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121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1203)
“일단…… 그래, 일단 한 가지 확인부터 하자!”
대롱거리는 머리를 바로잡는 손짓과 함께 홀시딘이 단호하게 말했다.
계속 웅얼거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대는 그의 머리를 투란이 두 손으로 꽉 잡고 괜찮냐고 물어본 다음이었다.
“나 거짓말 안 했는데!”
확인이란 말에 투란이 투덜거렸다.
홀시딘은 삐딱한 눈길로 투란을 보다가 한숨과 함께 길게 늘어놓는다.
“거짓말인가 아닌가 말고! 이 정도 거짓말을 네가 꾸며 낼 수 있을 리가…… 야! 자꾸 말 돌아가게 하지 마, 헷갈리니까! 내가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일이 있단 말이다! 음, 그러니까…… 왜 궁정 마법사에게 맡기지 않았지? 로열 클래스는 본래 왕가의 비전 마법에서 시작된 거야. 굳이 알드바인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왕궁 내에서 처리해도 될 일이었단 말이지. 시크릿 키퍼인 내게도 감출 수 있는 일이었다고, 그걸 왜 굳이 여기까지 힘들게 와서 내게 맡기려 하는 거지?”
“몰라요, 궁정 마법사가 있나 없나. 거기 하루 더 머물렀다가는 조상님이 떼로 몰려나와 발목 잡을 분위기라 할머니에게 맡기고 튀었거든요.”
“할……머니?”
“아까 섭정 맡겼다고 했잖아요. 여제라고 하시는 분, 아리엔요.”
“아, 그렇구나! 그래…… 할머니…… 썩을!”
태평한 투란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하다가 홀시딘이 볼을 떨며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
로그람의 고대 여왕, 위대한 여제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아리엔을 옛날 옛적에 살았다는 집안의 할머니라고 소개하다니……. 냉정하게 따져 보자면 거짓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진실이기는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괜히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속을 가득 채우는 듯하잖나!
홀시딘의 속이 어떻게 되든 말든 모르겠다는 듯, 투란이 몇 마디 더 보탠다.
“그러고 보니 아리엔 할머니도 로열 클래스가 어쩌고저쩌고했는데…… 여기가 편하다면 그냥 여기서 맡겨도 된다고 했을걸요. 뭐, 자세히 듣지 않고 그냥 바로 떠날 궁리 하느라 딴생각을 안 해서…….”
“그러냐? 어쨌든 알드바인이 투란 너의 보금자리라, 이거지?”
“투자를 많이 했잖아요! 공적 쌓는 일도 많이 했고! 이것저것 잔뜩 맡겼던 분이 누구시더라?”
“옥좌에 오르기 전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든, 옥좌에 올라 왕위를 계승하는 순간부터는 당연히 왕궁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왕의 의무랍니다, 폐, 하, 알겠습니까아아!”
투덜거림을 이어 가려는 듯한 투란을 향해 홀시딘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들이대면서, 정중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말투로 협박하듯이 으르렁거렸다. 다른 말을 하면 그대로 수틀렸으니 몰라라 하겠다는 듯한 태도를 바로 눈치챘기에 투란은 입술만 삐죽거리고 ‘알았어요, 알았다고!’ 투덜투덜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홀시딘은 그런 투란을 보고 잠시 뒤로 물러나 빙글빙글 허공에서 물구나무도 섰다가 다시 똑바로 섰다가 맴돌다가 하면서 한숨만 여러 번 내쉬었다. 그야말로 갑자기 머리에 뚝 떨어져 들러붙은 사고뭉치를 어찌할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상아탑의 대마법사는 금방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로열 클래스는 그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몬스터 헌터를 하든 초보 몬스터 로드로서 지내든 왕의 의무를 외면해서는 안 돼. 섭정을 두고 국정을 유지하기로 했더라도 최소한 일 년에 네 번, 석 달에 한 번씩은 왕으로서 왕궁에 하루 정도는 머물러야 한다. 찌푸리지 마! 보통 왕이라면 섭정이 있든 없든 일 년에 네 번, 다 해서 사나흘 정도 왕궁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많다고! 넌 완전히 거꾸로인 상태니까, 상상도 못 할 특권을 누리는 셈이란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다고 쳐도…… 투란, 아리엔 여제께서 너의 모자란 교육은 어찌한다 하셨지?”
“교육…… 갑자기?”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안 좋은 느낌에 흠칫한 투란이 바로 눈동자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시늉을 하며 되묻는다.
“왕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교양…… 아니, 굳이 왕이 아니더라도 왕족으로 태어났다면 최소한 지니고 있어야 할 소양이지. 학문의 기초를 갖춰야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 최소한의 고민이라도…… 하기 싫다는 표정을 그렇게 대놓고 들이대지 마! 짜증 난다고! 널 붙잡고 이런 얘기나 해야 한다니 나도 정말 싫단 말이다!”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
“아옷! 이걸 정말……. 폐하, 그럼 공식적으로 로그람의 국왕 폐하로서 접대하고 말씀드리올까요?”
공중에서 정중하게 자세를 갖추고 예법을 구사하는 홀시딘의 모습에 투란이 몸서리를 치며 비명처럼 외쳤다.
“꾸엑! 하지 마요! 느끼해! 말투도 이상하잖아! 미안하다고! 그냥 말해요, 그냥! 잘 듣고 있을 테니까!”
그 꼴을 본 홀시딘은 한숨과 함께 처량한 표정을 짓고 어깨까지 떨구며 한껏 낮춘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너한테 이런 이야기, 얼마나 귀찮은가 나도 잘 알아.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단 말이다. 내가 상아탑의 마법사, 마스터이고 네가 로그람의 왕이 된 탓이지! 아, 왕위 떠넘길 방법은 없었냐?”
“……없더라고요.”
“젠장!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참고 너는 감당할밖에.”
“그런데 왜 상아탑의 마스터라서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그냥 말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폐하아아아!”
“아, 진짜! 그거 하지 말고!”
“상, 아, 탑은 멸망한 에아본 왕국, 궁정 마법원을 계승하였기에, 춤추는 산맥의 다른 왕국 궁정 마법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아앗! 그래서 상아탑의 마법사, 특히나 마스터의 위에 오른 상위 마법사라면 왕가의 혈통과 만났을 때 짊어진 의무가 있어. 왕가의 혈통이 제대로 왕족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를 확인할 것, 왕족의 의무를 짊어져야 할 이에게 그 권리를 알려 주고, 왕족으로서 기초적인 지식을 갖추도록 도우며 그 힘이 되어 줘야 하지. 투란, 이건 네가 왕궁에서 제대로 왕족답게 자랐다면 일고여덟 살 때쯤 배웠을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래, 세상에 춤추는 산맥의 상아탑이 왕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드러나 있으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지. 상아탑의 마법사는 왕가에 대해 충실하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궁정 마법사로서 역할을 다한다, 그러니 왕족이 도움이 필요하다 싶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상아탑에 요청한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조차도 넌 몰랐잖아? 뭐, 알았어도 금방 잊어버렸을 성싶다만…… 난 그렇게 넘길 수가 없어. 상아탑의 마스터이니까.”
“마법……?”
투덜거림과 진지한 이야기, 홀시딘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던 투란은 문득 떠오른 한마디를 꺼냈다.
의무를 다한다고 말은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가 굉장히 깊이 담겨 있는 듯하니 어찌 보면 뭔가에 강요받는다고 여겨졌기에, 투란으로서는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 뭔가라면 마법 말고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홀시딘이 이를 바로 긍정했다.
“그래, 우린 마법을 통해 우리의 맹세를 스스로에게 새겼다.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우리는 많은 혜택을 받았지. 그걸 그냥 말로만 고맙다고 눙치고 넘어갈 수는 없었어. 상아탑을 세우도록 지원한 왕국, 에아본의 후예를 돌봐야 했던 다섯 왕국은 그저 말뿐인 약속을 전혀 믿지 않았지. 믿을 수 없는 시절이기도 했고……. 그래서 우린 스스로 맹세하고, 마법의 구속을 받아들임으로써 상아탑으로부터 강대한 마력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이 맹세를 어기게 되면 단순히 마법을 잃는 정도로 끝나지 않아. 로그람의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죄인으로 영혼마저 구속된 채로 망령군단의 마도병이 되고 만다. 물론 로그람 말고 다른 네 왕국 또한 제각각 징벌을 정해 뒀지. 한꺼번에 다섯 가지 벌을 받는 셈이야.”
“으흠, 꽤 까다롭고 복잡하겠네요.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놓기는 했겠죠?”
골 아프다는 듯이 듣던 투란이 문득 뭔가가 생각난 표정으로 은근한 웃음을 흘리면서 물었다.
홀시딘은 일단 쓴웃음을 짙게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바로 엄격한 말투와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상아탑은 맹세를 배반한 마법사를 사냥한다. 그리고 다섯 왕가에서 정한 징벌을 솜털처럼 느끼게 할 만한 교정을 하지. 그 교정이 끝나면 배반자는 자신의 죄를 살아서 뉘우치고 죽어서 갚게 돼.”
“……로그람의 마법이 꽤 깊이 엮였군요?”
“멸망한 에아본의 후예를 가장 열심히 도운 왕가였지, 로그람은. 죽은 자일지라도 아주 소중한 자원으로 삼을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 의도는 명백했다. 하지만 그 선량한 은혜를 배신한 자들에게는 철저한 벌을 내려야 했어. 투란, 그게 왕의 첫 번째 의무란다. 곤궁한 자를 돕지만, 곤궁함을 핑계 삼아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징벌을! 나라를 섬기고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가장 기본적으로 바라는 것이기도 하지. 공을 세운 자에게 보상을,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흔하게 듣던 말이지? 그러나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일이다.”
“어, 아마…… 로그람에서는 그대로 지켜질 거예요. 아리엔 할머니가 그렇게 한다고 했으니까.”
“뭐?”
“아는 게 없어서, 그렇게 하란 말만 남기고 나머지는 섭정으로서 다 알아서 하시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가도 좋다고 하던데…….”
“이 미친놈이……!”
홀시딘은 상식적이라서 더 뭐라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잠시 투란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 황당한 녀석을 어찌해야 하는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하지만 투란은 어깨만 으쓱이고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불쑥 묻는 말을 잇는다.
“아니,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해요? 로열 클래스이니까, 여기서 내가 왕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지 않도록 아무도 모르게 해 줄 수 있는지를 얘기해야죠! 갑자기 옛날이야기는 왜…… 그런 옛날이야기가 대체 상아탑 마법사의 의무랑 뭔 관계가 있어요?”
투덜투덜, 되는대로 늘어놓는 이야기에는 볼일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투란을 향해 홀시딘이 조금 더 가늘게 흘겨보는 눈짓을 하는데, 돌연 투란의 목 언저리에서 경쾌하고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법사는 투란을 가르치는 거야! 왕족으로서, 상아탑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거야!”
그 목소리의 원천, 붉은 빛을 등불처럼 일렁이는 보석을 보고 홀시딘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수……호자?”
겨우 쥐어짜 낸 듯이, 투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홀시딘이 꺼낸 말이었다.
투란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툴툴거리는 투로 대꾸한다.
“맞아요, 수호 영수라고 하던데…… 뭐, 아무튼. 원래 얘가 날 지켜줘야 하는 수호자인데요, 보석 안에서 살다가 내가 방심하고 위험할 때면 알아서 튀어나온대요. 어, 그리고…… 사실은 얘가 나에게 왕족이 배워야 할 일을 가르치는 거래요. 아직 안 늦었다고 잠잘 때 자꾸 떠들어서 귀찮…….”
홀시딘의 눈초리가 서늘해졌다.
투란은 움찔했다.
“크흠! 요새 내가 많이 힘들어요.”
그리고 둘은 동시에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깨달았다.
상아탑의 마법사 홀시딘은 이 새로 등극한 왕이란 녀석이 왕가의 교양을 엄청나게 귀찮아하고 있다는 것을, 왕보다는 몬스터 로드인 투란은 배워서 쓸모 있을지 의심스러운 잡다한 예의니 학문이니 하는 것을 상아탑의 마스터가 강제로라도 주입하려 한다는 것을!
이럴 때는 어찌할 것인가?
투란이 먼저, 아주 재빠르게 말한다.
“필요한 만큼은 이미 알아요. 누가 엄청난 학습법으로 미리 몸과 마음에 새기도록 해 줬어요.”
“학습법? 새겨? 그게 무슨 소리냐?”
“어, 그게…… 에이, 왕이란 것까지 숨기려는 상황이니까…… 아, 그런데 내가 여태 홀시딘에게 이 이야기 안 했나? 이것저것 말하면서 슬쩍슬쩍 말한 적 없어요?”
“뭘……?”
홀시딘은 미간을 좁히면서 심각하게 투란을 바라봤다.
슬쩍 이미 말해서 다 알고 있지 않느냐고, 모르는 척하지 말라는 투란의 태도가 어딘가 심하게 수상하니까.
하지만 투란은 홀시딘의 태도보다는 문득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는 듯이 갸웃하다가 팔짱을 끼고 턱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어, 생각해 보니까…… 왜 그런 이상한 왕가의 기초교양이니 학문이니 잔뜩 강제로 주입시켜 줬나 이상하네? 내게 필요한 부분이라면 오러를 다루는 무투술이니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키린이 왜 그랬지?”
“……누구? 뭐? 누가, 뭐?”
더듬더듬, 홀시딘은 불쑥 흘러나온 한마디에 바르르 몸을 떨며 휘둥그렇게 뜬 눈을 한층 더 부릅뜨는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어? 아, 키린요, 키린. 괴물 왕자님…… 그 에테온 반역왕 폐하의 첫째 아들, 괴물 왕자 키린…… 나랑 춤추는 산맥 안쪽에서 만났…… 홀시딘?”
“…….”
홀시딘은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 말하고 싶어 입을 살짝 열기는 했지만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오래가는 침묵은 아니었다.
상아탑의 대마법사는 금방 정신을 차렸고, 로그람의 새로운 왕을 향해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다.
“또 숨기는 거 없어? 내가 바로 너의 시크릿 키퍼잖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다 불어 봐.”