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02)
후우웃!
투란은 일단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그 가슴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꼴을 보고 홀시딘이 입꼬리를 뒤틀면서 을러 대는 소리를 써늘하게 내뱉는다.
“적당히 해라, 좀!”
어차피 투란의 일이다.
어디 가서 산을 하나 뒤집고 왔다고 해도 기꺼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 줄 수 있는 상아탑의 대마법사 앞에서 이렇게 질질 끌 이야기가 있을 리 없다고, 홀시딘은 확신하며 타박한 것이었다.
투란이 흘깃 곁눈질하는 시늉을 하다가 헛기침까지 꾸미고서 진지하고 심각하다는 티를 팍팍 흘리며 말한다.
“내 출생 신분을 감춰 줘요. 절대로 들통나지 않게! 알드바인의 초보 몬스터 로드로서 느긋하게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게요!”
“……그래, 여태 하던 대로 살겠다는 말이지? 그래서 출생 신분이 뭔데? 어느 귀하신 가문이야?”
지긋지긋하다는 말투로 홀시딘이 대꾸했다.
되묻는다기보다는 흔해 빠지고 상투적인 사연 따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그러니 새삼스럽게 문제 될 일 따위는 없다는 듯한 자신감이 꽉꽉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저 세부 사항을 조율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얼른 듣고 마무리 짓고 가서 부족한 잠이나 자 두겠다는 태도마저 물씬 풍겨 나올 지경!
그런 홀시딘을 보며, 투란은 감탄했다.
“와아, 역시 대마법사! 상아탑의 대마법사는 대단해요!”
“야, 관두고 도대체 어느 가문이기에 기가둠에서부터 여기까지 마법으로 날아와서 이러는 거냐고! 어디야? 어떤 작위를 지닌 가문이야?”
심드렁하니 말하면서도 홀시딘은 마음속으로 대강 후보를 추리는 중이었다.
가문의 계승권이 복잡하게 얽힌 경우라면 투란은 아주 쉽게 빠져나올 수 있으니 제외되었고, 투란만이 계승자인 경우라면 몬스터 로드라는 특수한 처지로 인해 이것저것 다 포기해야 할 듯싶었다. 어쨌든 투란이 갑자기 나타나서 혼란스러워할 가문의 상황을 적당히 정리하고 투란의 행적을 감추어야 하는데…….
순수하고 해맑은 웃음으로, 홀시딘을 믿는다는 눈빛을 한껏 머금은 채로 투란이 대답한다.
“왕이래요, 내가. 아, 그러니까…… 로그람 왕가? 가문은 그렇게 되는 건가?”
“……프릿이 황제 하면서 너 독립시켜서 왕 노릇 하라고 그러는 거지? 언더 섀도우가 좀 넓으니까 전부 황제 직할령으로 두기가 힘들기는 하지. 음, 그래서 거기 어디를 끊어 주고 너한테 맡기겠다는 거냐? 가만있어 봐, 지난번에 보내 준 지도가 있는데…… 이게 어딨더라.”
홀시딘이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본격적으로 따져 보겠다는 듯이 중얼중얼 말했다. 묻는 듯한 말투지만, 전혀 묻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딱, 따닥, 딱.
홀시딘 앞에서 투란이 손가락을 좌우로 열심히 튀겼다.
“마스터 홀시딘, 대마법사님? 언더 섀도우 아니고 로그람, 로그람 왕가라고요! 어, 그러니까 내가 갑자기 로그람 왕위를 계승해서 말이죠…… 홀시딘? 영감님!”
“이 새끼야, 미쳤냐!? 미쳤어!”
와락, 홀시딘이 투란에게 달라붙었다.
멱살을 잡고 두 발로 투란의 배를 꽈악 눌러 밀면서, 부릅뜬 눈에 핏대까지 일으키며 괴성을 지르는 모습이었다.
“켁켁, 영감님! 이거 좀 놓고…….”
“숨 안 막히잖어! 숨 막히는 시늉 하지 마! 아니, 대체 왜 왕인데? 왜 여태 가만있다가 느닷없이 출생의 비밀을 탐구했는데? 이렇게 마법사 뒤통수 까면 좋냐? 좋아? 아주 좋은 모양이네! 너도 마법사한테 한번 뒤통수 맞아 볼래? 나한테 왜 이래? 왜 이러는 거냐고!”
“진정 좀……!”
숨 막히는 시늉이 안 통했기에 투란은 어쩔 수 없이 홀시딘의 목덜미를 잡고 당기며 한 손으로 두 손목을 떼어 낸 다음, 그대로 주저앉혀야 했다. 과연 그 힘센 손길에 조금 진정이 된 듯 홀시딘이 일단 팔짱을 끼는가 싶더니, 바로 한 손 엄지를 입에 물면서 중얼거림을 이어 나간다.
“젠장, 역시 그림 로드의 이상한 각인을 봤을 때 바로 다 뒤져 봤어야 했어. 단서가 없는 것도 아니고 훤히 눈앞에 있었는데! 망할, 로열 클래스라서 내가 시크릿 키퍼로 존중해 준 것이 문제였나? 아니, 원래 로열 클래스는 당사자 입장이 최우선이니까 난 잘못한 것 없어! 그럼, 내가 무슨 잘못이야! 본인이 적극적으로 캐 달라고 안 했잖아! 근데 왜 내 잘못이야! 그래, 이건 에테온 왕가에서도 따질 수 없다고! 설마 그 깡패 왕가에서 이딴 일로 시비를…… 걸겠지? 제에엔장! 솔로얀이나 바로크의 상아탑이었으면 이 새끼 도착하자마자 바로 의문이라고 연통 넣었으려나? 와, 이 망할 새끼가 알드바인까지 와서 로열 클래스 딴 게 설마……?”
따닥, 따다닥!
“영감님! 마스터 홀시딘! 정신 차려요! 대체 누구 욕을 하는 거얘요?”
“너! 너 님 욕하는 중이야, 이 빌어먹을…… 폐하야! 아, 잠깐! 잠깐!”
손가락 튀기는 투란을 향해 삿대질과 함께 다시 쌍욕을 하려던 홀시딘이 고개를 삐딱하게 누이며 침묵하라는 손짓을 보였다. 그리고 홀시딘의 몸이 자연스러운 마력의 방출과 함께 허공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그걸 본 투란이 ‘와, 마력만으로 뜨는 일이 아주 본능이 되셨네?’라고 주절거리며 감탄하는 척하는데, 홀시딘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혼잣말을 연이어 입술 너머로 쏟아 내고 있었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얘가 보통 몬스터 로드도 아니고 재앙의 왕자인데…… 본인이 원한다고 해도 그 혈통 증명이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 아니, 본인이 원한다면 뭐든 가능하겠지, 몬스터 로드 스스로 마법을 받아들인다면야……. 그렇다면 저쪽에서 검색해서 발견한 것은 아닌가? 그건 불가능한가? 대체 로그람에서는 그동안 어떻게 감춰 왔지? 이상한 녀석이 왕자랍시고 나타난 시기가 벌써 이삼십 년 전인데……. 여태 옥좌를 비운 것이 무슨 수작인가 했더니, 가짜라서? 이런 썩을! 로그람의 혈통이라면 강력한 수호자가 유모 겸 교사로 들러붙는 것 아니었어? 얘는 왜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서 몬스터 로드가 된 건데? 도대체 말이 되는 부분이…….”
“영, 감, 님!”
꽤엑 지르는 소리가 홀시딘의 고막을 뚫었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고막을 울리고 뇌리를 폭격하는 외침이었기에 홀시딘은 그대로 추락해서 바닥에 툭 떨어져 푹 쓰러진 채로 잠시 팔다리를 떨어야 했다.
투란이 가만히 그 곁에 내려앉으면서 말한다.
“그 지랄 맞은 호기심은 잠깐 치워 봐요. 마법사의 호기심을 발휘하기 전에 내 이야기를 들으면 알 만큼 알게 될 텐데, 왜 그래요? 뭐가 그렇게 조급해서 듣기도 전에 온갖 해괴망측한 추측으로 바쁘냐고요! 내 얘기를 듣고, 시크릿 키퍼로서 일을 하면 간단하잖아요! 뭐, 그래도 궁금한 게 있다면…… 나중에 나 없을 때 천천히 혼자 궁리하고! 괜찮죠? 마스터 홀시딘, 괜, 찮, 죠?”
“……그래, 그렇게 해야지. 잠깐 당황해서 정신이 나갈 뻔했다.”
“나갈 ‘뻔’이 아니라 그냥 나갔던 것 같은데……. 노려보지 말아요. 대마법사가 이렇게 정신 나가서 주절거리는 꼴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는데, 엄청 충격이었단 말이에요!”
“뒈질 만큼 충격받은 쪽은 나거든! 젠장! 아무튼 얘기해 봐, 폐……하? 아, 몰라. 예법은 나중에 따지고! 투란, 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
투덜투덜,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으르렁거리다가 차분해졌다.
홀시딘은 다시 몸을 바로 해서 부유하는 채로 아예 작은 탁자와 차를 준비하며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고, 투란은 내 몫의 차를 내놓으면 함께 마시며 이야기한다는 태도를 보이며 기다렸다. 홀시딘이 잠깐 투란을 노려봤지만 어쩔 수 없이 잔 하나를 더 내놓고 채워 줬다. 그 잔을 들어 살짝 입가에 댔다가 바로 퉤퉤, 맛없다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이 말문을 연다.
“음…… 그러니까 말이죠, 일단 내가 갓난아기 때 말이죠…….”
길고 두서없이 마구 늘어놓는 이야기였다.
마법사의 탐구심으로 인내심을 가득 끌어 올린 홀시딘은 그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차분히 정리하면서 끼어들지 않고 들었다.
투란이 떠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부모가 요절(夭折)하고 수호자, 로그람의 수호 영수가 명명(命名)하기도 전에 갓난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는데 보호자로 선택한 그림 로드가 수호 영수를 쫓아 버리고 갓난아이에게서 신분을 증명하는 보석 목걸이를 빼앗고 이름마저도 카엘보다 흔하다는 투란으로 지어지도록 놔뒀다. 그래서 십오륙 세가 되기 무섭게 요절한 부모의 뒤를 잇듯이 혼돈의 늪에 던져졌으나, 살아서 빠져나와 보니 알드바인에 와 버렸더라. 그다음에는 홀시딘이 아는 삶을 살다가 결국 정리하는 마음으로 춤추는 산맥을 순례하듯이 돌아보는 길이었는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로잭이 죽는시늉을 하며 나타났다. 어쩌다 마주친 셈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투란의 진정한 신분을 가로채 살아온 놈의 이야기를 들었고 빼앗긴 보석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집착 아닌 집착, 흘러가 버린 세월을 고려했지만 그 배려를 외면했기에 다 뭉개 버리고…….
“거기까지! 그만!”
홀시딘이 손을 들었다.
투란은 갸웃했다.
막 시조 왕의 유령, 마법으로 만들어진 유령을 따라 올라가 사기당한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보석을 되찾는 방법이라고 하며 사기 친 그 못된 선조의 망령에 대해 들려줄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갑자기 멈추라는가?
“결론은 로그람의 시조께서 현신하시어 네게 복원된 보석을 돌려줬고, 너는 그 결과로 왕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잖아요, 폐하?”
“소름 끼쳐요, 그 폐하 치우고 말해요.”
“그러십니까? 그 소름에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폐, 하…… 야, 야, 야! 더 안 해, 튀지 마!”
꽉꽉 눌러 담은 울분으로 다시 ‘폐하’를 입에 올렸다가 슬금슬금 엉덩이 빼며 사방으로 눈알 굴리는 투란을 보고 홀시딘이 으득 이를 가는 말투로 바꿔 외쳤다. 그다음에 바로 길고 긴 한숨을 쉬며 처량한 얼굴로 투란을 노려본다.
투란은 그 눈길에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 사고뭉치를 어찌하면 좋나? 그냥 확!’ 하는 느낌이 솔솔 배어나는 눈길이 마법사에게서, 상아탑의 대마법사에게서 흘러나오니 못마땅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로열 클래스…… 내 신분, 감춰 줄 수 있죠?”
투덜투덜, 투란이 다시 원하는 바를 입에 담았다.
홀시딘의 얼굴은 바로 구겨졌다.
“왜…… 왜 알드바인으로 돌아오…… 되돌아온 거냐?”
“에? 왜라니요? 당연히 여기…… 투자 많이 한 집이 여기 있잖아요! 여기가 내 보금자리이고 둥지라고요! 여기에 내 시크릿 키퍼도 있잖아요!”
투란이 살짝 으르렁거리며 토라진 말투로 떠들었다.
홀시딘은 이마를 손등으로 두드리며 한숨을 길게, 끊기 어렵다 싶을 정도로 길게 내쉬었다.
“투란, 왕이 머물러야 하는 곳은 왕궁이야. 너 스스로 그 의무를 받아들였잖아. 그래서 그 보석도…… 그래, 지금 그 목에 걸린 보석도 되찾은 거잖아. 그렇다면 옥좌에 앉아 로그람을…… 잠깐, 지금 로그람에서는 여제가 섭정을 한다고 했는데…… 너, 설마 떠넘겨 놓고 이리로 튄 거였어?”
토닥거리는 말을 하려다가 이야기가 옆으로 확 빠지고 있었다.
홀시딘은 투란에게 집중해서, 지난날을 되새기느라 현재의 상황을 잠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덜덜 떠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투란은 섭정 이야기에 후훗, 하는 당당한 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다.
“잘한 거잖아요. 그동안 쭈욱 지켜보면서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다만 현신(現身)…… 형성(形成)…… 거기에 필요한 마법을 누가 써 줘야 해서 아무것도 못했다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맡겼죠. 에이, 뭘 그렇게 이상하게 봐요? 홀시딘, 나 몰라요? 나요, 나란 말이에요. 몬스터 로드, 투란! 내가 왕 노릇을 한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거봐, 바로 고개 저으면서!”
무심결에 고개 젓던 홀시딘은 흠칫했다.
조곤조곤 하는 말을 듣자니 투란이 오히려 생각이 깊은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로드로서, 그중에서도 세간에 알릴 수 없는 재앙의 왕자인 투란이 옥좌를 차지하고서 이러쿵저러쿵 국정(國政)을 운영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 맞다.
다만 상아탑의 입장에서, 대마법사란 지위까지 오른 홀시딘으로서는 투란의 결정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마법, 얼마나 오래 유지된다고 하던?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하루도, 한순간도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 것이야. 만약 그 마법에 이상이 생겨서 국정에 공백이 발생하면…….”
“거뜬히 백 년?”
“네? 폐……하, 뭐라고요?”
“아오옷! 소름 끼친다니까! 왜 갑자기……!”
“투란, 너 지금 백 년…… 백 년이나 마법으로 이뤄진 형상이 섭정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거야?”
“그렇다던데요. 어, 이건…… 드라코눔의 아칸도 인정해 줬을걸요. 아, 참! 드라코눔의 아칸이 로그람에 왔던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와서 좋은 선물도 주고 축하도 해 주고…… 홀시딘? 영감님!”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마법사의 탐구심을 발휘하여 홀로 빠져들어 중얼거리는 홀시딘을 보며 투란은 그 뒷덜미를 잡고 얼마나 흔들어야 하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여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