 바로 멈춰지고 말았다.
박수를 친 케이라는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 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 회의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어, 마스터 케이라…… 그럼, 다음에.”
주섬주섬 인사가 나왔고, 서로를 향해 던져졌다.
환영의 마법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결국 모든 의자가 비었다.
탁자는 서서히 허공에서 하강했다.
주변의 풍경이 모두 탁한 질감을 머금을 때 덩그러니 지하실 한복판에 탁자만 남겨졌다.
지하실 한쪽의 문이 삐걱거리더니 문틈으로 홀시딘이 둥실거리며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다 갔나? 어우, 짜증 나! 그냥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대체 왜, 왜 날 못 잡아먹어서 난리냐고!”
“카티야 님의 뒤를 잇는 대마법사시잖아요. 아마 지금은 거의 유일한, 정식으로 활동 중인 상아탑 마법사 중에서는 유일한 대마법사이실걸요. 그러니 전설의 망령군단, 영령을 지휘관으로 둔 군단이 현현하고 고대의 망자들이 산 자의 세계에 출현한 일에 대해서 뭐라도 조언을 얻고자 하는 거죠.”
“케이라, 그런 핑계가 내 지식을 늘려 주지는 않는다고. 소식 가져온 첫날부터 내가 말했잖니?”
“네, 카티야 님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고 상아탑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기록이 없는 일이라고, 그러니 바로 정보를 모으고 진위 확인부터 하자고 하셨죠.”
“그,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뭐든 알게 되겠……지? 제자로서 봐도 이 스승이 아주 좋은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
“판단을 내리셨죠. 그러고 나서 제자를 경악시키기도 하셨고 말이에요.”
날카로운 케이라의 눈매, 홀시딘이 슬쩍 돌아보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로그람에서 일어난 큰일에 대해 알드바인에서 수집할 정보가 거의 없다는 핑계로 전부 케이라에게 떠넘긴 때문인 듯싶었다.
“아직도 위키드 랜드 경매가 끝나지 않았다니, 그 일에 꼭 스승님이 직접 나서실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이 제자는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만?”
“……그건 안 된다니까. 앗, 으윽! 내 배가! 나, 나중에 이야기하자! 이건 핑계가 아니고 정말 급해서 그래! 그럼 케이라, 나중에!”
홀시딘은 고속으로 비행하며 재빠르게 지하실을 벗어나 달아났다.
다시 잔소리하며 그 뒤를 따르려던 케이라는 멈칫했다.
뭔가 지금 스승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변기 위에 쪼그린 스승의 몰골이 떠오르면서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피어난 탓이었다.
‘또? 이건 대체 무슨……?’
찡그린 채로 콧등을 쓰다듬으면서 케이라는 의문을 가슴 깊이 새겨둘 수밖에 없었다.
시체가 즐비하고 피와 뼈로 장식된 험악한 곳에서도 느끼지 않는 거부감이 장난치는 홀시딘에게 잔소리할 때면 솟아난다…… 케이라는 이것이 단순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파악’하려고 들면 다시금 부드러운 거부감이 찾아들며 멈추게 되고 만다.
마치 누군가 케이라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지금 홀시딘은 중요한 일이 있지만 중요하다고 말도 못 하니 살짝 추태를 핑계로 그 일을 하러 간 것이라고, 그러니 제자가 더 파고들면 안 된다고 알려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미묘한 느낌이 확고하게 전하는 또 다른 바는, 언젠가 케이라도 다 알게 될 일이라는 선명한 확신이었다. 그때가 되면 홀시딘이 세상에서 은퇴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또한 분명해지니 케이라로서는 그저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꼭 핑계를 배설 현상에 엮으시냐고. 그냥 배고프다든가, 자러 간다고 해도 될 텐데.’
소소한 불만을 덧붙이며 케이라는 결국 그냥 고개를 젓고 말았다.
마법의 회의에 사용되는 지하실을 정리하고 정돈하다가 문득 이 또한 스승이 떠넘긴 일이라는 것을 의식하고서 다시 울컥 불평불만이 가득한 잔소리를 하고 싶어지긴 했지만…….
* * *
“뭐냐? 대체 뭐냐고!”
홀시딘이 버럭 소리쳤다.
장소는 홀시딘만의 전용실, 알드바인 상아탑이 은밀하게 감추는 영역이었다.
그 안에서 데굴거리며 구르는 투란을 보자마자 어째서인지 안심이 되면서도 울컥 솟는 짜증이 있었기에 터져 나온 외침이기도 했다.
투란은 그런 홀시딘, 상아탑의 당당한 대마법사를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큰 목소리로 더욱 당당하게 외쳐 대답한다.
“나 좀 숨겨 줘요! 오는 동안 엄청 힘들었어요! 와아, 기가둠 왕국으로 가는 길만 보름이 넘게 걸릴 줄 누가 알았을까! 거기서 상아탑 찾아가 여기까지 바로 날려 주는 마법 신청하고 기다리고…… 들키지 않으려고 엄청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나의 로열 시크릿 키퍼인 홀시딘, 나 좀…….”
“무슨 짓을 했는데? 기가둠……? 거긴 왜 가! 아니, 어딜 어떻게 돌아다니면 거기까지 가는데? 그냥 순례를 하는 거였으면 끝까지 순례로 돌아올 것이지 상아탑의 마법으로 귀환한 이유가 뭐야? 너…… 대체 무슨 사고를 쳤어? 뭔데 로열 클래스까지 들먹이면서 그러는데!”
“후우…….”
“야, 내 탓인 것처럼 한숨 쉬지 마!”
“하아…….”
“그만하고 말을 해, 말을! 방금까지 잘 떠들더니!”
“홀시딘, 나 출생의 비밀을 알아 버렸어요.”
“……이제 와서?”
“아니, 이제 와서는 뭐예요!”
“너 그런 거에 관심 없었잖아?”
“어? 아, 관심…… 없기는 했네요.”
“갑자기 어떻게 알게 된 거냐?”
“그렇죠, 갑자기…… 어떻게 하다 보니?”
“누굴 죽였냐?”
“갑자기 살인?”
“뭘 부쉈어?”
“아니, 날 뭘로 보고!”
투란이 억울함을 담아 발끈할수록 홀시딘의 눈은 더욱 가늘어졌다.
그 눈길에 투란은 스윽 침이 맺힌 입술을 닦으면서 한쪽에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 손짓으로 홀시딘에게도 마주 앉아 달라 청한다.
둥실거리며 떠 있던 홀시딘이 슬쩍 그 앞에 내려서면서 묻는다.
“잡으면 안 된다는 괴물을 몰래 사냥하다 들켰어?”
“아니거든요! 내가 무슨 초보 얼간이인가! 아, 일단 좀 앉아 봐요! 놀라더라도 바닥에 추락은 하지 말아야죠!”
“시끄럽고!”
홀시딘은 일단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 다음,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뭔데?”
아무래도 투란이 뭔가 제대로 사고를 치고 진지해진 듯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